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매주 한 번 정도는 만나 술 한 잔 씩은 나누었던 절친한 선배의
말이 이랬다.
"지영아. 남자 나이 사십이면 세 가지 절망에 빠지게 돼있다. 첫째는, 건강에 대한 절망이
고 둘째는 경제에 대한 절망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에 대한 절망이다."
이제 곧 사십인 내가 귀를 쫑긋하지 않을 수 없게 선배의 표정은 비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사십을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금연하고, 없는 자존심 바닥까지 드러내며 비굴하게
회사에 붙어 있지만 그 마지막, 사랑에 대한 절망은 말이다. 더 이상 나를 가슴 설레게 하
는 로맨스는 있을 수 없다는 아주 절망적인 사실을 인식한다는 거지."
선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중년들에게서 불륜이 많은 것은 엄밀히 말하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사실인식에
저항하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보면 되는 거야.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할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절박한 심정인 것이지."
선배의 말이 끝나고 나는 상당히 동의한다는 뜻으로 움켜쥔 소주잔을 단 번에 비워버렸지만
송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이 사십에 던져지는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세상 어
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일 테지만 어쩌면 그만큼 유혹이 많은 나이 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건강에 대한 절망과 경제에 대한 절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절망 중에서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는 절망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제 갓 사십이어서인지 아직 절망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다. 다만 나를 관통해온 삼십
대 시절에 가졌었던 감성의 고점들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들은 어느 순간인
지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부양해야 할 가족들 생각에 아직껏 내 인생
에 대한 예우는 한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는 아쉬움이 다시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