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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사 여기저기 게시판에서 글들(댓글 중심으로) 모음
이수일 14.03.14. 22:34
단현 불교의 최종 목적과 기독교의 최종 목적과 세계관은 다릅니다.
천주교의 사제와 불교의 출가자는 다른 분들입니다..
음주와 결혼 문제때문에 출가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불음주계와 불사음계를 출가자에게 허용하자는 말씀은 솔직이 마구니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정도의 욕망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어떻게 윤회계를 벗어나고
중생들의 청정한 스승과 복밭이 되겠다고 서원할수 있는지 심히 의문입니다..
티벳의 재가린포체들은 출가자로서 공부하다 출가자로서의 계를 지킬수 없다생각하면
환계하고 재가법사로서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이수일 14.03.14. 22:20
이수일 예전에 티벳의 재가린포체와 청정계율을 지키는 출가승 린포체 두분의 법문을
오전오후 동시에 들은적이 있습니다.
속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잘 아시는 재가린포체의 법문이 좀더 가슴에 다가오긴 했지만..
청정계율을 지키는 린포체께선 그나름의 청정하고 맑은 기운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있었고
그 이후 만난 그 법회참석한 다른 불자들에게서도 확인한바 있습니다..
출가스님은 청정한계율을 지키면서 열심히 수행해서 재가자들의 수승한 복밭이 되는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불법을 펴는데.. 재가자의 삶이 더 좋다.. 아니면
아직 중요한 계를 지킬 자신이 없다 하면 환계하면됩니다.
이수일 14.03.14. 22:26
이수일 스님들에게 청정계율을 요구하는거이 스님들에게 도발하는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청정계율을 없앨것을 말하는것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도발이라고 봅니다.
현대사회가 더욱더 욕망을 부추기고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유혹하는 것들이 과거에 비해 더 많아져서
사회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근기가 약해졌겠죠..
오탁악세라는 말이 이런것을 두고 말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때일수록 승단은 청정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재가불자들은 출가자들께서 더 열심히 수행할수 있도록
시중에 나와계신 전법포교스님들께서 혼자있을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재가자들의 이런 저런 놀이자리에 자꾸 초청해서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게
이수일 14.03.14. 22:32
이수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찰 유지하고 불자들 얘기들어주느라 자기 개인 수행할 시간 없으신 스님들 너무 많으십니다.
오히려 어쩜 시간 여유있는 불자들이 스님들보다 더 공부하고 개인수행할 시간이 더 많은 형국입니다.
그런 불자들께서 스님들이 더 청정하게 공부하고 수행할수 있도록 도움드리는것이 낫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술과 여자때문에 출가못하겠다는 분들은 스님할 자격없습니다.
그렇기에 청정계율을 지키는 스님들이 부처님 계율을 잘 수지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이수일 14.03.14. 22:35
이수일 그 누구보다도 늙은 나이에 이를때까지 계율을 잘지키고 있는 평범한 비구를 볼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하신
달라이라마님의 말씀이 이런 이유로 더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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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4.03.14. 15:38
감사 합니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 입니다.
마음이 불방일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곧 깨어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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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4.03.14. 13:32
불타관(佛陀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붓다를 어떻게 볼것인가? 라는 것 입니다.
자신이 믿는 불교를 결정짓는 주요한 신앙적 잣대입니다.
따라서 이 불타관에 따라서 불교는 믿는 마음도 그리고 경전을 공부하는 마음도 모두다 결정되어 진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 입니다.
대승불교의 불타관이라면 붓다는 신격화되고 형상화된 존재 입니다.
초기불교의 불타관이라면 붓다는 인간적인 존재 입니다.
또한 불타관에 따라서 경전을 공부하거나 믿는 시각도 달라 집니다.
붓다를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전을 보는 것과
붓다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인간의 몸을 가진 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경전을 보는 차이입니다
실론섬 법사 14.03.14. 14:53
초기불교와 빠알리어 경전을 공부하면서 꼭 빠트리지 않는 말이
붓다의 육성/오리지널 음성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즉 그분의 신격화되고 형상화된 부분을 걷어내고
인간적인 부분을 보자는 의미 입니다.
