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김인숙
통조림에 대해 언급한다면
사람만큼 완벽한 통조림도 없을 것입니다
유통기한은 아무도 모릅니다
종류와 성분을 막론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언행과 숨겨진 이면이
같은 양심으로 들어있기도 합니다
아침으로 물고기를 먹었다면
심해와 수평선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어라 딱히 이름 짓기도 힘든
아늑하지도 깊지도 않은 동맹과 호의들도
더부룩한 헛배처럼 들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래전 발명된
단순한 깡통따개를 두려워합니다
열린다는 것은 망가진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닫을 수 있는 상태여야만
열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용기用器들엔 뚜껑이 있는 반면
통조림엔 뚜껑이 없습니다
한 번 열리면 두 번 다시 닫힐 일이 없는
통조림의 일회성 생은 회자膾炙되어야만 합니다
바다가 살아있는 것들의 통조림이라면
사람은 죽은 것들로 연명하는
그악스러운 통조림인 것입니다
―계간 《예술가》 2023년 겨울호(근작자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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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강릉 출생. 2012년 《현대시학》 시 등단. 2017년 《시와세계》 평론 등단.
시집 『먼 훗날까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등.
2000. 열린시학상, 『한국비평학회』 학술상, 서초문학상 수상. 관동대 일어일문과 겸임교수 역임.
첫댓글 통조림에 인간을 은유하니 인간이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적나라해졌습니다. 이해하기도 쉽구요.
직접적으로 인간을 주체로 설정해 표현할 경우 일정부분 설명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인간을 대상화하니 통조림과 인간 사이의 거리로 말미암아 객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시에서 통조림은 인간의 객관적 상관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의 구상 단계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원관념)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을 설정하는 것이 좋은 시의 첩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