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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일부터 한가위 덕분에 쉬는 날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가위와 관련된 예전에 보낸 편지 몇 개 모아서 보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햅쌀과 오려쌀]
안녕하세요.
곧 한가위입니다. 한가위에는 햅쌀이 나오죠?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그해에 난 작물에는 '해'를 붙입니다. '해'가 순우리말이므로 뒤에 같은 순우리말이 와서 된소리로 소리 내야 하면 사이시옷을 넣어줍니다. 그래서 햇곡식, 햇것처럼 씁니다. 그러나 뒤에 오는 낱말에 이미 된소리가 있으면 사이시옷을 쓰지 않고 해쑥, 해콩, 해팥처럼 씁니다. 그럼, 쌀은 '해쌀'이 돼야 맞을 텐데 왜 '햅쌀'일까요? 이는 쌀에 있는 ㅆ이 예전에는 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ㅂ이 살아 있어서 찹쌀, 입쌀, 좁쌀처럼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ㅂ을 살려 햅쌀이 된 겁니다.
그해에 난 벼, 곧, 올벼로 찧은 쌀을 '오려 쌀'이라고 합니다. 올벼는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라는 뜻을 지닌 낱말인데, 요즘은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려쌀'도 낱말로 사전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런 좋은 낱말을 살려 쓰면 좋으련만... ^^*
고맙습니다.
[추석절]
안녕하세요.
모레면 한가위입니다. 고향이 있으신 분들은 오늘 오후쯤 다들 고향을 찾아 떠나시겠죠? 저는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시기로 해서 조금은 널널합니다.
한가위 때 흔히 하는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입니다. 그만큼 모든 게 푸짐하고 좋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우리말 편지이니까 우리말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죠? ^^* 며칠 전 신문에서 '추석절'이라는 낱말을 봤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추석절'이라는 낱말은 1930년대 소설에도 나왔고, 1980년대부터는 출판물이나 신문 보도에 가끔씩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추석, 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만큼 자주 쓰이는 낱말은 아니죠. 단오절, 중양절, 중화절, 가배절 따위와 같이 '-절'이 명절을 뜻하는 데 쓰고 있어 '중추절'을 떠올려 '추석절'이라고 썼나 봅니다.
'한가위'라는 멋진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추석절'이라는 낱말을 쓸 까닭이 있을까요? 예전부터 쓰던 '중추절'도 있고...
고향 잘 다녀오시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이 즐겁고 보람있게 보내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아니요. 싫은데요]
안녕하세요.
요즘 받는 편지 가운데, 저에게 즐거운 한가위 되라는 분이 많으십니다. 일일이 답장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릴게요.
싫습니다. 저는 즐거운 한가위가 되기 싫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라고요? 그것도 싫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 멋진 사람은 되고 싶어도, '즐거운 한가위'나 '즐거운 명절'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즐거운 한가위'가 사람인가요? 식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무슨 미생물인가요? 제가 농촌진흥청에 다녀도 그런 동식물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저는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거나, 재밌게 누릴 수는 있지만, '즐거운 한가위'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영 어색한 말입니다. 굳이 따지면 문법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되세요.'라는 명령형으로 인사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영어 번역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는 '한가위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가위를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한가위 즐겁게 보내세요.'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거운 쇼핑 되세요, 좋은 시간 되세요, 안전한 귀성길 되세요, 푸근한 한가위 되세요 따위도 모두 틀린 겁니다. 사람이 여행, 관람, 하루, 쇼핑, 시간 따위가 될 수 없잖아요. 사람이 즐겁게 여행하고, 재밌게 보고, 행복하게 보내고, 즐겁게 시장을 보는 겁니다.
좀 삐딱하게 나가볼까요? 저에게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하루'가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하루살이'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큰 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 '하루'나 '하루살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더러 '날'이 되라는 말이니까, 어떻게 보면 '날파리'가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저에게 욕한 거 맞죠? 저는 절대 '하루살이'나 '날파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살게 그냥 놔두세요. ^^*
여러분, 한가위 잘 보내시고, 한가위 잘 쇠시고, 고향 잘 다녀오시고, 한가위를 즐겁고 행복하고 푸근하게 보내시길 빕니다.
보태기) 1. 삐딱하게 나간 게 좀 심했나요? 될 수 있으면 그런 말을 쓰지 말자는 저의 강한 뜻으로 받아주시길 빕니다. 인사는 고맙게 잘 받습니다.
2. '날파리'는 '하루살이'의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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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군요. 인삿말 하나도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런데요, 법적으로는 이제 집안이니 며느리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답니다. 2007년인가 법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억지로 전 부치고 앉아있을 필요는 사실상 없는 거랍니다. ㅎ
아, 그래요? 그래도 법을 들먹이며 전 안 부치는 며느리들 없을 것 같아요. 힘들어도 참고 일하는 대한민국 착한 며느리들 만세!
음... 그거야 남편 하기 나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