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강을 따라 흐르는 숨겨진 멋과 문화 - 헝가리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에스테르곰 대성당. 헝가리가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며 세운 최초의 교회다.
유럽 중동부에 위치한 헝가리는 내륙국가로 7개(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헝가리는 유럽의 대부분을 이루는 게르만족, 슬라브족이 아닌 중앙아시아 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이동해 카르파티아 산맥의 드넓은 평원을 끼고 11세기 나라를 세운 뒤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면서 유럽의 일원이 된 나라다. 그래서인지 기마민족의 후예 다운 전통과 유럽 문화가 잘 융합돼 곳곳에서 예술적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유목민 전통인 푸스타(초원)의 마상 쇼와 도자기 장인의 혼이 담긴 아름다운 그릇, 전통의상, 수예작품, 집시의 바이올린 음악 등 헝가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헝가리를 가는 우리나라 여행자 대부분은 수도 부다페스트만을 돌아보고 오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도나우강을 따라 작은 마을을 돌아보거나 중앙의 평원을 찾아간다면 진정한 헝가리의 참된 멋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평화의 시작이 된 도시 ‘에스테르곰’
오스트리아 빈에서 슬로바키아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온 도나우강은 헝가리로 들어오면서 급하게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부다페스트로 향하는데, 도나우강의 전환점에는 헝가리 건국의 시작이자 최대 교회가 있는 에스테르곰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도시 센텐드레를 만날 수 있다. 도나우 강변의 에스테르곰은 건너편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이어주는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가 놓여져 있는 국경 도시이다. 9세기 경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마자르족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도나우강과 함께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자르족의 게저 대공(재위 972~997)은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고, 게저의 아들 이슈트반 1세(재위 997~1038)가 997년 헝가리의 초대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궁과 대성당을 지었다. 그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돼 왔던 약탈과 침략의 마침표를 찍고 주변 유럽 민족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어 1000년에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아 헝가리가 시작됐다. 따라서 에스테르곰은 크리스트교 국가로 헝가리 건국을 이룬 뜻깊은 곳이다. 13세기 몽골의 침공으로 수도가 부다페스트로 옮겨졌지만, 1715년 가톨릭 주교구가 되어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대성당은 너비 48m, 길이 118m에 달하는 헝가리 최대의 교회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습격으로 파괴된 후 19세기 후반 재건된 것인데 둥근 돔 지붕과 함께 위용을 갖춘 모습이었다.
센텐드레 역시 도나우강을 끼고 부다페스트에서 북쪽으로 약 19km 떨어진 아름다운 도시로 14세기 무렵부터 교역 상인이 넘치는 상업 도시로 번영했다. 그 후 16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피해 이주한 세르비아인이 정착해 세르비아 문화가 남아 있게 되었다. 1920년대 예술가들의 마을이 생겨나고 지금은 15곳 이상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모여 있어 예술인 마을의 모델이 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거리에는 헝가리 전통 의상, 인형, 수예품, 골동품 가게, 작은 공방 등 귀엽고 앙증맞은 가게들이 많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국인뿐 아니라, 헝가리 사람들의 주말 여행지로도 각광받는 곳이다.
푸스타 초원에서 본 ‘마상 쇼’
헝가리 동부에 펼쳐진 대평원 푸스타는 원래 초원지대 거주하는 농민의 집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의미가 바뀌어 초원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아직도 마자르족의 유목민 피가 흐르고 있는 헝가리인의 말 다루는 기술은 보통이 아니다. 선조 때부터 평원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는 탄야차르다를 찾았다.
그곳에 도착하면 우선 환영의 의미로 여러 말이 이끄는 마차와 마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넓은 평원을 한 바퀴 휙 돌아 준다. 덜컹덜컹 움직이는 마차를 타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바라보니 유목민들이 삶이 그려졌다.
