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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본격적으로 좋아한 것은 2002년 월드컵 이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이후이다.
당시 맨유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나는 박지성의 팬인 동시에 첼시의 팬이기도 했다.
무리뉴 감독, 드록바, 에시앙, 그리고 램파드 (아 병세형은 대단한데 뭐랄까 존경은 아니기도...)
그 중 램파드는 정말 나의 우상이었다.
축구사를 통틀어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수퍼스타는 꽤 많다. 지단, 호나우두, 펠레, 베르캄프, 피구, 호날두, 메시....
하지만 내가 직접 TV나 인터넷을 통해 경기를 본 수퍼스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중에 램파드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드필더로써 간결한 탈압박, 뛰어난 패스 및 센스,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수비, 대담성
하지만 내가 본 램파드의 가장 큰 능력은 킥력이다.
엄청난 킥력을 바탕으로 중거리를 때려 넣는 호쾌함이란...
그 능력을 바탕으로 PK,FK 전담키커로 킥을 찰 때와, 필드에서 꽂아버리는 중거리란...
뚠뚠이는 모르겠지만 fm에서도 중거리와 페널티킥 능력은 항상 순위권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엄청난 체력으로 78년생임에도 이제야 은퇴하는 엄청난 체력..
프리미어리그 당시에도 큰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도 거의 없었고 강철같은 체력도 과시했다.
램파드 모친상 이후 PK 득점 후 세레머니에선 울컥도 했었고..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말로는 미진한 것 같기에 박문성님의 기사를 그대로 복붙하겠다.
미드필더(Midfielder)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경기장(field) 가운데(mid)에서 공격과 수비를 연결하고 돕는 역할을 하는 선수,라는 것이 고전적이며 기본적인 개념이다. 링커, 하프백, 센터하프 등 시대와 역할의 변화에 따라 표현을 다르게 하기도 했지만 연결하고 돕는다는 미드필더의 기본 개념은 유지되어 왔다.
축구가 좀 더 복잡해지면서 위치에 따른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뉘고, 역할을 강조한 플레이메이커로 갈라지긴 했지만 이 역시도 미드필더의 기본 개념의 범주 안의 표현이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상대의 압박이 덜한 자기 진영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 모두를 오가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상대 페널티 박스부터 자기 진영 페널티 박스까지 모두 커버한다는 뜻의)로의 변주였다.
축구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더 많은 형태와 간격 조정을 위해 3선으로 유지되던 4-4-2, 3-5-2 등의 포메이션이 4선의 4-2-3-1, 3-4-2-1 등으로 쪼개지고 세분화됐다. 심지어 기존의 구분으로는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제로톱과 같은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포메이션의 기본 단위인 포지션과 역할이 수비수(DF) 미드필더(MF) 공격수(FW)라는 고전적 틀로는 다 담을 수 없게 됐다. 메시와 호날두는 통칭해 공격수이지만 윙어인지, 최전방 공격수인지, 세컨드 스트라이커인지 딱 집어 말하기 힘들다.
지난 밤 전격 은퇴를 선언한 프랑크 램파드가 축구사에 남긴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달라진 축구 전술, 앞으로 달라질 축구 흐름 안에서의 램파드다.
램파드가 21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남긴 성취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첼시에서만도 프리미어리그 3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각각 1회 등 모두 13번의 우승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각종 개인상을 받은 건 수 십 차례에 이르며 잉글랜드 선수들의 이름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게 된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 근래 최고인 2005년 2위에 오른 램파드다.
숱한 우승과 개인 타이틀이 있지만 미드필더 램파드의 커리어에서 가장 특징적이며 인상적인 건 따로 있다. 바로 골 기록이다. 기록만 보자면 램파드가 스트라이커였는지, 미드필더였는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골과 관련해서는 첼시를 넘어서 프리미어리그 전체적으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 램파드다. 먼저 램파드는 자신의 현역 선수 마지막 팀이 된 미국 뉴욕 시티 시절을 포함해 프로 커리어 20시즌 연속해 골을 넣었다. 그것도 컵 대회 등 다 빼고 순수하게 리그에서만 넣은 골 기록이다. 만 19살에 웨스트햄 주전으로 뛴 1997-98시즌 이후 이어진 대기록이다. 그 기간을 첼시 때만으로 좁혀 보더라도 램파드의 득점 레이스는 기록적이다. 램파드는 첼시에서 뛰면서 10시즌 연속 리그에서만 두 자릿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일이었다. 2009-10시즌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미드필더로는 한 시즌 최다 골인 22골을 넣기도 했다. 시즌 모든 대회로 넓혀 보더라도 5시즌 연속 20골 이상을 넣은 미드필더는 램파드가 처음이었다. 골 잘 넣는 미드필더였던 스티븐 제라드도 20골 이상 연속해 넣은 건 2시즌, 커리어 전체를 보더라도 3번밖에 없었을 정도로 램파드의 골 기록은 독보적이었다.
스트라이커들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득점력이었다. 램파드는 디디에 드로그바, 에르난 크레스포, 니콜라스 아넬카, 페르난도 토레스 등 쟁쟁한 스트라이커들과 팀을 이루면서도 첼시에서 뛴 13시즌 동안 5시즌이나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다. 램파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다인 39팀을 상대로 골을 잡아냈을 만큼 조건을 가리지 않고 골을 뽑아내는 탁월한 득점력을 과시했다.
수치 하나만 정리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램파드의 탁월한 결정력이다. 램파드는 첼시 112년의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다. 램파드는 첼시에서 모든 대회를 합쳐 648경기를 뛰는 동안 211골을 넣었다. 3경기에 한 골씩은 꼬박꼬박 때려 넣은 것인데 이 기록은 1960년대 전후 첼시의 레전드 공격수였던 보비 탬블링의 202골을 훌쩍 넘긴 수치이기도 하다.
