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창세기 6,5-8; 7,1-5.10 마르코 8,14-21
기적과도 같았던 하루하루를 마감하며
+찬미예수님
처음 청담동 성당에 부임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몇몇 신자분들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어떤 할머니 신자분께서 저에게 다가와서는
제 얼굴을 한창 흘겨보셨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야 돼”
막 부임한 저에게 어디론가 가야한다는 그 말씀이 다소 오묘하게 들렸습니다.
회합에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 잊어버린 것이 있는지 떠올려 봤지만 아무런 일정이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저를 계속해서 뚫어지게 쳐다보시던 그 할머니 신자분은 혀를 끌끌 차고는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가야 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반복하시자 저는 마치 현인에게 지혜를 구하는 중생과 같은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합니까?”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신학교지!
본당에 있으면 여러 가지 유혹도 많고 위험하니 빨리 신학교로 가셔야 돼,
거기가 본당보다 훨씬 안전해!”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신학교 발령이 난 뒤, 얼마 전 받은 주일학교 학부형의
문자도 생각납니다. 그 문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이 다른 본당에 가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면 배가 아팠을 텐데,
신학교에 가셔서 참 다행이에요. 신학교에 계속 계셨으면 좋겠어요.”
곧이어 같은 분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그 문자를 보고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 했는데, 거기에는 단 세 글자만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영.원.히.”
한 마디로, 앞으로 본당에 나오지 말고 시커먼 신학생들이나 잘 교육시키면서
청담동 성당을 평생 그리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젊은 사제가 혹시라도 유혹에 빠질까 고민하는 할머니 신자분의 마음,
평생 신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를 그리워하기를 바라는 젊은 어머니의 마음.
이 마음의 공통점을 꼽자면 아마도 흔히들 “사랑”이라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단어로 요약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적”입니다.
기적.
우리가 하느님께 줄곧 청하고 바래왔던 그 기적 말입니다.
기적의 사전적 뜻은, “인간이 증명할 수 있는 자연, 과학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놀라운 사건”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제가 지난 시간을 “기적”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신자분들로부터, 그리고 주일학교 아이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저의 이성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것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다시금 제가 체험했던 기적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 보다 스스로가 잘 살기 바쁜 이 시기.
저 같은 젊은 사제의 사소한 말들을 기억하며 아이에게 신앙을 알려주고자 하는 젊은 부모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일 나이, 저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어린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 아니겠습니까?
학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 바쁜 이 시기, 마음 한 편에 스스로를 응원하는 하느님을 소유하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실천한 사랑에 비해 무한한 사랑을 받았을 때, 마음 한 켠에 그 따스한 온기를
품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성당 한 켠에 앉아 있는 저 젊은 교리 교사들을 보십시오.
제 뒤편에 앉아있는, 그리고 미사에 참석한 저 많은 어린 복사 아이들을 바라보십시오.
저 같은 부족한 사제를 사랑하며 함께 하는 우리의 이 시간을 “기적”이라는 단어 말고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저는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모두를 경험한 저의 삶 하루하루가 바로 기적이었음을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바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무심코 성당에 왔는데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지치고 힘든, 그리고 메마른 삶 중에 문득 성당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철부지 같은 자녀가 복사를 하고 싶다고 새벽 미사를 나서고 첫영성체를 하겠다고 본당을 나서면,
신부님을 사랑한다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져 온 것이며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근간인 셈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이 기적들을 기억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잊어버립니다.
빵 다섯 개를 오천명에게 떼어 주신 예수님의 기적을, 빵 일곱 개를 사천명에게 떼어주신
기적과 같은 순간들을 경험했음에도 그 기억을 잊어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기적을 요구하곤 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 날카롭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 질문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금 모든 신자분들과 아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과도 같은 시간을 깨달으며 저에게 기적의 하루하루를 남겨준
모든 분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을 기억하며 모든 분들이 하느님께서 선물해 주시는 기적의
하루하루를 나날이 체험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저 또한 이를 기억하며 제가 받은 사랑을 앞으로 돌려드리고자 애쓰겠습니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기적같은 하루하루가 저에게 다가오겠지요.
-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미사에 가면서 느끼는 감정 이었네요ㅎ
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고자 저렇게 모이는 자체가 저도 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