여러번 제 입장을 표현했지만
개인적인 불타관에 입각하여 글을 쓰고 공개를 하는 것은 자유 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와 함께
당연히 그에 따른 칭찬과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 입니다. 연꽃님이나 저나 자유로울수는 없을 것 입니다.
초기불교의 불타관이란 어떤 것인가?
그 견해 차이로 인하여 제가 연꽃님 글에 답글을 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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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섬 법사 13.11.22. 14:10
이 글은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
모아놓은 자료에 있긴한데 출처를 잊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어느 신문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요즈음 불교의 행복론 가지고 논쟁이 시작되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김덕한의원을 읽고 이해할 때 [김덕 한의원]일까요? 아니면 [김덕한 의원]으로
읽어야 할까요? 비슷한 논쟁인 것 같습니다. 즉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붓다께서 말씀하신 본 뜻과 진의가 잘못 이해되질 않길 바랄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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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1.26. 16:58
유마경은 유마힐소설경의 줄인말 입니다.
제가 한국불교의 불자분들에게 유마거사가 실존인물인가 아닌가? 라고 물어봤습니다.
태반이 실존인물이라고 대답하더군요. ^^
유마경은 공사상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행할 것인가를 잘 설명해 놓은 대승경전 입니다.
당연히 유마거사는 경전속의 허구의 인물 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붓다시절에 재가자들 중에서 아라한이 된 여러사람중 가장 도력이 뛰어났던 분이 '사티' 라는 재가자인데
아마도 그분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유마거사라는 허구의 재가인물을 만들어 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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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1.22. 14:15
초기경전의 번역서나 주석서에 지나친 의존과 맹신은 금물 입니다.
왜냐하면 붓다가 설법하신 배경이나 그 의도 등을 간과하기 싶기 때문 입니다.
정석은 알아도 활용을 못하는 잘못을 범한다는 것 입니다. 활용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지요. 앵무새처럼 경전내용을 옮겨와서 경전에 얽매이는 자세는 배운 사람이라면
지양해야 하는 공부자세 입니다.
12살에 출가하여 20세에 비구계를 받고나서도 다시 불교대학등에 가서 박사학위까지는 6-10년이
소요됩니다. 만약에 경전글귀만 옮기는 수준이라면 2-3년이면 됩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 이유는 붓다의 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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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1.17. 22:48
올리신 글을 두번세번 읽어보니 ..결론은 초기불교의 수행법으로 돌아가자고 하는게 아니라 결론은 빙글빙글 돌아서
조사선으로 왔습니다. 즉 조사선을 초기불교의 수행법에 비추어 보아 잘잘못을 말한게 아니라 조사선의 수행법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불교는 조사선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고, 위파나사 사마타 사념처 수행과 아라한을 이야기 합니다.
초기불교는 조사선 자체가 어디에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하는 자체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잘되었던 못되었던 그 수행이라는 것 자체가 불교의 수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사들의 수행일 뿐이지요.
실론섬 법사 13.11.17. 22:53
똥 막대기이든 할!! 이든 그건 그냥 조사선 수행일 뿐 입니다.
깨달으면 내가 깨달았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 입니다.
"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고, 할일은 다하였고... 두번다시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입니다.
그러한 오도송이 없이 백인백색의 오도송이나 열반게는 결국 비불교적이라는 것 입니다.
백인백색의 오도송이나 열반게나 나오는 주요한 원인이 바로 불교가 말하는 수행대로 하지 않았으니
각자 깨달음이 각자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아라한은 한 모습이지만, 도사들은 각자 모습이 다릅니다.
같은 길을 따라 같은 수행으로 깨달음에 도달했다면 깨달음이 다를수가 없지요.
모두 같은 모습인게 상식이겠지요.
