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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나아가자(렘 31: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지고 있는데, 오늘 오후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예전보다도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폭염이든, 폭우이든, 큰 피해가 없이, 올 여름을 안전하고 평안하게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는 세상 풍습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창조주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매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사 2:3)라고 말했고, 호세아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호 6:1)라고 말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주님 앞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고 말씀하시면서,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암 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하고 자다 하나님을 만난 곳이요,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다음, 여리고 성 앞에서 할례를 행한 곳이요,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살았던 곳입니다. 아주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그러한 중요한 장소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중요한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비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6)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귀하고 복된 날, 믿음의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진짜 이유는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조국 남유다의 멸망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라고 목 놓아 외쳤지만, 그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에게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창 18:32)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은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는 몇 명이 없어서, 남유다가 멸망했을까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하나님은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하셨습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어쩌면, 예루살렘이 파괴되지 않았을 텐데, 단 한 사람이 없었기에, 남유다는 멸망했습니다.
예레미야 5장을 살펴보면, 그 당시, 남유다 백성들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유다는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렘 5:11-19)
호세아 11:1-2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면 부를수록 그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바알들에게 제사했습니다. 아로 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우상에 푹 빠져 살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방 민족들을 멸망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불붙듯 뜨거웠습니다. 그리하여,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레미야는 울었습니다.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조국 유다와 억압과 착취로 고통 당할 백성들을 보면서, 밤새워 울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고된 노예 생활을 해야 할 그들을 생각하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예레미야 29:10-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유다를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의 살 길이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미래와 희망, 평안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모든 복들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2-1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 전에는, 약속의 언약들 밖에 있었습니다. 전에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전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에게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간섭이 아니라, 돌보심이요, 억압이 아니라, 사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사역을 할 때, 차를 몰아, 계속 북을 향하여, 가다 보면, 군인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해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왜 우리는 더 이상 북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일까요?
강원도 고성에 가면, 통일전망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금강산을 바라볼 수 있는데, 해변이 바라보이는데,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고, 돌아서 와야만 합니다.
경기도 김포에 가면, 한강 하류변에 애기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성탄 츄리를 하는 곳입니다. 애기봉에서 강 건너 북쪽을 보면,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소리 치면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건너려면 금방 건너갈 수 있는 저 강을 왜 건널 수 없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지근거리에 있는 저 북한 땅을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전쟁의 상처와 아픔이 아물어지고, 다시는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에 미칠 때,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만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깨끗한 사람만 백성 삼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병들고, 약하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 죄 많은 사람들도 백성 삼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바울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전하든, 이방인에게 전하든, 베드로가 전하는 메시지이든,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이든, 전하는 메시지는 똑같았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러분! 우리 한마음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까요?
둘째, 안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안식이 무엇입니까?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피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육신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원기회복, 힐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친 육신과 마음이 어디에 가면 위로받을 수 있고, 쉼을 얻을 수 있고,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요? 어디에 가야만, 무엇을 해야만 힐링할 수 있을까요?
무더운 날씨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곡이나 바닷가를 찾고 있습니다. 동굴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 단양 고수동굴을 갔다 왔습니다. 동굴 속을 들어가는 순간, “시원하다”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 시원한 동굴 속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올 때에는 “덥다. 힘들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어디 가야,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노예가 되었습니다. 매일 매일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온갖 박해와 고통을 당했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자함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거친 광야에 있을 때에라도, 바람과 모래 밖에 없는 광야에 있을 때에라도, 노예로 있을 때에라도,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그들에게 참된 안식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의 삶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안과 위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인간에게 참된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줄 곳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 데도 없습니다.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환경도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쉼을 얻으며,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매순간마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할까요?
첫째, 일어나야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성전 문 앞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매일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면서,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가 걸으면서,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려면, 일어나야 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둘째, 시온에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시온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우리는 시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시온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온을 멀리 하면 안됩니다. 시온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 사람도, 성전에 들어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온은 아디입니까? 우리 교회, 바로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마음교회에 나와,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다.
역대하 7: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리키시면서,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늘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면 어떠한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 31:10-14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10절)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물댄 동산 같게 하여, 근심이 없게 하여 주십니다.(12절)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여 주십니다.(13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하여 주십니다.(13절)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흡족하게 하여 주십니다.(14절)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여 주십니다.(14절)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여러분! “일어나라” “올라가자”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모든 복들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주의 백성 삼아주시고, 날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고, 그곳에서 안식과 평안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이 안식과 평안이, 늘 멈추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주님의 지키심 가운데, 근심이 없게 하시고,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흡족하며, 만족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