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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UNDALINI – SERPENTS AND DRAGONS
쿤달리니 - 뱀과 용
https://maypoleofwisdom.com/the-kundalini-serpents-and-dragons/
[번역 : 예히다]
쿤달리니는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잠재적인 힘이나 에너지를 가리키며, 척추의 바닥에 있는 에테르체에 안에서 감긴 뱀처럼 누워 있다. 이 감긴 뱀은 영혼이 자신의 정당한 영역인 퍼스낼리티, 즉 육체, 아스트랄체, 멘탈체의 통합을 담당하기 시작할 날을 기다리며 오랜 동안 시간을 기다려 왔다.
이 '영적인' 힘은 잠이 든 상태에서 창조적 에너지의 정적인 형태이며, 이는 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깨어나 '풀리기' 시작할 때, 이 전기처럼 불타는 힘은 나선형으로 작용하는 것이 증명되며, 따라서 '서펜트의 힘'의 상징적인 묘사이다.
쿤달리니 힘이 자극됨에 따라, 그것은 에테르적 중심의 진동 작용을 꾸준히 증가시킬 것이고, 결과적으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는 육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멘탈체의 진동 작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 활동은 이중적인 효과를 가질 것인데, 첫째로 하단에서 거칠고 부적합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둘째로 진화하는 개인 생명체의 에너지 함량을 높이는 역할을 할 높은 자질을 영향권에 흡수함으로써 이중 효과를 나타낸다.
나선형 불을 활성화시키고 척추를 머리까지 진행시키는 목적 중 하나는 송과선을 깨우는 것이다. 송과선은 다시 제 3의 눈을 열고 영적 삶의 미묘한 면을 드러낸다. 명상을 지속함으로써, 연구에 의해, 훈련된 삶과 사심없는 봉사를 인류에게 제공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은 단계적으로 자극되어 더 낮은 인간을 영혼의 영향 아래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에테르 힘 센터와 잠자고 있는 척추 기저부가 동시에 나란히 각성될 것이다. 이 과정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적절한 방향으로 진행될 때, 각성은 점차적으로 그리고 정상적으로 그리고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고 그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운동이나 다른 인위적인 수단을 통해 자연적인 전개를 과도하게 가속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영적추구자는 자신을 문제에 빠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 호흡 운동은 전문가의 지도 없이는 절대로 수행해서는 안 되며, 수년간의 영적 적용, 헌신 및 봉사 후에 수행해야 한다. 에테르 센터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에테르 센터에 집중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과도한 자극으로 이어질 뿐이며 아스트랄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게 될 뿐이며, 이 문은 한 번 열리면 다시 닫히기가 어렵다. 학생들은 또한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집중 명상 프로그램을 따르거나 특정 센터나 쿤달리니 불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행에 대해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경고받는다. 일반 학생은 이미 현대 생활 활동으로 인해 너무 많은 자극을 받고 있으며, 과도한 명상, 호흡 운동, 광신적인 다이어트, 수면 부족, 과도한 관심과 강조가 너무 많다. 정신적인 경험이 포함되어 그의 정신적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며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쿤달리니 힘의 상승이 무지하고 성급하게 일어나면 심각한 신경 장애, 조직 염증, 척추 질환, 뇌 장애를 초래할 수 있지만, 규율 있는 생활을 통해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허용한다면 마침내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 높은 영역으로 가는 문을 열라. [AAB와 Master DK의 작품 중에서.]
뱀
뱀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창세기 3장에 나온다. 여기서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와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상징적으로 먹은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가능한 많은 해석 중 하나, 특히 이 우화에서 뱀은 파하틱(창조 에너지)에너지 자체이고, 나무는 의식이자 그 힘이 활동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함께 창조적인 힘, 즉 대우주(우주)와 소우주(인간 내부)를 구성한다. 뱀 그 자체는 우주, 모든 자연, 모든 차원, 인간의 모든 수단에 있는 파동적이고 삼중 극성의 힘이다. 생명나무는 로고스에서 아메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의 모든 존재의 매개체를 형성하는 열매를 맺은 물질이며, 그 물질에는 생기를 주는 생명력이 충전되어 있다.