실론섬 법사 13.11.17. 22:58
하지만 자기 멋대로 수행했다면 자기멋대로 깨달음의 모습이 총천연색일 것 입니다.
그게 중국 조사선의 모습이겠지요.
중국불교나 한국불교에서 과연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분이 몇분이나 될까요?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깨부수어야 하는 열가지 족쇄가
있는데.. 그걸 대입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 납니다.그런데 비교해 보면 .. 한참 멀었지요.
육조단경.. 경(經)이란 말을 중국인들이 사용했는데.. 경이란 붓다의 말씀에만 적용되는 용어 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말할 때 "경" 이란 단어를 붙입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깨달음이 붓다와 같다고 하여
육조단경이라 했습니다
실론섬 법사 13.11.17. 23:06
육조단[경] 이 아니라 육조단[론]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입니다.
치마불교 까막눈 시대에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허망하고 구름잡은 이야기를 했듯이
지금 배우고 똑똑한 불자들 시대에 글자 한줄 바꾸지 않고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알아 들을 사람 별로 없을 것 입니다.
허망한 것은 그냥 허망할 뿐 입니다.
우리가 중국불교에서 탈피해야 할 이유는 백가지도 넘습니다.
2013년 오늘에 와서도 육조들 이야기나 인용하고 중국불교나 인용한다면 ...
그건 불교의 원음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실론섬 법사 13.11.18. 18:54
중국불교에서 탈피 합시다. 오직 바로 직접 니까야를 접하여 중국이라는 중간 단계를 벗어나서
직접 붓다의 원음과 직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취사선택을 해야지요. 중국불교에서 받아 들일것은 받아 들일 수 있지만... 조사들이 말했다고 하여
그것이 진리인냥 받아 들이는 어리석은 잘못은 더이상 범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사들이 이야기했다고 하여 니까야를 공부하는 불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고 따를 것이라는
착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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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0.23. 00:01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
명상(선정)이란 지혜를 증장시키기 위한 가장 훌륭한 수행법일 뿐 입니다.
선정이 뒷받침 된 불혜는 결국 무아 무상 고 연기를 볼 수 있겠지요.
간화선은 어떤 측면에서는 마음닦음에 치우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혜가 뒤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니 절름발이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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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1. 18:51
비아와 무아는 엄연히 개념이 다른 단어 입니다.
한글로 번역된 아함경도 [나가 아니다] 라고 할뿐 한자어 그대로 비아 라는 단어는 쓰지 않습니다.
논쟁의 욧점은 뭐냐 하면...
[나가 아니다] 라는 한문으로 번역하면 비아가 됩니다.
하지만 이는 무아라는 단어를 대체하거나 그와 같은 개념의 단어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즉 무아 = 비아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경전에서 번역되어 있는 비아는 그냥 단순히 [나가 아니다] 라는 의미 즉 무아라는 의미일 뿐
무상 고 비아 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에효 ~~
이토록 개념 정립이 안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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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1. 18:58
다시 묻지요?
1) 불교는 무아론인가 비아론인가?
2) 무아와 비아는 같은 개념인가?
3) 나가 아니다(고정된 자아가 없다)를 한자어로 번역한다면?
이 질문이 대답을 못할 질문 입니까? 왜 대답을 못하시는 지요?
그냥 개념 정립을 도와 드릴려고 하는 것인데...
만약에 비아와 무아가 다른 것이라면 즉 무상 고 무아 라고 인정한다면
경전에 나와 있는 비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이토록 엉터리 글은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히 밝혀 드렸습니다.
철학에는 비아론과 무아론이 있다고...
말은 가려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무아 대신에 비아라는 말을 사용할 수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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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1. 19:03
경전의 해석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색은 무상하다 고다 나가 아니다
그러니 싫어 하는 마음을 내고 싫어하는 마음이 나면 그것을 떠나라... 입니다.
