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패각을 방패 삼아 겨울을 견뎌내 결국 소담히 속을 채웠다. 2~4월이 제철인 바지락, 지금이 가장 풍성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때다.
양식 수월해 가격 장벽 낮은 편 간조 차가 큰 바닷가에 가면 흔히 조개 캐기 체험을 하곤 한다. 이때 자주 볼 수 있는 조개가 바로 바지락이다. 수심 10m 안팎의 얕은 바다에 주로 서식하기에 큰 기술이 없어도 쉽게 채집이 가능하며 한 곳에 머물러 사는 특성 때문에 양식도 수월하다. 즉 적절히 확보되는 수확량, 채집의 용이성으로 인해 우리 식단에 자주 활용되는 식재료다.
이러한 특징은 식재료 관리의 유의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환경 폐기물 등 각종 오염원에 쉬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 산란기인 6~8월은 고온 해수기라 물 빠진 갯벌의 온도가 37~39℃까지 상승하는 경우도 있어 바지락의 폐사율이 높은 시기다. 하지만 수온이 낮아지는 초겨울부터 봄까지는 바지락의 제철로, 큰 걱정 없이 다양한 메뉴에 적용할 수 있다. 껍질을 포함해 1kg 당 평균 2500원 정도(2015년 기준)로 가격도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다. 사이즈 별로 다르지만 보통 1kg이면 중형 크기로 40알 내외다.
고단백 저칼로리, 간 건강에도 제격 바지락은 대표적인 고단백 식품으로 육질 100g 기준 65kcal이며 칼슘 85mg, 마그네슘 50mg등을 함유하고 있다. 마그네슘이 계란보다 5배가량 많은 수치. 같은 분량 우유가 108mg의 칼슘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봄 조개, 가을 낙지’란 말처럼 영양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식재료다.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철 성분도 풍부해 빈혈 예방에도 탁월하다. 철분을 효과적으로 섭취하려면 비타민C를 곁들이는 편이 좋다. 일부러 영양제를 추가하기보다는 조리 시 파프리카나 브로콜리 등 비타민C가 풍부한 재료를 활용하면 된다. <달곰삼삼>이 선보이는 바지락 된장 라이스의 소스 역시 영양소 궁합과 철분 흡수를 감안해 조리한 결과물이다. 한편 바지락의 타우린, 베타인 성분은 담즙 분비를 촉진하고 간 기능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지방간을 예방하고 과음으로 인한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조리 전 필수, 해감 패류는 조리만큼 해감도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게 조리했어도 불순문이 씹히는 순간 입맛 달아나기 십상이다. ‘조개가 다 그렇지’라고 하는 소비자도 있겠지만, ‘이건 식재료 관리의 문제’라며 음식을 다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완전 배제할 순 없다.
일반적으로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의 소금물을 만들고 바지락을 3시간 정도 넣어두면 불순물을 거의 다 뱉어낸다. 계란을 넣었을 때 둥둥 뜨면 성공이며 바지락 활용도가 높은 매장이라면 염도측정기를 구비하는 편이 편리하다. 검은 천이나 비닐을 씌워두는 등 빛을 차단하면 더욱 원활히 해감된다. 또한 소금물 용기 바닥에 바지락이 닿지 않도록 체 등으로 받쳐두면 뱉어낸 뻘을 다시 섭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국물내기 탁월한 식재료지만 새로운 시도 필요 바지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칼국수일 것이다. 칼국수 국물은 크게 육고기 또는 해물을 활용한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해물 베이스의 맛을 책임지는 게 바로 바지락이다. 여러 해물을 섞어 만드는 경우에도 바지락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간다. 오징어칼국수, 새우칼국수는 없어도 바지락칼국수는 한 집 건너 팔고 있는 이유, 바로 바지락이 국물 맛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그 외의 메뉴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서울 신사동 <멜팅샵>과 이태원 <중심>은 바지락 튀김의 상품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멜팅샵>은 유자소스를 곁들이고 플레이팅을 강화하는 등 서양식 스타일로 선보이며, <중심>에선 ‘바지락팝콘’을 사이드 메뉴 겸 안주로 내고 있다. 해감은 필수요, 익히면 부피도 현저히 줄어드는 식재료를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물론 모든 업장에서 바지락 튀김을 적용해보란 의미는 아니지만 뭔가 새로운 포인트를 찾는다면 신선한 시도, 새로운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북 고창의 <본가>에는 ‘바지락국밥’이란 메뉴가 있다. 바지락칼국수와 비슷하지만 분명 차별점이 돋보인다. 김치 한 두 가지면 충분한 칼국수와는 달리 밥과 반찬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다소 번거로울 순 있지만 ‘든든한 식사’의 느낌은 훨씬 강하다.
이외에도 중국식 어만두처럼 바지락을 만두 소로 넣을 수 있고 굴처럼 밥 짓기에 활용해도 괜찮다. 볶음이나 무침으로 조리할 경우, 소스에 따라 다른 맛을 낼 수 있어 다채로운 메뉴 구성 또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