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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조선유도연합회
1. 일본 고위관료 송축문
1) '봉전남총독각하(奉餞南總督閣下)'(1942)
아! 惟我
우리 미나미 대장 지로 각하 南大將次郞閣下
통치 칠년에 統治七年
처음부터 끝까지 규획하고 其於終始規畫
크고 작은 일을 베풀어 펼치심에 巨細施設
이 백성으로 하여금 期欲使斯民鍊達乎忠勇道義之域
충용도의의 영역에 노력해 도달하게 하려했으니
그 가운데 성공한 것은 事功之表見者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有不可枚擧
깊은 은혜와 후덕한 은택을 잊지 못해 而深仁厚澤久不能忘
각지 유림이 찬송하고 흠모하는 글을 엮어 故敢綴各地儒林頌功慕惠之辭
책 한 권을 만들어 寫成一冊
봉전하여 기념하는 사사로운 자리에 덧붙인다 以寓奉餞紀念 之私云爾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
박상준(朴澤相駿)1)
京城府 惠化町 10-7
삼강오륜(三綱五倫) 실천한 칠 년 남짓의 시간 五綱實踐七年餘
정무(政務)에 한결같이 부지런하셨네 庶政勤施一日如
이 땅의 백성과 오래도록 정들고 익숙해졌으니 久與斯民情已慣
바라건대 공께서는 귀국길에 더디 오르시길 願公歸駕且徐徐
1) 본명은 朴相駿(1877.3.3~?). 평남 성천 출신. 본관은 密陽. 군수·참여관·도지사·중추원 참의 역임. 조선유도연합회 회장.
한상룡(韓相龍)
京城府 嘉會町 178
삼강오륜의 정책 펼친 지 칠 년 남짓 五綱政策七年間
기미에 알맞게 베풀어 난국에 대처했네 施合機宜處局難
바다를 건너는 의장 가볍지만 문득 무겁게 느껴지니 渡海輕裝偏覺重
찬송의 노래 배에 가득 싣고 가서라네 滿船載得頌聲還
유진찬(兪鎭贊)2)
京城府 忠信町 43
문무를 겸비하시고 명성 또한 높았으며 身兼將相重聲名
혁혁한 업적 팔굉(八紘)3)을 진동시켰네 赫赫勳威振八紘
공은 가시지만 은택은 길이 남으리니 公去長留遺澤在
많은 혜정(惠政) 대중에게 두루 미치리라 幾多惠政洽輿情
봄가을로 부르심 받잡고 每被芳招秋復春
이미 후덕하심에 친근한 정 느꼈다네 已多飽德感情親
관리로 와서 공덕(功德)을 이루고 떠나니 原來宦業成功去
이별 후 어찌 견딜까, 꿈속에서 자주 뵙길 바란다네 別後那堪夢想頻
이대영(駒城大榮)4)
京城府 明倫町 3丁目 53
계극(棨戟)5)으로 신 정책을 펼쳐 영광을 더하였고 棨戟增光盛積新
정치에는 엄했으나 백성에겐 인자했네 威於其政惠於人
가장 고심한 일은 유학을 부식(扶植)하는 것 苦心最是扶斯道
대성전 봄, 가을로 열심히 분향 올렸다네 聖廟瓣香秋復春
7년간의 시간 빨리도 지나 七載光陰未許遲
붙잡아도6) 머물수 없음에 모두 한탄한다네 攀轅不駐共嗟咨
2) 호는 蒼史. 경학원 부제학(1930~1939). 명륜학원 강사.
3) 천하를 지칭한다.
4) 본명은 李大榮, 호는 石庭. 경학원 부제학 겸 명륜학원 강사(1936.1~1939).
5) 棨戟 : 적흑색의 비단으로 싼 나무창으로 군주의 前驅者가 가진다.
돌아가는 수레 가득 이별의 정 싣고 가시리라 歸車滿載與情重
성문 밖까지 나와 전송할 때 해는 저물려하네 餞出都門日欲移
이경식(李敬植)7)
京城府 嘉會町 177-4
우리 천황 성덕 건곤(乾坤)에 합하시며 吾皇盛德合乾坤
천황의 명 받잡고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은정 베푸셨네 奉命來宣一視恩
施政하신 몇 년간에 공적도 막대하시니 施政多年功莫大
백성들 감격하여 길이 잊지 못하리라 輿情感激永無諼
윤병오(尹城炳皓)8)
京城府 明倫町 3丁目 53
도의(道義)로 반도의 백성들을 도야하여 道義鑄成半島民
체력과 정신을 굳건히 단련 시켰다네 鍛堅體力鍊精神
여추(鑢鎚)를 가진 훌륭한 솜씨 거두어 가시니 斂却鑪鎚良冶手
추밀원(樞密院)에 들어가시어 훌륭히 자문 하시리라 好登樞院備諮詢
안인식(安寅植)9)
京城府 明倫町 3丁目 4
시국은 계속 어려웠고 천재(天災)까지 만났으나 時艱繼又遭天災
활부대도(闊斧大刀)10)하게 시원스레 타개했네 闊斧大刀任打開
6년동안 부지런히 일시동인의 은택 베푸시며 六載勤宣一視澤
도야를 통해 변화 되길 바라셨다네 須將萬化陶鎔來
6) 明의 胡繼宗이 지은 '書言故事大全' 卷八 仕進類에 ‘攀轅 : 漢侯霸為臨淮太守, 被召, 百姓攀轅臥轍願留期年.
7) 1883년생. 충북 제천 출신. 군수, 중추원 참의(1930.6~1945.6) 역임. 경학원 사성 겸 명륜학원 간사(1938.5~1939).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1943.9).
8) 본명은 尹炳皓.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 졸업. 경학원의 사성과 명륜학원 간사직 겸임.
9) 安寅植(1883~?) 충남 출신. 명륜학원 강사 겸 간사(1930~1939). 경학원 사성(1931~1943). 조선유교회 창립 대표(1932.9).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부 위원(1941.1).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1941.5). 조선중견유림성지참배단단장(1942.11).
10) 活斧大刀 : 大刀, 闊斧로, 兩種은 兵器이다. 大刀闊斧는 軍隊의 聲勢이 浩大하고, 殺氣騰騰한 것을 形容한다. '水滸傳' 第三十四回 ‘秦明辭了知府, 飛身上馬, 擺開隊伍, 催趲軍兵, 大刀闊斧, 逕奔清風寨來’ 또는 일을 흥기시키고 혁파하는 데 果斷성과 귀신같은 면이 있는 것을 비유한다.
김성진(金誠鎭)11)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2-20
농제와 징병제 실시하시고 유림도 연합시키며 農規兵制曁儒盟
유교 경전에서 뜻을 취해 배불리 먹인 뒤에 병사되게 하셨네 義取儒經足食兵
병략(兵略)과 유림으로의 실천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뛰어났나 兵略儒行誰伯仲
옛날 구래공(寇萊公)12)처럼 두 가지로 이름나셨네 萊公古有兩全名
이명세(春山明世)13)
京城府 北阿峴町 1-61
충효와 근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忠勇勤儉導我民
허다한 시정책에 심신이 소모되었네 幾多措畫費心神
천하 만사 완벽하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從知萬事難全美
도리어 여공(餘功)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시네 却把餘功讓別人
윤치오(伊東致旿)14)
京城府 安國町
무궁화 동산에서의 칠년 세월 槿花園裏七年春
정치적 업적 숭고하고 덕화도 새로웠네 政積崇高德化新
미나미 총독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지마세 莫道南星東返去
광채는 사민에게 오래도록 빛나리니 煌煌餘彩壽斯民
심형진(沈衡鎭)
京城府 花洞町
대장께서는 백악당(白堊堂)에서 고상히 기거하시며 大將高居白堊堂
은혜와 위엄 두 가지로 전국을 진무(鎭撫)하셨네 幷濟恩威鎭全彊
칠년간의 치적, 천년은 갈 거라고 七年治積可千世
찬양하는 소리 사방이 한결같네 一口譽聲同四方
11) 金誠鎭(1874.3.26~?) 異名은 金元鎭, 金聲鎭. 명륜학원 강사(1935~1938?).
12) 구준(寇準).
13) 李明世(1893~1972) 號는 義山. 경학원 사성. 조선유도연합회 상무이사.
14) 본명은 尹致旿(1869.9.21~?). 중추원 부찬의(1910.10), 찬의(1911.2~1915.3) 역임.
떠나신 길 바라보며 짓는 한숨 님께 다다르지 못하기에 瞻望行塵嗟不及
남기고 가신 자취 흠모하는 맘은 잊을 수 없으리라 慕思遺跡愛難忘
동아시아 다난(多難)한 때를 만나 正當東亞多端日
우리나라 건강하게 보호하는 데 힘쓰셨다네 須爲邦家保健康
박제봉(竹城濟鳳)15)
京城府 西大門町 2丁目 1-56
칠년 동안 半島民을 통치하심에 七載統治半島民
허다한 규화(規畫)로 심신을 괴롭히셨네 幾多規畫惱心神
또 공께서 반도민 교화 위해 현현(顯現)하시어16) 也知公化身千億
집집마다 살아있는 부처되심은 전생의 녹(緣) 때문이었음을 알겠네 活佛家家證夙因
이원보(李家源甫)17)
京城府 明倫町
천황의 德化이신 일시동인(一視同仁)을 받들어 奉宣皇化視同仁
일념으로 다스린 것 7년이라네 一念圖治七易春
장학제와 징병제로 단련을 시켰고 獎學徵兵成鍛鍊
흥공(興工)과 미곡증식으로 경륜(經綸)을 실천하셨네 興工增殖試經綸
대동아공영권 위해 오랫동안 애 쓰시다 共榮圈上賢勞久
추밀원 고문에 신임되셨네 樞密院中轉任新
반도 산천이 의지할 곳 잃으니 半島山川如有失
머무시길 바라나 그럴 수 없어 마음만 아플 뿐이라네 願留難得但傷神
최호연(崔浩然)18)
京城府 倉前洞 347
삼한(三韓)에 부임하신지 이미 7년 駐節三韓已七年
15) 본명은 朴濟鳳. 경학원 사성. 조선유도연합회 참사.
16) 佛의 용어로 菩薩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세상에 顯現한 生命 形態를 지칭한다. 西遊記 第十七回 : 爾時菩薩迺以廣大慈悲, 無邊法力, 億萬化身, 以心會意, 以意會身, 恍惚之間, 變作凌虛仙子.
17) 본명은 李源甫(1882.2.11~?). 함남 덕원 출신. 경부, 경시, 군수, 참여관 역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1939.5). 중추원 참의(1943.2).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1944.6). 대화동맹 심의원(1945.2). 대의당 위원(1945.6).
반민특위 체포(1949.1). 징역 7년 구형.
18) 경학원 강사(경기도, 1939).
온갖 제도를 쇄신하심에 모두들 우러러 찬양하였다네 刷新百度望譽全
아량(雅量)은 관대하셨고 固知雅量能容物
자부심과 뛰어난 재주로, 기울어지는 것 일으켜 세우셨다네 昭信雄才可起顚
제갈량처럼 충성과 근면으로 보국하는 것만을 생각하셨고 諸葛忠勤惟報國
소하(蕭何)같이 약속 지켜 현자(賢者)를 추천하셨다네19) 酇候約束在推賢
이곳 전별연 광채 화려한데 都門飮餞光華盛
소생이 쓴 한편의 시, 부끄럽기 그지없다오 慙愧鯫生詩一篇
주병건(朱柄乾)20)
京城府 北阿峴町 3-117
총독각하 오셨을 때 우리들 기뻐했네 總督來我輩喜
총독각하 가심에 우리들은 슬프네 總督去我輩悲
2천만 민중 우러러 보며 아비같이 여겨 二千萬衆仰如父
춥고 굶주린 몸 의탁하였네 飢食寒衣自在依
아아! 훌륭하신 미나미 총독이시여! 於戱韙哉南總督
농공(農功)의 위대한 업적 만고에 드무네 豊功偉烈萬古稀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君不見
지나사변 오년동안 支那事變五年久
날랜 지원병들 용맹하게 뛰고 날고 하는 것을 志願精兵勇躍飛
총독각하 오셨을 때 우리들 기뻐했네 總督來我輩喜
총독각하 가심에 우리들은 슬프네 總督去我輩悲
삼천리 반도 모두 교화를 입어 三千半島均被化
은혜로운 구름 자애로운 비가 팔도에 두루 미쳤네 惠雲慈雨八域彌
아아! 훌륭하신 미나미 총독이시여! 於戱韙哉南總督
신묘한 방책 귀신인가 의심스러웠네 妙策神機鬼亦疑
보지 못하였는가 又不見
대동아전쟁이 발발하여 大東亞戰大爆起
백년의 숙적을 하룻 밤만에 쓸어버리는 것을 百年宿敵一宵靡
19) 酇侯는 소하를 지칭한다. 소하가 임종 전에 정치적 라이벌이었던曹參을 추천한 것을 말한다.
20) 명륜학원 강사(1939).
