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1900,90,9년 7의 달 '종말의
조선일보 1999-01-01 21면 (문화) 45판 기획.연재 1971자
연구가들 “올해 8월 3차세계대전 일어나 인류 30% 사망”
천문학자 “행성-태양등 십자배열… 지진나거나 혜성 충돌할것 ”
예언은 세기말 현상이 아니다.
예언은 일찍부터 있었고, 세상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성경 속의 다니엘은 바빌론제국 시절, 요한은 로마 식민통치하에서 세상의 끝을 예고했다.
세상의 예언자들도 그 중간에서 인류의 장래를 점쳐왔다.
100년이란 세월을 접는 세기말은 세상을 향해 이들 예언을 재생하는 확성기일 뿐이다.
1999년은 또다른 천년의 문턱이다.
그래서 예언의 무게는 더해진다.
일부 신비주의자와 과학자들은 역병과 기근, 전쟁이 20세기 말을 뒤덮을 것으로 예상한다.
「20세기의 예언자」라는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는 지구 회전축의 변화로 로스앤젤레스와 뉴
욕 대부분이 파괴되고, 일본이 침몰할 것으로 예언했다.
미국 사잔 메소디스트 대학의 라비 바트라 교수도 자본주의 붕괴와 대공황, 천재지변 등을
경고했다.
그러나 올해는 400여년 전의 미셸 노스트라다무스를 우리 앞에 불러낸다.
전세계 서점가에는 최근 프랑스계 유대인인 그의 예언에 대한 해설서가 즐비하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출생, 볼셰비키 혁명 등을 예견한 혜안이 관심사가 아니다.
초점은 그의 예언서인 「모든 세기(les siecles)」 10장 72절의 「1900, 90의 9년 7의 달(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는 내용이다.
해석은 구구하다.
상당수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은 이를 1999년 7월(음력)로 규정,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
시점으로 풀이한다.
천문학자들도 『지구를 중심으로 8개의 행성과 태양과 달이 십자(십자)로 배열, 지진과 화산
폭발을 낳는다』 『태양 흑점 활동의 활성화로 홍수가 일어난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
다』 『북극의 바람이 서반구에 홍수를 불러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와 라틴어, 프랑스어가 뒤섞인 상징들로 가득찬 그의 예언에는 유권 해석이
없다.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은 특히 제3차 세계대전이 임박했다고 믿고 있다.
1999년부터 2025년까지 계속될 이 전쟁은 자유와 선택, 생식 등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인간
의 죄악에 대한 신의 징벌이며, 인류의 3분의 1이 죽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3차 대전의 시나리오는 아주 구체적이다.
우선 유럽에서 전쟁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남유럽은 늦서리와 가뭄에 따른 흉작으로 고전한다.
프랑스는 폭동 전염병 유성우(류성우) 등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진다.
스위스도 레만호(호)에서 발원하는 강물의 사용을 놓고 주변국과 다툼을 벌인다.
3차 대전의 서곡이다.
전쟁은 이란이 주도하는 회교권과 러시아의 유럽 침공으로 불 붙는다.
회교권과 러시아 군대는 터키와 오스트리아를 통과, 그리스와 이탈리아,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 전체를 초토화한다.
서구의 주요 금융센터는 핵공격, 리옹과 빈은 화학무기 공격으로 파괴되고, 교황도 저격당한
다.
그러나 중국까지 가세한 침략군은 원인 모를 역병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 동맹에 마침
내 손을 든다.
이후 세계는 3년반에 걸친 적(적)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쳐 평화와 영적인 부흥을 맞게 된다.
여기에는 지정학적인 논거도 곁들여져 있다.
중동에서 4번째로 막강한 전력을 가진 이란은 99년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에 분노해온 러시아도 민족주의 지도자의 출현으로 회교권과
결탁할 공산이 있다.
문제는 예언이란 이루어질 때까지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일한 검증의 잣대인 성경은 인류에 대한 심판이 정하신 때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24장 36절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적고 있다.
예언은 「세상은 마침내 그렇게 끝난다」는 단순 경고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던 길을 돌이켜 재앙을 피하라는 안타까운 사랑의 충고에 가깝다.
예언의 진가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 충고를 음미할 때 발휘된다.
결국, 세기말에 되살아난 그의 예언은 패역(패역)한 우리 세대의 죄악을 비춰주는 거울인 셈
이다.
< 김성용기자·sykim@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