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당시 저의 까다로운 편집과 검열 과정에서 애초의 내용과 조금은 달라졌지만..
교지에 실리고 나서 전교생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었습니다..
저...이런 존재였습니다...우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아` 은혜누나... 긴 글들 잘읽으신다면서요....ㅋ 정독 부탁드려요~헤헤..
기원전 2333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목적으로 천부인 3개와 무리 3000인을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온 교장급 거물 인사 진원왕검의 고조선을 시작으로 이땅의 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676년 통일신라가 들어서면서 천하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 싶었다. 허나 신라는 9세기 말부터 심각한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골품제에 대한 불만과 모순이 쌓이고 있었고 진골귀족 끼리의 왕권을 다투는 바람에 왕과 중앙정부의 세력이 나날이 약해져갔다. 이런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미소를 짓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바로 왕위 쟁탈전에서 쫓겨나 지방에 있던 호족들이였다. 많은 수의 호족들은 두 개의 세력, 관악산 똥돼지 빠돌과 정영우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갔다. 빠돌은 신라의 왕자였다. 하지만 신라 경문왕의 아들 이였으면서도 후궁의 소생이라 하여 천대받고 어릴적부터 괴롭힘을 많이 받아 인성이 삐뚤어지고 고생을 많이 해 하체가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졌다. 가만히 있어도 안땡기는데 밥은 또 모질게 많이 먹어서 왕은 빠돌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명하였다. 이에 화가난 빠돌은 음식을 훔치고 왕의 신발을 감추려고 하다가 걸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도망을 가게 되었다. 불행히도 도망을 가던중 음식물의 일부가 눈에 들어가 백내장에 걸려서 자신의 눈을 뽑고 개눈깔을 박아 결국 애꾸가 되었다. 평생을 신라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며 자신과 닮은꼴인 김경원의 수하로 들어가 그의 부하가 되었다. 경원이 강릉을 점령한 이후로는 자신의 심복, 철사장의 달인인 김민형과 독자적인 세력을 편성하였다. 허나 쌍놈처럼 나중에는 도리어 경원의 세력을 점령하였다. 그야말로 후레자식 이였다. 한편 서남해 일대에는 무진주정 장군으로 부임했던 영우가 그의 첫째 아들 개만지와 고깃집, 목욕탕 등 3D업종에 종사하며 많은 재산을 모아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 나아갔다. 개만지가 생각 없이 빚을 지고 다녀 여러번 나라에 위기가 닥쳐왔지만 지 주제에 결자해지라고 만지는 3달치 급식비를 빼돌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해결하였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 있는대로 초췌해진 개만지의 인생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통일된 신라는 와해되고 북쪽에 빠돌이 세운 후고구려, 서남쪽에 영우의 후백제, 그리고 신라가 있는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빠돌의 후고구려는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죽령, 조령을 넘어 경상북도 지방을 점령한 후 후백제의 나주, 목포 지방을 기습하여 차지하며 삼국통일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가가 커지고 기반이 다져지자 빠돌은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고 국호를 마진으로 바꾼다. 그리고는 새로운 관제를 만드는 한편 골품제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신분 제도를 모색하여 9관등제를 실시하고 광평성을 최고 기구로 하는 새로운 나라, 태봉을 만들었다. 후에 빠돌은 미륵불을 자처하며 독재를 하고 백성들을 잦은 공역과 정쟁으로 내몰면서 신하와 백성들에게서 멀어지게 되었다. 빠돌의 영원한 동반자 최아랑과 김태형이 끊임없이 왕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를 썼으나 빠돌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건망지다며 김민형을 시켜 철사장으로 그들을 처형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민심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살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진 태봉국의 백성들은 조심스레 한 남자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이 힘든 생활을 타개해줄 유일한 인물이며 어두운 세상의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 그는 바로 고려의 건국 왕, ‘태조 다할’ 이였다. 다할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빠돌을 궁 밖으로 몰아 내었다. 도망치던 빠돌은 농사를 짓던 조연상이 던진 돌에 맞아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빠돌이 죽고 여러 장수들과 호족들의 추대로 다할이 왕이 되어 918년 고려를 개창하였다. 다할왕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지방세력을 흡수, 통합하면서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빠돌이 정권을 잡고 있을때에 자신의 동생, 변용의를 괴롭히던 한 남자의 머리를 발로 밟아 기절시킨 혐의로 투옥되어있는 전설의 두목릴라 김성준을 장군으로 임명해 훗날 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나가게 된다. 한편 끊임없이 신라를 침략하던 후백제는 후계자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났다. 후백제의 왕 영우는 자신과 실루엣이 비슷한 넷째 아들 제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이에 첫째 아들 개만지가 반발을 하고 나섰다. 왕위 계승을 두고 갈등이 계속되다가 결국 개만지는 아버지 영우를 금산사에 가두게 된다. 너무나 억울한 영우는 금산사를 탈출해 다할왕에게 항복을 한다. 그리고 다할왕은 후백제 정벌군을 일으켜 전주를 점령하였다. 후백제의 개만지는 붙잡혀 아버지 영우의 손에 사지가 잘려 나가며 죽게된다. 이렇게 후백제는 936년 멸망을 하게 된다. 다할왕은 신라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을 이루려고 하였으나 이 의견을 제지하고 나선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김승현, 난민구, 박종하 라는 문벌귀족으로 다할왕을 보좌하는 충신들 이였다. 이 셋은 3년 연속 같은 반이라는 쉽지 않은 인연을 과시하며 언제라도 다할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자들 이였다. 그들은 신라와 담판을 짓겠다고 하였다. 