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3-5로 패한 LG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다.
두산이 잠실 라이벌 LG의 실낱 같은 가을희망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는 29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장단 12안타를 몰아치며 5-3으로 승리했다. 두산의 선발 장원준은 7이닝 2피안타 2탈삼진1실점 호투로 시즌 14번째 승리를 챙겼고 5회 2타점 적시타를 터트린 민병헌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반면에 가을야구를 향한 희망의 끈을 이어가던 LG는 이날 패배로 잔여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다. 10개 구단 중 상위 50%에 해당하는 5개 팀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KBO리그에서 가을야구 탈락은 곧 '실패한 시즌'을 의미한다. '특급 좌완' 차우찬을 영입하며 우승 후보로까지 평가 받았던 LG가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고도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갖췄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에이스 데이비드 허프
상대를 윽박지르는 위력적인 구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정교한 제구력도 필수다. 위기 상황에서 아무리 강한 타자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일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위의 요소들을 한 시즌 내내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건강이 있어야 한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팀의 에이스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들이다.
2.39의 시즌 평균자책점과 경기당 평균 6.1이닝 소화. 피안타율 .216와 1.93의 이닝당 출루 허용수(WHIP). LG의 외국인 에이스 데이비드 허프는 분명 올 시즌 KBO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올 시즌 16번의 선발 등판 중에서 퀄리티 스타트가 12회였으니 4번 중 3번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허프가 올 시즌 최고의 투수가 되기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시범 경기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한 허프는 7월 다시 햄스트링을 다치며 한 달 동안 결장했다. 올해 1군에서 말소된 일수를 합치면 총 76일. 선발 투수가 6일에 한 번씩 등판한다고 계산해도 최소 10회 이상 선발 등판을 거른 셈이다. 올해 29번 등판한 헥터 노에시(KIA 타이거즈)에 비해 정확히 12경기가 부족하다.
LG는 허프가 이탈한 사이 임찬규나 김대현 같은 젊은 선발 투수들을 발굴했고 이들은 분명 훗날 LG마운드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LG를 상대했던 팀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허프라는 부담스런 에이스 대신 상대적으로 만만한 투수를 상대했고 이는 LG의 성적 저하로 이어졌다. 만약 허프가 헨리 소사의 건강까지 갖추고 있었다면 LG는 더욱 빨리 상위권에 안착하며 가을 야구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끝내 키우지도 구하지도 못한 4번타자
사실 4번타자 부재는 LG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의 한대화를 마지막으로 LG는 그럴 듯한 4번타자를 보유하지 못했다. LG팬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4번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 역시 실제로 LG 유니폼을 입고 뛴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4번타자 부재라는 치명적인 약점은 올해도 번번이 LG의 발목을 잡았다.
LG는 작년 시즌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타율 .308 26홈런102타점으로 맹활약하며 4번타자로 자리 잡는 듯 했다. 하지만 히메네스는 올 시즌 상대 투수들의 집중견제를 받으며 5월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고 6월초 발목 부상으로 이탈했다. LG는 히메네스가 없는 한 달 반 동안 4번타자 없이 시즌을 치러냈고 결국 제임스 로니와 계약하며 부상에서 거의 회복된 히메네스와 이별을 선택했다.
문제는 새로 영입한 로니 역시 LG가 바라던 4번 타자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작년까지 빅리그에서 11년 동안 활약했지만 올해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로니는 KBO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결국 로니는 타격 부진 속에 2군행을 지시 받았고 이에 불응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LG는 외국인 타자 없이 시즌을 치르게 됐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양석환이 전반기에만 타율 .290을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후반기 .222로 무너지며 4번타자로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반대로 후반기에만 타율 .317 4홈런15타점을 기록한 김재율 역시 아직 '풀타임 4번'을 맡길 정도의 선수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결국 LG는 내년에도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4번타자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포수와 최고참, 미필 유망주가 팀 홈런 1~3위를 차지했던 타선
야구는 집(홈)을 나가서 출근(출루)을 하고 각 루를 거치며 열심히 일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점수가 올라가는 스포츠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빨리 다음 루로 이동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득점을 더 쉽게 올리게 되는데 그 비결이 바로 '장타'에 있다. 한 번에 2~3개의 루, 혹은 한 번에 그라운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장타는 경기를 편하게 풀어갈 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LG는 올 시즌 내내 가장 비효율적인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10개 구단 중 가장 적은 홈런(108개)과 가장 낮은 장타율(.400)을 기록한 팀이 바로 LG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LG는 .282의 팀 타율(7위)과 .297의 우수한 득점권 타율(3위)를 기록하고도 정작 득점 부문에서는 9위(690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 LG는 유강남이 15홈런으로 팀 내 홈런 1위를 달리고 있고 14개의 박용택과 양석환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이 기대 이상의 장타력을 보여준 것과는 별개로 하위타선에 배치되는 포수와 39세의 팀 내 최고참, 그리고 아직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3루수를 제외하면 팀 내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점은 분명 커다란 문제다.
물론 규모가 큰 잠실구장을 사용하는 LG는 상대적으로 많은 홈런을 치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두산은 같은 잠실 구장을 사용하면서도 팀 홈런 2위(175개), 팀 장타율 3위(.460)를 달리고 있다. 다가올 2018년에도 '장타 부재'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나머지 9개 구단 투수들은 LG를 상대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