첼시 역사상 개인 최다 골 톱5
1위 MF 프랭크 램파드 211골
2위 FW 보비 탬블링 202골
3위 FW 케리 딕슨 193골
4위 FW 디디에 드로그바 164골
5위 FW 로이 벤틀리 150골
흥미로운 건 첼시 한 세기 역사 개인 최다 득점자 톱5 선수들이 램파드 빼고는 모두 스트라이커였단 사실이다. 램파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기를 뛴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드필드 포지션의 선수가 이름난 공격수들을 하나 같이 제치고 최다 골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건 결코 흔치 않는 일이다.
미드필더 램파드의 득점력은 프리미어리그 전체로 대상을 확장하더라도 다르지 않은 일이다. 아래는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 통산 개인 최다 골 톱10 순위다. 램파드는 앨런 시어러, 웨인 루니, 앤디 콜에 이어 4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눈길을 잡아끄는 건 램파드를 제외한 상위 9명 선수 모두의 포지션이 공격수라는 사실이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개인 최다 골 톱10
1위 FW 앨런 시어러 260골(441경기)
2위 FW 웨인 루니 195골(452경기)
3위 FW 앤디 콜 187골(414경기)
4위 MF 프랭크 램파드 177골(609경기)
5위 FW 티에리 앙리 175골(258경기)
6위 FW 로비 파울러 163골(379경기)
7위 FW 저메인 데포 155골(454경기)
8위 FW 마이클 오언 150골(326경기)
9위 FW 레스 퍼디난드 149골(351경기)
10위 FW 테디 셰링엄 146골(418경기)
미드필더 램파드의 득점력이 도드라지는 건 잉글랜드 대표팀이라고 예외이지 않다. 아래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통산 개인 최다 골 톱10인데 여기서도 램파드를 제외하곤 모든 선수들의 포지션이 스트라이커다. 보비 찰턴의 경우 전방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긴 했지만 현재적 의미의 미드필더로 보긴 힘들다.
잉글랜드 대표팀 통산 개인 최다 골 톱10
1위 웨인 루니 53골(119경기)
2위 보비 찰튼 49골(106경기)
3위 게리 리네커 48골(80경기)
4위 지미 그리브스 44골(57경기)
5위 마이클 오원 40골(89경기)
6위 나트 로프트하우스 30골(33경기)
앨런 시어러 30골(63경기)
톰 피니 30골(76경기)
9위 비비안 우드워드 29골(23경기)
프랭크 램파드 29골(106경기)
램파드를 연결하고 돕는다는 뜻의 미드필더로만 국한해 부르기 어려움을 나타내주는 기록들이다. 램파드가 골만 잘 넣는 선수였다면 그냥 공격수라 칭하면 됐을 텐데 램파드는 3차례나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만큼 미드필더 본연의 역할도 문제없이 소화해 냈다. 미드필더이면서도 스트라이커 역할까지 월등하게 해낸 램파드를 가리켜 영국 현지에서도 자유로운 포지셔닝이란 의미를 강조해 프리롤 미드필더나 공격수 역할까지 한다는 의미의 서포팅 스트라이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아예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라는 말을 합쳐 ‘미들라이커’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램파드의 빼어난 득점력은 먼저는 램파드 개인의 탁월한 능력이다. 프로팀과 대표팀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골을 잡아낸 건 개인의 재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현대축구가 점점 과거의 포지션 개념이 파괴되고, 간격을 좁히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포메이션이 계층적으로 세분화하면서 특정한 하나의 역할과 포지션이 아닌 여러 개가 섞이고 합쳐지는 현상이 강해지면서 영향을 더한 램파드의 득점 흐름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포지션이 고정돼 있었던 과거였다면 미드필더 램파드의 득점력이 이 만큼은 폭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단 얘기다. 골을 넣기보다는 돕고 연결하는 역할로의 주력이다. 하지만 축구는 변화했고 램파드는 그 흐름 속에 존재하고 적응했으며 결과를 끄집어냈다.
골키퍼가 공격의 시작이 되고 공격수가 수비의 시발이 되는 현대축구의 특징과도 맞물린 일인데 오래 전 공격 조합하면 빅 앤드 스몰만 생각하던 것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 것과도 연결된 일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대표팀의 스킬라치와 바지오, 유벤투스의 필리포 인자기와 델 피에로, 2000년 전후 브라질대표팀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의 조합에서 후자들의 역할과도 묶어 볼 수 있는 일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마흔 살의 프란체스코 토티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선수다.
현대 축구에서 램파드가 단순히 골 잘 넣었던 미드필더로만 기억되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램파드와 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현대 축구의 변화와 진화의 방향과 함께 했으며 또 그 변화와 진화를 이끈 흐름 속의 인물로 기억되는 게 타당하다. 개인도 뛰어났지만 축구 전술적 변화와 맞물려 해석할 측면이 큰 것이다. 변화를 거듭하는 축구 전술사안에서 그 흐름을 이끈, 혹은 부합한 존재로서의 의미다. 축구(전술)는 고정돼 있지 않으며 그 축구를 하는 선수도 따라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것. 이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게 바로 램파드와 같이 진화하는 유형의 선수들이라는 점. 과거의 포지션과 포메이션의 개념은 변화했거나 변화할 것이라는 점. 축구는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며 그 안의 선수들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과 역할로 변화, 이동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은퇴한 램파드가 현대 축구사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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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상이나 기사 문제시 자삭하겠습니다
첼시의 중흥기를 진두지휘했던 한 선수가 또 이렇게 사라지는 군요...
제라드에 이어서 람파드까지... 좋아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떠나가는군요...
역시 덜 푸른 심장 맨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