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야기
1) Via Appia (아피아 街道)의 Spartacus와 Abebe
로마에서 Capua 에 이르는 200 Km 의 고속도로 Via Appia를 따라 30 m 마다 세워진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6000명 노예반란군 포로들의 참혹한 씬. 주모자를 색출하려는 무자비한 로마군에게 그들의 지도자를 숨기기 위해 모두 하나같이 “내가 Spartacus 다” 라고 외치고 나서는 바람에 포로 전원이 십자가형에 처해 지는 BC 73-71 년 로마제국 노예반란 역사드라마.
노예 여주인공 Variana 로 분(粉)한 애련한 Jean Simmons 가 갓 태어난 아기를, 십자가에 못 박힌채 곧 숨 넘어가는 애기아빠 Sparacus (Kirk Douglas 분) 에게 들어올려 보여주는, 1960년 개봉 영화 의 마지막 짠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Spartacus (BC 111-71)의 신상명세에 관해서는 역사가들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지만, 제국변방 그리스 Thrace 출신의 이 출중한 검투사출신 군인이 후세에 남긴 노예해방 투쟁 사실(史實)만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2000년이 훌쩍 지난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15분16.2초의 세계신기록으로 골인 하는 맨발의 영웅 – 에티오피아의 아베베(Abebe Bikila)가 생각난다. 과연 그는 코스의 일부인 로마 근교의 이 길을 뛰면서 2000년전 바로 여기 어딘가 십자가에 달려 로마군에게 끝까지 발각되지 않은 채 숨져 간 Spartacus를 잠시나마 상기했을까?
기록: Via Appia 는 2300년전인 BC 312 년 개통. 당시 건설장관 Appius Claudius Caecus 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대표적인 로마 가도. 오늘날에도 옛 길 모습 그대로 일부 구간에서는 자동차가 달린다.
2) 시인(?) Nero 의 눈물
추억의 명화 쿼봐디스(Quo Vadis)에 나오는 코미디안 같은 폭군 Nero (AD 37-68). 17세에 다섯 번째 로마황제로 등극, 공적으로는 외교, 통상, 문화체육을 진흥시키고, 여러차례 전쟁에서 승전을 거두어 국위를 떨쳤다. 순진한 백성들은 그의 포퓰리즘 정책에 환호를 보내며 태평성대의 행복을 누리고 있노라고 느꼈을 터이다.
AD 64년 로마시내에 일어난 대화재를 Palatino 언덕 Domus Aurea 별장에서 내려다 보면서 눈물을 머금은 채 수금(竪琴)을 키고 시를 읊던 그는 문득 날로 숫자가 늘어나는 불가사의한 기독교인들을 이 참에 스케입고트로 만들어 버리자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스스로 탄복한 나머지, 이들을 대경기장에 끌어다 광분한 관중들 보는 앞에 굶주린 사자떼들 먹잇감으로 내던지는가 하면, 훗날의 성인 사도 바울마저 누군지도 모른 채 참수형에 처해 버렸다.
정치적 경쟁자는 물론 생모 Aggrippina 까지 참살하는 만행 끝에 시민폭동의 공적(公敵) 으로 몰릴 것이 두려워 후궁의 도움을 받아 결국 31세의 나이로 자결을 택하지만, 그의 다중성(多重性) 인간모습은 현대 심리학으로도 가늠할 길이 없다. 무덤조차 찾을 길 없이 로마시내 Capitolino 박물관에 남아있는 눈물 마른 단 한 개의 깨어진 흉상 - 인간 네로의 일그러진 모습임에랴.
3)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를 위한 변명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 동안,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비난과 저주를 피하지 못할 실존의 이름 – 본디오 빌라도. AD 390년 밀라노공의회 이후 오늘날 까지 1600년이 지나는 동안 사도신경(使徒信經)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가 왜 이렇게 참담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and died...)>
로마에서 파견되어 유대총독으로 주재하고 있던 그로서는 예수를 처형하라는 유대인들의 함성에 참으로 난처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중얼거린다.
“사형 시켜야 마땅하다니, 그가 무슨 죄가 있다는 건지 이 사람들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네.”
유대인들은 외친다. “아니, 자칭 왕이라는데,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 아니요?”
할 수 없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손을 씻었다. 이 젊은이의 죽음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챦아도 그날 아침 여행가 있던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왔었다.
“제발 그 죄 없는 유대사람 일에 관여하지 마셔요. 어젯밤 꿈자리가 몹시 사나왔답니다.”