이때 나가 아니다를 한자어로 비아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 비아가 무아와 상응하는 단어로 사용한게
아니라 그냥 나가 아니다를 한자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님들은 경전에 비아라고 되어 있으니 .. 무아 대신에 비아다. 무상 고 비아. 이다라고
엉둥한 주장을 하는게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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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3. 15:08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고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외도들은 꼭 경전을 토막을 내어 ... 결론부분이나 자기들이 불리한 것들은 쏙 빼 버려요.ㅎㅎ
무슨 말이냐 하면...
비아란 즉 힌두교처럼 진아 참아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떠나는게 아니라 찾아가야지요.
무아란 나가 아니니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떠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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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구이 11.08.14. 06:50
제가 보기엔 구르뫼님의 내공이 무척 높은듯 합니다. 참 스승을 찾고 있으나 아직 찾지못한듯 합니다. 여기 원불사와 인터넷 카페에서는 구르뫼님의 멘토가 될 분들은 없는듯 합니다. 그러한 분들은 여기 카페에 올 시간도 없거니와 오실생각도 없으십니다. 우물에서 숭늉 구하는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을듯 합니다. 참 스승님은 고통받는 민중들 속에 오늘도 베풀고 계십니다 그냥 보통의 촌로의 모습으로 이웃집 아저씨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사십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힘들수도 있습니다. 일단 지리산이나 계룡산쪽에 들러 보시고 거기에서 전설로 남으시고 사람들속으로 들어오신분들을 찾아가심이 빠를듯 합니다.
선주구이 11.08.14. 06:56
우리들이 보통사용하는 지도나 네비게이션으로는 그분들 찾기가 힘듭니다. 조금더 수련하셔서 천안통으로 찾으시는게 더빠르시고 정확하실듯 합니다. 그분들은 조직을 만들지 않으며 물질을 구하지 않으며 나는 깨달았다고 광고를 절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중생들의 눈으로보면 꼭 모자라는듯 바보같이 보일수가 있습니다.그게 한계입니다. 여기 몇자되지않는 문자에 분별심을 일으키는 분들은 수행이 부족하시거나 상이 높으신 분들이라 생각하시는게 편합니다. 불교와종교의 문제점을 너무 정확하게 아시는것이 다른사람들을 불편하게 할수도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게 놔두시는것도 덜 피곤하실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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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07.31. 02:46
5.불자가 스스로 절을 찾고 보시를 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변해야 합니다
제대로된 부처님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잘못된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도 지속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을 3개월동안 집요하게 포교 하여 그댁 온가족이 불자로 돌아서게 만들적엔
정말 부처님 원음을 그대로 전하고 진실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왜 간화선이 최상의 수행법이라는등 화두만 뽀사버리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것마냥 하시는지
거북스럽습니다
그리고 스님들께서는 이제 권위를 내려 놓고 불자들에게 가서 포교도 하면서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지금 그런 스님들이 얼마나 됩니까?
목사님들 전도 하는것 보세요
향광 13.07.31. 02:51
6.포교는 아예 찾아보기도 어렵지요
하물며 잘못된 가르침까지 해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지나친 발언을 했다지만 아닌건 아닙니다
왜 불자들에게 제대로된 가르침을 전해야지 왜곡 그리고 부처님법이 아닌것을 가르치려 하는지요?
재가자들이 승가에 대든다고 생각 하시면 안됩니다
저도 전직 고등학교 교직자이고 현재도 대학 겸임교수 입니다
절대 잘못된 스승이 아닙니다
오답을 가르쳐서는 재자들에게 불신만 쌓이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 하고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비교 할만 하여 제 직업과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청정한 스님들께는 함부로 언사 하지 않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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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4.01.16. 15:55
인간이라면 누구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고 복을 바라는 마음은 똑 같을 것 입니다.
타종교에도 많은 기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살이 인생사에서 기복의 마음을 제외한다면
이미 아라한 수준이겠지요.
불교의 기복이 문제인 것은 타종교와 달리 너무 세속적이고 타락되고 돈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찰 재정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수행승들이 장사꾼처럼 행동하지는 말아야 할 듯 합니다.
