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시로 여는 수요일]
아버지의 금시계
마경덕
아버지 모처럼 기분이 좋으시다. 노란 금시계를 내밀며, 이거 봐라. 오늘 집에 오다가 횡재했다. 십만 원짜리를 삼만 원에 샀다. 허어, 이 비싼 걸 그리 싸게 주다니. 검게 그을린 팔뚝에 금시계 눈부시다. 주름진 손에 금시계 반짝인다.
싸구려 도금시계. 얼마 못 가 맥기칠 벗어질 조잡한 금시계를 아버진 도무지 모르신다. 술 한 잔에 보증 서주고 집 날리고 친구들에게 봉이라고 불리는 세상 모르는 아버지, 그러고도 아직 남을 믿는다. 칠이 다 벗어져 거뭇거뭇한 아버지. 며칠 후 멈춰버릴 시계를 믿는다. 길에서 처음 본 시계장수를 믿는다. 오늘 참 고마운 사람을 만났어, 어허, 이 비싼 걸…
감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속상하실 때가 종종 있었겠군요. 하지만 말씀 다 듣고 보니 아버님 금시계는 정말 명품시계네요. 손목이 아니라 아버지 마음을 순금으로 빛나게 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가지 않아 칠이 벗겨지고, 덜컥 멈출 수도 있지만 여태도 세상을 믿는 아버지 마음이 눈부십니다. 순금을 찬 오만보다, 도금을 찬 감사가 뭉클해요. 오래 전 돌아가신 내 명품 아버지도 되찾고 싶네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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