평창
/ 眞圓 이상구
모처럼 연휴를 정해서 일박 이일동안 어디로 갈지
즐거운 고민에 퐁~ 빠져버렸습니다.
시간을 배정해가며 맛집과 코스를 정하고,
팔베게를 만들어 그녀를 포근히 재울 숙소를 기웃거립니다.
젊어서는 넓은 바다가 좋았으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맑고 조용한 계곡이나 산사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어디든지 지도만 펼치면 적나라하게 옅볼 수 있는 대한민국,
아침부터 전국의 명소를 눈요기하며 콩 콩 왼쪽 가슴에 시동을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동반자의 고마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여행이자
남은 여생에 대한 홀가분한 믿음을 간직하고자 ...
그럼 출발을 해야겠지요.
사랑을 품고 묵묵히 기다려준 평창을 향해 출발합니다.
점심은 처음 목적지에서 많이 먹을 거야라며
아침을 거르고 주섬 주섬 옷가지를 챙기던 여인은
썬그라스에 온통 집중을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비록 일박이일이지만
부부가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벌써 십년이 넘었습니다.
십년 전에 동해안을 따라 아이러니한 별장 동네를 가 본 것이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김일성과 이승만의 별장 가운데 이승만의 꼬붕이자 비선실세였던 이기붕의 초라한 별장이라니...
옆으로는 군인들의 휴양지였고,
그 곳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집었다가 출입증이 없는 외부인이라고
아이스크림을 도로 놓고 나와야했던 슬픈 기억이 슬그머니 살아납니다.
언제나 휘파람이 절로 나는 중앙고속도로, 연휴에도 한산한 도로입니다.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를 갈아타면 그제서야 실감이 납니다.
1차 목적지가 운두령 송어횟집이니 속사에서 빠져나가야겠지요. ㅎㅎㅎ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이승복기념관과 생가터를 지나자니 종북이나 빨갱이 등등 유물이 되어버린 단어를
주구장창 부르짖던 춘천의 모 국회의원이 떠오르니 말입니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이름모를 장병들의 유골을 모아 크게 제사를 지내주었다는 운두령 횟집,
변함없이 테이블이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옛얘기를 지줄대며 차례를 기다립니다.
송어의 맛이 일품입니다.
어디에서도 그 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고즈넉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향 때문이겠지요.
급한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흥정계곡으로 향합니다.
흥정계곡엔 허니문을 연상시키는 아담하고 그림같은 팬션이 즐비합니다.
평창의 으뜸지인 허브나라와 흥정계곡의 맑은 물이 팬션과 어울려 사랑을 완결지으니
환경도, 사람도, 천상배필임을 믿게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그늘이 지는 시각,
우린 불빛이 아름답고 전망이 그윽한, 행복한 꿈을 그릴 수 있는 허브솔이라는 팬션에
투숙을 합니다.
눈을 작게 그리며 웃으시는 여사장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잡은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게 됩니다.
아름다운 추억, 사랑, 꿈, 희망 등등이 밤을 수놓습니다.
새소리가 맑게 들리는 아침, 계곡의 맑은 공기를 다 마실 수 없어 아쉽지만
자꾸 자꾸 뒤를 돌아보며 그리움을 담아갑니다.
팬션이 허브나라의 후문에 있으니 넘어져도 허브나라에 닿습니다.
꽃은 아침에 봐야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수줍은 모습으로 허브나라에 입성합니다.
사진은 300장을 목표로 했지만 200여 장으로 마치고 출구를 향합니다.
하루를 더 연기한들 아까움이 없겠지만 자연인이 아닌다음에야
일정을 소화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획대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 평창한우로 아점을 채우고 향한 곳이 600마지기입니다.
대부분 생소하게 들리는 600마지기, 그 곳, 미탄 사람들도 한 번 쯤 생각한 후 떠올리는 곳이
바로 600마지기랍니다.
여행은 일박 이일이었지만 이야기는 3일간 풀어놓아야 설명이 되는 곳이 평창입니다.
짬짬이 수다로는 1주일이 걸리겠지요.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흥정계곡의 아침]
수줍은 하늘
새 소리, 물 소리
바위와 숲 속의 팬션
어우러짐이 사랑이요
담기는 것이 행복이라네
고즈넉한 숲 속의 향연,
잠이 든 요괴를 깨울라
사폰히 깨끔발 들어
그녀의 분홍빛 볼을 바라다 본다.
[ 평창의 어느 음식점 ]
수줍은하늘
몸이 아파도 힘들겠지만
더욱 아픔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이겠지요.
그보다 더욱 더 아픈 것은
사랑하는 연인의,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고 뉘우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바보스럽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하는 일은 애초에 없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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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평창으로
출장을 갔었는데,
점심을 하러
어느 식당엘 들어갔다가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에
좋은 글귀가 있더군요
月色花色不如 吾家族和顔色
(달빛과 꽃색이 아무리 고와도
내 가족 웃는 얼굴만 하랴)
효경(孝經)을 백번 읽고
사서삼경을 줄줄 꿴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크게 한번 웃어봄만 하겠는가.
돌아오는 내내
'내 가족 웃는 얼굴'이란 글귀가
자꾸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