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느닷없이 갈비탕이 먹고 싶다는데 서울에서는 딱히 생각나는 집이 없습니다. 갈비탕을 직접 끓여 파는 집도 드물뿐더러 먹고 난 후에 만족감을 느낀 적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고깃국(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도 설렁탕이나 곰탕, 육개장 등은 건재한데 갈비탕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결혼식 피로연에서나 먹는 싸구려틱한 음식으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하기사 대개 식당에서 내주는 갈비탕이라고 해봐야 대형마트의 즉석조리식품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 굳이 내 돈 주고 사먹을 일도 드뭅니다.
갈비는 부위에 따라 제1번 갈비뼈에서 제5번 갈비뼈까지 정형한 것을 본갈비, 제6번 갈비뼈에서 제8번 갈비뼈까지 정형한 것을 꽃갈비, 제9번 갈비뼈에서 마지막 제13번 갈비뼈까지 정형한 것을 참갈비라고 합니다. 이 중 꽃갈비(6~8)가 특히 살집이 좋고 부드러워 주로 생갈비구이용으로 쓰이고, 꽃갈비와 마찬가지로 갈비뼈 안쪽으로도 살집이 붙어있는 본갈비(1~5) 역시 주로 구이용으로 씁니다. 그리고 갈비의 끝자락인 참갈비(9~13)는 안쪽에 살집이 없이 뼈와 뼈 사이에만 살이 붙어있어 마구리 부위를 보태 주로 탕이나 찜용으로 쓰입니다. 그런고로 갈비구이를 하는 집에선 참갈비와 마구리를 소비하기 위해 갈비탕이나 갈비찜을 메뉴에 올리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헌데 근자에는 소비되는 갈비구이에 비례해서 의당 나와야 할 탕이나 찜의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에구구...또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습니다. 하여간 주제파악을 못하는 갑판장입니다. 각설하고...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육영탕수육으로 대표되는 저가의 프렌차이즈 브랜드가 대유행을 하며 1995년 이래로 탕수육은 고급 청요리에서 시장통 길거리 음식으로 전락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제는 중국집에서 제 맛의 탕수육을 찾아 먹는 것 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옛날 방식을 고집스레 고수하던 몇 집만이 살아남아 각 지역의 맹주로서 칭송을 받는 지경이고 보니 어찌 이리 되었는지 세태가 한심할 따름입니다.
갈비탕 또한 옛 방식 그대로만 유지해도 되는 일이거늘 왜 이리 망가졌는지 안타깝습니다. 탕을 끓이는 화기와 조리도구가 예전에 비해 편리해졌으니 전보다 부족한 노력으로도 양질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괜히 식당주인의 욕심만 탓할 일도 아닙니다. 나는 소비자로서 어떤 태도를 가졌었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반성할 부분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싼값의 달콤함에 취해 입맛이 무뎌지지는 않았는지, 무조건 빨리빨리만 외치진 않았는지, 손님은 왕이니 내 맘대로 할테다라는 태도는 아니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기행을 엮은 책 ‘백년식당’을 읽다보니 프롤로그에서 노포들의 공통점으로 세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맛있다.’, ‘둘째, 주인이 직접 일한다.’, ‘셋째, 직원들이 오래 일한다.‘입니다. 갑판장도 100% 공감을 합니다. 박찬일은 여기에 보태 본문을 통해 한 가지를 더 꼽는데 ’넷째, 시장에서 값을 깍지 않는다.‘입니다. 맞습니다. 한두 번 거래하고 말 것이라면 몰라도 계속 거래할 것이라면 당장 몇 푼에 인색한 것은 그다지 효용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 식당에 물건을 대는 상인의 입장에선 당장 손해 본 것을 시간을 두고 야금야금 까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고, 또 매 번 헐값을 치루려 한다면 그에 걸맞는 것을 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스갯말로 ’사장님이 직원들을 중국요릿집에 데려가선 각자 먹고 싶은대로 마음껏 주문하라 해놓고선 먼저 짜장면을 주문하는 것‘을 예로 들며 말과 행동이 다름을 비웃습니다. 좋은 물건을 들이려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뤄야 하는데 말로는 좋은 물건을 찾지만 막상 값을 치룸에는 인색한 분들을 종종 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니 좋은 물건을 구하기는 커녕 구경조차 못 합니다.
갑판장은 위의 네 가지를 통틀어서 ’배짱‘이라 표현 합니다. 당장의 끼니만 걱정하면 장사 오래 못합니다. 하루보다 한 달을, 한 달보다 일 년을, 일년보다 그 이상을 길고 넓게 봐야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박찬일은 에필로그에서 노포의 공통점 다섯째로 ’선대와 똑같은 음식을 하려는 노력‘을 꼽았습니다.
에구구...도데체 어딨까지 끌고 갈려는 것인지 당최...이 정도면 병이 맞습니다. 맞고요...
당장에 가볼 수 있는 먹을 만한 갈비탕집이 도통 떠오르질 않아서 딸아이를 달래서 설렁탕집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난번에 포장을 해다 먹었는데 딸아이는 물론이고 온 식구가 다 잘 먹었던 기억이 좋은 집입니다. 이번엔 현장감이 맛으로 보테질 것을 기대하며 직접 방문을 했습니다. 갈비탕 대신 설렁탕을 먹자며 이 식당을 추천한 사람이 아내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안색이 영 안 좋습니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이고... 문제는 밥이었습니다. 밥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 일요일 저녁시간을 훌쩍 넘긴 애매한 시각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밥이 형편 없었습니다. 설렁탕집이면 밥집인데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포장을 해왔을 때는 집밥을 먹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식당 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갑판장네 가족은 차라리 값을 좀 더 올려 받더라도 좋은 쌀로 제대로 밥을 짓기를 희망합니다. 그게 곤란하다면 차라리 설렁탕의 양을 조금 줄이든지요. 암튼 제대로 차린 양질의 음식을 제 값을 치루고 먹고 싶을 따름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갑판장이 즐겨 다니는 우동집이 있습니다. 드나든지 9년째이고, 1년이면 그 집 우동을 한 90그릇쯤은 먹을 겁니다. 주인이 알든 모르든 나름 단골이라 생각하고 드나듭니다. 여지껏 단 한 번도 안 좋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간혹 국물이 흐렸다 쫄았다 하며 간이 흔들리기도 하고, 설익은 면이나 불은 면이 나온 적도 있었지만 별 문제로 삼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빨자국이 난 무김치를 발견했습니다. 여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간 갑판장이 운(?)이 좋아서 발견을 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2대째로 세대교체를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실수를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찌됐든 이번 일로 인해 갑판장은 곤란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오전 5~6시대에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강구막회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끼니처를 발굴해야 하니 말입니다. 솔직히 그 우동집에 다신 안 가겠다고 단언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시각, 그 구간, 그 가격대에서 더 나은 데를 찾을 자신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에효~ 한끼 먹기가 참 힘듭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어리석은 손님은 식당을 망치고, 어리석은 주인은 식당을 망하게 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책은 저도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네요.
종업원들이 오래 일하는 것과 함께
어떤 표정으로 일하는지도 중요한듯 합니다.
음식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빌려 가시라.
저자 싸인 있는 책
@강구호 갑판장 그냥 구입하시라.
출판업계도 힘들다는데..
@강구호 갑판장 그러게 말입니다.
가게에서 진상이었으니
나와서 밥값 좀 해야겠습니다.
신대방삼거리 기계우동 맛은 ?
거긴 소문만 듣고 가보진 않았구만요. 동선이 조금 돌아가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