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인간에 대하여>를 읽고 있는 중이라 그런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물론 본인은 그저 생각의 ‘배설’이라 표현했지만) 접하다 보니, 나름 공감할 만한 주제가 무척이나 많았다. 한 여성의 프리섹스 라이프를 담은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로 지정되어 탄압까지 받은 그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문학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높게 사고 싶은 마음뿐이다 (문학 작품으로 인해 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은 대한민국뿐일 것이다. 무라카미는 되고 마광수는 안 된다는 모순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대한민국의 문학계는 아직 멀었다).
앞으로 서술할 내용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다. 우리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다. 난 성 보수적인 시각 또한 포용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또한 열린 마음으로 받아 주기를 바란다.
1. 종교적 억압의 문제점.
불교에서는 금욕으로부터 맑은 정신이 깃든다고 믿는다. 본능에 치우쳐 살다 보면 욕심이 결국 화가 되어 번뇌를 일으킨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톨릭과 그리스도교는 어떤가? 이들은 예수만이 개개인의 신부이자 신랑이기 때문에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이미 예비하신 배우자가 있기에,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부정한 행위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난 그들의 신념이 틀렸다거나, 비난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만약 종교적 사상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최근 한국에 살고 있는 지인을 통해 교회의 실상을 전해 들었다. 그녀는 청년들의 혼전순결을 지키기 위해 ‘22시 이후 통화 및 메신저 금지’, ‘자매들은 조수석에 타지 않기’, ‘어떠한 신체 접촉도 하지 않기’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들었다. 참… 신념을 무기로 삼는 일부의 목회자들이 몹시 한심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쓰나미가 치는 곳에 댐을 설치하면 그 댐은 결국 넘쳐 그 지역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방파제를 설치하고, 많은 배수구를 설치하면 어떨까? 넘칠지언정 모든 것을 뒤덮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억압과 순응의 차이점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출신 사제는 동성애 파티를 열기 위해 성당 기금 중 1억 3,000만 원여 정도를 횡령한 것이 들통 났다. 또한 SNS로 유명세를 타던 목사 또한 성희롱 및 스토킹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혹자는 “종교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다!”라고 외칠 수 있겠지만, 강력범죄를 저지른 전문직 중 종교인이 1등이라는 기사도 있다 - KBS 뉴스, 임주현 기자 - (성범죄도 가장 많다).
이래도 과연 사람만의 문제일까? 성 자체를 금기시하고
음지화한 결말이라 보고 싶다.
2. 여성을 향한 과배려의 폐해
뇌성마비 장애인과 비장애인 전과자의 사랑을 담은 <오아시스>(2002)라는 영화를 다들 아는가? 최근 하이라이트를 접한 뒤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여자친구(문소리)를 침대에 눕힌 뒤 그대로 나가려는 종두(설경구)를 붙잡는 것은 다름 아닌 문소리였다. 문소리는 그대로 설경구를 유혹하고 이들은 동침을 하게 된다. 격렬히 사랑을 나누는 중, 문소리의 부모님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결국 종두는 억울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난 이때 문소리의 처절한 외침을 잊지 못한다. 마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 혹은 “나는 결코 도움받을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리듯 발광하던 그 모습이 눈에 훤히 남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여성을 과배려 및 과보호하는 모습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것은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요, 여성들의 성적 선택권과 독립권을 보장해 주자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성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응큼하면서도 발칙한 여성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이들의 특징은 높은 자존감과 유쾌한 성격으로 남성들에게 많은 호의를 얻지만 동시에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적극적으로 성적 매력을 어필한다. 또한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이를테면 성병이나 어장관리 등) 자신의 성생활을 즐기는 여성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다르다. 사회적 약자 (도대체 어느 기준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인 여성을 지켜야 한다며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 과보호는 곧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성들을 음탕자로 간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자신이 원하는 이성과 원할 때마다 잠자리를 가질 자유가 있다. <즐거운 사라>와 같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성생활을 즐기는 것은 결코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존중해 주어야 할 영역이다.
3. 마조히즘과 사디즘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성취향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필자는 사디즘에 더욱 끌리는 남성이지만 동시에 마조히즘적 취향도 지니고 있다. 상호 합의 아래 이루어지는 포식 및 피식 활동을 나는 무척 긍정적으로 본다. 가학을 즐기는 상대와 가학을 가하는 상대의 표정을 즐기며 돈독해질 수 있는 성생활을 지향한다.
이 정도 묘사하면 지금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표정이 상상 가능하다. 필자를 실제로 알고 있는 지인들이라면 아마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차고 있거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깔깔대며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다. 여러분은 정녕 성적 취향이 없는가? 정녕 없다면 성관계의 로망 따위도 없는가? 우리는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기에 원초적인 본능이 엮인 행위에 대한 갈망이 있고, 로망 또한 있다. 난 이 또한 숨기면 숨길수록 오히려 이상성욕으로 뻗어나가 더욱 위험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결혼을 해서도 문제다.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와 정반대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가? 난 장담할 수 있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할지 모를지언정, 섹스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평생을 플라토닉으로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무리하며, 난 우리가 성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고, 과감해지길 바란다. 여자고 남자고 우리는 본능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숨기고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때로는 당당해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야함이다. 난 남자든 여자든 쾌락에 빠진 스스로를 죄악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