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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조르바의 인생수업
저- 장석주
출-한빛비즈
독정- 2018. 6.3.일
‧ 다사로눈 가을날 작은 섬들의 이름으 하나하나 읊으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만큼 살마의 마음을 쉬 천국에 데려다 놓은 기쁨은 없다.
‧ 니체는 인간을 가리켜 신과 짐슴 사이에 걸쳐진 줄을 타는 존재
‧ 조르바는 시릉 쓰지 않는 시인, 글미 그리지 않는 화가, 작곡하지 않는 음악가다. 대지의 탯줄에 연결된 사람이다. 그의 뇌 속에서 대지가 솟아오른다.
‧나는 쑥쑥 자라나는 뿔이에요. 뿔은 마음에 숨은 사람이다. 도대체 어린이들은 어떻게 평생에 걸쳐 도달하지 못하는 지혜를 갖게 될까? 우리에게 이런 어린애들이 왔다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이란 기적이다.
‧지금 여기 행복이 있기에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 책이 있다. 둘 다 인간을 위해한 성숙으로 이끈다. 도서관 책과 자연이란 책이다. 조르바는 자연이란 책을 수없이 읽은 사람이다. 외로룰 땐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볕을 쬐라. 마치 새 생명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 하게.
‧당신이 무얼 먹는가를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 내가 먹은 것으로 만들어지니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나 자신에게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위대한 힘은 신의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사람드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모든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을 위해 자기의 피를 흘린다. 누구나 가슴은 피로 가득한 도랑이다. 날마다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름이 하늘의 바람과 무지개에 쫓겨다니는 존재라면 우리 영혼은 사랑을 쫓아 세계를 방ㄷ랑하는 것이다.
‧ 인간들 하나 하나는 한 방울의 물이다. 우리는 한 방울의 물로 태어나서 한 방울의 물로 여행을 하고, 끝내 한 방울의 물로 죽는다. 다른 무수한 한 방울의 물과 석ㄲ이고 얽히면서 관계 속에 있을 때 가치와 의미가 더해진다. 한 방울의 물이 합쳐져 대해를 이룬다 우리는 혼자 고통받고 혼자 죽는 존재가 아니다. 다른 많은 물방울들과 더불어 이것을 겪어낸다. 어떤 물방울들은 어둡고 위험한 해협을 뚫는 심오한 힘을 가졌다. 장막을 찢고 나가는 그 힘의 실체는 열망이다.
‧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채비를 했다. 나는 오래 기다릵 수 없어 입김으로 데워주였다. 날개가 도로 접히더니 쪼그라들고 가엽게도 나비는 몸을 떨었으나 몇 호 뒤 내 손바닥 위에 죽어 있었다.
‧정오의 태양이 뼈마디까지 즐겁게 했다. 바다 역시 태양 아래서 느긋하게 몸을 덥히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옅은 안개에 사인 무인도는 바다 위로 불쑥 튀어나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시골의 축복은 아침에 지저귀는 새떼다. 아침은 생명의 처음이고 활격의 시작이다. 날마다 슬픔 한 조각을 삼키는 사람이라도 정오에는 기쁨을 구하고, 불안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정오에는 안정을 찾는다. 정오는 가장 짧은 그림자가 나타나는 시간이고 메시아적 순간이다. 우리는 정오에 빛의 심연 속에서 깊은 고독과 맞추한다. 우리 존재의 역량이 모두 드러나는 시간이다.
‧조르바- 그의 몸과 영혼은 얼마나 조화로운 하나를 이루고 있는지, 여자와 빵과 물과 고기와 잠 등 모든 것은 그의 몸과 행복하게 결합하여 조르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우주와 인가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 없다. 조르바는 대지에서 나고 자란 들 사람이다. 지식과 관념의 세례를 전혀 받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다. 그를 빚은 것은 바람과 땅, 물과 고기, 여자와 잠이다. 그는 만물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본다. 태초의 사람처럼 보고 듣고 살았다. 별은 그의 머리 위를 미끄러져 갔고 바다는 그의 관자놀이에서 부서졌다. 그는 이성의 방해를 받지 않고 땅이 되고 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신이 되어 살았다.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채 단순한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조르바 자신이 완벽하게 자연 그 자채다.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망에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닫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뒤집혀 박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사람들으 그 브레이크를 이성과 합리주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꽃이나 열매없이 잎만 피우는 나무 같은 사람. 조르바는 나의 존재감을 세계 안에 가득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행복한 사람은 미덕이나 악덕으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다는 마음을 먹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영원이란 것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불가능한 꿈이다. 불가능을 꿈꾸는 것도 인간망의 특성이다. 인간은 길을 헤매면서도 영원을 향한 응시를 멈추지 않지만 동물은 나고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차키스는 겸손하지만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고, 친절하지만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카잔차키스는 스테켈 박사를 방문하며 붓다에 대한 시극를 쓰며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모든 육체 감각의 즐거움을 포기한 채 금욕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한 뒤 얼굴에 습진이 생겨 약속 취소했다 했다. 스테켈 박사는 그게 ‘성자으 병’인데 중세 수도자들이 동굴에서 금식하고육체의 욕구를 끊은 채 수행하다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여즐 찾아 울부직으며 마을로 달려갔는데 그때 수도자의 몸과 얼굴이 부풀고 뀬열이 생기녀 노란 진핵이 흘러나왔다. 육체가 지금 정신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곧 더라라고 했다. 떠나니 이내 병이 나았다. 카잔차키스의 시신을 고향인 크레타 이라클리온으로 왔다.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는 비명이 새겨졌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애 나아간다. 예민한 사람들은 애완동물의 죽음이나 해가 지는 시각에 사물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며 친지의 죽음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선험을 키운다. 하지만 살아 있는 누구도 죽음 저 너머를 엿볼 수 없다. 죽음은 온통 미지의 것 그 자체다.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은 오로지 타인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죽음이란 삶의 바깥으로튕겨 나가는 것이다. 삶의 바깥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살아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를 사알하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고, 일몰과 저녁의 별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향낭을 잘못 터드린 듯 공중에 방향을 내보내는 봄꽃들의 눈부심에 경탄한다. 기쁨과 슬픔, 빛과 사랑도 다 살아 있음의 몫이다. 삶은 죽음의 면전에서 웃고 춤추고 놀고 짓고 비축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