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담배피던 아주 먼옛날 약40여년전 마을곳곳에는 대부분 초가집이 즐비했고 각 가정에서는 이를 잡는게 소일거리가된 시절이 있었다 학교 학생들은 남자들은 까까머리에 여자들은 단발버리 마을에는 국민학교가 가장 큰 문화공간이며 마을의 주된 아지트가 되곤했다 먼지가 펄펄 날리던 신작로를 따라 읍내를 가기위해 10리를 걸어서 간 읍내는 별천지였다. 사탕 일명 오다마도 사먹고 팽이도 사서 눈이 펄펄 날리던 길을 걸어서 왔던 기억들...
문명과는 거리가 먼 자연속에서 희망과 포부를 키워왔던 시절 요즘처럼 사악한 사람도 없었고 서로 베풀면서 콩 한쪽도 이웃과 나무워 먹어가며 정말 순박하게 살아왔던 시절 가진 것은 없으나 인간미가 살아있었던 40대 나이가 느꼈을 만한 된장냄새나는고향의 향수를 사진으로 더듬어 봅니다
70년대만 해도 우리네 시골들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살았고 젊은처녀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지금은 젊은 처자들은 앵두나무우물가 바람을 타고 서울로 갔지만...겨울 눈오는 초가집 앞에서 사진한방 박았다오 (1970년대)
시골양지바른 따뜻한 곳이 시골 아낙들의 아지트 동네 동생뻘 남동생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지금처럼 수도가 흔하지 않아 마을마다 우물가가 있기마련 우물를 파기 위해 모여든 동네 주민들 이곳은 전라도의 섬마을입니다 대부분 초가집이고 스레트 집 기와집이 마을의 가옥의 전부였다
기와작업을 하는 사람들(1970년대) 1960년대 해변마을의 포구-그때만해도 목선이 주를 이루웠고 돚단배도 많앗습니다
1970년대 시골마을 사람들의 읍내나들이 교통편이 좋지 않고 도로도 정비되지 않아 수십리 길을 등집을 메고 읍내를 다녔다 1970년대 유행했던 겨울코드 오바패션이 돋보이네여
동네 시골아줌마들의 패션-머리에는 수건 몸빼바지가 전부 1970년대만 해도 밭을 매다가 애기를 낳았고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낳는 사람이 대부분 그시절에는 생긴대로 애를 낳던시절 40대중에 자기집에서 태어나지 않고 병원에서 나와보라고 그래...
그시절만 해도 멍석이 집집마다 있었고 나락 보리를 말리는 도구였죠 말 안들으면 멍석말이도 당했고 전라도말로 덕석 요즘은 시골에 멍석도 보기힘듭니다
예전 회갑잔치 풍경-회갑잔치는 동네잔치나 다름없었다
1960년대 회갑잔치 모습-60년대만 해도 갓을쓴 동네어른들이 있었고 중요한 잔치모임은 갓을 쓰고 한복을 입는게 예복
1970년대 학생들의 보리밟기 운동회날 조회모습
오늘은 소풍가는날-학교 행사중에 소풍가는게 가장 기다리지고 자기장기자랑을 할 수 있어 좋다"그시절 까까머리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