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고후5:14-21)
갈등
1. 어느 은퇴 목사님이 젊어서 방랑할 때 이야기입니다. 청년기에 대학 선배를 만날 때마다 목사님을 향하여, 자네 거듭났나(born again했나)? 물었답니다. 목사님은 선배에게,“형이상학을 공부하는 철학도께서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하세요. 좀 더 본질적으로 나갑시다.”라고 대답했어요. 선배는,“예수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없지. 철학은 질문만 하지 답이 없는 걸 자네도 알지 않는가? 철학은 질문을 던지고, 예수는 답을 주시지.”목사님은 그 선배가 열정은 있지만 좀 낮은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선배는 이후에도 만날 때마다,“이제 거듭났어?”질문을 했습니다. 둘의 만남 속에서 선배의 제안으로 성경 공부를 매주 한 시간씩 하게 되었고, 목사님이 거듭나는 경험을 했다는 간증이에요.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변화가 세상 사람들 눈에는 유치해 보이고 수준이 낮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합니다.(17절) 이 변화는 얼마나 큰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바울이 선언했어요.
2. 과거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이 선언은 바울의 자기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사람은 살면서 점차 변합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또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사람마다 변화를 경험합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변화의 정도가 다를 수 있는데, 바울의 변화는 누구보다 놀라웠어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드라마틱한-극적인 변화를 경험했어요. 다메섹-다마스커스(시리아의 수도)에서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만남이 바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저렇게 변할 수 있는가? 하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이전의 바울과 이후의 바울이 극단적으로 달랐어요. 그 표현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향을 받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한 사람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갈등 심화
3.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제시했습니다. 18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변화된 것을 의미해요.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거듭남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고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어요.(고전12:3)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된 삶 속에서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한 가지만 집중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화목 이야기이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이야기와 또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한 이후에, 이웃 사람들과도 화목합니다. 또 이웃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전도와 양육) 바울은 왜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새로운 피조물 이야기를 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화목을 이야기하였을까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실마리
4. 사도 바울의 인생이 급격히 변화된 계기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는 길에서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이 신임하는 차세대 유대교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어요. 장래가 촉망되는 꽃길을 걷고 있었어요. 바울은 대제사장이 직접 준 서신을 들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바울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바울에게 나타나셨어요.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바울이 이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바울은 땅에 엎드러져 주님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 바울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금주 금요기도회 때 시내 산에 강림하신 하나님 이야기를 나눕니다만,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오직 두려움 가운데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지만, 실제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누구든지 무릎 꿇고 바울처럼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의 도움을 통해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시는-소명을 발견했습니다.
5. 그동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이제부터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습니다. 순간에 대반전이 일어났어요.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바울이 선포했는데 바울 자신이 다메섹에서부터 오늘 본문의 편지를 쓸 때까지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어요. 그와 같이 고집이 세고, 자아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고 이전 것은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선언했어요. 새로운 피조물 이야기를 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반복하였습니다. 화목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사람들과의 화목,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고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 복은 하나님과 화목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남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선언했습니다.
6. 로마서의 주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이신칭의, 우리의 구원사건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며, 이신칭의만 말하지 않고 이어서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라고 권했어요. 한국교회는 대개 이신칭의만 강조하며 설교하고, 하나님과의 화목에 대해서는 소홀해요. 이것이 건강한 신앙으로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이신칭의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까지 이루며 살아야지 건강한 신앙-온전한 신앙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것은 14절, 한 사람-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화목제물이 되셨어요.
예수님의 희생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어요.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거론하며 15절,“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서 바울은 18절,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전해줍니다. 19절,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20절,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7. 화목은 그리스도인의 최고 가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면 우리가 생명을 얻고, 내세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이 귀한 은혜와 복을 우리만 누릴 수 없어요.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 세계 모든 이들이 함께 더불어 누려야 해요. 가장 큰 이웃 사랑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목표하고 달려가는 일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화목이란 말이 강조되는 배후에는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화목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더불어 개척을 했어요. 고린도 교회는 문제들이 많았어요. 고린도전서에 잘 기록되었어요. 바울은 그들의 변화를 촉구하며 기도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사도권 문제나, 바울이 글은 뛰어난데 말은 시원찮은 부분 등으로.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변화된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완전히 화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화목의 과정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음입니다.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에요. 사람들이 말하고 인정하는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은 것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대속 또는 구속(redemption)이라고 표현해요.
롬3:10-12에서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다고 시편 14편을 인용해서 전했습니다. 23-24절,“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귀한 복음을 선언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오직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어요. 값없이 주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은혜의 가치가 큰 것입니다.
기대
9. 오늘 우리는 이 은혜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누리고 있습니까? 값없이 주셨다고 해서, 은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살고 있지는 않나요?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사회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도날드 크레이빌은,『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세상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의 전복적인 삶-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마지막 12장의 제목이, 성공한 패배자들입니다. 제목이 충격적입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자들인데 내면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에요. 구원 그 이후라는 책을 쓴, 서울 남포 교회 박영선 목사는,‘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다 갑각류’라고 했습니다.
새우, 꽃게, 가제 등은 겉껍질은 단단하지만, 그 속에 든 살은 한없이 나약해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허물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이전 모습-이렇게 유약한 삶의 모습은 지나고 새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우리 가족-교회-한국교회-우리 민족과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어가도록 이 시간 다 일어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주 없이 살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