그가 아내의 말을 무심코 흘려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난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식민지 주민들의 아우성에 진저리가 난 김에 ‘에라 모르겠다, 해 달라는 대로 해 버리자.’ 한 것일까? 사복음서에 나오는 빌라도를 잘 들여다 보면, 그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꼭 죽이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민란을 겁낸 우유부단한 관리? 식민지 주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포악한 총독? 혹, 예수를 유대교 총본부 산헤드린(Sanhedrin)공회에 밀고한 스가룟 유다의 경우처럼 신의 섭리로 예정된 장면전환 역할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일부 외경(外經: 66권 신구약 정경외의 비공인 카톨릭문서)에서도 예수의 사형은 빌라도보다는 오히려 유대 분봉왕(分封王) Herod 이나 유대인 일반백성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에티오피아 정교회(正敎會)에서는 더 나아가 어찌된 셈인지 억울한 본디오 빌라도를 성인(聖人)으로까지 떠받들고 있다.
AD 26-36 까지 10년간 출세길의 유대총독을 지낸 본디오 빌라도는 그를 신임하던 Tiberius 황제(2대)가 의문사하자 본국으로 일단 소환되었다가 Gaul(지금의 프랑스)지방 어디론가 추방되었다가 (또는 망명했다가) 자결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욕의 이름을 남긴채.
4) Hannibal 의 코끼리
북 아프리카에서 발진하여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 프랑스내륙을 거쳐 한겨울의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가던 카르타고(지금의 Tunisia)의 영웅 한니발(AD247–181)의 비장의 무기 코끼리 38마리. 그 때만 해도 아직 로마제국이 안정되기 훨씬 전 - BC 218년 이른바 공화정 로마시대. 지중해 패권을 놓고 겨루고 있었다고는 하나,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은 이미 카르타고 따위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군인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로마에 대한 원한을 품고, 어려서부터 군대 막사 안에서 군인으로 자란 한니발 - 후대의 역사가들이 꼽는 세계최고의 명장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그가 야심차게 지휘하는 10 만명의 보병, 2만명의 기병 선두에 내세운 38마리의 아프리카 코끼리부대. 생전 보도 듣도 못한 형상, 내뿜는 악취, 천지를 진동시킬 듯 포효하며 달려드는 괴물의 출현에 문명인이라던 로마시민들도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제2차 포에니전쟁(Punic War). 그는 15년간이나 이태리반도 몸통을 머리꼭대기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짓밟고 누볐지만 막상 급소 명치에 해당하는 로마 성내에는 한번도 발을 들여놓아 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이 퇴각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른바 한니발의 수수께끼. 결국 카르타고 고국본토로 반격해 들어 온 로마군에게 Zama 전투에서 완패한 후, 레바논, 시리아, 아르메니아등지로 망명 전전하다가 BC183 년 터키땅에서 독약으로 자결한다.
“이제는 로마인들을 오랜 공포에서 그만 놓아주련다. 내가 죽기를 얼마나 고대했겠나?” ==
지금도 이태리 가정에서는 말 안 듣던 애들도 ‘한니발 문밖에 와 있어.’ 말 한마디에 버릇 고친다. AD 5세기, 6세기만 해도 동고트, 서고트, 훈족들이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던 로마 성벽안에 공포의 대명사 한니발이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했다는 로마역사의 미스테리. 한니발이 타고 다니던 Surus 라는 이름의 늠름한 코끼리는 어찌 되었을까?
5) 영광 로마의 유령
‘로마에 가거던... 로마 사람들 하는대로 하라’고? 아니다. 굳이 로마에 가지 않더라도 로마인들을 흉내 낼 일은 얼마든지 어디에나 있다. 근대 정치의 표준이 된 제국 원로원과 호민관의 권력균형 시스템, 2천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고가수로(高架水路), 해저 800 미터에서 굳는 시멘트를 개발한 공학기술, 가진 자들의 Noblesse Oblige 정신, 예술을 통해 국민정신을 고양시키려던 메세나 이니시어티브, 방벽을 쌓기보다는 고속도로를 놓은 열린 안목,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기독교의 총본산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하나님 섭리의 인간적 정치적 수용,
로마는 어떻게 망하는지조차 모르게 망했다. 그러나 결국 이겼다. 후손들에게, 아니 전세계 문명인 들에게 살아있는 유산 <로마의 것>을 남겨 놓았으니 말이다. 눈에 보이는 로마보다도 더 리얼하게 온 인류 <문화인 평화인 자유인>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맴돌고 있는 로마의 유령 Logical, Practical, Cynical.... (끝)
(출처: lastloser의 글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