장행원(張本行遠)
京城府 孔德町 175-208
부임하시어 훌륭한 정치를 펴고 가시는 이때21) 雪山輕重去來辰
누군들 공의 정책 인애했다고 말하지 않으리오 孰不云公政策仁
창씨개명, 징병제의 신제도 創氏徵兵新制度
내지와 조선 오늘에서야 동등해졌다네 內鮮今日等威均
최두연(崔斗淵, 山本權一郞)22)
京城府 弼雲町 34
부임하신지 7년, 삼강오륜 정비하시니 莅民七載五綱成
반도에 문풍(文風) 불어 문득 눈앞을 밝혀주네 半島文風眼忽明
길을 막고 잡아도 머물지 못하고 遮路留公公不住
고개 마루의 구름, 강가의 나무에 마음 두고 가신다네 嶺雲江樹總關情
이승근(牧山承瑾)23)
京城府 仁寺町 230
혁혁한 무운(武運)으로 동서를 주무르시니 武運赫赫擅東西
명망이 일시에만 알려지지만은 않으리라 名望非徒一世芳
진퇴지간에도 어찌 천하의 일을 잊으시리오 進退敢忘天下事
충량(忠良)한 마음으로 몸바쳐 국은에 보답하였네 捐身報國是忠良
남석우(南錫祐)24)
京城府 安岩町 142-16
칠년 통치의 성공을 고하고 七年統治告成功
강호로 물러나니 명성 드러 나시리라 退臥江湖始遂名
오늘의 가벼운 행차가 외려 무거우니 此日輕裝應覺重
반도 땅 인민의 마음을 안고 가서라오 齎歸半島輿人情
21) 杜甫의 八哀詩, 八首之三 : 贈左僕射鄭國公嚴公武에 ‘公來雪山重, 公去雪山輕’의 구절에서 유래한다.
22) 본명은 崔斗淵(1893.11~?). 경기 양주 출신. 군수 역임.
23) 본명은 李承瑾. 군수 역임.
24) 1900년 일본 유학. 1901년 박영효 문하에서 수학.
조순원(趙洵元)25)
京城府 苑西町 72
은혜를 베푸신 지 7년 宣恩今七載
온갖 제도 시대에 맞춰 혁신시켰다네 百度與時新
섭섭한 마음 갖고 성 남쪽에서 怊悵城南路
官民들 모두 전별하네 官民奉餞辰
민건식(閔原健植)26)
京城財團法人 大東斯文會
밝고 밝은 아침 해 누각을 물들이며 떠오르는데 晶晶朝日上樓薰
동쪽으로 건너가는 말과 수레 역로에서 이별하네 東渡蹄輪驛路分
일편단심의 새 추밀원 고문은 一片丹衷新顧問
천 갈래 눈 같은 백발의 노장군이라네 千莖白髮老將軍
아득히 남양을 산책했던 꿈같은 달 밤 悠悠夢踏南洋月
갈수록 수심 깊어가는 반도의 구름 去去愁深半島雲
칠 년 동안의 교화로 백성들 크게 변화시켰고 七載敎民歸大化
현량한 치적 만방이 칭송하네 賢良治績萬邦云
윤병철(尹秉哲)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8-9
이곳에 부임하시여 시정하신지 7년 莅玆施政七周年
이별의 날, 오늘로 다가오니 서운하도다 當別今朝意悵焉
고르게 입은 은정 어찌 이미 다함이 있겠는가 均被恩情寧有旣
공적을 이룬 것, 의도해서만은 아니었다네 完成功績不期然
농사가 풍족해지자 모두 안도하게 되고 農形豊足俱安堵
무운이 융창해지니 이는 천우신조라네 武運隆昌自佑天
만년에 중대한 직임을 맡셨으니 重大職任垂老竟
시세에 맞춰 진중히 한다면 후세까지 명성 전하리라 隋時珍重盛名傳
25) 조순원은 文錘의 문인이다. 안인식과 함께 문추 문하에서 배웠다.
26) 본명은 閔健植(1879.11.27~?). 중추원 부찬의(1910), 참의(1922~1933) 역임.
대산춘강(大山春岡)
京城府 北阿峴町 1-231
장군께서는 월도에 의지해 동방을 진무하시니 將軍仗鉞鎭東方
칠년간의 어진 명성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 治積賢聲永不忘
꿈속의 일 인양 칠년이 유수 같이 지나 七載流光如夢寐
가시는 행차 배에 오르는 것을 우러러 보나이다 仰瞻華駕上歸航
광촌술부(廣村述夫)
京畿道 始興郡 西面 駕鶴里
나라 안에 계실 땐 주춧돌이시고 나라 밖에 계실 땐 간성이 되시니 入爲柱石出干城
총독께서 벼슬하시거나 치사하시는 데에 나라의 경중이 달려 있네27) 用舍之間國重輕
교화를 입은 삼한에 은우(恩雨) 담뿍 내려주셨으니 化被三韓恩雨洽
찬양하는 소리 천년도록 전해지리라 召棠千載幷傳聲
서하영채(西河瑛采)
京畿道 開城府 滿月町 125
대장께서 부절과 부월로 조선을 다스리시어28) 元戎節鉞仗朝鮮
모든 공덕이 창성해진지 육`칠 년이라네 庶積咸熙六七年
다만 양숙자(羊叔子)의 공과 같다고 말하지 마오29) 只不言功羊叔子
늙을수록 더욱 굳건해진 마원 장군 같다네30) 老當益壯馬文淵
오늘 이별할 제 한 조각 구름 멀어져가네 此時一別孤雲遠
다른 밤 만날 때엔 보름달 뜨겠지 他夜相思滿月懸
국경을 넘어 백성들 송덕가를 부르며 그리워하나니 過境追懷民頌德
시로도 그리기 어렵고 그림으로도 전사하기 힘들다네 詩難盡述畵難傳
27)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하여 억지로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는 처세관을 말한다. 舍는 捨와 통용이다. 宋나라蘇軾소식의 賀歐陽仕少師致啟에 ‘是以用捨行藏, 仲尼獨許於顏子’라는 구절이 있다.
28) 節鉞은 符節과 斧鉞로 古代에 출병 시에 天子가 대장에게 주어 권위와 신표로 상징된 물건이다.
29) 羊叔子 : 진(晋)의 양호(羊祜). 숙자는 그의 자(字). 양호가 강릉(江陵)에서 오(吳)의 육항(陸抗)과 대치하고있으면서도 싸움보다는 덕화로 상대를 심복시키기에 노력했으므로 육항이 양호에 대해, 비록 악의(樂毅)나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도 그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육항이 병이 들어 양호가 약을 보냈는데, 그곳 사람들이 그 약을 먹지 말라고 하자, 육항이 말하기를, “양호가 무슨 사람을 독살할 위인이라던가.” 하였다. '晋書' 卷34.
30) 馬文淵은 후한의 장수 馬援을 지칭한다.
정낙붕(東村樂鵬)
京畿道 利川郡 長湖院邑 老搭里 176
천자께서 친히 추천하시니31) 天子親推轂
장군께서 오시어 조선민 교화하셨네 將軍來化民
내선일체 이루시고 內鮮成一體
추밀원 고문으로 가신다네 樞府又須人
이근옥(李根沃)
京畿道 抱川郡 蘇屹面 梨谷里
백성들 보호하길 마치 자식처럼 하시고 保民如赤子
나라를 위해 청년들 양육하셨네 爲國養靑年
이별을 아쉬워하며 동해를 바라보니 惜別望東海
물빛은 멀리 하늘가에 접해있네 水光接遠天
김윤구(金倫求)
京畿道 仁川府 花水町 281
문예에도 능하시고 무예에도 능하신 노장군님이 能文能武老將軍
우리 반도 통치하시어 위훈을 세우셨도다 統治半島樹偉勳
성전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는데 체직하시니 聖戰未完先遞職
누가 이을 것이며 또 누가 우리 장군 같을고? 何人繼後又如君
김양한(金亮漢)
京畿道 楊州郡 瓦阜面 德沼里
칠년간의 통치는 너무나 빨리 지나 七年治績太忽忽
총독의 자리 버리고 오늘 동해를 건너 가시네 投紱今朝更渡東
조선 팔도의 만민들 잊을 수 없어 八域含生難可諼
입으로 전하며 부르는 송덕가 소리 만민이 한결 같네 口碑成頌萬人同
31) 推轂는 人才를 推薦하는 것을 비유한다. '史記' 卷107 「魏其武安侯傳」에 ‘魏其﹑武安俱好儒術, 推轂趙綰為御
史大夫.’
이범주(李範柱)32)
忠淸南道 禮山郡 禮山邑 香泉里
칠년의 세월 흘러간 것이 더디지 않아 七載星霜去不遲
공께서 어제 오신 듯 한대 벌써 오늘이 되었구나 公來如昨到今時
오직 한마음으로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단련사의 일을 완수하시었으며, 一心匪懈成團練33)
모든 정치에 허물 없게 하시길 인내로 견디셨다네 庶政無衍耐久持
전령을 나르는 붉은 봉황은 한조(漢詔)를 이었고 丹鳳含書承漢詔
교화를 찬미하는 팥배나무 노래는 주시(周詩)를 따라 읊는구나34) 甘棠宣化詠周詩
근역 삼천리 從知槿域三千里
길이 사람들로 하여금 찬송하는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하게 하리라 永使人人頌口碑
임노일(林魯一)
全羅北道 益山郡 咸悅面 龍池里
일찍이 경륜을 품고 뜻한 바도 견실하게 하시어 夙抱經綸所志堅
반도의 통치권자로 자임하셨네 自任半島統治權
청년의 의맹은 징병제 안에 있고 靑年義勇徵兵案
백발의 광영은 경로연(敬老筵)에 있었네 白髮光榮敬老筵
정치는 내선일체를 이룬데 있어 政在內鮮成一體
국민과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 두 어깨에 짊어지셨네 憂深民國荷雙肩
지극한 은혜 공이 가시어 갚을 길이 없으니 至恩莫報公辭去
부모님 여윈 것 같이 멍하기만 하다네 如失嚴慈却惘然
유장영(柳長榮)35)
慶尙北道 靑松郡 巴川面事務所
문무의 재주를 갖추시고 영재 가운데서도 빼어나신 이여 才全文武出群英
32) 1873년생.
33) 團練의 기원은 당(唐)나라 때까지 올라간다. 당나라 때의 상비군의 보조로서 조직한 민병을 단결병(團結兵)또는 단련병(團練兵)이라 하여서, 지방장관이 겸임하는 단련사의 통솔을 받도록 하였다. 당나라 후기 절도사(節度使)들이 군벌이 될 때, 그 군벌군의 구성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조선을 일본의 지방으로,총독을 단련사로 본 듯하다.
34) '시경'의 甘棠편을 말한 것으로 주공의 정치를 찬미한 시이다.
35) 파천면장(1936~1941년). 안동 독립운동가 700인(현재)에 등재되어 있다.
장월(杖鉞)을 지니시고 조선으로 오시어 동량이 되시었네36) 杖鉞西來爲國楨
일편단심의 뜨거운 충정으로 황은의 돌보심에 보답하시고 一片精忠酬聖眷
칠년간의 통치로 백성들과 장쾌하게 통하셨네 七年治化愜輿情
총력연맹의 결성을 발휘하셨고 發輝總力聯盟結
감격스럽게 징병제도 완성 하셨네 感激徵兵制度成
귀국선을 창망히 바라보다 문득 소원하나 있으니 悵望歸帆猶有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태평성세 이뤄주소서 再臨玆土做昇平
황석규(黃家錫圭)
平安南道 平壤府 文廟直員
계림에서의 치적, 공과 같은 이 드무니 鷄林治勣似公稀
내선융화에 일념 하여 중요정책 삼았네 一念融和秉要機
오늘날의 대동아 공영은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가? 此日共榮誰所賜
관민이 총독직을 물러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전송하네37) 官民惜別掛冠歸
은혜로운 정치 불공평하지 않고 또 정성을 다하시어 惠政無偏又盡誠
전 조선의 父老들 고상한 명성 우러러보네 全鮮父老仰高名
공이 오고 가심에 산에 쌓인 눈 많게도 적게도 느껴지듯 公來公去山輕重
눈 온 후의 청산도 또한 세상의 정리라네 雪後靑山亦世情
이태윤(李家泰潤)
江原道 鐵原郡 官田里
조선에 오신 뒤로 정부는 너그러워졌고 一自渡鮮府政寬
어지시다는 칭송 회자 되자 백성들 기뻐하였네 仁聲膾炙土民歡
갑자기 오늘 귀국하라는 명령을 받드시니 遽承今日還朝命
머무시는 것 어려우시겠지만 이별하긴 더 어렵네 留願誠難奉別難
36) 國楨은 國家의 棟梁으로 有用한 人才를 지칭한다.
37) 掛冠 : 漢의 王莽이 逢萌子를 죽이려하자 逢萌子는 화가 미치리라 생각하고 관을 풀어 東都城門에 걸어두고
가버렸다. '後漢書' 卷八十三 「逸民傳 逢萌傳」에 있다. 후에 관직을 버리고 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전성
되었다.
수원익제(水原翼齊)
咸鏡北道 鶴城郡 鶴東面 防洞
총독의 통치 금년이 7년 總督統治今七年
마침내 반도 안전하게 되었네 遂令半島就安全
총독의 5대 정책 중 농촌, 징병제, 의무 교육을 급무로 하시니 五綱急務農兵學
일본, 만주, 조선 한집처럼 기뻐하네 一室歡情日滿鮮
이별의 시문을 삼가 받들어 기념으로 남기며 槿奉別章留記念
돌아가는 수레를 따라 가고자하나 더 이상 인연이 아닌 것이 한스럽네 欲隨歸駕恨無緣
<출전 : 朝鮮儒道聯合會, '奉餞南總督閣下', 每日新報社, 1942년 11월 25일>
2) '봉전대야총재각하(奉餞大野總裁閣下)'(1942)
오노(大野) 전 정무총감 각하께서는 7년 동안 계시면서 오로지 救恤할 것만을 생각하셨고 백성들에게 덕혜를 남기신 것이 모든 이에게 기림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떠나가시는 길을 막으니38) 백성들의 정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유림들이 감사하고 흠모하는 뜻을 적어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바 없고 빌리기를 원하나 방도가 없는 사사로운 심정을 깃들입니다.
