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의 글은 지리산 반란군토벌, 제주도 사태 진압, 옹진 탈환작전,6.25동란,공수특전단 창설요원, 5.16...등 긁직한 현대사를 거쳐오셨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시는 예비역 대령이자 특전사의 산파중 한분이신 최추봉 대선배님의 글을 퍼온것입니다.아마도 특전사 창설비화에 관한 자료중에 가장 정확한 자료들이라 생각이 들어 퍼왔습니다.새로운 한주즐겁게 잘보내십시오~!단결~!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낙하산부대의 추억 #(1) 부대창설1.낙하산 부대 창설예전에는 공정대 또는 공수부대를 낙하산부대 라고 불렀었다.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려 지상에 낙하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공정대(空挺隊Airborne Troops)를 단순하게“낙하산부대”또는 공수부대라고 부르고 있다.6.25때 북한 성천(成川 )지역에 공수되어적의 후방을 차단하는 작전을 폈던 미 제82 공정대가 낙하산 부대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단순한 공수부대는 없고“공수특전단”이란 부대가 있는데 원래의 미 편제에 따르면”특수전 부대”(SPECIAL WARFAIR FORCES) 라야 맞는다.특수전 부대는 목표지점에 침투하는 방법으로 항공기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해상침투,지상 침투 등 여러 가지 방면의 침투작전이 있기 때문에 <공수>라는 말을 빼고 단순하게 <특수전> 부대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은 일반적으로 낙하산병에 대한 우월감이 강한 정서도 있고 일정지역 상공까지 공수되어 낙하산을 타고 지상에 착륙하여 전투를 하는 것을 강조하여 공수특전단(空輸特戰團) 이란 이름으로 편제 되어있다.내가 육군본무 특전감실 조사연구과장(1958년)을 하고 있을 때, 일본 오끼나와에 출장하여特殊戰 분야의 심리전에 관한 시찰을 하라는 임무를 주어서 심리전 관계 장교 4명을 대동하고 현지로 가게 되였는데 출발신고를 하는 자리에서 참모총장이 나를 불러서 그곳에 가면 미 특수전 부대 사령부도 시찰코스에 넣었으니 특수전 부대 편성, 운영 및 특수작전에 관한 교육을 받고 그 자료를 가지고 돌아와서 상세히 보고 하라는 특별명령을 받고 오끼나와에 파견 되였었다.20여 일의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여 특수전 부대에 관한 참모연구서를 참모총장 에게 제출 하였는데 불과 2개월도 안되어서 1958년 4월에 제1공수특전단을 창설하라는 육본 일반명령이 떨어 짐으로써 우리나라의 최초의 <낙하산부대>라는 공수특전단이 하나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부대 창설 초기에는 부대병력이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의 제33사단 군용지인 빈 터밭에 임시 막사를 설치하고 수용되어 잇다가 양서면 공항동, 지금의 김포비행장 입구 왼편에 잇던 구 교통부 직원관사 자리를 배정받아서 단 본부와 병략을 수용했다가 그 후 현대식 건물을 건축하고 정착하기에 이르렀다.훈련시설은 부대인근의 오정리의 미 44공병 대대가 수용 중인 군용지에 지상훈련 시설인 막타워(MOCTOWER)를 세우고 피엘에프(PLF)연습장도 마련한 뒤 가장 주요시설인 낙하산 정비부대(REGAR TEAM)건물을 완성하고 기본적인 공중낙하 훈련을 위한 지상훈련을 실시하게 되였다. 그 당시의 편제상 명칭이 제1공수특전단 이였고 위장 명칭은 제7725부대 라 하였다. 이렇게 시설과 낙하산등 장비가 갖추어지게 되자 1958년 말경부터는 기간장병의 교육 훈련에 돌입하게 되였다.2.공수특전단의 기능 공수특전단의 목적은 적지에서 고립된 아군을 구출하는 작전수행과 적지에 침투하여 현지 주민을 우호적 협력집단으로 전향 시키기 위한 선무(宣撫)공작과 반정부 세력의 요원들을 구출 하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훈련 시키는 것이 주 임무로 되여 있었다.미국 군부는 특수전 부대가 동구라파 지역에서 실전을 통하여 실효성이 입증 된 것에 고무 되여 한국군으로 하여금 특수전 부대를 창설 육성 하도록 케네디 정권하의 군부로부터 권유를 받게 됨으로써 공수특전부대를 불야 불야 창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 지역과는 달라서 아세아 특히 한국 등의 후방 지역에서는 미국인들이 침투 했을 때에 낯 선 외모 때문에 주민에게 발각될 우려도 크거니와 언어와 전통 등 문화의 차이로 선무(宣撫)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감안 하여 한국 군인들로 구성되는 특수전 부대 창설을 권장 하였던 것이다. 특전부대는 적지에 침투 하기 위해서 공중으로 이동하여 낙하산을 타고 침투 하기도 하고 해상에서 잠수함을 이용하여 적 후방으로 침투 하여야 하기 때문에 낙하산 훈련과 잠수함에서 이탈하여 소형 보트로 옮겨 타고 또는 헤엄 쳐서 적 후방에 상륙하는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격전술과 산악작전 훈련 이라던지 겨울철에 대비하여 스키훈련 등을 철저하게 받아야 했다. 이렇듯 각종 어려운 전술을 익히기 위한 모진 훈련을 거쳐서 완벽한 공수특전단의 <낙하산병>이 되었기에 그들의 사기는 드높고 자부심 또한 강한 것도 사실이다.