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지나오며
뉴질랜드를 떠나 이천km를 날아 호주에 도착했다. 집에 가는 길이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한 번 보고 가자며 이 나라의 대표적 관광지를 꼽아 본다.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릿지, 캥거루, 코알라, 블루마운틴, 울루루, 태즈매니아 등이 떠오른다. 이 나라도 이것들을 전세계인에게 보여주며 돈깨나 벌었다.
블루마운틴이 그랜드캐년이나 장가계 못지않은 장대하고 오묘한 절경이라니 보러 나선다. 통과하는 시내는 우리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고층건물이 많지 않고, 도로는 넓고 깨끗하다. 뉴질랜드완 다르다. 우리의 신식추구 정서에 잘 맞는다. 블루마운틴에 올랐으나 비가 오고 안개가 아주 짙어 보이는 것이 거의 없다. 불과 십여 미터 앞도 보기 어려우니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나온다. 마치 삼십년 전 장인어른을 모시고 미시령 고갯길을 넘으며 느꼈던 공포 같다. 다만 이 높은 산 정상을 버스가 오르고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운행하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가까이 있으며 같은 영연방국가 뉴질랜드와 비교된다. 뉴질랜드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우리나라도 설악산에 광관용 케이블카를 설치하려해도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의 이해를 넘지 못해 시간만 끌고 있다.
곳곳에 영어와 함께 한글 안내판이 보인다. 일어 중국어와 함께. 종종 안내방송도 우리말로 해준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단다. 요것은 우리들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경제적 이득을 안겼기 때문이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로서는 영광이다.
시내에는 육십 년대 전차 같은 트램이 운행되고 있다. 방송에서 종종 보았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가까이서 보아도 이렇다 할 차량과 행인의 격리시설이 없다. 늘 궁금해 하는 점의 하나다. 안내인의 말로는 그래도 이렇다 할 사고도 없단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전철역의 스크린도어가 생각난다. 외국에는 별로 없는 그것을 설치하느라 들인 돈이 얼만지 모르겠다. 왜 그것이 꼭 필요할까. 아마도 언제나 바쁜 우리 국민성과 특정단체의 요구에 약한 기관 탓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도 어쩌다 그것이 없는 수도권의 한가한 전철역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스크린도어의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우리나라도 성남, 대전 등에서 트램을 도입할 움직임이 있다. 설치가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행인의 안전문제를 어찌 해결할지가 몹시 궁금하다. 혹여 행인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생기면, 여기도 스크린도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페라하우스를 간다더니 건강식품 매장으로 데리고 간다. 지겹다. 국내여행에서도, 어느 나라든지 패키지여행의 폐단이다. 아내가 속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긴 쓸 돈도 많지는 않다. 결국 꾐에 넘어갔다. 하긴 장날 약장사나 TV홈쇼핑의 그 높은 선전선동 수단을 우리가 어이 이기랴. 결국 듣지 않는 게 현명한데 이미 갔으니 어쩌랴. 살짝 속아주었다며 씽끗 웃는다. 살림을 거덜 낼만큼 쓴 게 아니니 나도 그저 웃는다.
어제 야경투어를 하며 보았던 시드니의 명물 하버브리지를 도보로 건너고,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갔다. 세계적 명소답게 외양은 물론, 내부와 건설과정 등을 티브이나 안내책자를 통해 자주 보았으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외부도 내부도 참으로 웅장하다. 지구의 반대편까지 만여 길로미터를 날아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무대에서는 토크쇼가 진행 중이다. 이왕 왔으니 오페라 아리아 내지는 가곡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다. 아마 홀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을 위한 보여주기 쇼인가 보다.