박상준(朴澤相駿)
京畿道 京城部 惠化町 10-7
정무총감에 있은 지 수 년 동안 身都政務幾多年
(시정은) 정도에도 합하고 권도(權道)에도 합하셨지 動合其經又合權
예로 직원들을 거느리며 자랑하는 기색조차 없었으니 禮率群工無衒色
귀국할 때 되어서야 시대의 현자라는 것 알겠네 歸時方識在時賢
38) 훌륭한 벼슬아치가 離職 시에 백성들이 만류함을 지칭한다.
唐나라 李公佐의 「南柯太守傳」에 ‘生因請罷郡, 護喪赴國. …… 生哀慟發引, 威儀在途, 男女叫號, 人吏奠饌,攀轅遮道者不.’
한상룡(韓相龍)
京畿道 京城府 嘉會町 178
극심한 업무에 쉬지도 못했건만 시간은 벌써 흘렀고 劇務難閑歲易過
5대 연성책(鍊成策)39) 마치지 못하셨으니 국민들 어찌하리? 鍊成未盡奈民何
배에 올라 뒤돌아보시니 登船回首應怊悵
나와 여러분 중 누가 더 섭섭하겠는가라고 묻는 듯하네 較我輿情孰最多
유진찬(兪鎭贊)
京畿道 京城府 忠信町 43
純和하신 도량에 다시 仁溫하기까지 하시며 純和器度復仁溫
치밀하게40) 보좌 하신데다가 덕성까지 갖추셨네 協贊謨猷德意存
오늘 귀국하시는 것을 백성들 애석해하니 此日人民皆惜去
정치에 은혜 많이 베푸셨음을 이제야 알겠네 從知爲政已多恩
왕사(王事)에 근로하신 것 수년 동안 勤勞王事幾多時
유림들 쇠잔해진 것 일으켜 세우셨다네 且向儒林欲起衰
칠 년 동안 한성을 객사로 여겼지만 七載漢城如逆旅
이 땅을 떠나는 마음은 울적 하시리라 應從此地遠紆思
이대영(駒城大榮)
京畿道 京城府 明倫町 3-53
칠년 정무 일마다 공평하시어 七年政務務公平
온 나라 온 백성 찬양 노래 하네 匝域謳歌洽衆情
전송하며 마시는 한 잔의 술 飮餞都門一杯水
맑기가 어찌 우리 총재님만큼 하리오 水淸何似我公淸
유림들을 살피시어 현자를 추천하셨건만 載量儒道共推賢
중도에 이별할 줄 어찌 알았으리오 何意中途遽別筵
산천은 막지만 마음은 막히지 않으리니 阻是山川心不阻
지침 날마다 보내주소서 指針應有日相連
39) 미나미 총독이 1937년 통치의 기본 방책으로 5대 정강을 내걸었는데 1) 國體明徵, 2) 鮮滿一如, 3) 敎學振興,
4) 農工竝進, 5) 庶政刷新이 그것이다.
40) 深謀遠猷로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심원한 것을 지칭한다. ꡔ晉書ꡕ 卷六 「元帝紀」 ‘陛下明並日月, 無幽不燭, 深
謀遠猷, 出自胸懷. 亦作深謀遠慮, 深圖遠慮.’
이경식(李敬植)
京畿道 京城府 嘉會町 177-4
성심으로 보좌한 몇 년 동안 殫誠佐貳幾光陰
어려운 시국을 맞아 깊고 얕음에 맞춰 임하셨네41) 接應時艱適淺深
우리의 정신을 내선일체로 귀착하게 이끄셨으니 導我精神歸一體
우민(憂民)하는 마음이 곧 보국하는 충정이었네 憂民心是報君心
윤치오(尹致旿)
京畿道 京城府 安國町
① 태평성세 동방에서 봉황이 나서 盛世東方出鳳凰
칠 년 동안 청구(靑邱)에서 덕(德)을 휘날렸다네 靑邱七載德輝揚
공을 이루고 떠나가시는 모습 누구와 비슷한가 功成身退誰相似
녹야당(綠野堂)42)에서 풍류 즐기는 배도(裵度)43)와 같다네 裵相風流綠野堂
② 오노(大野)총재께서 休言今貳相
정무총감 자리를 등한시 했다고 말하지 마오 政職等閑來
칠 년 동안 온 마음 고달프게 하셨기에 七禩一心瘁
사방 산야가 개간된 것이라네 四方山野開
윤병오(尹城炳皓)
京畿道 京城府 明倫町 3-53
오신다고 노래 부르던 것이 어제 같은데 來暮歌還似隔辰
돌아가신다고 하니 도성 사람들 동요하네 歸朝報忽動城闉
관사를 여관으로 여기고 官舍已知如逆旅
애민의 유풍만을 백성에게 남기셨다네 只看遺愛在斯民
41) 淺深의 출전은 '論語' 권7, ‘深則厲, 淺則揭’이다.
42) 綠野堂은 당 나라 현상(賢相) 배도(裵度)의 별장이다.
43) 裵度의 자는 중립(中立). 시호는 문충(文忠). 산시성(山西省) 출생이다. 815년 살해된 재상 무원형(武元衡)을대신하여 중서시랑(中書侍郞)·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 재상)가 된 뒤 절도사를 억압하고, 환관(宦官)에 대해서도 강경책을 취하여 헌종(憲宗)·목종(穆宗)·경종(敬宗)·문종(文宗)의 4조(朝)에 걸쳐 활약하였다. 시인 백낙천(白樂天)과 자기의 별장인 녹야당(綠野堂)에서 함께 풍류를 즐겼다.
김성진(金誠鎭)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2-20
전심으로 보좌하며 천황의 은혜 펼치시어 殫誠佐政布皇恩
근역(槿域)의 정원에 동종(同種)44)의 나무 자라나는 거 보게 했네 槿域看同種樹園
겨우 꽃만 피고 열매 못 맺었다 한탄하지 말길 休恨纔花終未實
전공(全功)한 이45) 원래 맡은 것은 뿌리를 배양하는 것이었다네 全功原屬始培根
이명세(春山明世)
京畿道 京城府 北阿峴町 1-61
단정히 보좌하시며 생각은 주밀하셨는데46) 端居貳席慮沈深
하물며 지금처럼 환란의 때를 다시 만남에랴 況復時艱際似今
조치하고 방책을 따르심이 모두 적절하였으니 施措隨方俱得便
구군(寇君)47)막아섰던 마음과 한가지라네 寇君借願一般心
안인식(安寅植)
京畿道 京城府 明倫町 3-4
다방면에 교육과 정책으로 경륜하시니 萬般治敎係經綸
근역의 산하는 면목이 새로워졌네 槿域山河面目新
오래도록 유림에게 추앙되고 존중되시었으니 久擬士林推仰重
공(公)이 돌아가시면 누구와 더불어 명륜을 논하리오 公歸誰與說明倫
심형진(沈衡鎭)
京畿道 京城府 花洞町
빛나는 옥절(玉節)48)받아 조선에 부임하시어 玉節煌煌駐我鄕
천황의 은정(恩政) 베푼 지 7년 宣布皇化七星霜
44) 同根同祖論을 가리킨다.
45) 全功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사공(事功)을 말한다
46) 沈深은 周密하게 完備된 것을 말한다. '漢書' 卷八十六 「王嘉傳」 ‘相計謀深沉, 譚頗知雅文.’
47) 지방관의 유임(留任)을 열망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借寇는 곧 구순(寇恂)을 빈다는 뜻으로, 후한(後漢) 때 구순이라는 사람이 어느 지방에 가서 선정을 베풀고 기한이 차서 그곳을 떠나게 되자 백성들이 길을 막고 말하기를 “구군(寇君)을 1년만 더 빌기를 바란다.”며 섭섭해 했다는 고사이다. '後漢書' 寇恂列傳.
48) 玉節은 옥으로 만든 부신(符信)으로 예전에 관직을 받을 때에 증서로서 받았다.
총독을 보좌하여 계책도 주밀하셨고 身任輔政謀猷密
시정안은 훌륭도 하시었네 意在圖治思慮長
떠나시지만 남기고 가는 공덕은 커 一去猶留功績大
만 백성들 다투어 이름 찬송하네 萬人爭誦姓名香
어스레한 저물녁, 흙먼지 암담한 데에 출발하시니 行塵黯淡斜陽暮
백악산만 유독 푸르구나 白岳山光獨自靑
장행원(張本行遠)
京城府 孔德町 175-208
수레 앞에 누워 부질없이 외쳐보지만 머무르지 못하시기에 臥轍空歎不得留
공덕송을 부르고 또 부르나이다49) 只將功德頌千秋
經濟하신 것, 고금의 누구와 비슷한가 古今經濟云誰似
소하(蕭何),50) 조참(曹參)51)도 선수를 양보할 것이라네 政是蕭曹讓一頭
이승근(牧山承瑾)
京城府 仁寺町 230
봄 바람 대 평원에 불어와 온갖 만물에 두루 미치더니 春風大野遍容物
어찌 동군(東君)과 같이 짐을 싸시는가? 奈與東君幷束裝
49) 千秋는 오래고 긴 세월 또는 먼 미래를 말한다.
50) 소하 (蕭何, ?~BC 193)는 江蘇省] 패군(沛郡) 풍현(豊縣) 출생이다. 한신(韓信)·장량(張良)·조참(曹參)과 함께 고조의 개국공신이다. 진(秦)나라의 하급관리로 있으면서, 일찍이 고조 유방이 무위무관(無位無官)일 때부터 접촉을 가졌다. 유방이 진나라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종족 수십 명을 거느리고 객원으로서 따르며모신(謀臣)으로 활약하였다.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에 입성하자 진나라 승상부(丞相府)의 도적문서(圖籍文書)를 입수하여 한(漢)나라 왕조 경영의 기초를 다졌다.
한나라 유방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싸움에서는 관중(關中)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했으므로, 고조가 즉위할 때에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으뜸가는 공신이라 하여 찬후(酇侯)로 봉해지고 식읍(食邑) 7,000호를 하사받았으며, 그 일족 수십 명도 각각 식읍을 받았다. 뒤에 한신 등의 반란을 평정하고 최고의 상국(相國)에 제수되었다. 재상 시절 진나라의 법률을 취사(取捨)하여 '구장률(九章律)'을 편찬하였다.
51) 曹參(?~B.C.190)은 패군(沛郡 : 江蘇省) 출생이다 원래 진(秦)나라의 옥리(獄吏)였으나, 유방(劉邦)이 거병(擧兵)하자 그를 따라 한신(韓信)과 더불어 주로 군사면에서 활약하였다. 몸에 70여 군데의 상처가 있으면서도진군을 공략하여 한(漢)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후에는 평양후(平陽侯)로 책봉되고, 그 후경포(黥布 : 英布)의 반란 등을 평정하였다. 고조가 죽은 뒤에는 공을 다투던 소하(肅何)의 추천으로 그 대신상국(相國 : 領議政)이 되어 혜제(惠帝)를 보필하였다. “소하는 정연한 법령을 만들고, 조참은 그를 이어받아 준수하며 청정한 정치를 하였다”는 뜻의 노래가 당시 시정에 있었다고 한다.
