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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우두령~석교산(화주봉)~푯대봉~밀목재~감투봉~삼마골재[삼막골재]~삼도봉(~석기봉~물한리](260405. 일)(낙동산악회 20기 - 11구간)
□ 때 : 2026. 04. 05(일)
□ 곳 : 우두령~석교산 화주봉(1207m)~푯대봉(1172m)~밀목령[밀목재]~감투봉
(1123.6m)~삼막골재~삼도봉(1176m)~석기봉(1200m)~「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
갈림길~물한리 주차장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5명
□ 날씨 : 햇볕
□ 길 : 흙길+돌길+푸석돌 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6. 04. 05(일) 09:34~16:13(6시간 29분, 쉰 시간 포함)
□ 푯말에 터 잡아 셈한 거리
○ 우두령—3.4km—석교산—4.5km—밀목재—2.7km—삼도봉—1.5km—석기봉—0.5km—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 갈림길—4.0km—물한계곡(=총 16.6km)
※ 이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9:34 우두령[우두재](720m-‘푯돌’) 나섬.
○ 09:44 814.6m 봉우리(‘지도’), 삼각점
○ 10:47~10:50 석교산(화주봉)(1207m-‘푯돌’), 머묾.
○ 11:30~11:33 푯대봉(1172m-‘푯돌’), 「막기항단맥 분기점」, 머묾.
○ 12:02 「물소리샘」 갈림길,
○ 12:03-30 「위험 지역 주의 안내」 푯말
○ 12:04~12:20 점심
○ 12:47 밀목재[밀목령], 잘루목,
○ 13:16~13:18 감투봉(1123.6m-‘푯돌’), 머묾
○ 13:35 아주 작은 헬기장
○ 13:37 + 삼막골재[삼마골재]
○ 14:04~14:07 삼도봉(1175m-‘푯돌’)
○ 14:30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
○ 14:45~14:48 석기봉(1200m-‘푯돌’), 머묾.
○ 14:55 ―| (다시)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
○ 16:13 「물한리 주차장」, 산행 끝냄.
'사초과' 갈래
그늘사초
물푸레나무가 많다
덕유산 설천봉 스키장 눈이 보인다 - 멀리 가운데
가야산~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
가야산 - 뒤 가은데
뒤로 각호산이 보인다
둥근털제비꽃(?) - 확실하지 않다
푯대봉
푯대봉 오르는 바위+밧줄
밧줄이 낡아 위험해 보였다
멀리 가야산이 보인다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6. 4. 5(일) 07:00 인제대 역을 떠난 버스는 2시간 24분쯤 달려 우두령(720m-‘푯돌’)에 닿았다.(09:24)
길 나설 채비를 하고, 우두령 푯돌을 뒤에 두고 사진을 찍은 다음 대원 25명이 남쪽 삼도봉을 향해 우두령을 나섰다.(09:34)
우두령[우두재]은 “우두재라고도 하고, 산의 능선부 모양이 소의 머리를 닮아 우두령이라고 부른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충북 영동군 상촌면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김천의 외곽지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영동군 상촌면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한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과 임진왜란, 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신한 곳”으로, “임진왜란 초기 의병장 김면(金沔)이 왜병을 크게 무찔렀던 곳”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우두령에서 10분쯤 뒤 삼각점이 있는 814.6m 봉우리(‘지도’)에 닿았다.(09:44)
이번 구간에 물푸레나무가 많았다. 물푸레나무가 하도 많아, ‘물푸레나무 군락지’ 라는 푯말이 두 군데 있었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하고, 꿀이 많다고 하고, 목재는 야구 방망이와 가구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814.6m 봉우리에서 1시간 3분쯤 뒤 석교산(1207m-‘푯돌’)에 닿았다. 이곳을 ‘화주봉’, 정확하게는 ‘석교산(화주봉)’이라 하기도 한다.
석교산에서는 수도산, 가야산, 초점산, 대덕산, 덕유산 설천봉,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이 잘 보이고, 지난 구간 우리가 걸었던 백수리산도 잘 보였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아스라이 볼 수 있었다.
3분쯤 머문 뒤 석교산(화주봉)을 나서(10:50) 40분쯤 뒤 푯대봉(1172m-‘푯돌’)에 닿았다.