잘 보고 나왔지만, 갑자기 아내가 전화기가 없다고 울상이다. 일행을 기다리게 하고 가이드와 함께 찾으러 가는 길은 참 한심하다는 생각. 만일 가이드가 없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이역만리 타국에서 동생을 사별한 매부의 곤경이 문득 떠오른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들었을까.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긴 했다. 다른 여행객에게 불편을 끼쳐 대단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 저장된 데이터와 신용카드가 문제다. 못 찾는다면 크나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3층 객석의자에 떨어진 것을 관리인이 주워 안내소에 두었기 때문에 찾았지만, 천만다행이다.
동물원을 방문해 코알라와 캥거루 등을 보았다. 지난해 초대형 산불로 인하여 많은 산림이 소실되었다 하여 호주방문이 꺼려지기도 했으나 여행지 인근에는 흔적이 없다. 다행이다. 코알라 캥거루를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처럼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이나라 중서부의 광활한 대지에서 마음껏 뛰지 못하고 비좁은 동물원에 갇혀 있음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마치 동물원이 미국의 인디언보호구역이란 것과 같아 비통하다. 녀석들은 사람이 쓰다듬어도 별로 신경도 안 쓴다. 꼭 어린 송아지 같다. 관광객의 태도에 적응해서인지 본시 유순한 성미인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덩치도 작다. 진돗개 정도의 몸집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지만, 하늘의 섭리가 유별나다는 생각도 한다.
자연에서 뛰노는 캥거루, 호주의 붉은 심장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바위 울루루 들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짧은 여행일정에 다 보는 것은 본시부터 어려운 일이다. 몇몇 곳을 더 둘러보고는 북으로 북으로 날아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조국은 코로나19 때문에 지극히 혼란스럽지만, 내 조국이 제일 좋다. 언어가 편해서 좋고, 산천과 사람들이 낯설지 않아 좋다. 화려하고 웅장한, 선진국 어느 나라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인천공항이 좋다. 인터넷도 빵빵 터진다. 그러나 뉴스를 보니 코로나19 확진자 1,230명, 사망자 10명. 우리나라 여행객에 대하여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가 30여개 나라다. 우울하다. 나도 어찌 될지 모른다. 근신하자. 기도하자. 하루 속히 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하고.
(2020.2.28. 호주에서)
첫댓글 다들 다녀오신 곳이라 특이한 것은 없지만,
뉴질랜드를 거쳐 어렵게 다녀온 만큼 기행수필 하나를 남깁니다.
댓글은 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
저도 따라 여행 한 번 잘 하고 갑니다^^멋지십니다^^정암선생님^^
잘사는 나라, 부자 나라, 평화로운 나라, 캥거루가 있는 나라, 그렇게만 알고 살았습니다~~^^
그것 밖에 없어요. 사는 수준은 우리와 별 차이 없고요...^^ 고맙습니다.
저도 다녀온 곳이라 장면장면들이 떠오르고 공감이 가는군요. 특히 가이드들의 장사꾼 행위는 너무 심하더군요. 그들이 멀리 이국에 가서도 모국 사람 꼬실 생각만하다니. 절대로 속지 않아야합니다.
이틀에 한 곳은 들리나 봅니다.
장삿꾼의 말을 듣지 말아야지 들으면 이길 방법이 없어요. 패키지여행은 어쩔 수 없나봐요.
고맙습니다.선생님.
호주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외국은 딱 한군데 밖에 다녀 온 곳이 없어서
호기심은 많치만 기력이 떨어졌는지 -
외국여행은 엄두도 못냅니다 -ㅎ-
선생님도 저 만큼이나 안 나가셨군요. 오십년만이었습니다.
인천공항은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라든데, 우리 서정 식구들은 죄다 빠졌나봅니다. 허 허
즐거워야 할 여행에서 쇼핑길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들의 말처럼 특효의 있는 약제나 상품도 아닌데 상술에 빠져들게 됩니다 ㅎ
디테일 한 기행문에 여행을 동행한 느낌으로 잘 감상 하였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죠. 장날약장사 구경처럼 그저 재밌어야 하는데... ㅎ ㅎ
말씀 고맙습니다. 박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