가뭄에 단비 생각 간절하듯이 念切旱餘作霖雨
공처럼 기량 큰 인재만을 바라나이다 惟公器宇適元良
대산춘강(大山春岡)
京畿道 京城府 阿峴町 1-231
정치가 물보다 맑기는 고금 간에 드문법 政淸於水古今稀
역사에 기록되어 백년토록 빛나리라 史筆人間百世輝
근역의 백성들 복도 없어 槿域黎民無分福
우리 大野총재 배타고 가시는 것 전별이나 한다네 征輈謹餞我公歸
서하영채(西河瑛采)
京畿道 開城府 滿月町
반도의 유학 오래도록 흥기치 못하다가 半島儒風久未興
공께서 오신 후에 새롭게 번성했네 惟公來後學新增
한과 당의 일월이 예전 그대로 빛나게 되었고 漢唐日月依然臨
추(鄒)와 노(魯)의 강산이 황홀하게 재현되었다네 鄒魯江山怳若登
6·7년간 훌륭한 업적 이루시어 六七年間成美績
3천리에 상서로움 드리우셨네 三千里內著休徵
오늘 아침 갑자기 이별하시니 今朝一別何其遽
격앙하는 마음 아득히 꿈속에서나 뵈어야하네 景仰悠悠夢裡憑
덕촌응렬(德村應烈)
京畿道 高陽郡 碧蹄面 奈遊里
정치는 두루 미치고 백성은 교화 되었으니 누구의 공인가 政通人化是誰功
조야(朝野)가 모두 오노공(大野公)이라 말하네 朝野咸稱大野公
통치를 온전히 맡으셨으니 멀리는 가지 마소서 全任統治須不遠
부상(扶桑)의 상서로운 욱일(旭日)이 근역을 붉게 물들게 하시길 扶桑瑞旭翠槿紅
덕산재화(德山在和)
京畿道 龍仁郡 蒲谷面 前岱里
농업, 공업, 교육을 혁신시키고자 農工敎學日惟新
밤낮으로 부지런히 자기 몸도 돌보지 않으셨네 宵旰孜孜不顧身
남기고 가시는 유풍과 공덕은 다 적을 수도 없이 많으나 餘烈遺風難盡記
황국신민화가 으뜸이라네 化民皇國大精神
민영의(閔泳義)
京畿道 龍仁郡 龍仁面 麻坪里
총재께선 근역에 당연한 일을 시행하시며 總裁槿域得其宜
일시동인(一視同仁)하기를 기약하셨네 一視同仁曾所期
공을 이루었으니 응당 용퇴해야 함을 알지만 勇退雖知功就日
우리들은 이제부터 누구를 다시 의지하리오 群生自此更依誰
김양한(金亮漢)
京畿道 楊州郡 瓦阜面 德沼里
칠 년 동안 통치하시며 공평하게 하시어 七歲治政克準平
찬송의 노래 길을 따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네 頌聲載路口碑成
하루 아침에 관직을 그만두고 동쪽으로 가시는 오늘 一朝解紱歸東日
만 리나 되는 부상(扶桑)으로 떠나시니 가슴 아프네 萬里扶桑悵送迎
대산청의(大山淸毅)
京畿道 平澤郡 平澤邑
정치는 옛 제도를 따르고52) 庶政率由舊
백성에게는 중용의 도로 임하셨다네 莅民用以中
존황(尊皇)하여 국체를 명징하시고 尊皇明國體
유학을 숭상할 것을 강론하셨네 講道尙儒風
시국이 어렵자 몸과 마음 다하며 時艱惟盡瘁
임무 막중해도 자기 공이라 떠벌리지 않더니 任重不言功
공께선 은혜를 입어 이제야 일에서 풀려나시지만 承銀初解職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 끝이 없다네 惜別意無窮
52) '詩經' 「大雅生民之什」 「假樂」에 ‘不愆不忘 率由舊章 賦也’라는 구절이 있다.
광촌술부(廣村述夫)
京畿道 始興郡 西面 駕鶴里
부임하신 이래 6년간 인정을 베푸시니 下車六載施仁政
보좌하여 다스리신 신이한 공덕 널리까지 미치었네 佐理神功普及之
가신 후에 조선민들 모두 눈물 흘리리니 去後鮮人皆墮淚
어찌 강동의 羊祜 비석만 부러워 하리오53) 江東何獨羨羊碑
공성학(孔聖學)
京畿道 開城府 北本町
유림을 흥성시킨 공덕은 전수자(前修者)를 이은 것이오, 興儒功績繼前修
칠년 동안 백성들 송가를 부른 일이 얼마나 많던가 七載幾多民頌謳
나라 밖에선 대장으로 큰 지략을 펼치셨고 閫外元戎宣大略
막사 안에서 고원한 선비로 훌륭한 계책 운용하셨네 幄中高士運良籌
전쟁과 재앙의 구름이 끼는 동양의 오늘이여 戰雲劫雨東洋日
유학의 문풍이 불어오는 반도의 오늘이여 學海文風半島秋
만 리 먼 곳으로 돌아가시는 것 잡을 수 없어 萬里歸旋留不得
멀리서 부상을 바라보며 서글퍼할 뿐이네 扶桑遙望黯然愁
죽성제봉(竹城濟鳳)
京城府 西大門町
유림을 공경하신지 이미 몇 년54) 儒林奉戴已多年
이별의 시 전함에 문득 서글퍼지네55) 祖餞河梁立悵然
삼천리를 다스리던 명성 治聲槿域三千里
입에서 입으로 영원토록 전해지리라 萬口成碑永世傳
53) 羊祜의 비석 : 진(晉) 나라 태산(泰山) 남성의 사람. 양속(羊續)의 손자로 자는 숙자(叔子). 비서감이 되고,무제가 즉위하자 상서우복야에 오르고 형주(荊州) 제군사(諸軍事)를 도독(都督)했다. 위에 입조하여 오 나라 치는 계책을 진술하였다. 죽어서 태부(太傅)를 증직 받았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54) 1939년 유도연합회 회장에 오노(大野)정무총감이 취임 하였다.
55) 하량(河梁)은 하수를 건너지른 다리인데, 한(漢)의 이릉(李陵)이 소무(蘇武)와 작별하면서 <하량별(河梁別)>이란 시를 썼었다. '漢書' 李陵傳.
조순원(趙洵元)
京城府 苑西町
은정을 베푸신지 올해로 7년 宣恩今七載
온갖 제도 시대와 더불어 혁신 되었네 百度與時新
슬프구나 성남로여 怊悵城南路
관민이 하나되어 전송하고 있구나 官民奉餞辰
공성초(檜原聖初)56)
京畿道 開城府 北本町
유도와 조선유도연합회를 진흥 시키시어 振興儒道共聯盟
반도에 문풍이 울연(蔚然)히 일어났네 半島文風起蔚然
갑자기 오늘 아침 이별하기에 不意今朝旋惜別
고개 돌려 일본을 바라봄에 서운한 맘 끝이 없구나57) 東瀛回首悵無邊
남석우(南錫祐)
京畿道 京城府 安岩町 142-16
조선을 다스리는 공적을 쌓느라 심신이 피곤해지셨으니 治鮮政積瘁心神
총독을 보좌함에 공 같은 이 몇 명이나 있으리오 佐貳如公幾有人
마침내 머물지 않고 가신다하니58) 至竟行軒留不駐
비록 저를 아시지는 못하지만 (슬퍼) 눈물 흘리나이다59) 縱非知遇亦沾巾
정낙붕(東村樂鵬)
京畿道 利川郡 長湖院
유도가 오래도록 적막하더니 儒道久寂寞
공이 오시자 다시 진흥되었네 公來復振興
56) 孔聖初. 조선유도연합회 참사.
57) 東瀛은 일본을 지칭한다.
58) 行軒은 고관(高官)이 머무르는 곳. 즉 공관(公館)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고관을 일컬었다
59) 沾巾은 눈물이 옷과 수건을 적시는 것으로 눈물이 비오듯 내리는 것을 형용한다. 文選에 張衡의 四愁詩四首
之四 중에 ‘我所思兮在雁門, 欲往從之雪紛紛, 側身北望涕沾巾’이라 하였고 唐의 杜審言이 지은 和晉陵陸丞早春遊望詩에 ‘勿聞歌古調, 歸思欲沾巾’이라는 구절이 있다.
다시 군자의 정치 펼치셨으니 更宣君子政
잊고자하더라도 잊히지 않을 것이네 欲諼實難能
윤병철(尹秉哲)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8-9
천성은 인자하시고 평생도 평온하셨지 仁慈天性穩平生
황은을 선포하시며 공적도 이루시었네 宣布皇恩績用成
일억이 한마음으로 무운장구를 기원하고 一億同心祈武運
삼천리 반도에는 문명이 진작되었네 三千半島振文明
이곳에 오래도록 계시길 바라지만 願言長得斯邦住
대장기 돌아서 가버리니 어찌 하오리까? 無奈遄看旋旆行
이별을 아쉬워하며 관민들 모두 서글퍼하고 惜別官民深感激
거듭 이별의 노래 부르며 아쉬운 정 다하네60) 驪驅三疊悵然情
민건식(閔原健植)
京畿道 京城府 大東斯文會
번민(藩民)이 명을 받들어 일시에 귀의 하였더니, 藩民承命一時歸
그리는 정 아득한데 바다 길 멀기만 하구나61) 雲樹茫茫海路迷
보국하는 백성들 정성으로 힘을 다하였고 報國人群誠盡力
종군하는 자제들 기쁜 빛을 띠었지 從軍子弟喜生輝
인자하고 넓은 도량은 천불(千佛)과 같았고 慈仁弘量容千佛
보좌하신 탁월한 힘은 만기(萬機)를 통솔하였다네 協贊奇力總萬機
성전(聖戰)이 발발하자 수고로이 힘쓰시니 聖戰由來勞務事
이 마음 시종일관 길이 어긋나지 마소서 此心終始永無違
이근옥(李根沃)
京畿道 抱川郡 蘇屹面 梨谷里
유림이 다행히 총재에게 힘 입어 儒林幸賴總裁力
60) 驪駒의 誤字이다. 옛날 사람들이 부른 이별 노래로 ‘驪駒在門’이라 하여 붕우 간에 작별을 표시한다.將分別.漢書 卷八十八 「儒林傳 王式傳」에 歌驪駒句아래 文穎의 注를 인용하여 ‘其辭云驪駒在門, 僕夫具存 ; 驪駒在路, 僕夫整駕也’라 설명하였다.
61) 雲樹는 운수지회(雲樹之懷)의 줄인 말로 친구 생각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나오는 “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는 구절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도가 예전처럼 크게 천명 되었다네 斯道依然大闡明
우리를 버리고 오늘, 어디로 가십니까? 捨我今朝何處去
바다 건너 만리나 되는 도쿄라 하시네 海雲萬里是東京
윤정현(尹定鉉)62)
全羅南道 海南郡 海南面 南蓮里
한강 가에 나부끼는 깃발은 보랏빛 연기를 떨치는데 漢上旌旗拂紫烟
성안의 모든 사녀들 눈물을 뚝뚝 흘리네 滿城士女淚涓涓
송덕가는 청구에 넘쳐나는데 頌聲洋溢靑邱上
귀국선은 아득히 현해탄을 건너는구나 歸帆渺茫玄海邊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기르는데 성의를 간절히 하였고 愛國養民誠意切
정무총감으로 교화를 베푸시어 공훈을 알리셨다네63) 分憂宣化業勳傳
더욱 승진하시고 천황의 조서를 받으시어 願將加秩承恩詔
다시 부귀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이곳에 오시어 옛날을 잇기를 바라나이다64) 再任楊州繼昔年
나일봉(羅一鳳)65)
平安南道 平壤府 大察里
하루 아침에 정무총감을 그만두시고 여구가(驪駒歌)를 부르며 떠나가시니 一朝休政唱驪歌
반도의 관민들 많이들 실망하네 半島官民失望多
등왕각에 불었던 행운의 바람이 어느 때에66) 滕閣好風何日至
삼천리 반도에 불어와 은파(恩波)넘치게 할까? 三千里境漲恩波
62) 1882년생. 전남 해남 출신. 전남 도평의회원·도회의원(1920·1930·1933), 중추원참의(주임관대우, 1926.2.17~
1929.2.16). 전남지역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1941).
63) 分憂는 천자(天子)의 근심을 나눈다는 뜻으로, ‘지방관’을 달리 이르던 말이다. 여기서는 정무총감직을 말한다.
64) 楊州鶴의 고사를 말한다. 소식의 <녹균헌시(綠筠軒詩)> 중의 “世間那有楊州鶴”의 소주(小註)에 “腰帶十萬貫駕鶴上楊州”라는 말이 보인다.
65) 1871년생. 평남 중화 출신. 호는 묵헌(黙軒). 1910년 일본조합기독교회에 입교.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 1914년에는 일본 조합교회파(組合敎會派) 기성교회(箕城敎會) 주임목사로 활동. 1920년에 선우순(鮮于金筍) 등과 함께 평안도 지역의 독립사상을 파괴할 목적으로 대동동지회(大東同志會)를 조직. 1932년부터 1935년까지 경학원 강사. 1936년부터 1939년까지 경학원 사성직에 있으면서 '경학원 잡지(經學院雜誌)'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 명륜학원 간사.
66) 滕王閣을 말한다. 왕발이 순풍을 타고 등왕각에 이르러보니 都督 閻公의 부임연이 있었다. 왕발은 이곳에서<등왕각서>를 지었다.
이경구(木子鏡龜)
平安南道 德川郡 城陽面 蓮塘里
7년간 주야로 근무하시니 晝夜勤勞七載間
조선 통치의 공적 산처럼 쌓였네 治鮮良績積如山
갑자기 물러난다 하시니 붙잡을 방법이 없고 遽然告退留無計
이별 후 오직 바라는 건 다시 돌아오시는 것이라네 餞後惟望去復還
추산의식(秋山義植)
江原道 原州郡 文幕面 文幕里
오실 땐 얼마나 진중하셨나, 가실 땐 어찌 이리 급하신가 來何珍重去何忙
우뚝한 선정은 흩어져 잊혀지지 않으리니 善政巍巍不散忘
길을 가로막고선 이천 삼백만 조선민이여! 遮路二千三百萬
애를 녹이는 다리 건너가(소혼교?) 곧 시모노세키의 바다라 消魂橋是馬關洋
수원익제(水原翼齊)
咸鏡北道 鶴城郡 鶴東面 防洞
정무총감께서 취임하시니 정치가 맑아져 政總就任政治淸
전 조선민들 모두 환영하였네 全鮮人物共歡迎
칠년간 널리 공학과 사학을 개설하시고 七年廣設公私學
팔도 전역에 지원병제 실시 하시었네 八域當徵志願兵
아녀자와 아이들 모두 송덕가를 부르나니 婦孺猶能歌頌德
관민들 누가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으리오 官民孰不惜離情
떠나가는 말고삐를 잡고 만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네 征驂欲挽留不得
저 구름 어느 곳으로 흘러 갈까? 바로 천황의 수도라네 何處蓬雲是帝京
<출전 : 朝鮮儒道聯合會, '奉餞大野總裁閣下', 每日新報社, 1942년 11월 25일>
2. '축징병제실시(祝徵兵制實施)'(1943)
조선에서 징병제를 실시하는 것은 진실로 천황 폐하께서 평등하게 대우하시는 은택에서 나온 것이니 백성 된 자 누가 기뻐 박수치고 감격하며 보답하려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제도나 의무는 철저히 인식하지 못하면 진심으로 실천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덕의를 선포할 때에 고무하고 진작시킬 방법은 심신을 흥기시키고 성정(性情)을 감발(感發)시키어 무젓어 절로 찬탄하게 하는 것을 넘지 않는다.
