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노염(시30:1-12)
2026.10.18,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동안에는 배를 띄울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강풍이라도 한 없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인생도 강풍주의보가 내려질 때가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해 힘들게 준비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는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 평생이라는 긴 시간에서 보면, 그 또한 잠깐의 비바람일 뿐이다. 아마 훗날 죽음의 문을 지날 때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깐 동안의 강풍 때문에 인생을 너무 비관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잠깐의 햇살에 너무 자만할 필요도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결국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의 모습이다. 오늘 이 시간에 오늘 설교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설교말씀의 본문인 시편 30편 말씀은 “다윗의 시”라는 말과 함께 [성전 낙성가]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은 다윗왕 때 성전 낙성식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성전 낙성식 때 이 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전은 솔로몬 때 완성되었다.
시편 30편은 노년의 다윗이 오랜 질병과 고난에서 고침 받은 후에,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면서 지은 신앙고백적인 감사시이다. 그래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1절)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그가 왜 하나님을 높였는지를 알 수 있다(2-3절).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 30:1-3)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인생의 강풍주의보 곧 극한 고난과 질병 가운데서도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스올(죽음을 의미)과 무덤 같은 상황에서 끌어내시는 고쳐주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만났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며 높여 드렸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들은 ‘지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나)를 끌어내어 원수로 하여금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 ‘고치시는 하나님’, ‘우리의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도 되신다. 이 점을 분명히 확신하자.
그래서 다윗도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또 다른 형태의 각종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도 알기를 원했다(4-5절). 왜냐하면 다윗이 믿었던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4-5절 말씀이 이 시간 우리들에게 주시는 계란의 노른자 같은 부분이다.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4-5)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질병을 비롯한 각종 형태의 인생의 강풍을 만난 성도들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했다(4절).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이어지는 5절 말씀에서 밝혔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고, 은총은 평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노염은 영원하 노염이 아니라, ‘잠깐의 노염’이다. 이것을 7절 말씀에서는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라고 표현했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山)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 30:7)
그러면 그동안 목동에서 선택해서, 골리앗도 물리치고, 왕이 되기까지 산처럼 견고하게 세워주셨던 하나님께서 왜 갑자기 얼굴을 가리셨을까?(잠깐의 노염). 이 점이 오늘 인생의 강풍주의보를 만난 우리들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말씀 속에서 풀어내야할 의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돌아온 삶을 성찰하면서 그 원인을 깨달았다. 그가 깨달았던 원인이 우리들도 쉽게 범해왔던 실수였을 개연성이 크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6절 말씀에 나온다. 다 같이 읽어 보자.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 30:6)
“마음 편히 지내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이제는 절대로 안심이다 하였는데”(공동번역)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난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쉬운성경)
다윗의 말 속에서 왜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고, 노여워하셨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자부심도 지나치면 자만이 되는 수가 있다. 비록 잠깐이지만, 천하의 다윗도 이런 착각을 할 때도 있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자만을 조심해야 한다. 자만의 중심에는 내(나)가 있고, 내가 중심이 될수록 모든 관계(하나님, 사람)는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오래 알고 지낸 시간이 아니라, 자만하지 않고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있다. 좋은 사람은 나를 한 번도 서운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덕스럽고 은혜로운 성도의 모습이다.
요즘 주목을 받는 기독교인 상담 전문가들 중에 이호선 교수가 있다. 이호선 교수도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관계의 존중과 경계 설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의 공통점들을 언급한 바가 있다(참고). 이호선 교수에 의하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아가 너무 강하고, 중심에 늘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자기 의). 그래서 배려가 없다.
*(참고) 인간관계의 존중과 경계 설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들의 특징(이호선 교수) 3위 - 남의 약점을 기억했다가 공격하는 사람(평소에는 친한 척하며 고민을 들어주다가 다툼이 생기면 과거에 들었던 약점을 들추고 꺼냄). 2위- 잘해줄 때는 다정하지만 거절하면 돌변하는 사람(평소에는 누구보다 친절하게 대하다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태도가 달라짐. 예를 들어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드러내고,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이 변했다며 비난함). 1위 - 상처를 주고도 오히려 피해자인 척하는 사람(무례하게 행동한 뒤 항의를 받으면 오히려 자신이 상처받았다며 화를 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이야기해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듬). “정말 조심해야 할 사람은 한 번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 책임까지 상대에게 떠넘기는 사람입니다” |
다시 시편 30편 말씀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든 다윗은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것이 8-10절 말씀이다. 이 기도가 지금 이 순간 나의 기도와 고백이 되어야 한다.
“8 여호와여,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9 “죽는다면 나는 끝장입니다. 무덤에 들어간다면 주님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흙먼지(진토)가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시체가 주님의 성실하심을 널리 외칠 수 있겠습니까? 10 여호와여,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여호와여, 나를 도와 주소서.”(시 30:8-10, 쉬운성경)
이처럼 다윗이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 앞에서 머리를 숙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 슬픔의 옷을 벗기시고, 기쁨의 옷을 입혀 주셨다(시30:11-12). 우리에게도 그럴 것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 30:1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사람이 아무리 큰 소리치고, 자만할 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진토이고 한 줌의 흙먼지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기부인’이지 ‘자기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가 자랑해야할 자랑은 ‘십자가 자랑’이다. 오직 주님만 드러나면 된다(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강풍주의보가 내려졌을 때, 말씀 앞에서 나를 성찰하자. 나는 진토임을 고백하면서, 철저하게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높여 드리자. 그렇게 하면 잠깐의 노염은 오히려 더 빨리 하나님 앞으로는 가게 하는 은혜의 바람이 될 것이다(찬송가 373장,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