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안간힘으로 풀어지고 있다 노을을 환송하는 지붕의 모서리가 풀어지고 있다 나무의 곧은 가지가 풀어지고 있다 시계추 같은 농부의 두 팔, 흔들리며 가늘어지는 두 다리가 풀어지고 있다 잠들기 위해 새들의 지저귐이 풀어지고 있다 악착으로 따라붙는 그림자 날숨의 덩어리 뒷모습의 시작 지워지며 드러나는 빛의 안과 밖 오늘이라는 불꽃 시간의 발전기가 천천히 돌아눕고 있다
◇이미산= 200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 ‘저기, 분홍’, ‘궁금했던 모든 당신’.
<해설> 풀어지는 것들을 만나며, 시인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안간힘으로 풀어지는 노을이 그러하고 그런 노을을 환송하는 지붕의 모서리가, 나뭇가지가 또 풀어지고 있다. 농부의 팔과 다리가 풀어지고 새들의 지저귐조차 풀어지고 있다. 이 모두 저물녘의 풍경이며 멀리 나갔던 그림자가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날숨의 덩어리, 뒷모습의 시작은 지워지며 드러나는 빛의 안과 밖의 경계를 넘고 있다. 오늘이라는 불꽃은 그렇게 지워지며 시간의 발전기가 천천히 돌아눕고 있음에 시인의 절박함은 극에 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태초의 어둠에서 실낱같은 빛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 생명이고 보면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은, 본래로 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결국 묶임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닐지.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