마음에서 발동하여 말로 형용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요체로 하여 ‘축징병제실시’를 제목으로 한시를광범위하게 모집하니 각도의 유림들이 투고한 것이 수천 수가 되었다. 그중에 우수한 것을 뽑아보니총 160수가 되었다.
책 한권으로 엮어 천황의 은혜 봉축하며 혜택 영구하리라고 노래하여 기념한다.
박상준(朴澤相駿)
京畿道 京城部 惠化町 10-7
찬란한 태양 골짜기 그늘을 깨뜨리듯 陽運昭回破谷陰
신징병제도 사람들 깊이 감동시키네 徵兵新制入人深
전선의 군인들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非因戰線添丁額
진실로 은혜를 표출해 자식 된 자의 마음 보이고 싶어서라네 亶出恩綸視子心
조금이라도 은혜 갚고자 한다면 칼을 잡고 欲報涓埃宜蹈刀
누차 단련하여 임김(袵金)해야하리라 佇經鍛鍊始袵金
세간에서 어찌 영광스러운 일을 막으리오 世間何限光榮事
반도의 지금이 최고의 상황이라네 最上無如半島今
이대영(駒城大榮)
京畿道 京城府 明倫町 3-53
어진 하늘이 내리신 비, 먼 곳이나 가까운 곳 고르게 적시어 仁天雨露遐邇均
광명해진 반도에 징병제 새로 실시 하시네 半島光明兵制新
사해가 다 같이 둥근달을 보듯 四海同看圓滿月
만민들 봄이 된 걸 즐거워하듯 萬人自樂發生春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 대적할 이 없으니 衝霄氣壯應無敵
보국의 깊은 정성 각각 분발해서라네 報國誠深各奮身
청년의 임무 중함을 아는가 知否靑年任責重
영광스럽게 천황의 교화 실천할 가장 좋을 때라네 存榮聖化際昌辰
이경식(李敬植)
京畿道 京城府 嘉會町 177-4
은혜로이 반도에 징병제를 실시하시니 恩制新徵半島兵
모두 환호하고 감격해 하네 歡呼感激一般情
몸과 마음을 다해 보국하리니 彈誠全力宜圖報
내 창과 방패를 손질해 그대에게 주노라 修我戈矛與子行
김성진(金誠鎭)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2-20
징병제를 실시하는 반도는 봄이라 徵起兵前半島春
천황의 은혜 (內地 朝鮮 구별 없이)모두 고르시네 皇天優渥普施均
이제부터 군인이 되어야67) 從今自許干城用
진정한 제국의 국민이 되는 것이네 然後眞成帝國民
그대 동포들 의로운 기상 일어나게 하여 與子同袍增義氣
칼 위에 충군의 정신 더하여 임금에게 보답하라 答君一劒倍精神
불충과 無勇, 둘 다 효도가 아니니 不忠無勇俱非孝
힘써 전쟁하는 것도 원래 事親의 한가지라네 力戰原由善事親
윤병오(尹城炳皓)
京畿道 京城府 明倫町 3-53
위대하신68) 천황께선 일시동인(一視同仁)으로 교화하시어 一天皇化視同仁
반도민에게 징병제를 실시하시네 兵制將施半島民
모집 자격에 어찌 구별이 있으리오 應募論資寧有別
충성을 다해 나라를 지키는 데는 차이가 없는 것을 盡忠護國必無倫
힘써 훈련하면 마음과 몸이 건강해질 것이고 待年鍊苦身心健
날마다 부지런히 하면 면목이 새로워 질 것이리라 惟日勤孜面目新
이 같은 은혜입고 보답한다면 荷此恩榮思報答
산도 바다도 하찮게 여겨지리라 山輕海淺愧微塵
67) 干城은 적을 막고 나라를 보위하는 책임을 진 사람을 가리킨다. '詩經' 周南 兔罝 ‘赳赳武夫, 公侯干城. 幼學瓊林 卷一 武職類 : 大將曰干城, 武士曰武弁.’
68) 一天은 如天一樣大의 뜻으로 極大한 것을 형용한다. '醒世恆言' 卷七 「錢秀才錯占鳳凰儔」 ‘這做媒乃是冰人撮合, 一天好事.’
이명세(春山明世)
京畿道 京城府 北阿峴町 1-61
해마다 북벌에 또 남벌 連年北伐又南征
이제서야 반도에 징병제 실시되네 此際新徵半島兵
내외가 한결 같이 은혜를 입고 外內均霑恩一體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대의를 따라 하나 된 소리내네 後先相應義同聲
집안에선 아들 난 것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 在家倍覺生男重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하리 爲國當思死敵輕
우리들은 후회 없나니 無憾吾儕仍有願
하루빨리 전란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 되길 바랄뿐이라네 遄勘戰亂返昇平
정인서(鄭寅書)69)
京城府 社稷町
우리나라 문교를 숭상했으나 鰈域尙文敎
말폐(末弊)는 문약(文弱)에 빠진 것이라네 末弊陷文弱
이제부터 지기(志氣)를 닦아 從今勵志氣
전투에 임한다면 반드시 뛰는 듯 할 것이라네 臨陣須踊躍
병사가 나약하고 겁 많다면 爲兵有懦㥘
어찌 전쟁에서 패하지 않으리오 豈不僨軍事
반드시 무사도를 배워 須學武士道
위기에 처했을 땐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한다네 臨危不惜死
[응모하여 당선된 부(部)]
홍산은식(洪山殷植)
江原道 原州郡 神林驛前
반도에 징병제를 새로 분포하시니 新頒半島制徵兵
이제야 황민과 더불어 일체가 되겠구나 始與皇民一體成
정신을 단련하고 실력을 연마하여야지 宜鍊精神求實力
69) 명륜학원 강사(1936~1939).
의무만으로 하는 것은 빈 이름이라네 只擔義務近虛名
3세부터 기르고 가르치면 늦으리니, 知由敎養遲三歲
이생에서 영광되게 되는 것 보게 되면 다행이리라 見及光榮幸此生
우리 동양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으니 保我東洋有我在
무운(武運)을 타고 태평성세를 이루세 好憑武運致昇平
심형진(沈衡鎭)
京畿道 京城府 花洞町
부상(扶桑)이 온통 봄이니 근화(槿花)에도 꽃이 피네 扶桑春遍槿花叢
은우(恩雨) 내리시는 어진 하늘은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는도다 雨露仁天一視同
정의를 행하고자70) 군대의 항오(行伍)에 들어가 仗義身編行伍裹
사심을 없애고 마음을 비워 봉공하리라 滅私心罄奉公中
이같은 황은 어찌 보답하리오 皇恩如此那由報
신하의 도리 다른 게 아니라 충성을 다하는 것뿐 臣道無他在盡忠
청년들은 훈련일 기다리고 待到靑年精鍊日
이천만 백성들 기세등등하도다71) 二千萬衆是熊
조순원(趙洵元)
京城府 苑西町 72番地
청구(靑邱)에 징병제 시작되니 靑邱徵制時
정책을 낸 시기 꼭 들어맞는구나72) 廟算出機宜
오로지 일시동인(一視同仁) 하심에 감사하니 偏感同仁意
이제야 유용하게 써 주시겠구나 際玆有用時
조남준(趙南駿)
京城府 仁寺町 231番地
반도에 징병제 실시하는 거 왜이리 더딘지 徵兵半島制猶遲
3년을 더 기다린 후에 실시된다네73) 更待三年後實施
70) 仗義는 의리를 행동의 기본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71) 熊熊의 오자인 듯하다. 熊熊은 氣勢壯盛하는 모습이다. 史記 卷八十一 廉頗藺相如傳 索隱述贊 : 清飆凜凜,壯氣熊熊, 各竭誠義, 遞為雌雄. 唐 王光庭 奉和聖製送張說巡邊詩 : 虎貔紛儗儗, 河洛振熊熊.
72) 廟算은 廟略을 말하는데 조정에서 의결한 계책을 말한다.
종전에 징집하여 육성하지 않은 것 한스럽지만 只恨從前無敎養
어찌 오늘의 위난을 근심하리오 何憂際此有艱危
전장의 징소리 북소리 듣고 돌진하며 預聽金鼓翩翩舞
서로 군위(軍威)의 늠름함을 축하 하리란 것 눈에 선하네 相賀戎衣凜凜姿
황군에 견줘 더욱 용맹해야하거늘 勇比皇軍當倍售
혹시라도 시기를 놓칠까 두렵네 由吾或恐失機宜
조기택(趙基澤)
江原道 春川郡 春川邑
징병제 내년 봄에 실시된다하니 從今忠孝可全伸
황은 고루 적심에 감축드리네 馬革裹尸眞勝事
나라 안정시키는 일에 누군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지 않을 것이며74) 素志從期社稷臣
몸 바쳐 인(仁)을 이루지 않으리오75) 丹心願作干城將
마음은 군인이 되기를 바라며 致身無不欲成仁
의지는 사직의 신하 될 것을 약속한다네 靖國誰非爭取義
마원처럼 목숨 바쳐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요76) 感祝皇恩霑被均
이래야 충효도 제대로 한 것이네 徵兵只隔二年春
송산중렬(松山仲烈)
忠淸南道 洪城郡 金馬面 松江里
황도의 정신 대동아를 뚫고 皇道精神貫大東
온 천지를 대화혼(大和魂)으로 가득 채우네 擧天地在大和中
지인(至仁)으로 임하시어 은혜와 위용 둘 다 보이시며 至仁臨上恩威倂
일시동인(一視同仁)에 한 치도 차이 두지 않으시니 모두들 우러러 흠모하네 一視無間仰慕同
73) 1938년 육군특별지원병제도 실시 후 1942년 5월 8일에 징병제 실시를 1944년부터 할 것을 의결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74) ‘取義’는 '맹자' 고자장 상에 “삶도 내 하고 싶고 의도 내 하고 싶다. 두 가지를 겸할 수 없으면, 삶을 버리고의를 취할 것이다.(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는 맹자의 말에서 인용한것이다
75) ‘成仁’은 '논어' 위령공편에 “지사와 인인은 삶을 구해서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루는일이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에서 취하였다.
76) '史記' 卷86 「刺客列傳 論贊」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쓰러져 죽어 말가죽에 시체가 실려서 돌아와 땅에 묻히는 것이 마땅하다.(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裏尸還葬耳)”고 하였는데, 이후 나라를 위해 변방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비유로 이 말이 쓰이게 되었다. '後漢書'卷24 馬援傳.
역사에 이런 위업 있었다는 걸 들어 본적 없으니 史策未聞斯業績
모두 군인 되어 기꺼이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도다 干城多養好英雄
이제 신민의 소원 들어 주시어 如今得遂臣民願
혼과 기백에 무사의 기풍 갖추게 되었네 魂膽將看武士風
정석모(楓川碩謨)77)
全羅北道 全州府
이제부터 반도민 모두 징병되니 從此皆兵半島民
드넓은 하늘 분명 일시동인해서라네 廓然乾斷視同仁
죽음이 어찌 진정 우리가 갈 길이오마는 死能得所眞吾道
살아서 은혜를 모른다면 어떻게 사람이라 하리오 生不知恩可謂人
이 늙은이 징병의 의무할 수 없는 것 한스러우나 白首恨無酬義務
뜨거운 충정은 황국 신민의 정신을 관철하는데도 있으리라 丹忠亶在貫精神
팔굉(八紘)이 일가(一家)가 되는 날 八紘將見爲家日
궁궐을 향해78) 만춘수(萬春壽)를 노래하리라 齊向楓宸頌萬春
금산춘정(金山椿政)
江原道 鐵原邑 官田里
이 몸, 성인이 밝혀주시는 이때를 살아갈제 吾生生際聖明時
구제(舊制)를 대신해 신징병제 실시되네 兵制維新換舊規
무적의 황군이 됨에 宇內元無皇士敵
인간이 비로소 ‘국민’의 자격을 얻게 되는구나 人間始得國民資
황군의 기상, 서릿발처럼 파랗고 從軍氣凜凌霜柏
천황 섬기는 마음, 해를 쫓는 해바라기 같구나 事主丹心向日葵
청년들 서로 축하하며 靑少相逢相慶賀
서로서로 징병 적령기라 하네 君吾同是適齡期
77) 鄭碩謨(1871.2.30~?). 전북 전주 출신. 전북 도평의회원(전주, 1920). 중추원 참의(1933.6~1936.6). 시중회 평의
원(1934.11). 경학원 강사(1936~1939). 임전보국단 발기인(전북, 1941.10).
78) 楓宸은 朝廷을 가리킨다. 漢宮殿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楓宸이라 칭하였다. 明의 朱權 卓文君第一折 : 既不能彀曉謁楓宸入建章. 早難道暮登天子堂. 幼學瓊林 卷一 朝廷類 : 椒房是皇后所居, 楓宸乃人君所蒞. 或稱為楓陛.