평소에 꽁짜로 얻어 먹는 밥값이 있으니..
부자에게는 비싸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실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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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2.30. 13:40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승사자에게 잡혀 인간세상을 버리게 된다면
그때 진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함께 가지고 갑니까?
절대로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을 수 밖에는 존재인 사람이 바로 현생에서 행하는 공덕과 죄악 두 가지입니다
이것 진짜 내 것이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이것을 함께 가지고 갑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로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생을 위한 준비로
선한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공덕은 다른 세상에 태어날 때
중생들을 위한 의지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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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12.12. 21:38
"보살님 내가 보살님 이름을 10분간 불렀는데
보살님은 그 정도에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보살님이 관세음 보살님을 10년간이나 불러댔으니
관세음보살님이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하였다.
게다가 열반당 도깨비 ㅎㅎㅎ
입으로는 관세음보살 외치지만
마음은 탐진치로 물든 열반당 도깨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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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2.13. 20:55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합니다.
모두들 먹기 살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각자 합니다.
기독교/천주교는 이런 면에서 신자들의 모임을 잘 활용합니다.
해외에 처음 가면 교회나 성당모임에 참석하면 거의 모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도와줘서 경제적인 안정을 쉽게 하도록 배려도 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늘 주변분들에게...
만약에 사업을 할려면 교회에 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업상의 목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이런분들이 꼭 나쁘다고 보질 않습니다.
사찰에는
아줌마들은 기도하러
거사님들은 거의 안오고 온다고 하더라도 오직 신심하나만으로 옵니다.
실론섬 법사 13.12.13. 20:59
주지스님들은 신도들이 무얼해서 먹고사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신도들끼리도 서로의 어려움이나 도움을 주고 받을 생각도 안 합니다.
나만 복받으면 되지 ... 남들 복 까지 빌 이유도 없고, 남들 잘되게 도와 줄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모든것이 기복불교의 폐해입니다.
그런 상호 도움이 마치 불교와는 거리가 먼듯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게 신도회가 잘못 되어가는 냥
생각합니다.
한국이든 해외이든 사찰이나 신도회가 하나의 조그만 사회를 구성하여
똘똘 뭉치고 상호 보시와 자비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 신도회도 많이 활성화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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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법사님 어느 본글중 일부)
또한 제가 이곳에 여러번 글을 올려 드렸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내가 곧 부처가 될 수 있다, 깨닫는다, 성불 했다..." 등등의 표현은 "나도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가지고 계셨던 "대자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는 표현일 뿐 입니다. 내가 제 2 또는 3 의 고타마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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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모두는 정진하고 노력하기에 따라서 모두다 붓다가 되는게 아니고 붓다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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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진리를 왜곡하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 가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르쳐
주면 바라밀행(보살행)으로써 지혜를 구할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지식만 얻을려고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는 가르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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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2.03. 15:05
붓다께서 왜 설법하시기를 망설였는지 그리고 왜 설법하시기를 결심하셨는지를 ...
그것을 불교도는 늘 가슴에 지녀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불교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수많은 사이비들을 볼 때 붓다의 망설임과 갈등이
왜 있었는지를 재삼 알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실론섬 법사 13.12.03. 15:11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진리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지혜"를 얻기 위한 것 입니다.
지혜를 획득하는 방법중에 가장 좋은 것이 명상이라고 하여 그것을 강조하는 것일 뿐 입니다.
수행을 하되 지혜가 증장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입니다.
지혜없는 불교의 이해나 믿음은 맹신이나 또는 사이비의 길로 필연적으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향광 13.12.03. 20:57
중생제도는 오로지 부처님만이 하셨습니다
스님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산속에 있으면 되는것 입니다
정등각?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스님들이 정등각을 이야기 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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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법사 13.12.02. 01:37
여행사의 상술이겠지만...
