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서울현충원장을 지낸 위동환 종친 자서전, 효산의 오솔길 펴내다 ◇
제11대 국립서울현충원장(1999. 7. 1~2001. 6. 30)을 지낸 위동환님이 자서전「효산의 오솔길」을 펴냈다. 그는 팔순을 앞두고 세상에 태어나 9급에서 1급 관리관까지 35년간 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살아온 삶의 과정을 소회하였다.
책을 소개하면 제목을「효산(曉山)의 오솔길」로 하였다. 曉山은 집안 내 소헌(小軒) 공량(孔良 1936~2018) 당숙이 지어 주신 그의 호(號)이다. 새벽 曉, 뫼 山으로 먼동이 트는 아침의 산을 의미한다. 이름 字인 동녘 東, 빛날 煥 과도 의미가 상통(相通)한다고 할 수 있고, 밝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 산의 오솔길에서 오래된 친구와 지난날의 이야기하며 산책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고 한다. 표지의 앞면에는 광주 무등산 정상의 가을 풍경을, 뒷면은 선대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장흥 천관산 초입의 제각 장천재와 태고송을 담았다.
394p 분량으로 머리말, 제1부 無等山과 天冠山, 제2부 꿈 많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 제3부 나의인생 스스로 일으켜야지, 제4부 삼각지에서 보낸 황금기, 제5부 자유인이 되고나서, 제6부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맺는말, 흘러간 세월, 부록(졸업증서·임명장·표창장·훈장증 등) 등으로 편집되어 2010년 9월 23일 발행하였다.
■ 위동환(魏東煥 1942년 12월 5일) : 父는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내동마을 근암고택 태생 관재(冠齋) 위설량(1917~2006)과 母 관산읍 죽교마을 태생 윤복례(1921~2003)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1943년 1월 10일 광주시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부친께서 15세 때인 일제강점에 사회개방과 세속의 변화로 방촌에서 광주로 옮겨 생활하여 광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949년 4월 광주 수창초등학교 입학, 1950년 6. 25전쟁 발발로 보성 벌교 외가에서 생활하여 벌교남초등학교로 3학년 때 전학, 1952년 5월 아버지 고향인 관산읍 방촌리로 이사와 관산국민학교 4학년에 전학 후 졸업, 1955년 장흥남중(지금의 관산중학교) 입학 후 강진중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하였다. 이후 1961년 광주공업고교 졸업, 1962년 공군사병으로 입대하여 만기전역 함.
이후 건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경기도 병무청 근무(행정서기), 국립묘지관리소 근무(행정주사보), 국방부기획국기획관리과 기획담당(행정주사), 국방부예산편성국 총괄과 총괄담당(사무관), 국방 예산개혁위원회 전문위원(서기관), 국방대학원 수료(서기관), 국방부 전산관리담당관(서기관), 국방부 예산재정국 총괄조정과장(서기관), 국방부 예산재정국 재정심의관(부이사관), 국방부 예산재정국 국장(이사관), 국방부 계획예산관(이사관), 국립서울현충원장(관리관) 등을 역임하고
공로표창 4회(국방부장관), 모범공무원 표창(총무처장관), 근정포장(대통령), 황조근정훈장(대통령)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