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내 짐까지 들고 숙소를 나와버린 가람을 따라 무작정 택시를 탔다.
“어쩔려구 그래?”
말해놓고도 아무 의미없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런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살며시 웃어보였다.
“사고치고 수습 못하겠으면 줄행랑이라도 쳐야지…!!”
짝…!!
나도 모르게 그만 놈의 허벅지를 내려치고 말았다.
“으이구… 잘 한다… 아이씨…”
하지만 내 손바닥에서 불이 날 지경이였다.
그런 내 손을 덥석 잡아다 맞은 지 허벅지에 올려놓고는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때린 손도, 맞은 부위도 이렇게 해야 빨리 낳아…!!”
“누가 그래?”
“내가…”
정우선배의 본색을 알게 해 줬기에 조금 풀어줬더니 기어오르고 있었다.
“야!!”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가 놀라 뒤로 돌아보시는 바람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알아… 나한테 고마워 하는 거 다 아니까… 택시비나 내셔…”
택시가 도로변에 멈추고 가람이 쑤욱 내려버렸다.
얼떨결에 택시비를 치르고 가람의 뒤를 따라갔다.
“어디가는거야? 서울로 갈 거 아니야?”
사람들의 헤치며 지나가던 가람이 뚝 발걸음을 세웠다.
“아직 엠티, 이틀이나 남았잖아… 그냥 가면 섭하지…”
“그러면… 지리도 모르면서 어딜 갈라구??”
대답도 없이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무슨 골목인지 러브호텔이라는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게 혹시…
어느새 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놈을 올려다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싱글벙글이다…
“야, 너 미쳤냐? 이런 데는 왜 와?”
손을 떨쳐내고 제자리에 서 버렸다.
내 말뜻을 이해하느라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민주… 너 은근히 응큼하다…
그렇게 곰팅인 척 하더니, 반나절도 안되서 이렇게 여우본성을 드러내냐?
누가 너랑 저런 데 들어갈까봐!! 꿈 깨셔…!!”
민망함에 얼굴에서 열이 뻗치고 있었다.
“우씨… 이게~~!!”
벌겋게 달아오르는 열기를 숨기려 양 손을 크게 벌려 놈에게 달려들었다.
퍽!!
내 양 손은 어느새 놈에게 잡혀버렸고,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놈의 가슴에 철퍼덕 안긴 꼴이 되었다.
“천천히 가자… 난, 니가 내 맘 알아준 것만으로도 더 이상은 바랄 것도 없어…”
내 양손을 자기 허리에 두르더니 자기 손으론 내 등을 살며시 끌어 안았다.
그제야 가람의 심장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찜질방이였다.
한 참을 날 안고 있던 가람이 다시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온 이 곳은
러브호텔 간판들이 내뿜던 현란함에 눈도 맘도 까슬하게 만들었던 내 마음을
이내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동네의 기운이 넘어들어왔는지
곳곳에서 그렇고 그런 연인들의 보기 민망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쫌 그렇다…”
내 말에 가람이 피식 웃어보였다.
“너두 그랬거든… 기억안나? 또 기억나게 해 줄까?”
야릇한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바짞 다가서는 놈때문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헙…
이 놈이…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이놈의 그렇고 그런 행동은 다…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의 불순한 의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난… 식상한 거 싫거든… 딴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뭐 좀 먹자…”
그런 내 의지를 가볍게 무너트리고 매점이 있는 휴게실로 날 데리고 가는 가람이였다.
옆에서 가늘게 숨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가람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몸도 맘도 머리도 피곤하고 지쳐있는 건 맞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돌아누워 베개용 목침에 팔을 포개고 머리를 받쳤다.
옆으로 바라보는 한가람의 이목구비에 새삼스레 얼굴이 발그스름 해지고 있었다.
“후~~~”
퍽…
“엄마야…”
바라보고 있는 날 향해 돌아눕더니 눈을 번쩍 떠 버리는 한가람때문에 놀란 나머지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무리 봐도 너무 잘생겼지? 이렇게 잘난 남자를 어디서 또 만날까 싶어,
숨이 턱턱 막히지? 그렇게 좋냐?”
놀란 가슴이 체 진정을 하기도 전에 사람의 정신까지 쏙 빼가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좋으면 좋다고 말로 해라… 잠자는 남자, 덥칠 생각하지 말고…”
이게 점점…
“내가 언제 너 좋다고 말한 적 있었어? 왜 혼자 북치고 장구치냐?
그냥 잠이나 자라…”
곱게 봐줄까 했더니 싸가지를 버는 놈이다…
휙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그거 모르지? 난… 니가 나한테 등 보일 때마다, 미치게 안고 싶었던 거…”
퍽…
놈의 긴팔이 허리에 감겼다.
“야…”
이 방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쫓겨날 지경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돌아눕지마… 그럼 식상이고 뭐고, 또 확…”
반쯤 돌아가던 몸을 원상태로 돌렸다.
“여기선 이러구 자두 되겠지…?”
등에 닿은 그의 가슴에선 심장이 자장가처럼 뛰고 있었다.
그 소리에 숨을 고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찜질방을 나와 아침을 대충 떼우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냥 편안한 느낌이 좋아 가람이 하자는대로 하고 있었다.