중성 전류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때 나무 줄기는 잠재적인 신성한 존재를 나타낸다. 양극 및 음극 구불구불한 뱀이 활성화되면 뱀 불의 상호작용 전류가 존재하고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활력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은 뱀과 나무이다. 때로는 뱀 한 마리가 나무 줄기를 감고 있고 때로는 양쪽에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는 경우도 있다. 뱀의 상징은 다양한 해석, 즉 외래적, 난해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신성한 언어에서 뱀으로 자주 언급되는 지혜와 현자의 상징이다. 힌두 문학의 나가(Nagas)는 다름 아닌 리시(Rishis), 해방된 요기(Yogis), 숙련자들(Adepts)이다. 뱀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혜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은 지혜가 위로부터 나타나든 타고난 것이든 간에 올바르게 사용하면 빛을 발하고 잘못 사용하면 파괴할 수 있는 숨겨진 힘인 것처럼 지구 표면에서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미끄러진다. 뱀의 부드러운 곡선과 그 움직임은 우주와 그것이 깨어 움직이고 있는 인간 모두의 지혜의 조화롭고 리드미컬한 자기 표현을 부적절하게 묘사하지 않고, 내면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은밀히 깨달음을 얻는다.
뱀은 정기적으로 피부를 벗겨낸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파충류 자체는 변하지 않고 새롭고 반짝이는 덮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항상 새로운 형태로 스스로 나타나며, 누구도 그것을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뱀의 혀는 갈라져 있거나 양극성이다.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비열한 동기를 위해 사용되는 낮은 교활함으로 타락하기 쉬우며, 비이기적인 이상에 따라 고상한 직관으로 고양되기 쉽다. 뱀독은 사용법과 복용량에 따라 파괴되거나 치유될 수 있다. 이는 지혜에도 해당된다. 타락하면 영혼이 중독된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많은 질병에 대한 해독제가 된다.
뱀의 눈은 매혹적이며 심지어 최면을 걸기까지 한다. 지혜는 일단 개인 속에 깨어나면 저항을 용납하지 않고, 모든 결속을 끊고, 궁극적으로 추진력으로 다스리게 된다. 지혜로운 자들도 비록 비천한 것처럼 보이고 높은 존경을 표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이 생물의 뿌리와 씨앗 근처에 사는 것처럼 그들은 생명의 근원 근처에 산다.
뱀은 건설적인 측면과 파괴적인 측면 모두에서 인간 안에서 표현된다. 영적 영혼의 의지-지혜인 상위자아는 빛의 뱀에 해당하는 반면, 욕망의 본성[인격]은 파괴적인 잠재력을 담고 있다. 마음은 인간 안에 있는 이 두 개의 반대 극성 에너지, 즉 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힘, 즉 막대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 올린 십자가 위의 뱀 [Num. 21:9.]]은 하위 자아를 정화하고 고양시키며 물질적 경향과 표현의 영향을 치유하기 위해 마음과 결합된 지혜의 상징이다.
뱀은 또한 죽은 자를 치유하고 살리는 능력이 있는 인간 안에 있는 그리스도 본성의 조화로운 영향력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이는 인간 본성의 낮은 측면을 더 높은 측면으로 전환시키는 힘을 의미한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며, 헤르메스의 지팡이인 카두세우스는 치유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뱀은 머리가 세 개 있고, 날개가 있고, 사람의 다리가 있고, 큰 소리로 숨을 쉬고, 쉭쉭거리며, 독성이 있고, 그 위에 노란색 독이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더 높은 측면에서 이것은 삼중 더 높은 자아(영혼)의 활동, 특히 그 안에 있는 순수한 지혜의 원리를 상징한다. 고대 상징에 따르면 뱀의 저급하고 파괴적인 활동은 인간의 약탈적이고 파괴적인 욕망과 열정을 의미한다. 후자를 파괴하는 영웅은 낮은 것을 더 높은 것으로 변화시키고 그들 사이의 완벽한 균형에 도달한 입문자를 의인화한다.