푯대봉은 ‘막기항단맥 분기점’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푯대봉을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가파른 바위 지대로 밧줄이 몇 개 걸려 있었으나 낡고, 위험해 보였다.
새 밧줄로 바꿨으면 좋겠다.
3분쯤 머문 뒤 푯대봉을 나서(11:33) 29분쯤 뒤 ←「물소리샘」 50m 푯말이 있는 갈림길에 닿았다.(12:02) 50m쯤 떨어져 있는 샘에 가보지 않았다.
이 갈림길에서 1분쯤 뒤 「위험 지역 주의 안내」 푯말이 있었고(12:03-30), 푯말 옆에는 실제로 움푹 꺼진 웅덩이 같은 곳이 있었다.
땅이 추가로 꺼질 위험이 있어 걸을 때 앞 사람과 5m 이상 간격을 띄워 걸으라 경고했건만, 우리는 아무 위험 신호도 감지하지 못한 채 한데 모여 점심밥을 먹었다.
위험을 무시하는 무심함...
점심밥을 먹고 길을 나서(12:20) 27분쯤 뒤 평범해 보이는 잘루목인, 밀목재[밀목령]에 닿았다.(12:47)
밀목재에서 29분쯤 뒤 감투봉(1123.6m-‘푯돌’)에 닿았고, 중간에 길 푯말이 두 군데 있었으나, 두 군데 모두 글자가 지워진 채로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수했으면 좋겠다.
푯말을 설치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순찰하여 낡고 부숴진 것은 새로 보수하는 일이 중요하다.
2분쯤 머문 뒤 감투봉을 나서(13:18) 17분쯤 뒤 아주 작은 헬기장에 닿았고(13:35), 이 헬기장에서 2분쯤 뒤 네거리인, 삼막골재에 닿았다.(13:37)
삼막골재는 ‘삼마골재’라고도 하며, 이곳에서 왼쪽[남쪽]으로 내려서면 해인리로, 오른쪽[북쪽]으로 내려서면 물한리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남쪽 해인리 쪽으로 내려서면 나오는 계곡이 「삼막골」이라서 「삼막골재」 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확하게는 북쪽 「미나미골」과 남쪽 「삼막골」 갈림길로 「미나미골 · 삼막골 갈림길」이라 해야 맞는 표현이겠다.
삼막골재에서 바로 나아가면 삼도봉으로 가는 길이다.
삼막골재에서 27분쯤 뒤 삼도봉(1175m-‘푯돌’)에 닿았다.(14:04)
무쏘꿈, 송암 님을 만났다.
삼도봉은 “경북 김천시 부항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등 삼도(三道)의 경계에 있는 산, 이곳 삼도봉과 민주지산 일대는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영토 전쟁이 이루어진 곳, 삼도에서 쓰는 사투리와 풍속, 습관 등이 모두 확인되는 지역”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3분쯤 머문 뒤 삼도봉을 나서(14:07) 23분쯤 뒤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에 닿았다.(14:30)
석기봉 아래 나무 쉼터[정자]에서 아쿠아마린 님을 만났다.
이 갈림길에서 15분쯤 뒤 석기봉(1200m-‘푯돌’)에 닿았다.(14:45)
점심을밥 먹고 한발 앞서 나섰던 서연 님, 홍아 님을 만났다.
눈을 이고 있는 덕유산 설천봉 스키장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그 밖에도 가야산 따위 시원하게 뚫린 둘레를 돌아보고 나서 3분쯤 뒤 석기봉을 되돌아 내려섰다.
(14:48)
욕심 같아서는 민주지산을 거쳐 물한리 쪽으로 내려가고 싶었으나 중간에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욕심을 접었다.
전에 낙동산악회에서 이 구간을 걸을 때는 늘 민주지산을 갔다.
일반 산행으로 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구간은 10번 이상 걸었던 경험을 위안으로 삼았다.
석기봉을 나서(14:48) 7분쯤 뒤 다시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에 닿았다.
(14:55)
가파른 내리막을 바쁘게 걸었다.
지난해에 피었던 산수국 꽃이 시든 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나 바쁜 마음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
마음이 바빠 다른 식물에 눈이 가지 않았다.
졸졸 소리를 내며 시원스레 흐르는 계곡물을 한 병 담았다.