장행원(張本行遠)
京城府 孔德町 175-208
깊으신 황은께서 일시동인하시어 皇恩優渥視同仁
징병제도 새로이 반포 하시네 一體徵兵制度新
소년이 연마하면 충용한 군사 되어 少壯練成忠勇士
길이 대화민이 되리라 永年涵養大和民
전란의 기운을 다 씻어내어 동양을 깨끗하게 하고79) 妖氛盡掃東洋淨
만국의 모여 회맹을 하리라 盟會如斯萬國臻
사해가 일가가 되면 영광 더욱 빛나리 四海爲家榮輝極
어진 하늘은 은혜로운 비로 신하된 자들 적시리 均天雨露洽臣隣
풍천명익(豊川明益)
忠淸南道 扶餘公立農業實修學校
현명하신 일시동인의 성지 一視同仁聖旨明
반도민을 이제야 징병하시네 遂令半島始徵兵
천황 위해 義勇으로 몸 바칠 것 서약하며 爲君義勇投身誓
보국의 충심을 피로 맹세하네 報國忠心以血盟
정신의 함양은 ‘지성’으로 精神涵養至誠足
체력의 건강은 ‘단련’으로 하리라 體力健康鍛鍊成
단연코 승리만이 있을 뿐 다른 것 없으니 斷然必勝無私念
죽음을 불사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출정하리라 效死忘生樂出征
월금형진(月金亨鎭)
慶尙北道 慶州郡 江西面 沙洞儒學硏究所 硏究生
요기를 소탕하려 오래도록 와신상담하며 誓蕩妖氛久臥薪
서슬 퍼런 창칼 전장에서 휘두르리라 다짐했다네80) 霜鋩幾擬試風塵
다행히 황군과 같은 行伍에 편성되니 如今幸得同編伍
강하고 정의로운 기개 더욱 새롭게 되리라 義膽剛腸一倍新
79) 妖氛은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말하며 戰亂을 비유한다. 唐나라 李白의 塞下曲六首之六에 ‘橫氣負勇氣, 一戰淨妖氛’라는 구절이 있다.
80) 風塵은 兵亂을 형용한다. 唐 杜甫 野望詩 : 海內風塵諸弟隔, 天涯涕淚一身遙.
김정호(金正浩)81)
京畿道 開城府 本町
성스럽고 자애로우신 덕성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시니 聖慈宣德制徵兵
오랜 동안 기원하던 소원 이루어져 감격스럽도다 感激多年祈願成
문과 무 둘다 양성해야한다는 것 장정(章程)에 실렸으니 武運倂進章程載
충효가 하나라는 의리 분명해지네 忠孝同歸義理明
여자는 온화하고 너그러워야하며82) 肯作雍容兒女態
남아는 발랄83)하게 떨쳐 일어나야 한다 하시네 快揚潑溂丈夫情
용감하게 출정하지 않는 것은 황국 신민의 길이 아니오, 出征無勇非皇道
호국의 군신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영웅이라네 護國軍神盡是英
송강세규(松岡世奎)
平安北道 龍川郡 北中面 龍洲洞
반도민도 국방을 분담하게 되었으니 半島分擔攻防役
환호성 속에 감사하는 마음 더욱 새롭구나 歡呼聲裏感心新
오늘은 이름 없는 민초지만 今朝草野無名輩
내일은 군대에 필요한 인재리라 明日軍門有用人
억조창생 모두 군인 되는 것은 참다운 이상이며 億兆皆兵眞理想
팔굉일우 하는 것은 위대한 정신이라 八紘爲宇大精神
바다와 같이 넓은 성은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聖恩如海何由報
붉은 충정으로 나라 위해 몸 바치는 것뿐이라네 只待丹衷殉國辰
남상익(南相翊)
忠淸北道 鎭川郡 鎭川面 邑內里
반도 청년 또한 의무병으로 참여하니 半島亦參義務兵
충성과 무용(武勇)으로 간성이 되리라 忠誠勇武作干城
81) 金正浩(1885∼?). 경제인. 경기도평의회원·도회의원(1927·1933). 시중회 평의원(1934.11). 중추원 참의(1935.4~
1938.4). 고려시보사(주식회사) 창립 및 취체역 사장(1935.7). 애국개성호 비용 1만 원 헌납(1937.7). 국민총력조선연맹 개성연맹 이사. 국방헌금 1만원 헌납(1941.12).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 대주주(3천주) 및 중역(1944.
10). 반민특위 체포(1949.2.21).
82) 雍容은 溫和하고 莊重며 從容하여 不迫한 모양을 말한다. ꡔ漢書ꡕ 卷六十四下 「王傳」 ‘遵遊自然之勢, 恬淡無為之場, 休徵自至, 壽考無疆, 雍容垂拱, 永永萬年. 大唐三藏取經詩話中 : 美女雍容, 人家髣.’
83) 潑溂는 潑剌의 誤記인 듯하다.
내선일체 이로부터 완성되리니 內鮮一體從玆遂
황은에 감격해 받들기를 민중들 하나같이 한다네 感戴皇恩衆庶情
양회철(梁會喆)84)
全羅南道 光山郡 林谷面
나라의 융성은 군사력에 있으니 國之隆盛在於兵
무운과 위엄을 떨침에 용감하고 또 날래야 한다네 揚武宣威勇且精
비록 예로부터 군인 양성 제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從古養成皆有制
지금까지도 요기(妖氣)가 말끔히 개지 않았네 況今氛祲未全晴
충성을 다하라고 청년대에게 부탁하노니85) 披肝寄語靑年隊
붉은 피로 한 맹세의 맘으로 적에게 달려가 쳐 없애라 赴敵期殫赤血誠
총독부에서 징병령 내기를 기다리지 말고 莫待廟堂徵發令
스스로 몸을 바쳐 간성이 되라 呈身自薦作干城
허정(許鼎)
咸鏡北道 城津府 雙浦町
반도의 우리도 황민이 되었으니 半島吾生亦化民
근왕(勤王)의 의무 이제 평등하게 실천하는구나 勤王義務是惟均
아름다운 명을 받들어 군역을 따라야만 하리니 奉承休命當從役
드넓은 은혜에 보답함에 어찌 몸을 아끼리오? 報答洪恩敢惜身
용기를 내어 간성(干城)이 된다면 若能賈勇干城作
역사에 새롭게 이름을 드리우리라 庶可垂名竹帛新
공영권을 만들려는 이때,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일이며 共榮在此及時雨
동아시아 일가족이 되면 온 천하는 봄과 같아지리라 東亞一家天下春
동촌중희(東村中熙)
咸鏡南道 高原郡 高原面 觀德里
징병제도 조선에 반포되니 惟玆責務誓完全
모든 정책 이제야 분명해지네 均視皇恩何以報
84) 1914년생. 본적은 전라남도. 판사(1949.12.19).
85) 披肝은 정성스레 대하며 忠貞을 두 번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宋나라 司馬光의 <體要疏>에 ‘雖訪問所不及,猶將披肝瀝膽, 以效其區區之忠. 亦作披瀝肝膽.’이라 하였다.
삼사십년동안 갈망했던 일이라 民族到今榮譽專
이천만 민중 평등해졌다 기뻐한다네 吾人自此負荷重
우리 민족 이제부터 중책을 짊어지니 二千萬衆喜無偏
우리 민족 지금에 이르러서야 진정 영예로워지리라 三四十年望若渴
일시동인 하시는 황은에 어찌 보답하리오 一體政謨始瞭然
이에 책무 완수 할 것을 맹세한다네 徵兵制度布朝鮮
박시양(朴始陽)
忠淸南道 禮山邑 禮山里
일시동인하시는 성덕 우뚝하심에 감동하며 同仁聖德感巍巍
북두성에 의지해 궁성요배 하나이다 起拜宮城北斗依
순국하려는 마음 금석같이 굳으니 効死精神金石重
대동아 공영을 만드는 전장의 승전 소식 날아옵니다 共榮消息羽書飛
만물에 춘풍 불어 모두 은택 미치니 萬物春風皆及澤
하늘의 해와 달처럼 고르게 빛납니다 一天日月不偏輝
높은 은혜에 보답하는 바로 오늘 報答鴻恩正今日
우리 청년들 거역하지 않길 경계하나이다 戒吾年少庶無違
국본세훈(國本世薰)
京畿道 抱川郡 郡內面 上城北里
우리 조선에 징병제 실시 결의하시니 決議徵兵施我鮮
골고루 천황의 은혜 적시어지리 均霑雨露戴仁天
사해 만방에 위엄을 떨쳐 풍진을 제거하려면 宣威四海風塵掃
3년간 강무(講武)해야 지략이 완비되리라 講武三年智略全
공을 세우고 개선하면 궁궐에 나갈 것이오 功若奏旋宜在殿
용맹히 향할 땐 적수가 없으리라 勇能所向更無前
충군애국을 평생의 일로 삼아 忠君愛國平生事
일편단심으로 매진하여 태양 같으신 천황을 봉공하라 一寸丹誠奉日懸
서하영채(西河瑛采)
京畿道 開城府 滿月町
숭고한 징병제 조선에 실시되니 崇高兵制施朝鮮
조칙을 내리신 황은에 감읍하네86) 感泣皇恩奉戴天
태어나선 몸 바쳐 나라에 보답하고 報國獻身生以後
죽기 전엔 심신이 다하도록 천황에게 충성해야 한다네 忠君盡瘁死之前
어지신 성덕께는 원래 대적할 자 없는 법이라 行仁聖德元無敵
민심은 의를 위해 떨쳐 일어나 총동원 되리라 奮義民心總動員
전 세계 지도 하나로 통합되리니 全幅輿圖歸一統
소화(昭和)의 무운 이제부터 천년만년 하리라 昭和武運萬斯年
윤병철(尹秉哲)
京畿道 京城府 桂洞町 8-9
서양을 정벌함은 우리 동아시아를 보존하기 위해 征西義保亞洲東
신민이 하나되어 모두 협력한다네 一體臣民協力同
오래도록 기다렸던 일 이제야 소원대로 되니87) 加額多年今副願
씩씩한 청년들 마침내 열렬히 일어선다네88) 摩拳壯士竟趍風
무운의 책략은 평화를 완수하기 위해서이니 武謨完遂平和裏
(대동아 공영권의)국책은 마침내 건설되리라 國策終成建設中
황은에 보답하고자 노력한다면89) 報答皇恩須戮力
반드시 기린각에 오르는 공훈 세우리라90) 必參麟閣古人功
이승근(李承瑾)
京畿道 京城府 仁寺町 23
국민의 의무는 모두 가벼이 여기기 어려운법 國民義務總難輕
병역의 의무는 삼대 의무 중 두 번째 의무라네 三大之中第二成
일시동인하시는 마음으로 황민화의 은혜 적셔주시니 一視同仁霑化雨
이 몸 천만번 죽더라도 간성이 되리라 此身萬死誓干城
86) 皇帝의 詔書를 시작하는 첫머리의 상용어구로 天子가 天命을 받들어 全國을 통치하는 것을 표시한다. 王世貞의 「鳴鳳記 第四十一」에 보면 ‘奉天承運皇帝詔曰, 繩愆糾繆.’이라는 구절이 있다.
87) 加額은 ㉠사람을 몹시 기다림을 말한다. 혹은 ㉡손을 머리에 얹어 慶幸, 感激을 표시한다는 뜻이다. '宋史'卷三三六 「司馬光傳」에 ‘衛士望見, 皆以手加額曰 : 此司馬相公也.’라 하였다. 여기서는 ㉠의 의미로 쓰였다.
88) 摩拳은 行動이 준비되었거나 무력을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혹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모양을 형용한다.
元나라 關漢卿의 單刀會 第三折 ‘但題起廝殺呵, 摩拳擦掌, 排戈甲, 列旗鎗, 各分戰場’라고 하였다.
89) 戮力는 合力, 努力을 말한다. 書經의 「湯誥」에 ‘聿求元聖, 與之戮力’라 하였고 南朝宋의 劉義慶이 지은 '世說新語'에 ‘當共戮力王室, 克復神州, 何至作楚囚相對?’라는 구절이 있다.
90) 麒麟閣은 공훈을 쌓은 것을 말한다. 한 선제(漢宣帝) 때 곽광(霍光)·병길(丙吉)·소무(蘇武) 등 11인의 공신의 상(像)을 그려 기린각에 걸어 두었던 것을 말한다. '漢書' 「蘇武傳」.
청년들 보니, 모두 정예로워91) 看來草木皆精銳
요마를 내좇아 (우리를) 놀래킨 것 다 없어리라 逐去妖魔盡駭驚
황은이 하늘처럼 드넓음을 아는가? 知否皇恩天與大
제군들은 필승으로 승평에 보답해야 하리라 諸君必勝答昇平
대산춘강(大山春岡)
京畿道 京城府 阿峴町 1-231
애국충군은 성심에서 나온 것 愛國忠君出自誠
청년들 몸과 마음, 일시에 다 바치려하네 靑年心血一時傾
무지한 나무꾼들 (전쟁을 대비한)장기책 이라하지만 頑芻擬以長期策
용사들의 (의지)만리장성보다 더 견고하다네 勇士堅於萬里城
바다를 건너 멀리까지 행군하는 것을 어찌 꺼리리오? 涉海何嫌行且遠
창을 베고 자지만 영예롭게 죽을 것만 맹세할 뿐이네 枕戈只誓死爲榮
비휴(豼貅)같은 병사들 넘치는 은혜에 헤엄치며92) 豼貅共沐洪恩下
천황의 威光을 받들어 팔굉(八紘)을 진동시켜라 奉答稜威振八紘
송산영태(松山永泰)
忠淸北道 堤川郡 邑部里
징병소식 우리 조선까지 미치니 徵兵消息曁吾東
천황께서 은혜로이 일시동인 하심에 황송하고 감격해하네 惶感天恩一視同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소원 이루게 되었으니93) 革可裏尸成素願
간담이 쏟아져 땅을 더럽히더라도 뜨거운 충성 맹세하리라94) 肝雖塗地誓丹忠
안문에서는 장성의 임무를 생각할 것이고95) 鴈門思荷長城任
91) 草木은 청년을 지칭한다.
