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9.
4시간여의 당구 모임이 끝나고 뒤풀이로 막걸리잔을 나누며
참석한 고향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고향이 같다는 지연(地緣)과 초등학교, 중학교라는 학연(學緣)이
겹쳤으니 인연치곤 60년 넘은 세월을 같이한 대단한 인연이다.
흔히 수십 년을 같이 산 부인을 조강지처(糟糠之妻)라고 표현을
하는데, 어릴 때 함께 발가벗고 놀던 친구에게 '조강지 친구'라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고 대개 '불알친구'라고 한다.
여기서 조강지(糟糠之)라는 말은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와 쌀겨로
개떡을 만들어 끼니를 때우고 함께 고생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곤궁(困窮)과 간고(艱苦)를 함께 겪으며 동고동락(同苦同樂) 해온
아내를 가리켜 조강지처라고 하는데,
수십 년을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야말로
조강지(糟糠之) 친구가 아닌가를 생각하며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 각시원추리: 대통령 관저 앞마당에서>
나는 말이나 글을 쓸 때 욕도 잘하지만 과격한 말도 잘 쓴다.
이번에도 한 달 전과 같이 저녁식사를 사는 친구에게 '가산탕진'이라는
장난글을 썼는데, 한 친구가 가산탕진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다며
고쳤으면 좋겠다는 제언(提言)을 한다.
즉시 조강지 친구면 어떻겠나라고 대화를 이어나가며 막걸리잔을
들어 홀짝홀짝 마신다.
한 잔 두 잔 술잔이 거듭 비워질수록 얼굴은 불콰해지고 마음엔
흥이 차기 시작한다.
< 막걸리
막걸리 첫 잔에 뱃속이 알싸해졌다.
막걸리 두 잔에 친구의 얼굴이 잔주름 없는
미남으로 변하고,
막걸리 석 잔에 내 마음 줄을 놓는다.
오늘은 술이 좋다.
술 취해 첫사랑 생각이 안나도 좋다.
술에 마냥 취해 첫 경험 생각 안나도 좋다.
마로니에 아래 피었던 낭만이 사라져도 좋다.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않고 한 잔 두 잔 술잔이
비워질수록 좋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술이 취하면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던데
정신이 점점 멀뚱멀뚱해지니 무슨 조화일까.
더 마셔도 취하지 않으면 조화옹(造化翁)에게
시비나 걸어야겠다. 석천 >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만약에 아파서 내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친구들이 나의 영정사진 앞에 놓인 빈 술잔에 술을 채우려나.
얼마 전 어느 지인과 우스개 소리로 친구들에게 모이라 하면
1시간~2시간 안에 몇 명이 올 수 있을까에 대하여 대화를 했다.
법정 스님과 현자(賢者)들이 쓴 친구에 대한 정의를 읽어보면
좋은 표현이 많다.
그들은 친구의 유형을 논하며,
마음이 편한 친구, 가르침을 주는 친구, 산과 같이 기대고 싶은
친구를 가까이하고 계산이 빠른 친구는 멀리 하라는 거다.
물론 구구절절이 다 맞는 이야기지만
내가 현자가 아니기에 그 이론을 다 따를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 대통령 관저 앞마당에 핀 '매발톱' >
해마다 연말이 되면 습관성으로 휴대폰 연락처를 정리했다.
지나간 누군가는 삭제하고, 새로 등재된 연락처에 대해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의 존재가 그러할 것이다.
삭제의 기준은 대개 3년 정도 한 번도 통화나 연락이 되지 않은
사람이다.
오랜 기간 연락하지 않았어도 지우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작년 12월엔
그 작업을 아예 하지 않았다.
삭제할 사람은 떠남과 만남이 중요하지 않은 관계지만 따지고 보면
소중한 인연이다.
또한 지우지 않은 사람은 오랜 기간 연락하지 않았어도 마냥 그리운
사람과, 전화가 오면 무척 반가울 사람이다.
그리운 사람이 많을수록 그리움의 크기만큼 연락처에서 살아남는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작업을 하지 않은 거다.
이틀 후면 6월이다.
금년의 한해도 절반을 향해 무심코 달려간다.
교장 출신으로 원주에 귀농한 고향 친구와 정확한 날자는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만남을 약속한다.
친구란 늘 그리운 사람이다.
친구란 곁에 있으면 좋고 곁에 있지 않으면 그의 빈자리가 조금은
허전하고 그리운 사람이 아니겠는가.
♬ 나 가가든~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가수 양지은의 애절한 노랫소리가 서재를 채우기 시작한다.
2022. 5. 2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