가파른 돌길을 500m 이상 내려섰더니 길이 조금 완만해지면서 돌이 줄어 들어 걷기 수월했으나 마음이 바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앞서 걸었던 서연, 아쿠아마린, 홍아 님(가나다 순)은 보이지 않았다. 워낙 걸음이 빨라 내가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도랑을 서너 번 이리저리 건넜다.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에서 40분쯤 뒤 /| 삼도봉 쪽에서 내려오는 길과 석기봉 쪽에서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곳에 이르렀다.(15:35)
이곳에 이른 뒤 곧 난이, 배미정, 심민철 대장 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석기봉·삼도봉·물한리」 갈림길에서 1시간 18분쯤 뒤 「물한리 주차장」에 닿아(16:13) 산행을 마쳤다.
민주지산을 거치지 않아 아쉽다.
백두대간 길은 아니지만, 민주지산은 “북쪽으로는 국내 최대 원시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물한 계곡’이 이어져 있다.”, 물한계곡 “숲속에는 우리나라 전체 식물 종의 16%가 자생하고,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하여 충북의 「자연 환경 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작은 마을 ‘물한2리’ 유래비에는 마을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유익했다.
작은 마을을 알리는 이런 상세한 기록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마을을 기리는 사람들 정성에 고개를 숙인다.
김부열, 네오, 심민철 대장 님 수고했고, 대원들도 고생 많이 했다.
민주지산까지 다녀온 대원들에게 손뼉을 친다.
식대 일체를 부담하신 유도사 님, 곶감을 사 주신 연꽃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달걀과 토마토를 나눠주셨던 홍아 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김정호 회장, 권재구 대장 님 빠른 쾌유를 빈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 물푸레나무 많았음.
○ 버드나뭇과 갈래 : 호랑버들(?)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사스래나무
○ 장미과 갈래 : 산딸기나무[산딸기], 산벚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참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수리취[구설초],
○ 백합과 갈래 : 비비추
○ 사초과 갈래 : 그늘사초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장미과 갈래 : 쇠스랑개비[양지꽃]
○ 제비꽃과 갈래 : 노랑제비꽃, 둥근털제비꽃(?)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끝없이 펼친 산등성(이)
석교산(화주봉), 푯대봉, 감투봉에서 바라보는 둘레는 멋있었다.
가까이는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 스키장 슬로프에 눈을 이고 있었던 덕유산 설천봉 자락, 백수리산, 대덕산 따위, 조금 멀리는 수도산~가야산~단지봉 따위로 이어지는 긴 산등성(이)을, 멀리 아스라이 보였던 지리산 천왕봉 따위, 뒤로는 소백산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던 산자락 따위를 볼 수 있어 기뻤다
.
높은 곳에 오르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높이 오르고, 둘레 지형을 잘 익혀 둘러보면, 산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눈 좋은 사람이었다면 무등산도 보였을까?
2. 민주지산
내가 한때 민주지산을 아주 좋아했다. 아니 미쳤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눈 덮인 민주지산을 많이도 다녔다.
대개 물한리에서 민주지산을 올랐다 다시 물한리로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당시에 산 하나에 만족하지 않던 때라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혼자서 물한리~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삼마골재[삼막골재]~물한리를 내달렸다.
어느 해 11월 벗과 같이 민주지산에 올랐는데 그날따라 찬바람이 세게 불어 초겨울 장갑을 낀 손이 매우 시렸다.
벗은 면장갑을 끼고 간 터라 그날 많이 추웠을 것이다.
산 경험이 적었던 그 벗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느 해 겨울. 눈 많은 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을 걸은 뒤 내려와 황룡사 옆 꽁꽁 얼음이 얼었던 개울에서 돌을 번쩍 들어 올려 얼음을 깨부수고 나서 얼음 아래 흐르던 찬물에 세수하고, 수건을 적셔 ‘냉수 마찰’을 했다.
이를 본 일터 동료, 동갑내기가 나를 일러 “00는 사람이 아니다...”고 놀려댔다.
그 놀림은 몇 해 동안 이어졌다.
겨울에만 다니던 민주지산을 어느 여름 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리 구간을 걸었다.
