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타협하러 들지 말자!(2)
“안식일이 주일로(여기서는 일요일을 가라키나 성경은 절대로 일요일을 주일이라 인정하지 않음) 바뀐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신학적인 의미와 콘스탄틴 황제의 결정적인 법령이 결합된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톻해 이루어졌습니다”
- 000 목사 -
어저께(일요일) 오후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간 50여년 동안의 타락의 생활(?)을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친정에 들린 기분으로
교회에 찾아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이 었다. 그간 감회가 깊었었는지 몇 번이고 울컥했던 기분이 들곤 했었다.
오랜만에 정말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보낸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에 벌어지고 말았다.
필자의 집 바로 뒤의 장로교회 집사이며
평소에 필자를 형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찾아와서는
안식일은 유대인의 제도일 뿐이란 것과 모두가 그렇듯이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심으로서
우리가 소망을 갖게 해주신 거라며, 그 특유의 부활 신앙에 함몰(陷沒)되어 있었음을
핏대를 세워가며 설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필자는 어떻게 하나님에 의한 천지창조가(cf 출20:11)
유대만을 위한 사역이었냐고 되묻게 되었고, 죽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부활은 절대 불가한 논리임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값이 치러졌음을 부각시켰으나
횡설수설하며 도통 들을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 또한 질 수가 없어
“그 일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날은 금요일 아니였냐?”
“부활이 일요일마다 기념될 거면 십자가 역시 매주 금요일마다 기리어야 할 명분은 없냐?”로 응수했으나
들을 귀가 없는지 그의 귀는 꽉 막혀 있었고 막무가내로 날뛰며 흥분할 뿐이었다.
그는 읍내에서 사법 대서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읍내에선 꽤나 명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측은해 지기도 했지만 그를 오해로 점철되도록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앞뒤가 꽉 막힌 ‘000’목사와 같은 사람들이다. 사탄의 가르침을 철저히
전수(傳受)시킨 그 죄를 어찌 다 감당하려나?
- 김종성 -
첫댓글
논쟁은 서로가 그 고집을 꺽지 않을 때, 계속되곤 한다. 사실 논쟁은 일방의 오해에서 발생이 되는데,
안식일엔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시는 말씀을 오해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바로 잡아 주기 위한
예수님의 진언, 즉 “독사의 새끼들아”(마23:33) 하신 말씀 또한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즉, 예수님도 유대인들 한테 막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막말도 아니요, 욕 또한 더더욱이
아니다. 진실로 안식일엔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시는 말씀은 .바로 앞절에 정답이 있다. 즉, 본인과
가족의 생활을 위해 힘써서 일할 엿새 동안의 “네 모든 일”(출20:10)들을 안식일에까지 끌어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 머리 좋다던 유대인들도 안식일엔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시는 말씀을 오해하고
말아 여러 수십 수백가지의 안식일 금령들을 만들어 거기에 순응하는 꼴불견을 보이고 말아 기어히 예수님의
참 교육인 질책을 듣고야 말았다.(cf 마7:21-23)
그러나 작금의 기독교인들은 마치 유대의 오해(cf 출20:10)는 오해도 아닌 것처럼 아예 하나님에 의한
천지창조가 명분이 되어 탄생한 “7일 일주일”제도(cf 출20:11)와 그 제도의 운행 기준일로 제정하신
“안식일”(출20:8)을 끌어 내리고 대신 그 자리에 일요일을 앉혀 놓는 걸 넘어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둔갑
시키고는 이를 매 7일마다 거기에 반응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탄생시킨 “7일 일주일”제도(cf 출20:11)와 그 제도의 운행 기준일로 제정하신
“안식일”을 준수하랍시는 하나님의 명령(cf 출20:8)을 매주(每週) 짓밟는 짓을 계속하면서도 그 신앙에
아무 문제 없음에 안주(安住)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타협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거랑 조금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