"불교성지순례" 라는 간판을 많이 내걸고 있습니다. 불교 유적지만 있으면 불교성지순례 운운하는데...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불교유적순례 또는 불교유적탐방 .. 정도가 맞는 말 같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려서 [불교성지순례]란 위 네군데 장소 이외에는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면
안될 것입니다. 성지란 성스러운 장소라는 뜻입니다. 즉 붓다와 직접 관련있는 장소에 국한되어 사용해야
하는 단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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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법사님 어느 본글중 일부)
이곳에서 10년을 넘게 공부하시고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빠알리어 경전 번역에 온 힘을 쏟으시는 분이 늘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국 불교와 스리랑카 불교가 다른게 딱 두가지가 있다.
1) 청정한 스님이 청정하지 않은 스님보다 많다. 2) 모든 사람들이 불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 스님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확한 붓다의 가르침을 모르니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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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님의 기복에 대한 실론섬의 답글 |…… 교리신앙토론
실론섬 법사 | 조회 125 |추천 2 |2013.11.15. 17:13
글중 일부
불교는 자등명 법등명이며 복을 주는 절대자도 없고 그리고 신과 중생을 중간에서 매개해 주는 신관도 필요 없습니다. 사찰에서 힌두교적인 제사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 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기에 수행승은 사찰에서 기복에 앞장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수행승도 아닌 세간사를 사는 중생들은 수행승처럼 그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일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매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절에가서 기도하고 보리수 나무한테 매달립니다. 하지만 사찰과 수행승들은 그런 중생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 볼 뿐 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늘상 마음 편안하게 법문도 해 줍니다.
회사 새로 만들고 집 옮기고 아이 낳고 아프거나 사람이 죽거나 .. 온갖 세간사에 스님들이 옵니다.축복도 해주고 염불도 해 줍니다. 사람이 죽으면 밤새도록 염불 해 줍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염불해 주는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무상과 윤회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비경과 보배경을 암송하며 회사 오픈한 것 축하해 주고 새로 이사간 집에 잡귀신 없도로 쫓아 줍니다. 아이들 축복도 해 줍니다. 결혼식에도 참석해서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아십니까? 이곳 수행승들은 중생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수행승이 와서 축하하고 축복해 주길 바라는 그러한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서 옵니다. 그리고 법문을 합니다. 붓다의 말씀을 길게 늘어 놓곤 합니다. 돈 안주면 안오고 돈주면 오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신도들이 의식주를 모두다 제공합니다. 그러니 중생들이 수행승을 필요로 할 시에는 어디든지 달려 갑니다. 자비를 베풀고 복을 쌓고 수행력을 높일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것을 마다할 수행승이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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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5. 16:22
이곳은 똑같은 죄를 짓더라도 수행승이 짓는 죄가 일반재가들보다 더 크다고들 말하고 계십니다.
한국불교와 남방권불교가 여러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 알고 짓는죄와 모르고 짓는죄 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남방권 수행승들은 계율을 어기더라도 대부분 자신이 계율을 어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잘잘못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리로 돌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행승들은 공부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계속하여 같은 죄를 반복하여 짓습니다. 영원히 제자리로 못 돌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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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법사님 어느 본글중 일부)
법 : 진리 입니다. 어느 누구에 의하여 왜곡되거나 변형되지 않는 것 입니다. 설사 붓다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법을 변형시키거나 왜곡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설 : 사전적 의미 그대로 견해나 00주의 또는 학설 따위를 이르는 말 입니다. 말 그대로 수만가지 학설이 설설설 ... 주장할 수 있는 것 입니다.
62가지 외도들의 주장을 붓다께서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외도설 이라고 했습니다.
설법(법문)이란 말 그대로 붓다의 법을 전달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한국스님들은 설법을 할 때 경전을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사설만 늘어 놓습니다. 이건 설법이 아닙니다. 말그래도 사설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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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법사님 어느 본글중 일부)
팔정도의 첫번째 요소인 '올바른 견해(正見)'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올바른 견해'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견해'는 오온에 대한 집착에 통찰력을 적용해서 오온의 참된 속성을 이해하는 것 즉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반성이며 자기 관찰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곧 거론하게 될 것이다.