서울가는 버스편을 확인하고 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마음이 한 숨 놓였다.
“일단 서울로 가자… 가서 심야영화보면서 하루 밤을 더 새든지, 아님…”
응큼함이 풀풀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놈의 얼굴을 두 손으로 확 밀어버렸다.
“으이구, 이 놈아… 여기서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낯선 동네니까 너랑 있었지…
내가 서울가서도 미쳤다고 너랑 또 밤을 새냐?”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나에게 보여준 가람의 마음 하나로 우린 벌써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아… 그러셔?? 그럼 확 찢어지자… 서울까지 갈 거 뭐 있냐? 여기서 찢어지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 참 뒷자리로 가버리는 놈이였다.
“맘대루 해라…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콧방귀를 껴주고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버스로 꾸역꾸역 들어왔다.
그리고 인상 험하게 생긴 아저씨가 다른 빈 자리 다 냅두고
내 옆에 앉으려는 듯 폼을 잡고 있었다.
“한가람… 너, 일루 안와!!!”
나두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앉으려던 아저씨도 주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가람은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고개까지 창가로 돌려버렸다.
“야!! 너… 거기 그대루 있어… 너 이제 죽었어…!!”
슬그머니 한 쪽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던 험한 인상의 아저씨를 밀어재치고
한가람이 있는 뒷자리로 쿵쿵거리며 다가갔다.
일부러 요란스럽게 내가 옆에 선 걸 알려주었는데도 계속 모른 척하고 있는 놈이였다.
퍽!!!
놈의 가슴으로 가방을 힘껏 던져버렸다.
아저씨 인상때문에 진짜 놀랬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하다니…
약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나쁜 놈… 좋아한다는 거, 순 거짓말이지? 니 말을 믿은 내가 바보다…”
철퍼덕…
놈의 큰 손이 내 손목을 끌어당겨 날 옆자리에 앉혔다.
고개를 휙 돌려 째려봐 주었더니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오빠말 잘 들어… 까불지 말고…”
이게…
오냐오냐 해 줬더니 도를 넘어서려고…
“믿게 해 줄께… 너만 믿어준다면 절대 후회하게 안해…”
언제 그렇게 웃고 있었냐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자리로 끌어 앉힐 때부터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내 손을 잡아 쥐었다.
그 손이 참 따뜻했다.
“피곤할텐데 푹 쉬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더 놀자고 할 것처럼 버스안에서 내내 떠들었던 놈이
서울에 도착해서는 바로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곤 돌아서려고 했다.
“한가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약간은 아쉽기도 한 마음에 일단 가람을 불러 세웠다.
“난 괜찮으니까 그냥 들어가…”
짧은 시간에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된 건
나름대로 험했다면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기 때문일까?
“고마워… 잘 가…”
함께 걸어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마우면… 오늘 오빠 꿈 꿔라…
그리고 내일은 영화두 보여주고,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또 오빠 꿈 꾸고…
맨날맨날 그렇게 살아라…!! 간다…!!”
실실거리며 지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놈이였다.
찰싹…
“으이구… 그냥 곱게 인사만 받고 가지… 매를 벌어요, 매를…”
돌아서 가는 놈의 등짝을 살짝, 아주 살짝 친다는 게 그만
손에 무리가 갈 정도로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놈의 두꺼운 잠바에 닿은 내 손만 얼얼하게 저려왔다.
“이리 내…”
쯧쯧거리며 내 손을 잡아 잠바 안으로 넣더니
이번에 자기 가슴에다 대고 스윽스윽 문지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놈의 행동에 눈을 껌뻑거리며 올려다 보았다.
“그르게… 까불지 말랬지…!!”
지가 진짜 오빠라도 되는 듯 날 타이른다…
“니가… 아주 사람 가슴에 불을 지핀다… 하민주…”
문지르던 손을 가만히 가슴에 대고 한 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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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주시는 분들, 꼬리말 달아주시는 분들 덕에
몸은 쩜 아프지만... 흐흐흐
춥다는구요... 감기 조심하세요...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중편 ]
점령 15
라인강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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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09
06.02.16 23:5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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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침부터 하늘이 찌푸리고 있더니 결국은 함박눈을 쏟아내고 있네요.. 라인강의 기적님 아프지 마시구요 얼른 기운차리세요.. 몸이 아프면 괜시리 엄마생각이 더 나잖아요.. 라인강의 기적님 파이팅!!!!!!!!!!!
흑흑흑... 님의 꼬리때문에 안 나고 있던 엄마생각이... 허흑... 파이팅, 감사합니다...^^
나 참.. 저리 멋지구리한 놈이 왜 곰탱이같은 민주를 좋아한데??? 나하고 어울리는듯한데요..호.호.호.
민주가 생각보다 쩜 이쁜데? 님도 자신 있으신가봐요??ㅋㅋ
늘 읽어주는 사람은 저지만 음~ 꼬리는 달아 드릴수가 없다지요 아마 ㅎㅎㅎㅎ 넘 잼 나요 캬~~~~~~~~~~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가식적이라서리... 꼬리도 종종 부탁드립니다가 제 진심이라는...ㅋㅋ
그런가 봅니다... 내숭응큼쟁이라는...ㅋㅋ
완전 재미있다ㅋ 감기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님도 건강유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