92) 豼貅는 맹수의 이름인데 범과 같다고도 하고 곰 같다고도 하며, 옛날에 이것을 길들여 전쟁에 썼다고 한다.
93) 裏尸는 시체가 말 가죽에 싸이다는 뜻이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論贊」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쓰러져 죽어 말가죽에 시체가 실려서 돌아와 땅에 묻히는 것이 마땅하다.(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裏尸還葬耳)”고 하였는데, 이후 나라를 위해 변방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비유로 이 말이 쓰이게 되었다. '後漢書' 卷24 「馬援傳」.
94) 肝腦塗地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 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실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 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라고 하였다.
95) 鴈門은 地名이다. 山西省 代縣 西北에 위치하며 形勢가 雄險하여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혹은 西陘關
기린각에서는 세상을 평정하는 공로를 생각하리라 麟閣期圖曠世功
반도에서 붓을 버리고 칼을 택하여96) 半島誰生投筆記
막사에선 책략을 내고 갑옷을 두르고 출정하여 幄籌胸甲破西戎
서양 오랑캐를 무찌를 이는 누구인가?
<출전 : '祝徵兵制實施', 朝鮮儒道聯合會, 每日新報社, 1943년 1월 25일>
3. '유도(儒道)' 게재 친일논설 사례
1) 석진형(石鎭衡)
(1) 시대와 유교
[본문은 낭자(曩者)97) 전라남도 참여관 석진형 씨가 지방개량을 위하여 관내를 순회하다가 시(試)한 강연의 대요(大要)라]
제군이여. 본일(本日) 여기에 제군과 상회(相會)함을 얻었음은 진실로 영광인줄로 생각합니다.
본일의 강연회는 당초의 계획은 경성(京城) 경학원(經學院)에서 박학한 명사를 맞이하여 제군께 훌륭한 강연을 듣게 할 예정이었던바 형편에 의하여 본인과 같은 천견박식(淺見薄識)한 자가 대신하여 등단하였음은 제군께서는 오직 불행이신줄로 압니다마는 이점은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일의 회합에 대하여 군당국(郡當局)의 다후(多厚) 주선에 감사합니다. 제군에 대하여 일언을 드리려 함은 근래 군청 혹은 그 타 관청에서 내참(來參)을 청한 경우에 다소간 괴롭게 생각하시는 감이 있는 듯 하온대 이 변시(弁是) 양해(諒解)하시기를 바라나이다. 무릇 우리 인류가 이와 같이 다수로 임림총총(林林葱葱)98)하여 공동생활을 영위함에는 상호 의견을 교환하여 그 소견의 장처(長處)99)를 취하고 그 단처(短處)100)를 버림은 우리가 진보할 길을 도모하는 첫 순서인 줄로 사료(思料)하니, 그 길을 도모함에는 아무리 하여도 회합하기가 필요하외다. 관에서는 때때로 제위(諸位)에게 대하여 내참하기를 원이라고도 한다.
96) 문필을 그만두고 무예에 종사함을 말한다.
97) 지난 번.
98) 사물이 많이 모인 곳이나 모양을 뜻함.
99) 장점을 뜻함.
100) 단점을 뜻함.
함은 대개 이 의미로 나온 것인 즉 금일과 같은 경우 외에 다른 경우에도 관의 의사가 있는 바를 선의로 해석하시기를 희망하나이다.
또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언으로써 양해하시기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유림계(儒林界)에서는 종래로 관습에 의하여 유교 이외의 교에 대해서는 이단(異端)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을 듯 하온 바, 유림을본위로 생각하시는 때는 혹시 그러한 점이 있는지도 알 수 없으나 세계에 유교만 존재하면 모르거니와 여하간 유교 이외에 종교가 자고(自古)로 명백히 존재한 이상은 이러한 상태도 다소간 회득이치(會得以致)할 필요가 있는 줄로 생각하나이다.
이 의미로 말씀함은 혹은 다른 종교에 미치는 데가 있을지라도 저 사람은 강하게 이단을 말하여 우리에게 들리는 것인 줄로 짐작하시지 마시기를 희망합니다.
자기의
일을 능히 하려는 경우에는 지타(知他)의 필요가 있으니 옛 말에 말하기를 ‘지피이지기(知彼而知己)하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하였음은 이 일을 가리켜 말한 줄로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첫째로 유교는 어떠한 시대부터 조선에 들어 왔는가 함은 본인보다 제위가 한층 상세히 아실 것으로 생각하나 다음 차례에 의하여 간단히 그 경로를 말씀하려 하나이다.
유교라 하면 우리는 그 명칭을 익히 알되 타인종 즉 백인종과 같은 경우는 유교라 하면 이해하지 못하나 공자교(孔子敎)라 하면 능히 이해합니다. 즉 서양인들은 유교라고 하지 않고 공자교라고 하니 이에 대하여는 각색(各色) 이유가 있을 듯한데, 원래 유교라 부름은 공부자(孔夫子)께서 창설(創設)된 것이 아니요 그 원천은 삼황(三皇)오제(五帝)의 요순우탕(堯舜禹湯)의 시대부터 그 근원을 쌓아 온 것인듯한 대 그 후 주나라 시대에 이르러서 그 제도가 대진(大振)하였고 제반(諸般)이 찬연(燦然) 극비(極備)하였으되 혹은 유번(流煩)한 경향이 있는 듯 하나이다. 이 시대에 공자께서 노(魯)나라에서 탄생하셔서 시서(詩書)를 대산(大刪)101)하여 정리를 도모하신 동시에 천하를 철환(轍環)하사 이 도를 천명(闡明)으로써 스스로 포교를 하신 결과로 이 도(道)를 중흥하신 모양이 된 까닭으로 유교라면 곧 공자를 추모하며 공자라면 유교를 창설하신 것과 같은 관념을 더불어 한줄로 생각합니다. 이리하여서 서양인까지 유교라고 하지 않고 공자교라 하는 줄 아나이다.
유교가 조선에 들어왔음은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16년에 공자와 10철(十哲) 72제자의 초상(肖像)을 당시의 국자감(國子監)에 봉안(奉安)하였음을 시작으로 한 것이외다.
고려조에 이르러서 전조(前朝)의 제도를 습답(襲踏)하여 최고로 국자감에, 그 다음에는 경학(經學)이요, 구제(九齊) 최중(崔仲)이 건설한 것과 12도(徒) 12문신이 건설한 것과 각군(各郡)에는 향교, 촌락에는 서당 혹은 서방(書房)을 세워서 주로 경학을 수양함에는 서당과 서방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국자감에 이르게 한 터인데 중엽(中葉) 이후로 말엽(末葉)에 이르기까지 사이에는 불교가 성행할 사, 유교는 심히 부진하고 당시 충렬왕(忠烈王)시대에 유명하신 유신(儒臣) 안향(安珦)이란 양반은 이 상태를 탄식하여 영시(咏詩)한 것이 있으니 제위도 역시 상세히 알고 계신 줄로 생각하오나 잠시 말씀하면
향로처처개기불(香爐處處皆祈佛) 소관가가진사신(簫管家家盡祀神)
독유수간부자묘(獨有數間夫子廟) 만정춘초적무인(滿庭春草寂無人)
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이 시는 근근(僅僅)102) 28자로써 그 시대에 유교가 심히 쇠미(衰靡)하였던 상태
101) 산(刪) : 깎다, 삭제하다, 제하다, 정(定)하다.
를 표언(表言)한 것인 줄로 압니다. 즉 상구(上句)는 당시 불교 또는 기타 잡교가 성행된 상태를 표시하며 하구(下句)는 유교가 부진하여 문묘(文廟)가 적막(寂寞)하기에 무등(無等)103)하였던 모양을 표시한 것이외다.
나는 참여관(參與官)으로 본도(本道)에 도임(到任)한지 약 반년여에 불과하되 다행으로 각 군을 한번 순회한바 군읍(郡邑)에 이를 때마다 문묘에 참배하였습니다. 그 상태를 배관(拜觀)하오면…… 그 군명은 표시하기를 어려우나 대개 일반인 줄로 인정하였나이다……. 어떤 군을 일례로 말하면 때마침(時適)늦봄(晩春)이니 보리(麥)의 수확 때였습니다. 묘의 정문을 들어가면 대개 그 건축양식은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명륜당과 대성전(大成殿) 사이는 뜰인데 그 뜰에서 타맥(打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타맥하기는 한지(閑地) 이용법(利用法)으로는 좋을지는 몰라도 명륜 당상(明倫堂) 상상(床上) 또는 대성전의 연하(椽下)는 타작할 보릿단이 추적(推積)하여 완연히 창고가 된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하며, 동서재(東西齋)는 집 없는 빈자(無家貧者)의 임시 거처로 변하였고 정전(庭前)은 계우장(繫牛場)104)이 되어 그 분뇨(糞尿)와 맥간(麥稈)105)으로 퇴비사(堆肥舍)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실용적으로는 혹은 요령(要領)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지도 모르나 부근은 완전히 춘초(春草)로써 매몰되어 초동(樵童) 목수(牧叟)106)가 이리저리 꼴을 베니, 이 역시 실용적인지. 대성전에 이르러서야 수간(數間)을 거리를 두고 떨어진 계단아래에서 공부자(孔夫子) 신위(神位)에 대하여 참배를 마친 후 대성전의 내국(內局)을 배관(拜觀)하려고 문의 입구에 들어서 본즉 미취(黴臭)107)가 코를 찌르니 신위를 봉안(奉安)한 제상(際牀)등은 대개 비틀
어지고 제상 위에는 언제에 공찬(供饌)한 것인지 그 잔물(殘物)이 산재하였고, 그 사이에 또 무엇인지소타원형(小楕圓形)의 검은 알갱이가 산재함을 보니 즉 쥐똥이더이다.
제군이여, 전에 말씀한 안향이란 양반이 금일에 생존하였더라면 어떠한 시를 지으셨을지. 혹은 “가련석일명륜지(可憐昔日明倫地) 환작금시타맥장(換作今時打麥場)”이라 함과 같은 시를 지으셨을 터이요.
설마 이런 서투른 시는 짓지 아니할 지언즉 한층 형용하여 영음(咏吟)108)할 줄로 생각하나이다.
이상은 신라시대로부터 고려조에 이르기까지의 말씀이데, 그러면 이조(李朝)시대에는 어떻겠습니까.
(44~45쪽 누락)
사(事)가 원인이 되고 저승에서 이에 응당한 결과를 낳게 한다는 의미올시다.
가령 말씀하면 불교의 극락정토(極樂淨土)와 지옥설과 또는 예수교의 천국설과 같다 함이 이 의미가 아닌가 하나이다. 이와같은 의미 아래에 세상 학자가 종교라 하면 이생의 선행으로써 저승의 장래를 기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이에 유교란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제위가 아시는 바와 같이 내세(來世)에 대한 것에 언급할 바가없고 우리 인류가 이 세상에 있어서 일상적으로 밟아야 할 도(道)를 가르치는 것인 줄로 생각하나이다.
102) 겨우.
103) 그 이상 더할 수 없을 정도라는 뜻.
104) 소를 매어 놓은 곳.
105) 밀짚이나 보릿짚의 줄기를 뜻함.
106) 마소치는 늙은이를 뜻함.
107) 곰팡이 냄새를 뜻함.
108) 시를 읊다, 노래하다.
즉 인류에는 삼강(三綱)이 불가무(不可無)니 오륜(五倫)이 불가불유(不可不有)이니 하는 등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도를 가르치는 것인즉 종교가 아니고 오히려 한 도덕이라 이르겠습니다. 위의 두 가지 설(兩說)은 세상에서 흔히 틈(闖)109)한바 학자의 설(說)인 줄로 생각하는데 그 시비 여하는 다른 문제로 하고 나는 유교도 훌륭한 일종의 종교인 줄로 짐작(斟酌)하니, 그 이유는 얼마든지 있으나 생략하나이다.
셋째, 세계의 종교가 어떠한 상태로 있는가 함에 대하여 대강 말씀하고자 하나이다.
우선 우리는 세계의 종교를 관찰하기 전에 다소간 준비할 필요가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세계는 자못 큰 덩어리인즉 단지 보통의 장소와 보통의 육안으로 충분히 투견(透見)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집합한 이 장소를 큰 비행기로 삼아 또한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만리경(萬里鏡)을 한 개씩 준비하고 같이 이 세계를 부감하기로 합시다. 우리는 이제 세계의 어느 방면에 대하여 만리경을 향하겠습니까.
