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의 소리를 듣는다(제자 앞을 못보지만)
화요일 오후 였다. 대문 밖에서 서울 실로암 안과병원에서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장인 김선태 목사의 로운 저서 '아침 태양에서 들리는 리' 출판 기념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다 강서구 동촌동에 있는 그 병원 안과병원이었다.
김목사는 6.25사변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전란 때 버리져 있던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실명하는 비운을 맞았다. 친척집을 전전했으나 누구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박대를 참지 못한 소년은 거리를 서성이면서 거지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점자를 배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학교인 숭실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다. 학교의 도움이 컸기 때문에 숭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안병욱교수의 제자가 되었고 내 강의도 들었다. 김목사는 중고등학교로는 내 후배이고 대학대는 내가 그의 은사이기도 하다.
그후에 목사가 되기위해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매코대학을 졸업 마치고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 목사가 되기보다 실명한 사람과 더 많은 빛을 찾는 환자를 위해 안과병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업적이 특출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모두 흠모하는 막사이 사이상을 받기도 하고 졸업한 숭실대학와 신학대학으로 부터는 명예 학위를 받았다. 대통령표창과 국민훈 장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거지에서 성자가 된 김원장 인생이야기는 2008년 조선일보 'Why?'소개된 적이 있다
내가 축하 예배에 안내를 받아 드러갔을 때는 병원 안에있는 예배실이 가득차있었다. 식순을 맡아 진행하는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목사이다. 내가 축사 순서를 맡기로 했다. 두 차례 축하음악 순서가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연주자들도 있어서 그런지 청중은 숙하기보다는 경건한 자세로 경청했다.
김목사가 답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존경하는 은사님과 포옹하는 인사를 하고 싶다" 면서 나를 강단 앞으로 맞아들여 오래동안 서로 서로 껴안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김목사가 그렇게까지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모든 식순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김목사는 책을 쓸 때마다 '태양의 빛'과 '태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얘기한다. 그는 어렸을 때 실명을 했다. 그때 이후 태양에서 오는 빛을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 빛을 다시는 볼 수가 없을까 상실한 시각 대신에 청각으로 그 광명 모두 대신했을 것이다 태양과 빛 소리가 80평생 삶의희망이고 소원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목사님 오래오래사셔서 우리에게 감사와 행복을깨닫게 해주시고 절망은 없다는 가르침을 남겨주기기 바랍니다'라고
첫댓글 감동적인 이야기 ... 사람의 잠재적 능력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감사
창조주는 인간에게 이쪽 못하면 저쪽 하나는 줬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