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축복 천사 같은 웃음 한번에 모든 아픔 사라져요”
미혼모 7인의 ‘아이를 위한 기도’
김정수·이후남 기자 newslady@joongang.co.kr | 제141호 | 20091122 입력
최근 일부 산부인과 의사가 “더 이상 불법적인 인공임신중절(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낙태 찬반 논쟁이 새삼 달아오르고 있다. 4년 전 추정 조사된 정부의 공식 통계로만 연간 35만여 명의 태아가 엄마 배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높은 낙태율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그보다는, 성문화가 급변하면서 늘어난 혼전임신이 낙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미혼모가 감내해야 할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낳는 아이’라는 입양도, 미혼모들의 눈물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10~30대의 미혼모 7명을 만났다. 낙태 대신 생명을,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한 이들에게 과연 후회는 없을까. 그들은 모든 사연을 솔직히 들려주었지만 대부분 얼굴과 이름은 공개하지 못했다. 그들이 처해 있는 냉혹한 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1“내 아이 키우기 위해서라도 학교 공부, 취업 준비 더 열심히”
“사람들은 어린 10대가 부모님 말씀 안 듣고 사고를 치고 나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운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엄마예요. 어쩌면 내 아이 사랑하는 마음은 (웬만한 엄마보다) 더 커요. 힘든 과정을 거쳐 낳아 키우는 거니까요.”
이유미(18·가명)씨는 휴대전화에 담긴 9개월 된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걸그룹 멤버처럼 가녀린 얼굴이 “초유는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모유가 엄청 잘 나와 아직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더없이 당차 보였다. 유미씨는 지난 7월 2년제 학력인정 고등학교에 편입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할 계획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25개월 된 딸 ‘이쁜이’와 함께 엄마 이은경씨가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
지난해 겨울,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유미씨는 망설임 없이 낙태를 생각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혼자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던 유미씨다. 방학 동안 아기를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3학년에 올라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배 속의 아기는 어느새 7개월 가까이 자라 있었다. 산부인과 등을 알아봤지만 ‘차라리 입양시키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 알게 된 애란원에 들어와 아이를 낳았을 때, 그는 양육을 선택했다. 1년 가까이 머물면서 학교 졸업과 취업 준비도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아기와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큰 충격을 받았던 부모는 유미씨의 변한 모습에 이젠 오히려 대견해하시는 눈치다. 유미씨는 “기초수급자라 지금은 어떻게든 살 만하다”며 “청약저축도 시작했는데 나중에 살 곳을 마련할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2“낙태할 때의 그 끔찍한 심정 10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유지영(19·가명)씨는 애란 모자의 집에서 돌을 앞둔 딸과 생활하고 있다. 임신 전 고교 자퇴 상태였던 지영씨도 오히려 출산 후 학교를 다시 다닌다. 아이를 키우려면 고교 졸업장은 있어야겠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면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보육교사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지영씨는 “낙태도, 입양도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학교 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너무 어렸던 지영씨는 임신한 줄도 몰랐다. 갑자기 식욕과 잠이 늘어난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병원에 데려가 확인 후 곧 낙태를 시켰다고 한다. “순식간에 없어진 아기” 생각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이번에 대학생이던 남자친구 등이 낙태·입양을 권했을 때 지영씨는 “혼자라도 낳겠으니 상관 말라”며 버텼다.
“저랑 비슷한 때 친구도 임신을 했어요. 남자친구가 연하라 더 막막해하면서도 낳고 싶어했죠. 그런데 8개월이 다될 무렵 양쪽 부모님이 데려가 낙태를 시키셨어요. 그 후 친구는 가출했죠. 아버지 얼굴이 제일 보기 싫더라며. 요즘도 저랑 제 아이를 보면 자꾸 애기 생각이 난다고 울어요.”
그에 비하면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현재 군대에 가 있는 남자친구와도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 뒤늦게 알게 된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아이까지 낳았으니 헤어지는 건 안 된다”고 하셨단다.
3“아기가 어릴수록 엄마들 마음은 더 단단해요”
“우리 ‘이쁜이’(별명) 보면서 항상 생각해요. 힘들어도 축복받았다고.”
25개월 된 딸을 키우는 엄마 이은경(25)씨의 말이다. 임신 4개월째 조산기가 있어 두 달 반이나 병원신세를 지고 얻은 아기다. 남자친구였던 아기아빠와는 그 무렵 아예 틀어지고 말았다. 외국에 살고 있는 은경씨 아버지는 “아이 키우는 것만 빼고 뭐든 도와주겠다”는 말로 입양을 권했다. 은경씨는 달랐다. 조산하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떻게든 아기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동사무소·미혼모 시설 등 사방으로 도움을 청한 것도 그래서였다.
