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의욕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주일 강단에서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새로운 결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 이제는 정말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입니다. 지난날의 모습을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조금 더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굳게 먹었던 결심이 월요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전을 받습니다. 주일에는 그토록 분명했던 마음이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희미해집니다.
설교를 통해 받은 감동이 평일의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신앙의 근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힘을 갖추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헤엄을 쳐서 바다를 횡단하는 꿈을 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 건너편에 도착하겠다는 열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마음의 의욕만으로 그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오랜 시간 수영을 배우고 체력을 길러야 하며, 바닷물의 흐름과 파도에 대처하는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실제로 바다에 들어가 수없이 몸을 움직여 본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먼 거리를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앙생활에서는 이런 상식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 같고, 누군가를 용서해야겠다고 결심하면 오래된 미움도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불편한 사람을 만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부족했거나 결심이 단단하지 않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물론 진지하지 못한 결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결단했음에도 삶이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심은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 결심이 곧 변화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특별한 감동을 얼마나 자주 경험했느냐보다 그 감동을 일상의 순종으로 얼마나 오래 이어 왔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려면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판단과 습관을 말씀 앞에서 수정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상처받은 마음을 다스리며 상대를 대하는 것은 다릅니다. 때로는 한 번의 결심으로 해결되지 않아 같은 문제를 놓고 여러 번 기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권면했습니다(디모데전서 4:7). 여기서 연단한다는 말에는 훈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경건은 마음속에 좋은 생각을 많이 품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과정이 삶에 깊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신앙의 성숙을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의 성장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십니다. 은혜를 의지한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모습과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조금 아쉬운 모습 중 하나가 있다면 큰 결심을 너무 쉽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설교를 듣고 인생 전체를 바꾸겠다고 다짐하지만, 정작 다음 날 아침 십 분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가까운 가족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를 바꾸는 일은 크게 마음 쓰지 않습니다. 큰 변화에 대한 기대가 정작 작은 순종의 가치를 가려 버리는 셈입니다.
넓은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먼바다로 뛰어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짧은 거리를 헤엄치다가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넓혀 갑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말씀을 읽는 일, 불편한 상황에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잠시 기도하는 일,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이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수영을 배운 사람도 거센 파도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은 사람 역시 예상하지 못한 고난 앞에서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된 사람은 파도가 일어날 때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과 기도로 믿음이 길러진 사람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이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조금 더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주일에 받은 은혜가 월요일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경험을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설교를 듣고 결심한 내용을 한 가지라도 생활 속에 옮겨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얼마나 감동했는지가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근력은 그렇게 자라납니다. 시간이 지나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근육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 우리의 신앙도 오랜 시간 하나님의 은혜와 훈련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 갑니다. 주일마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난 주일의 결심을 평일에도 지켜 내는 믿음은 더욱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뜨거운 마음만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평범한 일상도 사용하여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바다를 건너겠다는 마음은 우리를 바닷가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물속에 들어가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일에 들은 말씀 가운데 아직 삶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시 새로운 결심을 보태기보다 지난 결심을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가 실천하는 작은 순종 하나가 지난 주일의 은혜를 삶에 남기는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고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