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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하 7;8-29.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2023. 1. 8.
1. 본문의 내용과 배경입니다. 다윗의 기도의 내용이 18절 이하에 나오는데 18절에,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시고 베푸신 축복과 은혜에 대하여 감격을 하고 감동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나의 집이 무엇입니까? 이 고백 안에 삶의 지나온 자신이 다 들어 있습니다. 자신을 다 들어냈습니다. 결론적으로 29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을 하셨으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복을 주시되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게 하시고,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다윗은 평안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평안에 머물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무엇을 생각했습니다.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다가온 평안에 스스로 거리를 두고 무엇 인가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얻은 평안을 수성하고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의 간절한 필요는 천막에 둘려 쌓인 하나님의 법궤이었습니다. 보는 것도 은혜이었습니다. 다윗은 항상 준비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그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이끄심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늘 은혜로운 것 만 보고 나쁜 것을 보고 들어도 은혜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를 본 다윗이 자신과 연결을 시키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대안을 마련합니다. 여러분, 인생 마지막까지 성공 인생과 복 주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윗의 이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과 시작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대안을 마련하여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단 선지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의 결제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실행에 대한 부분을 준비는 시키더라도 실행에 옮기도록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과 생각과 그림을 그린 것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 선한 마음과 생각과 그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다윗에게 상상할 수 없는 7, 8가지의 축복을 했습니다. 이것이 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참 모습과 내면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일이 끝난 이후입니다. 마지막에 드러나고 열매와 어떤 결과가 드러나면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나의 집이 무엇입니까? 라는 고백위에 이전과 지금이 삶의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신앙이고 믿음이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다윗은 믿음과 자녀 된 도리를 다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마음에 두고 생각한 것을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로 더욱 확고하고 더욱 분명한 다윗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 약속한 축복한 내용은 시대를 넘고 시공간을 건너뛰어서 2023년에도 그대로 성취가 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베푸신 복과 은혜가 무엇입니까?
1-1. 첫 번째가 목장의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8절,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여러분, 주권자기 되면 사역의 현장이 바뀌고 사역의 내용이 바뀌고 사역의 질이 달라집니다. 무엇 때문에요? 공감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위한번 살펴보고 자기를 보고 하나님을 연결 했더니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공감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을 전달하여 여러분의 사역의 현장이 달라지고 질이 달라지고 내용이 달라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1-2. 두 번째가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고 동행 합니다. 9절,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다윗이 가는 모든 것과 다윗이 하는 모든 것에서. 무슨 말씀 입니까? 다윗이 하는 것 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윗이 생각하는 것 마다 하나님이 생각하십니다. 다윗의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됩니다. 얼마나 확실한 약속과 축복 입니까?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무엇 때문에요? 공감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1-3. 세 번째는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합니다. 9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 입니까? 이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존귀한자의 이름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마음 한 번 잘 썼더니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인물과 이름이 됩니다. 있으나 마나한 이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의 이름입니다. 다윗의 이름의 뜻이 무엇 입니까? 다윗은 작은 자 라는 뜻입니다. 그 작은 자가 오는 세상과 가는 세상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름이 됩니다. 다윗이라니까요. 사람 앞에서는 가장 존귀한 이름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만 작은 자 입니다. 존귀한 사람과 이름이 되었습니다.
1-4. 네 번째는 한곳을 정하고 거기에 심고 심겨진 그곳이 자기의 것이 되게 하십니다. 10절,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여러분, 이스라엘은 어떤 민족 입니까? 유목민 출신입니다. 이리저리 하루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옮겨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소원이 무엇인가? 한곳에 정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착한 그곳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도망 다녔습니까? 침을 흘리고 대문을 긁적거리고 미친 척까지 하면서 2번씩이나 망명하잖아요. 한곳을 정하고 심겨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의 소망 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이 일본 땅에서 심겨지고 세워지는 그리고 그 지경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1-5. 다섯 번째입니다. 악한 이유로 이전처럼 고생하지 않고 악한 이유로 이전과 같이 다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11절,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지금, 이제 부터는 악하다 한들 이전처럼 고생도 아니 하고 악하다 한들 이전처럼 다스리지도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무섭게 하셨나 봐요. 이전에는 고생을 시키셨나 봐요. 그런데 다윗이 공감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 한번 잘 쓴 것이 고생도 아니 하고 처벌도 받지 아니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실수 할 수 있잖아요. 그때마다 징계를 받고 아픔을 겪는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못 살지요.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 입니까? 징계를 하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용서하고 묵인하고 용납하고 받아주는 부모가 진정한 부모 아닙니까? 자녀가 성장하고 성숙할 때까지 용서하고 용납하고 고생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받은 축복입니다.
