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일백예순여덟 번째
양심의 외주화
십수 년 전, 이른 아침 출근길에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뀔 것 같아 서행하는 중에 오른편 차도의 차가 갑자기 내 앞을 가로질러 왼편 차선으로 질주하려다 내 차와 부딪쳤습니다. 순간 놀라기도 했고 당황해서 차를 멈추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교통순경이 다가와 사고 지점을 표시하고 차를 길가로 옮겼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고를 낸 차 운전자가 찾아와 사과할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다 해결해 줄 텐데 사과할 일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양심을 보험회사에 외주外注한 겁니다. 참으로 편리한 제도였습니다. 우리네 일상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집니다. 교통질서를 위해 신호를 보내주는 교통경찰 대신 신호등이 설치되고,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스스로 지켜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아주 늦은 시간, 보행자가 전혀 없는 시간,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운전하던 아버지가 차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그냥 가지 멈추느냐고.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질서란 습관이란다. 우리 몸과 뇌가 빨간불에서는 멈춰 서도록 습관이 되어야 질서가 유지된단다. 사람의 도리도 그렇게 지켜지는 것이란다.” 이게 맞는 거지요. 그런데 세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자만 그런 게 아니라 보행자도 빨간불에 그냥 건넙니다. 그래서 CCTV 등 감시 카메라가 설치됩니다. 양심을 CCTV에 외주한 겁니다. 그래서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질서가 지켜지지 않습니다. 교통경찰에게 들키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우린 지금 그렇게 양심의 외주화에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죽음도 외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