이에 신라에서도 외교에 능통한 신하 이성택과 이창연을 보내 그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신라의 1000년 사직이 무너지고 신라의 마지막 왕 허윤영은 935년 고려에 항복을 하였다. 하지만 윤영왕의 후계자 유정환은 항복에 반대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마를 캐어 먹으며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후삼국을 통일한 다할왕은 민족통합의 의지로 북쪽의 발해가 야만족 시흥족에 멸망하자 발해의 유민인 외아들스타일 조욱희와 주우종을 흡수하여 관직도 주었다. 이 둘의 과거 쓰리K의 타겟이 되어 많은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자른적이 있었다. 특히 조욱희는 구렛나루의 씨를 말려 버리는 바람에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다할왕은 세금을 감면하고 부역을 면제시키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또한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를 펼치면서 왕권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고양하고 북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평양을 서경이라 하며 중시 여겼다. 위협을 느낀 시흥족 족장 문검두는 이번에 배추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며 사신으로 김신화를 시켜 배추 10000포기를 가져왔지만 다할왕은 사신 김신화를 쫓아버리고 그들이 가져온 배추 전부를 만부교 위에 진열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도록 하였다. 본격적으로 북진 정책을 준비하던 다할왕은 현재의 군대 외에 용병 몇 명을 기용하기로 하여 각 분야에서 사람들을 선발했다. 무공 분야에서는 괴안동 들개 이지욱와 고강동 들개사냥꾼 김현준이 뽑혔다. 서로 궁합이 최악이였지만 자기 자신들을 B.O.G 2인조라 칭하며 어느순간 불알먹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정보력 쪽에서는 수시의 기적 최의림이 뽑혔고 전쟁 중 군수 물자를 조달해줄 사람으로는 아랍의 석유 재벌 문종현이 선택되었다. 938년, 많은 수의 군사들이 시흥족 정벌에 나섰다. 전투가 시작되고보니 맨날 농사짓고 산적질이나 하던 문검두의 시흥족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시흥정벌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두목릴라였다. 처음에는 살생을 하기 싫다며 빼다가 시흥족이 다가오자 마니아 처럼 그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밟아 가며 부족민평균소득이 1달러도 채 되지 않는 시흥인들의 절반이상을 헤치웠다. 전광석화처럼 북으로 올라가던 다할왕은 시베리아 부근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바로 봵경렬이 이끄는 시베리아 군대였다. 사람 수는 별로 되지 않았지만 봵경렬의 수하중에 전설의 롹커 와상준과 그의 롹스승 무뇌중의 “봵~!!! 수크림~!!!”하는 샤우팅에 많은 고려군이 고막이 찢어지는 피해를 입어 더 이상 진격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할왕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고구려 때에 옛 선조들이 이룩한 땅까지 정복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때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으니 바로 용병부대에 속해있는 괴안들개 이지욱이였다. 다할왕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생긴것도 우스운게 강력한 적군을 상대하겠다니.. 결국 그냥 속는셈 치고 그를 내보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지욱이 갑자기 초음파 영역을 뛰어넘는 소리로 그들을 무찌른 것이다. 모두들 놀라서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이지욱은 자신이 과거 rocker Lee 라고 불리였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며 스무스하게 군중들 사이를 헤쳐갔다. 어찌하건 그들을 물리치며 다할왕은 옛 고구려 영토인 요하의 동쪽에서 송화강 유역과 시베리아에 이르는 지역까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다할왕은 여기서 멈추기 않고 고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역인들의 영토까지 노려보기로 했다. 고려군은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미국까지 도달하게 된다. 상륙하자마자 미군의 강력한 화력에 많은 수의 고려군이 전사하였다. 강력하게 밀어 부친 결과 적의 수뇌부와 대치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피자와 햄버거를 즐겨 먹었던 양키들의 기골은 장대했다. 특히 U.S. Army인 스티븡유의 장풍은 실로 대단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NBA 농구 스타 느바 조용성의 페이드어웨이는 많은 사람의 넋을 빼앗아 가버렸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있는 올검은 다 짭이야.” 등의 명언을 남긴 스니커즈계의 브레인 제대일은 고려군의 형편없는 신발들을 비웃으며 사기를 꺽어놨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할왕의 무력 앞에서는 수수깡처럼 쓰러져갔다. 이렇게 다할왕은 드넓은 미국영토까지 정복하게 되었다. 후에 태조다할은 국가 기반을 굳건히 하고 북진 정책의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자손들에게 훈요십조를 남겨 당부하였고, 또 관리들에게 경계의 뜻으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서 반포하였다. 943년 흰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많은 북방원정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진 태조 다할왕은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재위기간 무수한 정복 정쟁을 펼쳐 유사이래 최대의 영토를 보유한 그의 업적은 굳이 문헌을 통하지 않고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나간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 한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수많은 열강의 이권 싸움에 힘들게 부딪쳐 온 우리로선, 한때 북방을 호령하며 대국들과 당당히 맞서던 그시절 그들의 힘찬 말발굽 소리가 다시금 그리워진다.
첫댓글 등장 인물들을 다 아는 나 혼자 재미있을려나...ㅎ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그 시절의 감동이 밀려오네요..그때가 너무 그립다.....ㅠ 그리고 오늘 군대 간 아이와의 추억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슬프고 그립고 즐겁고...정말 만감이 교차한다.....ㅜ
너무길어서 못 읽겠음.ㅋ
푸하....이거 다 니 친구들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