1-6. 여섯 번째는 평안입니다. 14-15절,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여러분, 평안은 삶의 대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주제도 평안입니다. 요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날을 3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셨던 마지막 유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생각은 평안이 없으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인간이 육신의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고,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쫓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할 때 육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큰 믿음을 가지고 살 때에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활도 평안입니다. 영의 생각은 육을 가진 인간이지만 성령의 지배와 조명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에게 평안이 없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이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근심과 걱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근심이 있으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심이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근심과 두려움과 염려를 내쫓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을 뛰어 넘습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다윗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아들로 살도록 평안의 삶을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왜 평안입니까? 아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안이 따라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다윗처럼 세상을 살지만 세상이 주는 평안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평안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1-7. 일곱 번째는 다윗을 위하여 집을 이루셨습니다. 16절,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서 집의 의미가 여럿이겠지만 왕권과 이스라엘과 개인과 가문과 개인의 집과 영역이 미치는 울타리입니다. 다윗은 견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 대한 축복으로 다윗 가문에 왕위가 대대로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능력과 권한이 수성이 됩니다. 영원히 견고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망하여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후손에게서 그 성취를 보게 됩니다. 다윗의 후손에게서 메시아가 오리라는 예언의 성취인데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믿음을 받으시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다윗 가문에 왕위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것이 견고하고 영원히 세워지는 다윗을 위한 영원한 집입니다.
1-8. 여덟째는 수한까지 살고 자녀를 통해서도 다윗의 나라가 견고히 세우신데요. 12절,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대로 살고 자녀도 있고 자녀 중에 한 사람으로 나라를 견고히 세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다윗은 지금 이후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공간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 한번 전했습니다. 공간과 소통과 수성을 위한 마음 한번 잘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셀 수 없는 축복을 하시고 감당치 못할 은혜를 더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2023년 새해 벽두, 두 번째 주일에 감사하며 서원하는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침묵이냐 표현이냐? 이 문제는 항상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실입니다. 침묵할 것인가? 입을 크게 벌릴 것 인가? 여러분, 우리는 늘 침묵과 표현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든 조금만 더 기울어지면 한 쪽으로부터 질타 받게 됩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하지만 정작 표현해야 할 때도 침묵을 지킨다면 한편으로는 좋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면 yes와 no를 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말씀은 분명하게 yes와 no를 분명히 하라고 합니다. 분명히 해야 그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압니다. 침묵하게 되면 좋을 런지 몰라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고, 반대로 침묵이 좋을 때인데도 손해나 상처입기 싫어서 표현할 때는 소인배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yes와 no의 때가 중요한 것인데 그 때를 제대로 아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성령의 지시를 받을 수 있도록 영혼의 안테나를 곧게 세워야 하고, 자기 속의 소리를 듣기 위해 말씀 안에서 즐겨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인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우리의 문제는 표현할 시점에 그 표현을 생략하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표현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때가 참으로 중요하고 무엇을 말해야 되는지 중요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것을 잘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시를 쓰고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좋아 했지요. 다윗은 예와 아니요 뿐만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간구해야 되는지를 알았습니다. 어느 때에 해야 되는지를 알았습니다. 다윗은 표현을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 받은 다윗은 너무나 감읍(感泣)했습니다.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지렁이만도 못한 자신을 알았기에 그 분의 은혜는 목숨 이상으로 커 보였습니다. 비록 그토록 원하던 성전건축은 어렵겠지만 대신 아들 대에 그 일을 시행할 것이며, 다윗의 그 마음과 표현을 하나님이 그대로 받으셨고 그래서 온갖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그 이름이 존귀케 될 것이고, 다시는 방황치 않게 될 것이며, 원수 나라들 가운데 평안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다윗의 자손들을 통해 견고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런 복을 약속받은 다윗은 온 정성을 다해 자기의 마음을 아버지께 표현합니다.