뱀의 꼬리가 입에 물려 있을 때 끝없는 원이 만들어지며, 이는 지혜의 영원함, 심지어 영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비전적으로 우주발생 과정은 상징화된 양성과 음성의 결합, 즉 꼬리가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모든 생성 과정은 그러한 상징의 형태로 표시된다. 이는 뱀의 깊은 신비주의적 의미, 즉 우주적이고 신성하며 창조적이고 항상 활동하는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이중 극성의 파하트(Fahat)이며 때로는 입에 꼬리가 달린 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가 서로 얽혀 있는 뱀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모든 생성 과정이 발생하는 전기 법칙이 표시된다.
유기적 형태의 창조적 활동과 무기물의 화학적 친화성을 이끌어내는 내부의 원동력은 실제로 양극성이다. 이 힘의 상징으로 뱀을 선택한 것은 뱀의 혀가 갈라져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되는 것 같다. 그것은 파하트(Fahat)로서 모든 세계의 모든 원자 속으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불어넣어지는 대호흡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흐름이며, 전 우주에 걸쳐 편재하고 영원히 활동하게 된다. 이 사실은 주피터와 다른 남성 창조신들이 여신을 유혹할 목적으로 뱀으로 변신했다는 고대 우화에 숨겨져 있으면서도 드러났다. 우주 발생에서 그러한 여신은 물질, 공간의 물, 여성의 수용 및 재생산 원리를 의인화한다. 소우주적으로 인간 모나드는 아버지 하나님에 해당하고, 빛의 옷을 입은 영적 자아는 여신에 해당한다. 진화가 인간의 영적 자아를 인간 안에 있는 그리스도 본성의 지배적인 힘으로 "탄생"할 준비가 되게 했을 때, 모나드에서 지금까지의 "처녀"로 파하틱 또는 열매를 맺는 힘의 하강[신비적 수태 고지]이 일어난다. 영적인 자아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같은 의식과 능력이 “태어나는” 천상의 결혼, 원죄 없는 잉태이다. 입에 꼬리가 달린 뱀, 서로 얽힌 두 마리의 뱀, 막대, 지팡이 또는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뱀은 모두 물질 우주에서 활동하는 파하트의 전기적 창조 에너지를 상징하며, 따라서 우주의 소우주적 사원(temple)인 인간 안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사람의 경우 막대는 척수와 운하 또는 에테르 및 초자연(superphysical)의 채널을 의미하며, 그 중심은 천골의 코드 뿌리에서 전체 길이를 따라 연수와 뇌로 연결된다. 이 운하는 창조적인 생명력을 위한 수단이며, 그 척도는 생식 행위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이 전류는 남성과 여성 유기체 모두에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극성이거나 심지어 중성극성이다. 이 운하에 대한 역사적 신비주의 이름은 수슘나(Sushumna)인데, 일반적으로 신비주의 수단에 의해 동일한 중립적 힘이 척수를 따라 아래쪽이 아닌 위쪽으로 작용할 때만 적용된다. 창조적 에너지 흐름의 역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흐름이 각성되어야 하며, 그 자체가 쌍둥이 뱀처럼 위쪽으로 흐르고 서로 얽혀서 동반되는 중립 에너지의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 두뇌에 들어가면, 이 삼중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밝게 비춰서,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사실은 창세기[창 3:5]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아담과 하와는 반대되는 양극화된 흐름을 나타내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특히 줄기)는 지팡이에 해당하고, 유혹하는 뱀은 수슘나 운하를 따라 올라가는 창조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그들이 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뇌, 분비선, 세포 및 심실의 공기 물질의 진동이 강렬하게 높아져 뇌와 두개골이 자아와 모나드의 삶과 의식에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영이 개인을 지배하게 된다. 물질은 그 힘을 잃는다. 상징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뱀과 지팡이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수슘나 운하를 따라 작용하는 힘의 핵심을 형성하는 Atmic Fire의 샤프트는 가장 밀도가 높은 물리적 수준으로 내려오거나 상징적으로 "땅에 던져진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천골에 상주하는 상대적으로 잠자고 있는 긍정적-부정적, 창조적 생명력이 깨어나 활동하게 된다. 그러면 각 극성은 수슘나 운하 주위로 서로 얽혀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추구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지팡이는 뱀이 된다. [출애굽기. 4:2-4.] 이 과정은 어떤 충격과 고통을 낳지 않는다. 입문자는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지만 여전히 지속된다. 그러므로 모세는 뱀 앞에서 도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의지를 Hierophant 자신의 의지와 결합하고 창조력을 승화시켜 그것이 골반에서 위쪽으로 흐르도록 강요하면 그것은 그의 손에서 마술사의 힘의 지팡이가 된다. 상징적으로 모세는 뱀의 불의 꼬리를 잡고 그의 손에 있는 지팡이가 된다.