'올바른 견해'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팔정도의 다른 일곱 가지 요소들은 이 올바른 견해에 의해서 인도되기 때문이다 (중부 117). 이것은 올바른 생각들이 유지 되도록 해주고, 사고들을 정리해 준다. 생각과 사고들이 분명하고 건전해져서 인간의 말과 행위 또한 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된다 . 또한 해롭거나 무익한 노력을 포기하고 '올바른 주시(正念)'을 하도록 '올바른 노력(正精進)'을 닦는 것도 이 '올바른 견해'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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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3. 12:09
우리들은 붓다의 가르침인 불교를 수지하고 배우는 불교도 입니다.
즉 기독교나 무슬림이나 힌두교도들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렇담 첫번째도 마지막에도 붓다의 말씀이 기준이되고 정법이 되고 나침판이되고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인 것 입니다. 그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 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경전에 나와있지 않는 말은 정법이 아닙니다.
개인의 견해를 내세우더라도 절대적인 조건이 경전에 의거하여야 생각을 펼쳐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합의되고 공인되고 전승된 논서에 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다 私사견이요 蛇사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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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13.10.11. 19:12
불교는 영원론도 상주론도 아니지요.
오직 팔정도의 진리에서 법을 설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저것이 소멸하면 이것이 소멸한다]
조건발생 입니다. ^^
마음이 영원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이분법 그 자체가 이미 영원론이거나 단멸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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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법사님 어느 본글중 일부)
다시말씀드리자면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눈으로)보다, 이해하고 인식하다, 알아내다, 깨닫다, 경험하다, 만나다 등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나는 더러움과 오염의 파괴는 아는 이와 보는 이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며, 알지 못하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것이라 말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 불법이란 언제나 알고 보는 것이 관건이고 중요한 것이지 믿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은 '와서 보라'(ehi-passika)고 사람들에게 권하는데 한정될 뿐이고 와서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불경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언급할 때 언제나 사용하는 표현은 " 때와 더러움이 없는 "진리의 눈"(Dhamma-cakkhu;法眼)이 뜨였다", 그는 진리를 보았다, 진리를 얻었다, 진리를 알았다, 진리를 꿰뚫었다, 의심을 극복하였다,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바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yathabhutam;如實) 본다" 라고 표현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알아채고 또는 지혜(nana-dassana;智見)로써 꿰뚫어 보는 것이지 신앙으로써 믿는 것이거나 깨달음이니 깨침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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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08.24. 19:23
어떠한 경우에도 재가자가 스님(들)을 나무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우리스님
어떠한 경우라도 라면 지금까지 이렇게도 불교계가 시끄럽고 재가자들에게 실망을 주는
그런 승가에도 무조건 복종하고 존경심을 나타내란 말씀 입니까?
스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재가자들이 바뀌었습니다
재가자들이 승가에 공부가 못미친다고 생각 하는 부분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어떠한 경우라는게 바로 잘못된 승가의 권위라는 말 입니다
열심히 공부 수행 하는 재가자들이 출가를 안했을뿐이지
예전처럼 교리 교학에도 눈이 어둡고 그저 스님들께서 이끄는 방향대로만
움직이는 세월이 이미 지나 갔다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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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08.23. 15:15
밝으신 스님들께서 가르침을 주신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 드립니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 없었을뿐더러 어느 스님께서 이 참여 게시를 하지 않을경우
스스로 나섰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잘못 가르쳐도 학생이 무조건 선생의 말이 옳다고 따른다는것은
이미 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 가고 있는것 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모 방송국에서 고등학생들의 요리대회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과일을 이용한 청량 과일주스를 만드는 대회인데
멘토가 전혀 과일답지 않은것들로만 구성하여 희석해서
참가자들한테 나누어 주고는 맛이 어떠냐?
