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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눈비로 염려했는데 쾌청한 날씨에 고맙고, 용포대에서 樂山, 海山, 野草의 모습...10:39:50
野草의 수고로 회룡포 주차장에 주차후 출발 준비(주변 풍경이 선명함)....09:25:00
지난 7월 대홍수로 모래가 떠내려가고 하상이 1m이상 낮아져서
새로 만든 다리가 높아져 현기증이 난다....09:30:25
요즘 보기드문 청보리밭이 잘 조성되어 비룡산과 조화를 이룬다....09:34:02
회룡포 마을의 노송과 돌담이 정겹고 운치가 있다....09:39:26
강바닥을 덮은 잡초가 폭우에 떠내려가고, 말끔한 백사장이 환하게 풍경이 바뀌었다....09:42:39
용포동가는 다리도 새로 만들어 높이가 2m는 되고 양쪽 강기슭도 높아졌다...09:44:26
용포동 마을 쪽의 강가슭을 따라서 林道를 새로 만들어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09:47:51
용포동 마을의 유일한 기념비가 도로 개설로 입구 터널 끝으로 옮겨졌다...09:50:59
(장석도 선생 공적 기념비)
"소망사"를 지나서 오르막에서 내려본 용포동의 개설 도로가 강둑과 직선으로 연결된다.... 09:55:25
사림재를 힘겹게 올라서 벤치에 쉬면서 목을 축인다.... 10:05:19
사림재에서 조금쉬고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올라서 용포대가 눈 앞이다... 10:33:36
용포대에서 바라보는 全景은 그 동안 오른날 중에서 가장 밝고 선명하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10:34:44
一周林道에서 용포대로 오르는 연결 도로를 조성하여 멀리 점촌시가 조망된다....10:44:48
울창한 소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향석리에서 성저리(향석2리)로 내성천을 건너는 다리가 보인다...11:06:38
능선을 따라 장안사방향으로 걷다가 멀리 점촌시가지가 산기슭에 흰색으로 보인다...11:09:42
들판과 야산 넘어서 용궁 읍부리의 중심인 포금산 기슭에 학교와 마을이 보인다....11:12:05
능선의 고갯마루의 벤치에는 솔갈비가 쌓이고,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11:13:04
급경사의 긴 계단을 돌라 올라서 봉수대 쉼터에 도착하니, 방문객(2명)이 자리를 양보한다...11:22:23
비룡산의 정상인 봉수대(정상석은 없음) : ...........11:25:09
飛龍山 烽燧臺 소재지: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봉수는 옛날에 통신수단의 하나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국방상 중요한 임부를 도성에 신속히 전달하였다. 봉수는 햇불의 수에 따라 하나는 평상시, 둘이면 적 출현, 셋이면 국경접근, 넷이면 국셩침범, 다섯이면 적군교전으로 구분하여 알렸다. 비룡산 봉수대는 동쪽으로 예천읍의 서암산, 서쪽으로 다인의 소이산, 북쪽으로 산양의 가불산 봉수와 연락하였으며 설치연도는 고려 의종 3년(1149)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895년 봉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없어진 것을 예천군에서 사방3.7m 높이 2.7m의 정방형 규모로 복원하였다.
2000년 12월 일 예천 군수
"사랑의 자물쇠"전망대 위치에서 본 "하트 모양의 산"이 연인들의 사랑을 각인 시킨다...11:35:11
사랑의 자물쇠 ......11:36:24
자물쇠의 속성은 채우고 간직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랑의 자물쇠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이 곳 회룡대에 채우고 그 열쇠를 고이 간직하면 그들의 사랑이 영원토록 유지되며 결혼 후에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또한 자물쇠를 걸어두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히 변치 말자는 약속의 징표이며, 꼭꼭 잠궈서 그 누구도 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어떤 사람도 침범하지 못하고록 하는 소중한 소망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회룡포 위 초 하 .....11:36:55
외나무 다리 아래로 휘돌아 나온 드 넓은 물결이 유순한 땅을 곤괘(坤卦)로 엎드리자
모래섬은 햇귀를 끌어들어 모래톱 마다 둥지를 보듬었다.
장안사 추녀 끝을 부여잡은 바람도 풍경소리를 몰고 일제히 일어나
비룡산 무제봉 비탈쪽으로 순례를 돌고 봄날 어질머리난 꽃 무덤 안에서
멱을 감는 운무는 삼강으로 달려가는 닻을 내렸다.
오늘도 물너울이 용트림을 하는 곳 회룡포 용비늘 하나 떨어져 있다.
※ 坤卦(곤괘 : 땅이 거듭됨을 상징)
낙엽끼리 모여산다 조 병 화 ......11:37:13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 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기고 산다.
용왕각과 비로자나불이 지구상의 인류를 극락의 세계로 인도하려 한다....11:42:22
용왕각 벽에 글귀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비로자나석불 앞에서 지금의 행복에 경건하게 감사드리는 野草, 海山, 樂山 의 모습......11:43:42
※ 비로자나불 :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불의 몸 자체를 색신(色身)이라고 하고, 석가모니불이 말씀하신 불교의 진리(불법)를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그러니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중생들도 모두 불성(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을 지닌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의 몸에 비로자나불이 있듯이, 모든 중생(존재 또는 생명체)도 비로자나불을 가진다. 비로자나불과 중생 또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이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두 분에게 귀의한다는 말입니다.