막대나 기둥 주위에 뱀이 얽혀 있는 이집트의 상징적 인물에서 묘사된 것처럼, 꼬리는 기둥의 발치, 즉 천골을 의미한다. 뱀의 머리가 꼭대기에 있는데 거기에 자주 연꽃이 피어난다. 이 역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상징이다. 아론의 꽃처럼 꽃이 핀 막대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Nim. 17:8, Neb. 9”4.] 뱀의 힘이 각성되어 위로 흐르는 결과, 초물질체의 힘 중심이 열리는 것은 그러한 상징으로 묘사된다. 힘의 긍정적 흐름과 부정적 흐름에 대한 역사적인 오컬트 이름은 핑갈라(Pingala)와 이다(Ida)이며, 삼중 상향 흐름은 그리스 상징인 카두세우스(caduceus)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드러난다. 헤르메스는 그리스인의 모세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던 것처럼 헤르메스는 카두세우스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전하는 사자이다. 헤르메스는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출한 것처럼 지하 세계인 하데스에서 페르세포네를 구출했다.
카두세우스의 어둡고 밝은 색의 뱀은 비밀스러운 지혜, 즉 흑백 마법의 이중적 힘을 상징한다. 테후티(Tehuti), 머큐리(Mercury), 헤르메스(Hermes)는 삼중 뱀 불을 소유하고 [통달한] 자연적이든 비유적이든 죽음 이후의 영혼을 인도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순수한 지혜를 의인화한다. [죽은 자는 부활할 것인가?] 이 힘은 모든 초인, 즉 "뱀"이 소유한다.
고대 중국의 황제 왕좌 상징인 "용좌(龍座)"와 황제의 의상에 있는 용 자수 역시 이러한 승화와 그 결과를 나타낸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 .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Mat. 10: 16.] 이것은 뱀의 불이나 숙련자 또는 “뱀”의 지혜와 분별력에 대한 가려진 언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두 마리의 뱀은 세상의 비유에서 명백히 반대되고 적대적인 모든 쌍을 상징한다. 그들은 이원론의 개념과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 신과 악마, 구세주와 뱀과 용,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아폴로와 피톤 사이에서 추정되는 투쟁을 형상화한다. 영웅적인 구세주는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갈등만이 정신과 빛과 선을 위한 승리로 끝날 수 있는 순수한 지혜를 나타낸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신성한 사자들,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 멸망해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파견된 천상 동정녀는 모두 순수한 지혜의 의인화이며, 이를 통해 대립하는 갈등이 서로의 패배가 아니라 완벽한 조화 또는 균등화로 끝날 수 있다.
그 결과, 빛과 어둠의 뱀 모두의 모든 힘을 유지하고, 사용자가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 성취는 스리 크리슈나(Sri Krishna)가 뱀의 머리를 부수는 것과 다른 고대 민족의 구세주와 영웅들이 파충류에 대한 승리로 상징된다.