“아기가 어릴수록 엄마들 마음이 단단해요. 좀 나태해진다 싶으면, 처음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아기를 키워도) 더 나아질 건 없다고 했던 사람들한테, 말실수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죠.”
현재 할머니댁에 얹혀 사는 은경씨는 일단 취직해 자립하는 것이 목표다. 기초수급자로 매달 받는 돈을 아기 이름으로 저금하는 통장도 여럿 꺼내 보여줬다. “처음 동사무소 갔을 때, 저를 푼돈이나 얻으러 온 사람으로 대해줬어요. 지금은 빈곤층으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제가 납세자가 되면 또 다른 빈곤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자라더라도 비용이 들잖아요. 이왕에 사회적으로 비용이 드는 거라면 엄마·아이 같이 지내는 게 정서적으로 나은 거잖아요.”
은경씨는 크고 작은 일에 의논상대가 가까이 없는 게 큰 아쉬움이다. “마음까지 도와주는 제도가 나온다는 게 힘들겠죠? 사실 아이만 보고 있어도 자연치유가 되는 느낌이에요. 말 한마디, 웃음 한 번, 자는 모습 하나가 다요.”
4“약자라는 걸 내가 인정해야 도움도 받을 수 있어”
18개월 된 딸 희진(가명)이의 엄마 김선영(33·가명)씨는 “내가 사회적인 약자라는 걸, 사회가 나를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보는 걸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신 당시 중소기업의 팀장급 직장인이던 그다. 더구나 아기아빠는 10년을 사귄 남자친구였다. 기대가 어긋난 건 임신사실을 남자친구에게 처음 알렸을 때였다. “나중에 낳자”는 말부터 들었다. 서로를 설득할 수 있다고 여겼던 터라 상심도 컸다. 선영씨는 10주차에 찍은 초음파 사진을 남자친구에게 보냈다. “이렇게 다 생겨버린 아이를 어떻게…내가 뭘 해서든, 혼자서라도 키울 수 있다고 했죠.”
회사에는 임신 5개월이 넘어서야 알렸다. 사정을 들은 임원은 “회사에 누가 된다면 그만두겠다”는 선영씨를 오히려 만류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이어졌다. 경제위기로 회사사정이 나빠지더니, 직장 내 분위기도 흉흉해졌다. 선영씨 앞에서 “결혼도 안 한 사람한테 출산휴가를 줘도 되느냐”는 말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집안에 경제적 위기가 닥쳤다. 아기와 독립할 때 전세금으로 쓰려던 저축이 빚 갚는 데 동원됐다. 출산 중 응급수술 상황도 벌어졌다. 수술동의서를 받는다, 아기아빠를 찾는다며 소동이 일었다. “미혼모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사정상 혼자 병원에 온다고 했었던 거죠.”
그렇게 희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와서야 선영씨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뜻밖의 곳에서 도움이 왔다.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직접 찾아와 이모저모 살 방법을 알려준 미혼모도 있다. 출산 직전 연락을 한 친구들도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출산용품 등을 들고 왔다. 희진이의 첫돌을 선영씨는 실업급여를 모은 돈으로 치렀다. 요즘 선영씨는 이제까지의 경력과 거리가 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야말로 선영씨를 위한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5“입양 서류 접수에 한 시간 아이 되찾아오는 데 석 달”
급전직하. 나름대로 여유 있는 집안의 사랑받는 딸,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김윤정(35·가명)씨의 삶은 미혼모가 된 순간 그렇게 달라졌다. 석사 학력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실력 덕분에, 회사의 해외 업무도 도맡아 하던 윤정씨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 만난 그 남자는 결혼할 생각으로 부모님에게도 인사드린 상태였다. 그러나 결국 혼자 아이를 낳게 됐다. 부모님은 입양을 강권했다. 윤정씨는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부모님 곁을 떠나 모든 것을 홀로 시작해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딸 진희(가명)가 4개월 됐을 무렵 모처럼 맘에 드는 직장의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윤정씨는 시험기간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을 찾던 끝에 입양기관에 문의했다. 상담사가 방문해 윤정씨와 아기아빠에 대해 묻고 친권포기서 등을 작성해 가는 데 겨우 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빨리 직장을 구해 찾아와야지’하는 생각이었던 윤정씨는 “혹시라도 아이를 보내게 되면 내게 먼저 꼭 연락해 달라”고 당부를 하고 서울로 향했다. 열흘 뒤,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윤정씨에게 ‘진희가 어제 입양됐다’는 휴대전화 메시지가 왔다. 담당 복지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입양상담 부부가 찾아왔고, 마음에 든다며 진희를 곧장 데려갔다는 것이다.