그 당시에는 지휘체계가 2원화 되어 있어서 평시에는 선임단장이 부대를 운용하지만 작전 시에는 작전단장 (FD 팀장 이라고도 하며 원 편제에는 “작전지휘본부장” 이라고 되어 있었다)이 정보장교와 작전장교 팀을 포함한 전투부대를 이끌고 적지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 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작전단장 이였으나 실제 전투는 없었고 잠수함을 이용한 침투훈련 또는 동계훈련 때에 야간에 대관령 산악지대 에 완전 무장하고 낙하 하여 잠복하는 훈련 등을 지휘 하였었다.3) 초기의 공수특전단 편성공수특전부대의 제대 편성은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최하 제대(梯隊)를 FA팀 이라 하고 통상 소대라 불렀고 그 위에 FB팀이 중대격 이었고 대대격 인 FC팀 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FD팀은 편제상 <작전지휘 본부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되어 있었으나 기능상 여단(旅團)격 이었기에 FD팀장을 단장이라고 호칭하였다.부대의 최하 최소 단위의 FA팀이 장교3명에 9명으로 편성되었다 하여도 기능상 적지 또는 적군에게 포위되어있는 지역에 침투하여 반정부세력과 낙오한 우군부대를 규합하여 1개연대의 병력을 능히 교육 훈련시키고 무장 활동을 한다는 막중한 임무였기 때문에 훈련도 가열찼다. 비록 9명의 인원이지만 3명의 장교는 지휘자와 통신,공병 장교로 보임 되었고 하사관도 의무, 병기, 통신, 공병 등 특별병과 기술자들이었다. FB팀은 그런 FA팀을 3개로 구성되고,그 위의 FC팀인 대대는 FB팀 3개로 되어 있었으니 휘하에 9개의 FA팀을 포용하고 있으니 그 기능상으로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강력한 정예부대 편성되어 있었다.제1공수특전단 의 초대 단장은 육사 특별8기 출신 백문오(白文梧) 대령 이었고 부단장은 길재호(吉再浩) 중령(육사8기)였고 나는 작전단장 이었으며 휘하의 제1 FC팀장(대대장)은 백문오 단장의 처남인 양모 소령,제2 FC팀장에는 김제민 (金梯民)중령(육사9기)이었고 제3 FC 팀장에는 이광로(李光魯) 소령이었다.낙하산 정비부대장(리거팀장0에는 지경덕(池敬德) 대위 였던것으로 기억한다.그 당시에 육사11기에서 4명 등 15기까지의 젊은 에리트 장교들이 배속되었으니 유명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대위가 부임했다. 전두환 대위는 공수특전 교육을 성실하게 받고 기본 낙하 훈련을 끝까지 마치고 나의 FD팀의 작전장교로 보임 되었으나 노태우 대위는 낙하산 훈련을 안 받고 대기만 하다가 무슨 이유 에서 인지 타 부대로 전속 가고 말았다. 그 두 사람이 후일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당시의 젊은 장교가운데에는 후일 청와대 경호실장도 차지철 중령 등 3명이나 있었고, 국방장관, 군단장, 특전사령관 등의 요직에 오른 사람이 많았다. 공수특전단 창설 초기에는 기간요원을 지원제로 하였었으나 내가 공수특전단을 떠난 뒤 박 정권 말기와 전두환 시절에 이르는 동안 여러 여단이 추가적으로 창설 되여 각 지역에 배치 되면서 병력 보충을 위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마친 신병 중에서 차출하여 편입시키는 경우가 있었으나 적응력의 부족 등의 단점이 들어 나게 되자 <공수특전 부사관 모집>을 통하여 우수자질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로 충원하고 있다최초의 제1공수특전단의 창설요원은 각 특별병과 별로 차출하고 일부는 8240부대와 켈오(KELO)부대 출신 중 에서 낙하산 훈련을 받은 경험자를 선발하여 도합 70명을 오끼나와에 1개월간 파견하여 훈련을 받게 하였다. 그들이 돌아와서 제1기부터 기간장병들을 훈련하는 교관역할을 했는데 나는 제4기로 수료 했다. 지휘관이던 사병 이던 일체의 계급표지를 떼어버리고 번호를 부쳐서 계급과 이름은 안 부르고 “몇 번”이라고 부르며 훈련을 시키는 것 이었다.왜냐하면 지상훈련이 혹심한데 교관은 낮은 계급이고 훈련 받는 사람은 수료 후 직속상관이 될 장교들이므로 강도 높은 훈련을 강제하기에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고 훈련 받는 입장에서는 <너 상관을 이렇게 막 다루어도 되느냐>라고 불평 하거나 훈련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급장을 떼게 하고 눈 딱 감고 “얼 차리게” 하는 효과를 꾀하는 수단 이였다. 지상의 기초훈련이 한달 동안 얼마나 고 되였던지 “비행기 에서 낙하 하다가 떨어져 죽을 망정 어서 지상훈련을 끝내었으면”하는 심정을 가졌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출처는:다음 블로그 "불암산장"-----------------------------------------------------------------------------------------밑에 사진자료는1,2,3,4,번사진들은 과거의 특전요원들및 휘장사진으로 상기인물과는 관련이없으며마지막 사진 만이 미국고공위탁을 갔던 특전사요원들과 미국에서 이들을 맞이하신이글의 원작자이신 최추봉(사진 중앙 노란티셔츠)대선배님이십니다
출처: DIY 와 군대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