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넓어지는 원〉
라이너 마리아 릴케
BTS 지민은 왜
이 시를 택했을까
마치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 한 마리 같습니다. 한 남자의 주위를 사람들이 둥근 원 모양으로 에워쌉니다. 높은 벽이나 울타리, 알껍데기처럼요. 남자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그가 몸부림칠 때마다 펄럭이는 재킷 사이로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근육질의 상반신이 드러납니다.
BTS 지민의〈셋 미 프리 파트 2 (Set Me Free Pt.2)〉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얘기입니다. 유튜브 누적 조회 수 1억 회 이상인, 전 세계에서 주목한 이 뮤직비디오에서 지민은 날갯짓하듯 춤춥니다. “결코 멈추지 않겠다 (I never stop)” “날아가”겠다고 노래하는 그의 몸을 수놓은 글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의 시〈넓어지는 원〉중 일부입니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가 시《별 헤는 밤》에서 별과 함께 헤아린 이름, 그 릴케가 쓴 시입니다.
넓어지는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왜 지민은 첫 솔로 앨범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이 작품을 골랐을까요? 소속사에 살짝 물어보니 “지민과 스태프들이 함께 상의한 끝에 의미 있는 시를 택했다”고 합니다.
릴케의 시는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가네” 라고 말하며 시작됩니다. 그냥 동그라미도 아니고 점점 넓어지는 동그라미입니다. 시인은 인간이 성장하며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걸 ‘넓어지는 원’에 비유했습니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더숲, 2018, 140쪽.
그러고 보면 커갈수록 넓어지는 원이 있죠. 바로 나무의 나이테입니다. 여러 해 동안 쌓은 경험, 숙련도를 뜻하는 단어 ‘연륜 (年輪)’의 한자를 하나씩 떼어보면 해 년, 바퀴 륜입니다. 1년마다 하나씩 생기는 둥그런 나이테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나무가 해마다 나이테를 그리며 둘레를 키워나가듯 사람도 시간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살찌워갑니다.
반면 성장할수록 넓어지는 나의 원은 나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넓어지긴 해도 어쨌든 나는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요. 인간이 스스로 쌓은 경험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친구들을 만나고, 듣던 노래를 들어요.
성공적인 삶으로 탄탄한 울타리를 갖춘 사람은 도전이 더욱 망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의 상징이 된 BTS 멤버 지민이 첫 솔로 앨범을 내는 데 데뷔 이후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하며 자기 세상을 넓혀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 시집》,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4, 116쪽.
마지막에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른다. 내가 한 마리의 매인지,/하나의 폭풍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대단한 노래인지.”
이 시에는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이라 평가받는 릴케의 젊은 시절 고민과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은 초기작 《기도시집》에 수록됐습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시집에는 영혼과 종교에 대한 성찰이 실렸습니다. 당시 수도원의 수사가 하루 일곱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기도를 담은 《기도서》라는 책이 있었는데, 여기서 따온 시집 제목입니다. 명상하고 기도하듯 시를 쓰고, 독자들에게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원래 이 시에는 제목이 없었습니다. 릴케는《기도시집》에 수록한 연작시에 별다른 제목을 달지 않았는데, 나중에 번역자와 연구자들이 ‘넓어지는 원’이란 제목을 붙여 널리 알려졌어요.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다른 제목이 붙기도 합니다. 한글 번역본은 《릴케 시집》 등 릴케의 초기 작품을 합쳐놓은 책에 실려 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에서도 일부 구절을 만날 수 있고요.
이유있는 고전 중에서
구은서 지음
첫댓글 늘~~고맙습니다^^
시원한 한주 시작하시길~♡
항상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