여섯명중 다섯명은 표정이 못마땅 한명은 되지도 안은 엉뚱한 첨가물을 들먹이며
향광 13.08.24. 15:30
맛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멘토는 너는 자격이 없다
이제 배우려는 학생이 아부나 하고
이 재료는 그냥 후춧가루 겨자가 재료의 전부였다!!!
자 보십시오 이런 소신도 없이 사회에 나가서 무슨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저도 일전에 글로서 스님과 몇번 대립 있었습니다만
제가 학생들을 지도 하면서 틀린부분을 맞다고 억지 부리거나 아닌것을 강요 하지 않았습니다
재가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힘에 의해서 선생에 눌릴지라도
그들도 판단 합니다 저 선생 실력 없어!!!
재가자들은 대부분 성인들 입니다 또한 다른 분야에서도 대단한분들 많습니다
승가의 잘못된 가르침? 다 압니다 그런데 스님 주장은 억지 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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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08.23. 15:23
스님? 이곳 원불사에 모인 불자들은 한결같이 부처님 원음을 찾아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불교에 해박하신 부처님 원음을 잘 전달하여 가르침을 주실 스님께 참여 해 달라는 공지 입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 모르지만
스님들께서는 그냥 다정 다감한 대화만을 하려 하시지
교리 교학적으로 토론을 기피 하십니다
그건 이유가 있겠죠? 모르거나 안되거나 내가 감히 누군데 재가자들과 어울려? 바로 이런것 입니다
진정한 승가라면 가르침을 주실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승가를 무시 한다는 정도의 말씀을 하시는건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저도 교육자이기에 무척 이런면에 예민 합니다
감사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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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광 13.08.20. 15:23
행복님 감사 합니다
지금은 난무하지 않고 약간만 다듬으면 정말 어느 불교 대학 보다도 뒤지지 않을만큼
훌륭한 가르침들의 글이 될것 같습니다
승가에서도 애를 쓰시지만 이렇게 재가자들께서 열틴 토론을 해 주시니
더할나위 없이 좋습니다
따라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저도 제대로 배워야지
불자들 모여서 공부 할적에 진실한 담마 보따리를 풀어 놓을수 있습니다
위축 되지 마시고 글을 자주 올려 주십시오 근기에 의한...
모두 모두 존경 합니다 _()_
마하수카진명 13.08.20. 16:03
그렇습니다.
글 써본 사람은 다 압니다. 처음도 좋고 가운데도 좋고 끝도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거기에다 불조께선 또 바른 뜻과 바른 문장까지 갖추라고 하셨고, 결정적으로는 상대에 대한 자비심까지 주문하셨으니..ㅎㅎ
그래도 자기검열 너무 많이 하지는 마시고, 자주 올려 주십시오. 근기만큼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겁니다^^!
행복님을 비롯한 여러 선지식 법우님, 모두 모두 찬탄합니다.
이상 향광거사님 댓글의 패러디 버전이었습니다..ㅋ
사두.., 사두.., 사두..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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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의 위아래는 제가 본 시간적 차이일뿐 아무 의미없습니다.
즉 위에 있는 글이 먼저 본거고 아래 글이 뒤에 본 글입니다.
원래는 다양한 분들의 말씀중에서 새겨 들을만한 글을 옮기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실론섬법사님의 글이 가장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접했던 모든 불교도들의 썰중에 이분 말씀이 가장 쉬웠고 이해가 되고
명확했고 체계있고 반박할(헛점, 틈, 모순 등) 부분을 보기 어려웠고 공감가서입니다.
글볼때 대체로 본글보다 댓글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알고보면 핵심 요지는 간단하거나 별거 아닌데
본글은 타존재들에게 설득 납득 이해 시키기 위해 장황하게 쓰는 경우가 많지만
댓글은 짧은 몇마디에 본질이며 모든 것을 함축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그리하면 불필요하게 시간낭비 정력낭비 등을 할 필요없지요.
예컨데 다음 미디어에 달린 기사의 경우에
기자가 쓴 본글보다 네티즌들의 댓글이 여러가지로 더 정확 여실하며
현실적 합리적인 해답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