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17]‘생활글감’이 넘치는 시골생활
혹자는 시골생활이 너무 단조롭지 않느냐? 또래도 없고 ‘6학년 4반(나이 64세)’이 청년이라면서 심심해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나의 글쓰기 취미를 잘 아는 친구는 ‘생활글감도 없겠다’며 걱정까지 해준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몰락했고,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농촌인데도, 1년 전 40여년만에 귀향한 나로서는 시간이 없어 못쓸 정도로 생활글감이 넘치고 넘친다. 대처大處는 되레 글감이 빈약하다. 몇날 며칠을 지내도 아무 재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느꼈었다. 그야말로 단조롭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산에 오르고, 습관처럼 친구들을 만나 ‘객쩍은 얘기’나 하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실익實益’이 없는 듯했다. 단지, 하나 좋은 것은 ‘가정’이 있다는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옆지기가 있으니 생활하는데 아무 불편이 없고, 같이 텔레비전도 보고, 책이야기도 하고…. 그 재미가 없는 것은 어떻게든 메울 수 없는 ‘엄청난 상실喪失’이기는 하다.
어제 하루를 되돌아본다. 뒷산 저수지에 새우망을 걷었는데, 제법 잡혔다. 지금 한창 맛있는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은 ‘송사리’도 따라왔다. 조금만 더 잡혔으면 '도리뱅뱅이'를 해도 될 정도였다. 내려오는 산속에 띄엄띄엄 진달래가 꽃을 피운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읊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 참으로 길이 남을 절창絶唱이다. 나는 너무 태평하고 낭만적인가?
‘자연인 친구’와 뒷산 비탈의 음지에 ‘산양삼’이라고도 불리는 ‘장뇌삼’ 씨앗을 심었다. 최소 6년은 되어야 먹을 수 있다한다. 내가 심은 장뇌삼을 내가 캐 먹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지난번 자른 참나무 토막 몇 개르 끌고 내려와, 드릴로 곳곳에 구멍을 뚫어 표고버섯 종균을 넣었다. 그제 한 것과 합치면 60토막이 넘고, 종균 4천여개를 넣었으니 내년 봄이면 구멍마다 버섯이 나올 것인가? 너무나 궁금한 일이다. 그 표고버섯,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나눠줄 생각만 해도 즐겁다. 물론 관리를 잘 해야 할 일.물도 무지막지하게 줘야 하고, 때때로 오함마로 참나무 토막들을 때려쳐 종균이 속속들이 퍼지게 해야 한다고 한다. 쉽게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법. 부부싸움을 한 후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을 때에는 말없이 나와 뒷밭에 쌓아놓은 참나무 토막들을 치라는 충고다. 가지가지다.
1000여평의 대나무밭을 정리하여 맷돌호박을 심으려는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농사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비와 비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강을 대규모로 심어도 판로 걱정은 안해도 되는지? 인근에 팔려고 내놓은 논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시골에 와 느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람이 없다’보니, 모두 ‘남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걱정해 주고 유난히 관심들이 많고(솔직히 심심하니까), 훈수(팁tip)들을 해 주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하니 將有事于西疇(장유사우서주)로다: 농부가 봄이 왔다고 하니 서쪽 밭에 할 일이 많네> 는 ‘귀거래사’의 한 구절처럼, 이웃집 팔순 아주머니의 농사팁은 금과옥조金科玉條이다. 무엇은 언제 심고, 농약은, 비료는 어떻게 주고, 품종은 어떤 게 좋고, 어디가 조금 싸다는 등 온갖 팁을 주시는데, 나의 머리에 부하가 걸릴 정도이다. 모두 받아 적어 보면서 해야 할 금쪽같은 어드바이스助言들이다. 나를 보면 늘 욕을 하는 유제(이웃)과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어 “어떻게 그러시냐?”고 물으니 “미워해도 사람이, 친구가 없으니까 그려” 하면서 웃는다.
최근엔 6년 전에 귀촌한 또래친구가 볼 때마다 생활팁과 농사팁을 주입시키는데 따라가기가 바쁘고, 약간은 스트레스다. 그제는 “농촌에서는 작업복이 있어야 한다. 예비군복 같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을 사라”는 것이다. ‘백퍼’ 맞는 날. 그날 당장 전주시장에서 위아래 3만5천원을 주고 사입었다. 농사꾼이 된 듯 흐뭇하다. 그 친구도 자기 말을 잘 듣는 나를 보고 흐뭇했으리.
또 한 친구가 동네입구에 집을 짓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을 헐거나 리모델링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 짓는게 낫겠다싶어 시작한 일생일대의 ‘거창한 일’이다. 건축비가 평당 500만원이 넘으니 30평이라해도 1억5천만원이 든단다. 어제는 건물주변 바닥을 기소하는데 펌프차가 왔다. 레미콘차와 합동으로 늘어뜨린 ‘통로’가 하늘로 치솟자 그런 장관이 없다. 이런 특장차는 듣도 본 적도 없어 오직 신기할 뿐이었다. 각종 차에 몰입하고 있는 다섯 살짜리 손자에게 보여주려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손가락 마디만한 송사리들의 배를 따고, 새우를 수돗물로 질식케하고 매운탕을 끓였다. 매운탕 요리법은 너무 심플하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다진 마늘과 생강 두어 조각, 마지막에 끓으면 고춧가루를 서너 숟가락 넣으며 끝이다. ‘맛의 마법사’ 미원을 조금 넣어도 좋으리라. 요즘철에 민물새우는 사서 먹고 싶어도, 오일장에도 흔하지 않은 귀물貴物중의 귀물이다. 새걸이(새참)으로 당연히 ‘일등갑’. 시골 아니면 어디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것인가? 그 바쁜 가운데에도 ‘6학년’ 다섯 명이 모여 ‘순간팅’을 한다. 왜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왜 즐겁지 않겠는가? 언제든, 매일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시절이 역병疫病으로 어수선할망정, 그렇게 나의 봄날, 하루가 또 갔다.
첫댓글 3년 지난 후에 그래도 좋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