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교훈 진나라의 조고(趙高)
2025.5.2일
역사적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 행위로 말미암아 섬기던 주군과 소속된 공동체와 자기 자신도 비참하게 몰락한 1)진나라의 조고(趙高), 2)고려의 신돈(辛旽), 3)박정희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 우선 3명의 호가호위 행위을 기고하겠다.
호가호위 행위를 행한 자들은 그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특히 기독교 교단 내에서도 진나라의 조고(趙高), 고려의 신돈(辛旽), 박정희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호가호위 행태를 행하는 자는 없는지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고 거짓과 불법으로 악행과 횡포를 저지르는 자가 어디 없는지 생각해 보면서 교훈을 삼았으면 좋겠다.
'호가호위'란 '여우가 호랑이를 빙자하여 호랑이 행세를 한다' 는 고사성어로 본래 보잘것없는 존재가 실세의 권세를 등에 업고 함부로 위세를 부린다는 것인데 조고와 신돈과 차지철이 바로 그 여우였다. 그렇다면 기독교 단체 내의 여우는 과연 어디 있을까.
진나라 시황제의 환관 조고는 비천한 처지였지만 시황제 유언을 조작하여 나라와 황제의 목줄을 잡고 황제의 권위를 빙자하여 정적들을 제거하고 불법과 횡포를 저지르고 권력과 재산을 축척했다.
진나라의 진 시황제(秦 始皇帝)
진시황제(秦 始皇帝)의 친부는 여불위(呂不韋)라는 자로 초나라에서 큰 재산을 모은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당시 진나라의 황손으로 초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자초(子楚: 후에 진나라 장양왕)를 가까이 극진히 호의를 베풀고 자기 애첩 중에는 미모와 춤솜씨가 뛰어난 조희(趙姬)를 임신한 상태에서 그에게 주어 아들(영정)을 낳게 하니 자초는 자기 아들인 줄 알고 기쁨에 여불위를 평생 은인으로 여기게 된다.
이때부터 여불위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자초(子楚)를 진나라의 왕(장양왕)이 되게 만들고 최측근 승상이 되었다. 장양왕(莊襄王)은 즉위 3년(BC247년)만에 죽고 아들 진왕 정(政, 훗날의 진 시황제)이 13세에 즉위하니 여불위의 아들이 진나라의 왕, 장차 진시황제가 된 것이다.
진왕 정(政)의 모친 태후(太后) 조희는 태후가 된 후에도 여불위를 불러 은밀히 정을 통하다가 여불위는 성장하는 진왕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노애(嫪)라는 가짜 환관를 조희에게 넣어주어 조희의 정부(情婦)가 되게한다. "여불위 열전"에 따르면 노애(嫪毐)의 성기는 오동나무 바퀴를 들어올릴 정도의 큰 남근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신을 하게 된 조희는 잠시 궁을 떠나야 한다면서 거처를 옹(雍)으로 옮겨 노애의 두 아들을 낳고 노복이 수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왕 정(政)은 BC 238년 태후 조희가 있는 옹(雍)으로 관례와 성인식을 치르기 위하여 가게 된다. 거기서 노애가 모친 태후(太后)의 정부(情婦)이며 숨겨놓은 두 아들이 있다는 것과 왕이 죽으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자고 한다는 고변을 듣게 되고 실상의 전모를 알게 된다. 비밀이 들통난 잔당들을 모두 제거한 후 노애는 사지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으로 죽이고 노애와 간통하여 낳은 2명의 아들은 자루에 담겨진 채 몽둥이로 두들겨 죽였고 조희는 유폐되었다.
그 후 진왕 정(政)은 여성을 증오하고 멀리했다고 한다.
그는 총명하고 뛰어난 지략과 군사적 전략으로 6국의 군대를 하나씩 물리치고 BC 221년 39세에 6국을 정복하고 천하를 통일하고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하여 강력한 제국의 시황제(始皇帝)가 되었다.
만리장성, 아방궁, 진릉 등을 건설하며 백성들에게 과도한 노역을 강요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었고 가장 신임하는 환관 조고(趙高)와 5~6명의 측근외에는 아무도 시황제를 대면 할 수가 없었다.
BC 210년 전국을 순행할 때 병이 깊어 죽음을 예측하고 조고에게 황태자 부소에게 옥새를 전달케 하고 장례준비와 선위의 유언장을 쓰게하고 50세에 사망했다.
이때 조고는 황제의 사망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장남 부소에게는 자결하라 명령했고 막내 호해(胡亥)를 후계로 지명하여 후임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되었다.
이때(BC 209년)부터 국사를 전담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관리와 대신들을 숙청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거짓으로 황제를 속이고 불법과 횡포를 자행하는 호가호위가 계속되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BC 207년 선왕 시황제의 명재상 좌승상 이사(李斯)가 조고의 횡포를 진언하니 그를 제거 한 후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시험하기 위해 모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사슴을 한마리 바치면서 "폐하 여기 말을 바칩니다" 주장하니 이세황제는 웃으면서 "승상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 의아해 했다.
이때 조고는 "경들은 이것이 사슴이요? 아니면 말이요?" 하니 모두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 중에 사슴이 맞다고 한 신하들은 그후 모두 트집을 잡고 죽여버렸다.
이 사건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한낱 환관 출신이 황제의 유언장을 자기 목적과 생각대로 위조하고 절대권력의 정점에서 천하의 권력을 독점하고 황제처럼 온갖 횡포를 저질렀다. 마침내 이세황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하다가 호혜의 형의 아들 자영(秦王)을 세웠으나 자영은 자기를 찾아온 조고를 자객을 시켜 죽이고 그의 삼족을 멸하고 시신을 함양의 저자거리에 조리돌림을 했다.
조고의 어리석은 지록위마의 말로는 진나라 공동체와 황실과 자기 자신까지 파멸의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대단한 시황제의 진나라 역사는 불과 37년만에 몰락해 버렸다.
오호라!
과연 우리시대 기독교 교단들은 지금 어떤 지록위마의 악행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가. 이대로 가다가 교단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이 생각되는가.
지록위마의 주인공도 그 위세를 제공한 자도 종말을 예측하고 이제라도 돌이키기 바라며
공동체 모두들 각성하고 깨어나기를 기대한다.
2025.5.2일
박승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