이후 윤정씨가 진희를 되찾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입양기관을 상대로 항의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했다. 사정을 헤아려준 양부모 덕에 진희는 윤정씨 품에 돌아올 수 있었다. 윤정씨는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는 포기했다. ‘가족관계’를 상술하라는 서류전형, 미혼모임을 알면 표정이 확 바뀌는 면접관을 통과하기란 불가능함을 알아서다. 그래도 윤정씨는 진희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6“4년 전 직장서 쫓겨날 뻔 30대 미혼모도 초기 지원 절실”
사내커플이었던 박정아(36·가명)씨는 임신 이후 남자친구과 결별하면서 직장까지 잃을 뻔했다. 상사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두 사람을 비난했고, ‘품위 실추’ 등을 내세워 두 사람을 사직시키려 했다. 아기아빠가 먼저 사표를 냈다. 정아씨는 일자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 가족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제 핏줄인데도 남동생이 그러더군요. ‘아기아빠 인생도 망치는 거다, 아기 지워라’고.”
정아씨는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친구네를 전전했다. “전국 각지의 시설에 수없이 전화를 걸었어요. 출산일에 맞춰 예약이 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자리가 나니까, 거기에 맞춰 출산휴가를 조정하려고 사흘에 한번씩 전화를 했죠. (출산 후 입양이 아니라) 양육을 하려고 하는데 ‘지원이 되느냐’고 물으면 ‘낳는 건 도와줄 수 있는데, 키우는 건 본인 부담’이란 곳이 많았어요. 심지어 10대만 받는다는 곳도 있었고.” 30대 미혼모에게도 초기 지원은 절실했다는 얘기다.
양육까지 지원되는 시설을 찾아 입소한 첫날 밤 정아씨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기를 가지면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나는 왜 이래야 하나 싶었죠. 거기서 그림을 그렸어요. 시커멓게 터널을 칠했죠. 지금은 내가 이 상황이지만 이 터널을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낳고 키운 아이가 지금 네 살이다. 그 사이 ‘이런 딸 둔 적 없다’던 정아씨 아버지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어머니가 출산 후 정아씨를 도우면서 극한 대립도 마다하지 않았던 덕이 컸다. 정아씨는 “미혼모 시설이 자체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예컨대 직장 출퇴근도 가능하도록 운영될 필요가 있다”면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크기까지는 시설만 아니라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7“출산 뒤 3년 만에 입양 강권한 가족과 화해”
최형숙(37)씨도 4년 전 아들 ‘동글이’(태명)를 낳은 이후로 한국사회에서 미혼모가 겪을 법한 가슴 쓰린 일을 두루 겪었다. 입소문 때문에 나흘 만에 일을 그만둔 건 약과에 속한다. 입양을 강권했던 가족과의 관계는 3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집전화·휴대전화 모두 번호를 바꾸실 정도였어요. 제가 매달 편지를 보냈는데, 처음에는 불태워 버리시다가 언젠가부터 모아두셨더군요.” 형숙씨는 관계회복의 원동력을 “지금까지 아이와 열심히 살아온 것”으로 꼽는다. “저는 그래도 사회경험이 있던 편이니까요. 다른 엄마들은 능력 있고 실력 있어도 일할 기회가 아예 없는 경우도 참 많아요. 안타깝죠.”
그의 일터는 미용실이다. 여느 직장보다 늦게 끝난다. 저녁에 동글이를 돌봐줄 곳을 찾기 힘든 건 여전한 어려움이다. “처음 맡겼던 어린이집 원장님은 자기집에 데려가 돌봐주곤 했으니 참 고마운 분이에요. 늦게까지 봐주는 보육시설이 없어 힘든 건 맞벌이 부부도 마찬가지겠죠.”
형숙씨는 최근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아기아빠가 뒤늦게 동글이를 정기적으로 보러 오기 시작하더니, 친권·양육권 문제 등을 알아보고 있어서다. 형숙씨는 “소송까지 가서는 상처가 더 클 것”이라면서 “차근히 해결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가슴 아픈 얘기들이군요. 우리나라도 사회 의식과 제도가 모두 개선 발전되어서 이러한 가족/가정이 문제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부에서 좀 더 제도적인 장치가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내에서부터 엄마의 불안감으로 갖게 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