아미타불은 행복으로 가득 찬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의 이름이고 ,
관세음보살은 괴로움을 없애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시는 보살님의 이름입니다
나무는 산스크리트어로 귀의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솔갈비가 쌓여 있는 능선 길을 밟으며 즐겁게 하산한다....11:57:05
절벽 아래로 넓은 백사장과 외나무다리가 정겹고, 내성천 주변의 山勢가 한 눈에 보인다... 12:14:18
능선 길이 좁고 절벽이지만 느끼지 못하고 산내음에 취하여 즐거울 뿐이다...12:05:04
바닥까지 긴 계단이 아득한데 꺼꾸로 내려가니 쉽고 편안했다....12:21:14
龍州詩碑 지은이 龜溪 金 榮 洛 ......12:33:31
正面- 抱琴山 明月(포금산의 밝은 달)
포금산에 뜬 달은 둥글기도 둥근데 계수나무 가을 향기 흰 이슬 차갑고나
이 밤사 퉁겨내는 열 두줄 맑은소리 선학은 너울너울 구름 끝에 춤을 추네.
武夷淸風(무이의 맑은 바람)
무이촌에 묻혀 사는 할아범께 묻노니 고기 잡고 나무하여 이렇듯 늙어가오
뽕나무 그늘아래 개와 닭이 함께 놀고 온갖 세상 풍진 밝은 바람 씻지 않소.
(下端) 金 榮 洛(1831~1906)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元永 호는 龜溪로 만년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의 직함을 받은 隱居文人이었다.
번역 鶴山 金鐘隆 후손 : 浩玟 永哲 湩大 漢晧
左側面- 謁雲樵歌(알운산의 나무꾼 노래)
흰구름 깊은 골에 나무하는 저 초동들 한가락 긴 노래에 산골에 봄은 온다.
소박한 민속가락 입으로만 이어오니 창법없이 전해오는 신묘한 그 노래여
喧坪稻花(훤이 들의 벼꽃)
넓디넓은 훤이 들판 먼 하늘 닿았는데 벼꽃 핀 비단 물결 정말로 아름답다
검은머리 저백성들 피땀고생 다 잊고서 서풍에 땀 씻으며 풍년을 구가하네.
(下端) 抱琴山: 용궁초등뒷산 飛龍山: 향석리 앞산 武夷山 : 무이리 뒷산 天竺山: 향석리 뒷산
錦江 : 錦 川 謁雲山: 우망리 뒷산 臥牛山: 용궁중 뒷산 喧坪 : 읍부리 큰들
後面- 飛龍歸雲(비룡산 걸친 구름)
뫼굽이는 요이요 구름은 연기인데 서로 좋아 어우러져 남천에 머물더니
하느님 음덕으로 복된 비 내려주네 우리고장 천년만년 풍년을 누리리라
天竺疎鐘(천축산 저녁 종소리)
천축산 봉우리들 창공에 솟았는데 이따금 범종소리 저녁바람 타고오니
필시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리라 우리 동방 깨우치는 은은한 울림이여
(下端) 1977년 8월 일
龍 宮 面 民 一 同 建 立
右側面- 錦江漁火(금강의 고기잡는 불빛)
해는지고 바람자니 가을금강 옥같은데 고기잡이 초롱불빛 여기저기 번뜩인다.
오경에 배를 돌려 서암으로 돌아 오니 잠자던 저 백로 끼욱끼욱 놀라 나네.
臥牛 落照(와우산의 낙조)
저녁노을 붉게타고 새들 바삐나니 와우산엔 변함없이 석양이 지는구나.
히뜨고 지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거늘 가소롭다 사람들아 슬퍼한들 어이하리.
(下端)
용궁면은 1914년 예천군에 통합되기 전까지는 용궁군이었으며 고려때는 용주로 불렀던 지역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귀가 준비를한다.....12:40:52
첫댓글 飛鳥山 간다고 나서보니 간밤에 내린 비가 풀잎에 맺혀 부득이 飛龍山,回龍浦로 急旋回하여 龍宮을 지나서 鄕石里 回龍마을로 갔다.한동안 三江里로 다녀서 回龍마을은 모처럼 訪問하니 乃城川은 지난 장마에 白沙場이 모두 쓸려가서 河床이 1m는 족히 내려가고 뿅뿅다리도 우뚝하니 솟았다.自然스레 變形된 水路와 堤坊의 洪水 痕迹을 보니 自然災害의 엄청난 威力이 느껴진다.回龍浦는 텅 빈 마을이나 청보리,油菜 等이 一色이고 龍浦 뿅뿅다리는 높아진 탓에 眩氣症을 느낀다.比較的 쉽게 사림재에 올라서 첫 쉼을 하고 龍浦臺에 서니 晴明한 날씨탓에 鶴駕山이 鮮明하고 끝간데 없는 乃城川이 名所로 다가온다.며칠간 强風탓에 소나무 갈비가 켜켜이 쌓인 登山路는 오히려 푹신한 느낌이고 고개들면 店村 市街地와 龍宮 全景이 꿈결처럼 다가온다.烽燧臺에서 첫 登山人을 만나 修人事를 나누고 回龍臺에서 羅浮山을 觀照하며 223階段을 瞬息間에 내려와 阿彌陀大佛에 合掌한다.이젠 急傾斜地域을 따라 下山을 서두르는데 雜草가 茂盛했던 乃城川은 白沙場으로 淸潔하여 眺望이 매우 優秀하다.모처럼 龍州八景 詩碑에 서서 名詩를 感想하니 龍宮은 傳統고을로 推仰된다.歸路에 龍宮農協 앞에서 선지해장국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