카두세우스의 상징을 묵상하면 그것이 그 과정과 성취를 얼마나 완벽하게 묘사하는지 드러날 것이다. 이 구원의 능력인 그리스도는 요르단에서 세례를 받는 순간에 인간인 예수에게로 들어왔고, 그때부터 예수는 신성한 권위로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카두세우스(또는 막대나 뱀)를 손에 쥐는 것 자체가 힘의 숙달, 즉 두 번째 입문과 그 사용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소유를 의미하는 상징이다.
막대가 뱀으로 변하는 것은 신(영혼)의 명령과 그의 마법의 힘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 실제로 모나딕 아트마(영혼의 힘)가 모든 매개체를 통과하여 척수를 따라 천골까지 하강하는 것은 삼중 창조의 불을 조기에 완전히 각성시키고 이를 성공적으로 승화시켜 마법 도구로 사용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아트마의 힘을 무너뜨리는 것은 대신비의 사제(Hierophant of the Greater Mysteries)의 임무 중 하나이다. 그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행위를 입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했다. 입문자는 물질, 욕망, 자기 분리의 한계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보편적 의식, 생명, 힘의 자유로 이끄는 힘을 일깨운 사람이다.
뱀의 불, 즉 쿤달리니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아직은 약간만 깨어나지만 자연의 다른 모든 힘과 능력은 인간의 육체에 표현된다. 인간 진화의 이 시기에 그것은 성적 충동과 신경액의 원천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척추 기저부의 천골 차크라 또는 "바퀴"에 뱀처럼 감겨져 있으며, 이는 지구 중심에 있는 유사하게 감긴 에너지의 중계소이며 그 자체가 태양 쿤달리니의 창고이다. . 요가에 의해 또는 진화적 진보의 자연적인 결과로 완전히 각성되면 쿤달리니는 수슘나 나디(Sushumna nadi)라고 불리는 척수의 에테르 관을 따라 흘러 올라가며 여행 중 다른 차크라를 통과한다. 차크라가 발생하는 척추 센터를 통과할 때 그 힘의 일부는 각 차크라의 깔대기 축 아래로 흘러 차크라에 생기를 불어넣고 개인이 초물질적 세계에서 자의식을 일깨울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쿤달리니가 비장 센터에 닿으면 인간은 육체에서 떨어져 있는 동안 아스트랄계에서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것이 심장 센터에 닿아 열리면 직관의 수단에 거주하는 인간의 불교 의식 또는 그리스도 의식의 힘이 충분히 펼쳐지면 육체적 수준의 초심자와 그의 "신비한 장미(가슴차크라; 그의 가슴에 꽃피어나는)", 즉 심장을 통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의식의 힘, 즉 삶의 하나됨에 대한 지식, 직접적인 직관적인 영적 인식, 지혜와 심오한 연민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목구멍 센터가 활성화되면 투시력, 즉 초물리적 소리 진동과 정상적인 청각 범위를 넘어서는 물리적 소리에 반응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눈썹 중심[제3의 눈]은 오컬트적으로 활성화되면 투시 능력을 부여하고, 관상 차크라(크라운 차크라)가 열리면 초심자는 육체에서 깨어 있는 동안 초감각적 자각을 사용하는 능력을 얻는다. 의식의 브레이크 없이 마음대로 몸을 떠나고 돌아오는 것[세 번째 입문?]. 그러면 뇌하수체와 송과선이 라디오 수신 장치의 밸브나 증폭기처럼 기능하여 뇌 내의 의식이 초물리적 힘과 현상을 감지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인간의 뇌척수 체계가 신비적으로 활성화되면 여러 면에서 텔레비전 수신 세트와 유사하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은 미묘한 방송이 마음-뇌의 화면에 투사되고 투시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깨어 있는 의식 동안 이러한 신비로운 능력이 완전히 발현되려면 길고 힘든 훈련이 필요하며, 쿤달리니와 그 보완적인 힘을 통해 뇌하수체와 송과선이 완전히 활성화되는 데 달려 있다. [명상, 봉사, 몸의 구속 등을 통해….그것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진화가 지시하는 한.]
출처: 성경에 숨겨진 지혜, 지프리 호드슨(GEOFFREY HOD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