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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에 물난리가 나면 우리는 물 구경을 하러 뒷산에 올라가곤 했다. 뒷산 너머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대수가 지면 누런 황톳물에 온갖 게 다 떠내려가곤 했다. 어떤 해에는 돼지가 떠내려오는 게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해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둥둥 떠내려가는 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날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헤진 옷을 꿰매던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물난리가 나서 사람이 떠내려갔는데 마침 떠내려오는 나무를 잡을 수 있었단다. 그 나무에는 사람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생물이 있었는데 뱀이었다 한다. 그 사람은 뱀이랑 같이 나무를 타고 떠내려오다 요행히 강기슭에 나무가 걸리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는데 뱀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엄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셨다. 옷을 꿰매시다가 바늘이 옷감에 잘 들어가지 않으면 머리에다 바늘을 쓱쓱 비비기도 하면서 한 땀 꿰매고 이야기 한 대목하고 또 한 땀 꿰매고 이야기 한 대목하곤 했다. 엄마는 감질 맛나게 이야기를 해주셨고 우리는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우리 고향 동네 앞에는 제법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그 강을 그냥 '큰물'이라고 불렀다. 큰물은 운문산 깊은 자락에서 시작하여 들과 밭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 내려온다. 처음엔 봇도랑 물이었지만 점점 몸피를 키우다가 우리 동네 앞으로 오면 제법 큰 강이 되어 있었다. 그 강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꺽둑어며 메기며 뻥구리며 요시람쟁이 등등 물이 깨끗한 곳에 사는 고기들로 득시글거렸다. 큰물에는 민물고동인 '고디'도 많았다. 여름 한낮에 우리는 수경과 주전자를 들고 거랑(강)으로 가서 고디를 잡았다. 흐르는 물속에 있는 고디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디를 잡을 때는 수경을 이용했다. 수경은 나무로 네모나게 틀을 만들고 바닥에 유리를 붙인 거였다. 수경을 물위에 띄우면 물밑이 깨끗하게 잘 보였다. 고디를 잡아서는 수경의 한 쪽 귀퉁이에 담고 또 잡곤 했다. 수경에 어느 정도 고디가 차도록 잡히면 물 밖으로 나와서 주전자에 붓고 또 잡으러 들어갔다. 그런데 수경은 물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물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촛농으로 네 귀퉁이 이음새를 다 막았지만 그래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고디를 한참 잡다가 물을 따라서 버리곤 했다. 해가 지도록 고디를 줍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주전자 가득 찬 고디를 들고 집에 갈 꿈에 힘든 줄도 모르고 햇볕에 등이 까맣게 타서 허물이 벗겨지도록 고디를 잡았다. 고향 친구가 밤잠 줄여가며 잡아 보내온 '고디'
내 친구는 고향 근처에 있는 중학교 앞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는데 낮에는 가게를 보고 밤이면 이웃 사람들이랑 같이 그랑(강)에 나가서 고디를 잡는다. 밤이 되면 고디들은 물가로 나오기 때문에 고디 잡기에는 낮보다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불을 밝히고 고디를 잡는다고 하지만 그 야밤에 검은 물을 보면서 고디를 잡으면 무섬증이 들곤 한다. 고디를 잡다보면 일행과 멀리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검은 물속에서 뭔가가 나올 것만 같은 공포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밤마다 고디를 잡으러 가는 거는 고디는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름 한 철에만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값이 비싸기 때문에 여름 한 철 부업으로는 아주 그만이기 때문이다. 손이 재빠른 사람의 경우에 두세 시간쯤 하면 고디를 한 되쯤 잡을 수 있다. 고디는 한 그릇에 만 원씩 하는데 한 되면 밥그릇으로 다섯 그릇이 된다. 그러니 두세 시간 일하고 오만 원 벌이를 할 수 있으니 마음 있는 사람들은 고디를 잡으러 거랑으로 나가는 것이다. 얕은 물에는 고디가 있다 해도 알이 잘아서 잡아봐야 재미가 없다. 알이 굵은 고디는 대부분 제법 깊은 물 속 바위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알이 굵은 고디를 잡아야 빨리 불어서 잡는 재미도 있는데 그러자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허리춤까지 오는 깊은 물에서 몸을 굽혀 고디를 잡다보면 앞가슴도 다 젖게 되고 어떤 때는 아예 물속에 얼굴을 박고 잡는 경우도 있다. 내 친구는 밤잠 줄여가며 잡은 고디를 낮에 가게 보면서 짬짬이 알을 깐다. 고디는 하나하나 까야 되니 손이 많이 간다. 고디 깔 시간이 없어서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내 친구는 고디를 삶아서 알을 까고 삶은 물이랑 고디 알을 같이 얼려서 냉동 보관한다. 그랬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보내준다. 밤낮으로 일을 하니 어느 날은 너무 힘들고 졸려서 자기도 모르게 엎어져서 잠을 잔 적도 있단다. 좀 쉬었다가 하라는 내 말에 친구는 장마가 지면 물이 불어나서 잡고 싶어도 고디를 잡을 수 없으니 그 때 쉬면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내 고향 물빛 같은 '고디' 국물에는 고향이 녹아 있었다
다 녹은 고디를 냄비에 붓고 물을 좀 더 잡아서 국을 끓였다. 들깨도 좀 갈아 넣고 찹쌀도 좀 갈아 넣고 정구지(부추)며 얼갈이배추 데친 거며 파도 넣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맛을 봤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은 안 났지만 그래도 시원하고 구수했다. 마침 주말이라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척 언니와 오빠가 고디국 한 그릇에 감격을 했다. 고디국을 먹으니 고향 생각이 절로 나는지 그 날 밥상머리에서는 온통 고향 이야기 밖에 없었다. 고디국 속에 고향이 녹아 있었고 정이 담겨 있었던 거다. 어느 고장을 가던지 간에 그 고장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있다. 그 음식은 그 고장만의 색깔과 냄새를 담고 있다. 그 고장 출신들에게는 향수의 음식이고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 고장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식이다. 고디국은 내 고향 청도를 특징 지워 주는 음식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다. 주방에 들며나며 고디국을 한 국자씩 떠먹었다. 식으면 더 맛있는 고디국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훌훌 마셨더니 출출하던 배가 거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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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댁이 청도 운문면이라 고향사람 같이 반갑습니다 고디국끓이는 법도 똑 같구요 암튼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