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윤집궐중
극단이 극단을 불러오고 마주치는 ‘극단의 시대’라 칭할 조류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고, 미국 우선주의 전략가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염려들이 큽니다. 중동의 임시휴전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고, 한반도에도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의 팽배로 극단의 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생명공경과 이성중시의 진실도가 딛고 선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거듭 궁구한 것도 합리적인 최선의 정체(politeia, 국가의 삶의 방식)였으며, 여기에는 중용(mesotes)이 간과되지 않아야 한다는 통찰이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만이 옳다고 여기는 극단을 경계한 것입니다. 태평세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禪讓)하면서 당부한 바는 ‘윤집궐중(允執厥中)’ 단 네 자였습니다. 중도를 잡되 진실로[允] 잡아라는 간곡함이었습니다. 윤집궐중!
[보충]
* ‘윤집궐중’은 「논어」 요왈편 제1장에 ‘允執其中’으로 나오고, 「서경」 대우모편 제14장에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으로 나옵니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선양하면서 열두 자를 첨언한 것입니다. 이 열여섯 자는 「심경부주」에서 제1장의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정체의 지지자들이건 저마다 자신의 정체만이 옳다고 여기고는 극단으로 몰고 간다. (…) 어느 정체든 극단으로 치우치면, 처음에는 정체가 더 나빠지다가 결국에는 정체도 아닌 것으로 변하고 만다(「정치학」 제5권 제9장).” 극단의 한국정치 현실에 해당됩니다.
첫댓글 요약1. ‘극단의 시대’에 진실도가 사라지고 있음
요약2.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극단의 정체를 경계하였음
요약3. 요임금의 ‘윤집궐중’은 극단의 시대에 더욱 절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