비를 맞고, 걸었는데 민주지산 일대 산등성(이)이 들꽃 천지여서 아주 호강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민주지산 일대에 얽힌 추억을 여럿 갖고 있다.
3. 한 번 놓치면 따라잡기 어려운 대원들
전투에 나선 군인들이 ‘전투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앞만 보고 내닫는 것 같다.
점심은 간단한 요기로 끝내고 달리기 바쁘다.
다들 간소한 끼니로 에너지를 제대로 보충하는지 궁금하다.
점심밥을 먹고 한발 앞서 나섰던 대원들. 삼도봉에서 무쏘꿈, 송암 님을, 석기봉 아래 나무 쉼터[정자]에서 아쿠아마린 님을, 석기봉에서 서연, 홍아 님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그들을 물한계곡에서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다들 축지법을 쓰는지,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날아다니는지 알 길이 없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산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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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길,행님.!
날씨가 좋아 펼처진 시야 덕분에, 멀리 덕유,가야산을
보았어요. 그런가보다했는데, 행님 글을
보고.! 확신합니다.
젊었을 때의 건강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날씨와 자연은 우리가 예상하지 않아도, 베풀 때가 되면 아주 좋은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주는가 봅니다.
젊음은 늘 풋풋하고 활기차고 좋지요...
고맙습니다.
그 날, 시야가 너무 좋았지요?
모두들 간만에 시원했을 조망을 맘껏 즐겼을 것 같아요.
저도 부소산성 벚꽃 만발한 길을 걸으며
너무 행복했더랬어요.
한길님의 글에서 여러 아는 분의 행보를 떠올리며
함께 걸었던 그 길들을 따라 다시 걷는 듯 합니다.
여전한 행보와 정성들인 기록으로
즐거움을 공유합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
날씨는 맑아 먼 곳까지 잘 보여 오랜만에 기분 좋은 나들이였습니다.
자연이 맑음을 선사해 시야가 툭 트인 행운을 누렸으나 풍부하고, 철학적이 깊이 있는 사유가 따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식물은 올해도 지난해와 다름없이 생동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인간은 시간 흐름이 마냥 개운하고 기쁘지 않으니 이 또한 수양이 부족한 것에서 연유하는 어리석음이란 느낌입니다.
정맥과 지방 유명 산까지 발걸음하는 부지런함과 건강함에 손뼉 칩니다.
고맙습니다.
매번 여러 많은 사진들을 남겨주시며 그길을 꾿꾿하게 걸어내시는 한길선배님을 보면 감히 힘들다는 말들이 부끄러지고 어리석은 투정들을 부렸습니다. 늘 함께할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행복하시고 또 행복하세요~~!!
엄살(?) 피우면서 민주지산까지 가볍게 다녀오신 집념과 건강을 높이 삽니다.
언제나 밝고 기운찬 청보리 님 모습이 낙동산악회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거기에 빈틈 없는 총무 님 구실까지 해 내어 대원들은 행복합니다.
봄을 맞아 새 잎과 꽃을 피우는 자연처럼 건강 유지하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큰형님의 멋진 사진과 자상한 설명을 읽고보니,
지난 일요일 멋진 조망점에 다시 서 있는 듯합니다.
대간길 산행중 기억에 오래남을 둣한 행복한 산행이였던 것 같습니다.
큰형님께서도 민주지산을 무척 좋아하셨군요,
저는 민주지산을 알게된지는 최근 몇년전이였지만 ...
처음에 이름이 특이하여 관심을 갖었었더랬는데,
충청 중부지방의 최고봉으로써 이렇게 병풍처럼 감싸며 힘차게 뻗어있는 능선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 가야산, 덕유산, 민주지산 능선을 멋지게 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고의 날씨에 멋진분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봄기운 듬뿍 받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산행 때 뵙겠습니다.
사람이 산이나 사물, 자연, 인간을 사랑함은 말로 그 연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끌림과 사랑은 논리나 과학으로 재단하기 보다 그저 느낌이 우선이고, 그 느낌이 적중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민주지산을 좋아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눈이 귀한 지역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눈 많은 산을 찾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지산 일원에 갈 때마다 추억거리가 많아 가끔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살짝 꺼내 되돌아보고 웃음 짓기도 합니다.
시간이 모자라 민주지산까지 따라가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