마차 순례가 끝나면 경기장으로 이동해 관람석에서 마상 쇼를 구경한다. 여러 마리의 말이 쏟아져 나와 마부의 채찍질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어 마부가 달리는 말 위에 똑바로 서서 함께 달리는 등 말 다루는 기술을 선보이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마치 서커스를 하듯 기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데, 그들이 말과 생활하며 교감을 통해 얻어낸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황후가 사랑한 ‘괴될뢰성’
헝가리는 독립된 왕국으로 살아오다가 13세기 몽골의 침략, 16세기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침략,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결국 1867년 오스트리아와 화해 협정을 맺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으로 내정은 독립됐지만, 오스트리아 왕을 헝가리 왕으로 모시는 이중 군주국 체제를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이어갔다. 수도 부다페스트 근교에 있는 괴될뢰성은 18세기 초에 지어진 헝가리 귀족의 저택인데, 1867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별궁이 되어 주로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와 엘리자베트 황후가 자녀들과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
미모의 엘리자베트는 1837년 독일 바이에른 공작의 딸로 태어나 구김살 없이 자유롭게 자랐고, 국제 대회 나갈 정도로 승마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인 헬레네의 맞선상대로 찾아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엘리자베트를 보고 한눈에 반해 언니 대신 16세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엄격한 궁정 생활에 숨이 막혔고 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이 심했다. 따라서 심신 요양을 위해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그녀가 즐겨 머물렀던 곳이 헝가리였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대관식 때도 그녀는 헝가리 민족의상을 입었을 정도로 헝가리 민심을 사로잡았고, 어려운 헝가리어를 공부했으며 측근을 뽑을 때도 헝가리인을 고집하는 등 헝가리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 괴될뢰성은 그녀가 빈의 호프부르크(왕궁)보다 더 자주 머물던 곳이다. 외관은 그리 화려하지 않으나 실내에는 그녀가 좋아했다는 보라색 제비꽃을 연상시키는 벽지와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년은 비참했다. 1889년 아들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하자 아들을 돌보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여생 동안 검은 상복을 입고 지내다가 1898년 스위스 여행 중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지금도 ‘시씨’라는 애칭으로 헝가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엘리자베트의 일생을 되새기며 돌아보는 왕궁은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초상화 속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그녀의 웃는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비엔나 로즈’에 담아온 헝가리의 추억
헝가리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엘리자베트 황후의 행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그녀가 사랑했던 헝가리 도자기 ‘비엔나 로즈’에 관심이 갔다. 합스부르크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궁정 식기로 사용되었다는 그 도자기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백자 위에 녹색 테두리, 그리고 생화를 보는 듯한 핑크빛 장미 문양이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결국 도자기가 만들어진 공장, 헝가리 서남부 지방의 벌러톤 호수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발길을 이었다.
헤렌드 공장은 1826년 창립됐다. 1710년 창업한 독일의 마이센 도자기 공장보다 출발은 늦지만 19세기 중반 전성기를 누렸다. 1851년 런던 만국 박람회에 출품해 꽃과 나비 도안이 금메달을 수상했고, 빅토리아 여왕이 윈저성에서 사용할 식기를 주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에 알려졌다. 헤렌드 공장에는 3500여 명의 마을 사람 대부분이 일을 하는데,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650여 명의 도안사가 직접 그림을 그려 도자기를 완성한다.
투어를 신청하면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데, 모든 과정이 마친 뒤 헤렌드 찻잔에 내어주는 커피는 왕궁과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비엔나 로즈 문양과 똑같은 찻잔을 사고야 말게 했다. 종이를 싸고 또 싸서 비행기를 탈 때도 손에 들고 다녀야 해서 여행하는 내 무척 불편했지만, 무척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줬다. 지금도 그 찻잔에 커피와 차를 마시며 헝가리를 추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헝가리인 마음의 바다 ‘벌러톤 호수’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인 헝가리에 바다 같은 호수가 있다. 서부의 중앙에 있는 표면적 598㎢, 길이 77<E6B0>, 최대 너비 14<E6B0>의 동서로 긴 벌러톤 호수다. 온난한 기후를 바탕으로 북쪽에서 포도가 재배돼 와인 산지로 유명하고 북쪽 호숫가의 온천요양지를 비롯해 휴양지가 발달했다.
1820년대부터 헝가리를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일종의 집단을 형성해 상류 계층의 피서·요양지로 번영, 이 전통은 현재에도 이어져 여름에는 무도회가 열리고 헝가리 최초 요트 클럽이 오픈되기도 했다. 또한 샘솟는 온천수를 받으러 세계에서 요양객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1926년 인도의 타고르 시인도 이곳에서 요양 했는데 그의 완쾌를 축하하며 호숫가에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타고르 거리는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이루게 되었다. 그 가로수길을 걸어가다 보면 말로만 듣던 ‘백조의 호수’ 풍경을 만나게 된다. 우리 귀에 익숙한 차이코프스키 또는 생상스의 ‘백조의 호수’를 흥얼거리며 수면 위를 떠다니는 백조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헝가리의 음식
▶에게르 비커베르 와인(‘황소의 피’ 와인) - 헝가리 북동부 산간에서 생산되는 적포도주로 ‘황소의 피’ 와인이 유명하다. 16세기 중반 헝가리가 오스만 튀르크 군에게 점령당한 시대의 와인인데, 튀르크 군 8만 명이 공격해 왔을 때 에게르 성을 지키는 병사와 시민은 불과 2000명이었다. 이때 에게르 성의 영주가 병사들에게 술 저장고를 개방해 병사들이 에게르의 적포도주를 마시고 술의 힘으로 적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입 주위와 의복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이들을 보고 ‘황소의 피’를 마시고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 오스만 튀르크 군이 달아났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적포도주이다.
▶구야시(=굴라쉬) - 헝가리 대표 음식, 파프리카 가루(고춧가루의 일종)를 넣고 소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어 끓인 스튜인데, 우리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다. 유난히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헝가리에서는 말린 고추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토카이 와인 - 헝가리 동북부 티서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백포도주인데 호박색 귀부(貴腐) 와인은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귀부 와인은 곰팡이로 변질된 포도로 건포도처럼 쪼그라들어 건조된 포도 상태일 때 응축된 당분이 30~50%나 함유되어 있다. 토카이 귀부 와인은 독일의 라인가우,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소떼르느와 함께 세계 3대 귀부 와인이므로 헝가리에 가면 꼭 맛보길 추천한다.
김지희 서울 광영여고 교사·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