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에어리어88은 예전에 TV로 본 기억을 더듬거리며, 더빙이 아닌 자막을 끌어안고 보게되었다. 전엔 지금보단 어린 나이였기에 그랬던지까지의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그 때 인상적이던 전투씬은 온데간데 없고, 두번째 테마 맨끝에 결국 자신의 냄새가 가장 짙게 뱉던 곳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얻어가길 바랬던 듯 싶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아이러니한것이 환경에 대한 환멸은 결국 그 자신에 대한 환멸일 수 있는 가정을 최소한 툭~허니 던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일게다. 물론, 그 반대를 상정함조차 그 여지는 있을테지만 말이다....
두번째, 주온은 참 일본스럽다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 하드코어라 할 순 없겠지만, 일본 영화 그리 많아도 그리 본 건 없지만, 링에서 느꼈던 근원적인 이유 - 여기선 결국 원혼으로 규정지어지는 것 - 와 현대 문명이기들 - 예컨데, 전화기, TV(CCTV), 엘리베이터, 사진 - 을 통해 그 원혼이 인간과의 연결고리(무목적성의 죽임)를 이끌어가는 면면들이 꽤나 우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마전 장화&홍련(참이나 한국공포물 멋있어졌다는 생각과 함께)에서 느낄 수 있는 시놉시스의 강점만큼의 액션은 약하다 - 왠지모를 일본식 차용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 한계인가 아님 발전상인가 - 는 느낌과는 달리 여기선 이야기의 전개보단(물론, 옴니버스식의 표현을 차용하긴 했지만) 그 액션이 주는 스멀거림이 더 다가온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적 취향과 맞물려서 그런지 더 이상의 느낌은 받기 힘듦.
세번째,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이전 단계인가 ㅡ.ㅡa 두 작품 다 수작이라 하여도 과하지않다라 말할 수 있겠다. 특히나, 디즈니의 영화와 가장 근본적 차이는 '메세지'다.
어렸을 적 은하철도 999가 하늘을 난다는 그 사실에 놀라고 철이가 불쌍하다는 생각과 메텔 쥔~짜 예쁘다는 생각을 20대가 훌쩍 넘겨버린 시점에 나름의 메세지가 있음을 이래저래 찾으며 알게되고, 그것이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전(?)이였음을 뒤늦게 알고 난뒤의 당혹감은 천년여왕과 캡틴 하록을 한데 짬뽕시키는 걸로 더욱 비틀어버린 어릴적 기억에 대한 대가였던 것이리라.
가장 근래 남았던 카우보이 비밥의 우울함까지는 아니다할지라도 말이다.
사족이 길었던 듯. 여기선 바로 지금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로 제시하는 것. 바로 환경(자연)과 인간의 조화이다. 가능한가? 지속가능한 개발? 영화 속 '신(죽음과 생명)' 역시 그랬듯 질문에 대한 해답은 주진 않더라만은 그 진지한 물음을 신화적 상상과 더불어 풀어가는 절묘한 묘기에 감탄의 박수를 금할 길 없었다는 점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잊지말길!!!
끝으로 8mile.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라는 말과함께 꽤나 미국에서 떠들썩 했다라는 말은 이 영화가 극장에 팻말을 달기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공중파를 통해서도 접했었다. 물론, 여전히 그랬듯 좋은 영화는 언제나 비디오나 DVD로 보는 과오를 이번에도 했구나 하는 짤막한 탄식과 함께 그 시작의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우선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꾀나 궁금했었는데, 영화는 결국 배신하지 않고 차근차근히 미국내 인종적 갈등과 그에 비례한 자본주의 폐단의 집결지로 나를 이끌며 얘기하더군. 뭐라구? 8mile의 거리는 내게 있어 꿈일 수 있다는 것. 누가 이렇게 살길 바라겠는가. 그네들에게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해결이 되었던 들 이 영화는 만들어질 이유가 없을것이다.
'lose yourself'의 엔딩곡은 어쩜 처음에 던졌어야 할 화두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 - 예컨데, 이념이라든지, 사회체제에 대한 변혁적 기대감, 인종적 차별성, 잉여자본에 대한 불평등 등- 을 풀순 없으되, 최소한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한번쯤 생각을 강요할 수 있음에 난 또 한번 영화가 끝나기전 무더기 찬사를 보냈다.
에미넴? 사실 가사 들리는 것 하곤 거리가 먼~ 나름의 아날로그다. 그래서 요즘 노래 가사의 절반 이상은 귓바퀴 근처도 가지못한 채 사라지는게 다반사다. 더욱이 영어라면....ㅡ.ㅡ; 그런 여건에 에미넴이 이뻐보이더라는 것이다. 노래(자막으로 가사 다 나오더라)가 좋아진다. 필시 이는 그의 연기력이 한 몫 거들기도 했겠지만, 그 보단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라는 긍정적 평가와 맞물려 이해됐을게다.
영화 속 battle의 동요적 흥분도, 뭐같은 인생살이도 그렇게 시멘트 게듯이 버무려진 것이다.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이가 있다. 수직적 삶과 수평적 삶(부연설명은 이해를 위해(?) 안한다. 단, x축과 y축선상의 한점이 자기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그 단초는 재해석되어 다가온다.
최소한 그네들에겐 수평적 삶의 한계가 그들로 하여금 1%의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인생을 거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나중에 이 영화와 버무려서 생각해 볼 꺼리가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때론 영화가 곰팡이 냄새나는 개론서보다 더 좋은 영양분일 수 있음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상기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