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하나님은 지극히 높입니다. 자기의 한 일은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이스라엘만한 위대한 나라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는 결코 없음을 드높이 찬양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시고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백골난망(白骨難忘)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을 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여러분, 관계가 나빠지고 진행이 더딘 상황이 되었습니까? 이러한 때에 유효적절하게 마음을 표현해 보셨습니까? 그 내용이 어찌 하든지 제대로 찾아 완곡하고 부드럽게 표현해 보셨습니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어리고 부족한 사람에게 표현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나아가야 하는 길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옵니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고백하고 말하고 감사하시면 일은 거기서 부터 시작이 되고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27, 28, 29절의 내용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십니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으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하고 표현했습니다. 먼저는 2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무엇 때문에 기도할 마음이 생깁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제로 하고 표현하되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가도하고 간구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약속 한 번 잘못하면 큰 일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되데요.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도록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까? 다윗의 40년 통치의 비밀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윌리엄 케리를 아십니까?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미국의 20세기 대 부흥사 무디와 같았습니다. 꿈과 소망 없이 살아가던 윌리엄 케리는 예수님을 믿고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과 비전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표현을 하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 가게의 자기 자리 앞에 세계 지도와 세 가지 표어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 그 것을 날마다 시간마다 보고 읽고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세 가지의 목표는 큰 비전을 가지라(Great Vision), 큰 기도를 하라(Great Pray), 큰 기대를 걸라(Great Expect) 윌리암 케리는 자신의 인생의 하루하루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구두 수선 가게에서 수선이나 하는 사람이 꿈을 품어봤자 수선 가게 하나 정도 차리는 것이 아닐까요? 윌리엄 케리의 꿈은 전혀 달랐습니다. 상상도 못할 일을 기대했고 소망을 했습니다. 세계 지도를 품에 넣고 아무도 외국의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에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후원자도 없었습니다. 아내까지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인도로 들어갔습니다. 선교의 아버지와 선교의 원조인 윌리엄 케리가 꿈을 가지고 표현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복을 받고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표현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케리와 함께 하시므로 선교의 어버지가 되었습니다. 큰 비전을 이루고 큰 기도의 열매를 가져오고 큰 기대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너의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크고 비밀한 일을 가르쳐 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2023년의 반드시 새길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신년 예배 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시 말씀을 드리는데 정리하여 순서대로 표현하고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내디디는 발걸음마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토고납신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 표현의 의미는 털어버리고 출발한다는 의미인데, 고후5:17.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해 인식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표현하고 결정하여야 할 말씀인데, 6마디의 압축적인 말씀입니다.
1. 민14: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삶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니까? 삶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의하여 표현이 되어 진 대로 하나님께서 그 생각과 그 말과 그 행동에 따라 행하십니다.
2. 욥22: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 질 것이요. 너의 길에 빛이 비치리라. 결정을 해야 이루어집니다. 큰 비전을 가지라(Great Vision), 기도를 하라(Great Pray), 큰 기대를 걸라(Great Expect) 윌리암 케리는 결정을 했습니다. 다윗도 표현을 하고 결정을 했습니다.
3. 시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마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건지고 높였습니다.
4. 창28:15.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나에게 허락하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까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5. 엡3:20.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행하시고 이루시고 나의 길에 빛을 비추시지만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하십니다.
6. 마13:16.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앞의 5가지 말씀의 결과와 복이 주어지지만 그런데 이런 결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우리가 2023년 기억하고 소망가운데 이루어야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실천 사항이 무엇입니까요? 시작했사오니 이제는 끝내야 하는데. 걱정이 끝나고, 시련(試鍊)이 끝나고, 재앙(災殃)이 끝나고, 코로나(COVID-19)가 끝나고 근심과 걱정이 끝나게 하옵소서.
