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내가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나[화제로]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으로[소떼에나 양떼에서] 여호와께 향기롭게[유화(宥和)의 향기로] 드릴 때에는[드릴지니라.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양이면] 그 예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에 기름 한 힌의 4분지 1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양이면] 전제(奠祭, drink offering, libation)로 포도주 한 힌의 4분 1을 예비할 것이요, 수양[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2에 기름 한 힌의 3분지 1을 섞어 예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3분지 1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유화(宥和)의 향기로 드릴] 것이요, 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3에 기름 반 힌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수송아지나 수양[숫양]이나 어린 수양[숫양]이나 어린 염소에는 그 마리 수마다 이 위와 같이 행하되 너희 예비하는 수효를 따라 각기 수효에 맞게 하라.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火祭), 즉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나 낙헌제 등 화목제나, 정한 절기들에 소나 양으로 여호와께 유화(宥和)의 향기를 드릴 때의 규례이다.
그들이 어린양을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고운 가루 에바 10분지 1(약 2.2리터)에 기름 한 힌의 4분지 1(약 1리터)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전제(奠祭)로 포도주 한 힌의 4분 1(약 1리터)을 예비해야 하였다. 한 에바는 약 22리터이며,한 힌은 약 4리터이다.
그들이 숫양을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2에 기름 한 힌의 3분지 1을 섞어 예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3분지 1을 드려 여호와 앞에 속죄의 향기를 드려야 했다.
그들이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릴 경우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10분지 3에 기름 반 힌을 섞어 함께 드리고,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유화(宥和)의 향기를 드려야 했다.
수송아지나 숫양이나 어린 숫양이나 어린 염소를 여러 마리 드릴 때는 그 마리 수마다 이 규례로 행하되 그들이 예비하는 수를 따라 각기 수효에 맞게 해야 하였다.
구약의 짐승 제사의 규례는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을 예표하였다. 즉 구약 제사의 일차적 의미는 속죄이다. 또 부수적으로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화목제는 교제의 회복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짐승 제물을 드릴 때에 소제 곧 곡물제사와 전제 곧 붓는 제사를 함께 드리게 규정하였다.
소제 곧 곡물제사도 일차적으로는 속죄의 뜻이 있고 부수적으로 온전한 순종과 감사의 뜻이 있다고 본다. 곡물은 곱게 가루로 만들어 드려졌다. 우리는 날마다 곡식을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전제(奠祭)(붓는 제사, drink offering)는 포도주를 붓는 제사이다.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그것은 제사의 속죄적 의미를 보인다.
[13-16절] 무릇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宥和)의 향기의]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 법대로 할 것이요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가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宥和)의 향기의]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회중 곧 너희나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율례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의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너희나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법도, 한 규례니라.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火祭)의 규례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례이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제사 제도에 담긴 진리가 유대인들에게만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의미가 있는 것임을 보인다.
성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진리를 예표적 방식 곧 상징적 방식으로 증거하였고 신약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히 증거하였다(골 2:16-17).
[17-2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擧祭)를 드리되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같이 들어 드리라.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타작마당의 곡물처럼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거제’(擧祭)라는 말은 제물을 올려드린다는 뜻이다(NASB).
[22-31절]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한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곧 여호와가 모세로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여호와가 명한 날부터 이후 너희의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회중이 부지 중에 그릇 범죄하였거든(솨가)[무지(無知)의 죄를 범하였거든](BDB)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하나를 여호와께 향기로운[유화(宥和)의 향기의] 화제로[번제로](원문, 영어성경들) 드리고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수염소[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얻으리니 이는 그릇 범죄함이며 또 그 그릇 범죄함을 인하여 예물 곧 화제와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렸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도 사함을 얻을 것은 온 백성이 그릇 범죄하였음이니라. 만일 한 사람이 그릇 범죄하거든 1년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그릇하여 여호와 앞에 얻은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할지니 그리하면 사함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본토 소생이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든지 무릇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거니와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베야드 라마)[고의적으로, 건방지게, 도전적으로](BDB, KJV, NASB)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하나님께서는 두 종류의 죄에 대해 증거하셨다. 하나는 ‘그릇 범죄하는’ 것이다. 본문에 아홉 번 나오는 ‘그릇’이라는 말(쉐가가)은 ‘무지, 실수’라는 뜻이다.
회중이 부지중에, 실수로 범죄하면 그들은 수송아지 하나를 여호와께 유화(宥和)의 향기의 번제로(원문, KJV, NASB) 드리고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했다.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그들이 사함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실수로 범죄한 것이고 또 그 때문에 화제와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회중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게 똑같이 적용되었다.
회중이 아니고 한 사람이 부지중에, 실수로 범죄하면 그들은 1년된 암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제사장은 그 그릇 범죄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얻은 죄를 위해 속죄하여 그 죄를 속해야 했고 그리하면 그가 사함을 얻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든지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게든지 그릇 범죄한 자에게 대한 법이 동일하였다.
두 번째 종류의 죄는 ‘짐짓 범죄하는’ 것, 즉 고의적으로 범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든지 타국인이든지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이며 그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져야 할 것이라고 규정되었다. 끊어진다는 말은 중한 질병으로 죽거나 사형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으므로 그 죄악이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질 것이다.
[32-36절]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두 번째 종류의 죄에 해당하는 한 예를 기록하였다. 그것은 안식일을 범한 죄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온 회중은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이었고 그것을 범하는 것은 부지중에 범한 죄가 아니고 고의적으로 범한 죄로 간주되었다.
[37-4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테켈렛)[보라색(BDB) 혹은 자주색(KB)]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음행케](KJV, NASB, NIV)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본문은 옷단 귀에 옷술을 만들고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을 달라는 규례이다.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피를 상징한다. 피는 곧 생명이며(레 17:11, 14) 피흘림은 죽음을 가리키며(롬 6:23) 구약 제도에서 짐승 제물의 피흘림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예표했다(레 1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거기에 보라색 혹은 자주색 끈을 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죽을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죄사함을 얻을 것을 암시하였다고 보인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구약시대의 제사는 일차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표하였고 부수적으로 온전한 헌신, 온전한 순종과 감사,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 등을 상징하였다.
이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동일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며 온전한 헌신, 온전한 순종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힘써야 한다. 모든 신약 성도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하며 감사하고 성경 읽기와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생활해야 한다.
둘째로, 죄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지 중에 혹은 실수로 범하는 죄이며 다른 하나는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이다. 실수로 범하는 죄는 제사로 죄의 용서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의적인 죄는 사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하였다. 죄는 씻음 받아야 한다. 사람의 모든 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아니고서는 깨끗하게 씻음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22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모든 죄는 씻음 받아야 하고, 죄를 씻는 길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님의 피밖에 없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을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돌로 쳐서 죽였다.
안식일을 어기는 고의적인 죄를 사형으로 다스렸다.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되어야 했다. 사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믿음을 잃어버리고 구원을 잃어버리고 죄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다. 안식일은 중요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주일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 오늘날 주일을 성별하여 지키는 자는 복되다.
넷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보라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해야 했고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늘 기억하게 하는 뜻이 있었다고 본다.
보라색 끈은 피를 상징하였다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늘 기억하며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늘 지키고 행하여야 하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면 죽어야 마땅한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 의(義) 안에서 의와 선을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