이 시간부터는 회복되게 하시되 예배(禮拜)가 회복되고, 물질이 회복되고, 건강(健康)이 회복되고, 관계(關係)가 회복되고 믿음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해결되게 하시되. 묶인 것이 풀리고, 닫힌 것이 열리고, 막힌 것이 뚫리고, 문제(問題)들이 해결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2023년에는 날마다 채워지게 하시되, 사랑이 채워지고, 은혜(恩惠)가 채워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채워지고, 무엇보다 필요(必要)가 채워지게 하시옵소서.
2023년에는 타오르게 하시되. 주의 사랑이 타오르고, 삶의 열정(熱情)이 타오르고, 선한 일에 의욕(意慾)이 타오르고, 교회와 나의 가문에 리바이벌 되는 부흥(復興)이 타오르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부터는 일어나게 하시되. 믿음과 신앙의 안목이 일어나고, 정의(正義)가 일어나고, 내 자신이 일어나고, 나라와 평화가 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2023년에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일어나 새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과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감사와 고백이 날마다 계속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그러면 회복되고 해결이 되고 채워지고 타오르고 일어나서 새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어떤 삶으로 살아내야 할까요?
3-1. 인정 할 때까지 성실을 다 하고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37;3절,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 지어다. 성실로 식물을 삼았습니다. 잠6;6절 이하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니라.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너의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너의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빈궁과 곤핍이 강도같이 군사같이 이른답니다. 왜 강도와 군사로 비유 했을까요? 강도는 예약하고 오지 않고 언제든지 허점을 보이면 옵니다. 군사는 무엇 입니까? 한꺼번에 옵니다. 인생이 이렇습니다. 성실로 식물을 삼아야 합니다.
3-2. 두 번째는 잘하는 분야의 레벨을 먼저 끌어올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기의 부족한 것 위주로 자기개발 계획을 세웁니다. 부족한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한참 늦은 행위이며, 부족한 부분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서는 아니 되는 인재, 바꿀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공분야와 즐기는 분야와 잘하는 분야에 관심을 집중 시키고 거기에 몰두 하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그 분야의 전문인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각 사람의 특성에 맞게 은혜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무조건 똑 같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는 관점에서 한 므나로 동일하게 주시기도 하시지만 또 다르게도 주십니다. 편애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 하는 분야를 달란트, 재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25장에 보면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소유자는 덤으로 열 고을 권세를 더 얻었습니다. 여러분, 모자라는 것을 자꾸 이야기 하지 마시고 잘 하는 것을 집중 해야 합니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입장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 못 하는 것을 자꾸 요구하시면 아예 짜증부터 냅니다. 없는데 자꾸 십일조 헌금 이야기를 해 보세요. 은혜 받는 분들은 소수이고 다수는 그 자리를 떠납니다. 잘 하시는 것을 먼저 하시면 어느 정도 되었을 때에 미처 못 한 것을 알고 그 못한 것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느 영화 대사처럼 마흔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 40 이 지나간 줄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마흔 이후의 얼굴과 인생은 자기의 책임 입니다. 그래서 불혹의 나이가 40입니다. 거의 40 이 다 넘으셨지요? 하지만 두려움보다 상승에 대한 소망으로 바꿀 기회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반전을 꾀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힘과 용기와 노하우가 있습니까? 여러분, 간증이 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옵니까? 왜 듣기가 쉽습니까? 나의 관심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이런 경험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양으로 바꾸었습니다. 목양에서도 그렇고 골리앗 앞에서도 그렇고 600명의 천한 사람들이 찾아 왔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잘하는 그 분야에 전심전력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고 섬기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 했습니다. 한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미래에 신앙과 믿음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생의 수를 다할 때까지 살았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40년간 통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생각하고 결정한 내용들을 간구하고 기도하여 남은 생이 더욱 아름다운 복된 삶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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