우리는 대개 유림에 적(籍)을 둔 자이기 때문에 종교방면에 만리경을 향하리다.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자못 높은 곳에 있고 우리가 휴대하는 만리경은 자못 가격이 높은 것인즉 잘 보이기는 보이되 어떻게 하던지 세계는 자못 멀고 또한 광대하니 임림총총(林林葱葱)한 다수 종교의 작은 깃발은 아득하여 우리 만리경 중에 비치지 못하나 큰 깃발은 명백히 보이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또 얼마나 보입니까.
첫 번째로 무엇이 보입니까.
불교가 보입니다. 저 불교는 제국 기원전 367년, 공자 탄생 전 477년 서력(西曆) 기원전 1027년에 인도(印度) 석란도(錫蘭島)에서 탄생하신 석가(釋迦)님의 창설로 점점 확대하여 인도 전체에 보급한 후 방향을 전환하여 동북방면에 진출하였다가 중국 서북방면에서 월씨국(月氏國)을 건립한 때도 있었습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읽으신 이가 상세히 아시는 바와 같이 한명제(漢明帝) 시대에 서역(西域)불법(佛法)이 비로소 중국(中國)으로 통하여 지나(支那)에 수입되었고 진(晉)시대에 이르러서야 자못 융성을 이룬 형적(形跡)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또 방향을 전환하여 조선반도에 이입(移入)되었는데 진(秦)나라 왕 부견(符堅)이 불상과 경문을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에게 보낸 것에서 비롯한 것이외다.
다음에 다시 방향을 전환하여 흠명(欽明)천황시대에 백제에서 조선 해협을 지나서 일본으로 전하게 된바 일본에서는 점차 융성하여 금일에 이르게 된 것이외다.
두 번째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유교가 보입니다. 유교의 근원은 태고로부터 이래(以來)한 것인 줄은 아시는 바와 같되 공자님을 중심으로 하여 본즉, 공자님은 제국 기원후 111년, 서력기원전 550년 중국 동주(東周)의 영왕(靈王) 22년에 노나라에서 탄생하신 이래로 크게 그 도의 천명(闡明)을 도모하사 조선반도까지 전래한 일은 전에 말씀한 바와 같거니와 그 후 응신(應神)천황시대에 백제에서 일본에 전하게 되었으되 그 경로로 말하면 백제의 아직기(阿直岐)라는 사람이 경전을 휴대하여 일본내지에 도항(渡航)하였다는데 이 사람이 그리 박학자(博學者)가 아니었던지 동조(同朝)에서는 황전무별(荒田巫別)이란 자를 파송한 후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을 내조(來朝)110)하게 한 후 태자의 스승으로 삼아 경전을 강연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점차로 한학(漢學)이 전파되어 후에는 유학생도 직접 중국에 파송하게 되었고 유익하고 왕성하게 된
109) 부딪치다, 충돌하다라는 뜻.
110) 외국의 사신이 찾아옴.
것이외다. 이와 같이 불교와 유교는 연대와 구역이야 서로 다른 것이 있으되 호상전후(互相前後)하다가 아시아 동방 방면에 성행하였음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올시다.
세 번째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예수교가 보입니다. 예수교도 유교와 같이 그 근원은 더 좀 이전 구약시대로부터 있었던바 예수교가 지금으로부터 1921년 전에 아시아의 서방 유태국(猶太國)에서 탄생하여 크게 그 교의 전파를 도모하였는데 그 전파방향은 불교와 유교가 행한 지방과 정반대로 서방 즉 구라파 방면으로 향하고 다시 서방에 진출하다가 대서양을 건너서 아메리카에 건너간 것이외다.
네 번째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이슬람교(回回敎)가 보입니다. 이슬람교가 보이는데, 해당 교는 제국 기원 1231년, 서력 571년 중국 진선제(陳宣帝) 시대 3년에 아시아의 서방인 아라비아 지방 ‘멧가’111)란 땅에서 탄생한 ‘마호메트’ 씨가 창시한 종교인바 마호메트 씨는 생후 2개월 만에 부친이 별세하였고 6세 때에 모친과 사별하였은즉 숙부에게 양육되었다가 그 후에 「파라」112)란 산중에서 수양하여 40세 때에 비로소 전도를 시작한 바 3년에 이르렀으되 교도(敎徒)는 40명도 미만(未滿)하였기에 그 방법을 바꾸기에 이르렀는데 다행으로 일가중에 무장(武將)이 3명이 있었음을 이용하여 간과(干戈)를 잡으면서 포교를 시작한 바 그 후에 점점 보급하여 아라비아 지방 일대로 페르시아(波斯) 북방(北方)에 진출하였고 지금은 중국 북방에 그 교도가 많이 있다고 하니 그 진행방향은 불교 유교 및 예수교의 전파지와 떨어져 있어 그 중간으로 초(稍)히113) 북방에 편재한 방면으로 향한 형적(形跡)이 있습니다.
넷째, 위의 4대 종교의 현상과 장래를 관찰하고자 하나이다. 장래에 속한 사항은 형용이 나타나지않았으니 과거와 현재를 관찰하여 추측할 외에 길이 없나이다.
첫째 불교의 현상은 어떠한가하면 과거는 전술(前述)함과 같거니와 현상은 옛날(昔日)부터 그런 도(道)를 모양으로 소장(消長)114)할 뿐인 상태올시다. 그러면 예수교가 어떠한가하면 예수교는 서주(西走)하다가 유럽을 거친 후 대서양을 건너서 아메리카로 건너가 다시 발길을 전환하여 세계의 동방면 즉 불교와 유교가 행한 방면에 들어와서 같이 포교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唐詩)에 말하되 「행진강남수천리(行盡江南數千里)」라. 이와 같은 모양으로 소위 구주(歐洲) 수만리를 진행(盡行)115)하고 또 동아의 유불계(儒佛界)에도 「불진행(不盡行)하면 불기(不己)」라는 감(感)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지금 극동 중국 북방까지 들어와 있으되 동북면을 관망하면서 그 발길을 어느 방면에 향하여 진행하면……
이라고 주저(躊躇)하는 모양이올시다.
그러면 유교는 과연 어떠합니까. 유교는 자고로 자기가 걷기에 관숙(慣熟)한 도를 간신(艱辛)히 보행(步行)하는데 때때로 길가에 벌떡 앉아서 휴식하는 상태이니 여간치 않게 피곤한 모양은 미안도 하고
111) 멧가 : 메카(Mecca).
112) 메카 교외의 히라(Hira) 언덕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유일신 알라에 대한 숭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13) 얼마간, 약간, 다소, 조금을 뜻함.
114)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남.
115) 철저히 행하는 것, 성취를 이루는 것을 뜻함.
동정을 금치 못하니 목불인견(目不忍見)하는 격이올시다. 그 모양은 피곤함이 극(極)에 달해 진행(盡行)치 못한 것도 같고 시장(嘶膓)한 모양도 같고 또 족부(足部)에 무엇인지 고장이 생긴 듯도 하며 신은 떨어지고 날은 저문 모양으로 보입니다.
제군이여. 이제 세계에 있는 4대교의 장래를 연구합시다. 다른 종교는 고사하고 우리들이 일상에서 신앙하며 또 상행(常行)하는 유교에 대하여 우리들이 한껏 지혜를 짜고 연구하여 봅시다.
생각하건데 종교가 나아갈 방면은 세계상에 구역이 없나니 국경도 없으며 산도 바다도 없고 히말라야와 알프스와 같은 높은 산도 능히 넘으며 대서양, 태평양과 같은 대양(大洋)도 능히 넘어서 세계상 어느 곳을 불문하고 인류가 있는 한은 끝까지 나아갈 것이며 황색인종 백색인종 흑생인종의 어떤 종류를 불문하고 그 인류가 있는 한까지 그 인류의 뇌수(腦髓)를 관철하여 가는 것이올시다. 무릇 종교란 것이 이와 같이 나아감에 대하여 제군은 어떻게 짐작하십니까.
종교가 그 자신에 수족에 있으며 종교가 그 자신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란 것이 이와 같이 나아감에는 원동력이 있으니,그러면 동력이란 어떤 것이오. 다름이 아니오라 종교를 믿는 교도, 또는 그 교를 지배하기 위하여 배치한 지도자 그것이 즉 그 원동력이 될 것이올시다. 과연 즉 신도와 지도자가 위대한 인격과 지식을 구비하여 어떠한 일을 당하여도 능히 감당할 만한 능력과 능히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종교
는 성행할지나, 만약 딴판으로 그 신자와 그 지도자가 시세에 암매(暗昧)116)하여 맹자(盲者)와 벙어리(啞者)와 절름발이(跛者) 병신 또는 백치 풍전(風癲)117)등과 같은 자 대다수를 점한 경우에는 그 교는 보행치 못할 것인 줄로 생각합니다.
요컨대 금후에 4대 종교의 소장(消長) 여하는 필경 인물 경쟁문제로 귀착할 것인 줄로 압니다.
제군이여 어떠합니까. 우리들은 크게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 자각할 필요가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공부자(孔夫子)는 당시 천하를 철환(轍還)하사 포교하셨던 때에 역언(易言)에 가라사대‘복주지면(服周之冕), 승은지로(乘殷之輅), 행하지시(行夏之時)’118)라고, 제군이 어떻게 짐작하십니까.
만일 공자님이오늘날에 탄생하셨더라면 전도하시기를 위하여 당시의 소위 천하보다도 넓은 천하를 철환하실 것이겠습니다.
또한 포교하시기를 위하여 ‘삭발(削髮), 착양복(着洋服), 승전차기선비행기(乘電車汽船飛行機),용서력음력노력(用西曆陰曆露曆)’하실 줄로 생각됩니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119)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마시오. 이 말의 반면에는 ‘기지소욕소신시어인(己之所欲所信施於人)’120)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외다. 제군이 유교를 바라고 또는 믿는 경우에는 이를 타인에게도 전하시오.
삼강오륜을 선도(善導)인 줄로 인정하거든 이를 타인에게 널리 알리고 또 전함에는 인류에 구별이 없을 것이요. 아니라면 있어야 할 이치(理)가 없을 것이외다. ‘비선왕지
116) 사람됨이 어리석고 못나서 사리(事理)에 어두움을 뜻함.
117) 풍에 의하여 생기는 간질을 뜻함.
118) 논어(論語) 위령공(慰靈公) 편에 나오는 말로,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라의 역법을 쓰고(行夏之時),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乘殷之輅), 주나라의 면류관을 쓰며(服周之冕), 풍류는 곧 수모루 할 것이며, 정나라의 음악은 추방해야 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이니(放鄭聲遠佞人), 정나라의 음악은 방탕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로운 것이다(鄭聲淫佞人殆).’라고 했다.
119)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뜻.
120) 자기가 원하고 믿는 바를 남에게 베풀라는 뜻.
법복불감복(非先王之法服不敢服), 비선왕지법언불감언(非先王之法言不敢言)’121)이라 말하여 국어(國語)도 불어(不語)하며 양어(洋語)도 불운(不云)하고 또 양복도 불착(不着)하며 화복(和服)도 불착하고서 여행도 하며 포교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시세에 순응하며 대세(大勢)에 능통하시오. 그리고 노력하시오.
이와 같이 한 후에야 비로소 유림이 소생하며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최후에 제위에게 대해 큰 소리로 절규하려는 것이 있습니다. 즉 제군은 자기 실행을 충실하게 함과 동시에 크게 유교를 개방하시오. 즉 문호를 개방하시오. 문지(門地)의 유무를 불허하고 사해 사민을 모두 삼강오륜하에 맞이하시오. 그러한 후에야 비로소 유교의 목적을 달성하고 공부자(孔夫子) 님께 대할 의를 다할 수가 있을 것이올시다.
<출전 : 石鎭衡, 「時代와 儒敎」, '儒道' 제4호, 儒道振興會, 1921년 12월, 45~52쪽>
2) 이명세(春山明世)
(1) 동아공영권과 유교의 역할
상임이사 춘산명세(春山明世, 하루야마 아키요)122)
나라를 세운(肇國) 이래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드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며, 세계인류를 위하여 최고문화의 건설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일본이, 이번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동아신질서 건설을 실현하고자 또한 걸음을 내디뎠다.
작년 12월 8일, 대 미영(米英) 선전포고의 조서(詔書)가 환발(渙發)되면서부터, 충용무쌍한 우리 ‘황군’123)은 출정 후 약 백일의 짧은 시일로써, 그들이 수백년래 동양침략의 야심으로써, 고심하면서 장비를 갖추고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하고 있던 동양의 몇 군데의 군사적 근거지를 연전 연파하여, 전사상 처음 보는 대 전과를 거둔 것에 대하여, 단순히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일본의 병기가 우수했다든가 작전계획이 교묘했다든가 여러 가지 평론을 할 것이나, 내면적으로는 그 주된 원인을 연구할 때는 이것은 완전히 능위(稜威) 아래에 일본국민의 독특한 고유의 도의정신의 발로라는 것을 단언하고 싶은 것이다.
원래 일본국민은 유사 이래 역대 신성한 황종(皇宗)의 유훈을 이어 받아, 국민의 모든 생활, 활동은모두 천양(天壤)무궁한 황운을 부익(扶翼)하여 받드는데 귀일하는 정신이 자연적이고 또한 합리적으로 발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을 널리 세계에 구하고 그 장점을 섭취하는 기민한 두뇌를 가지며, 이 유교도 일본에 수입된 지 천6백년 이래, 충효를 기본으로 하고, 실천궁행을 숭상하는 아름다운 진수를 탐구하고, 이것을 황도정신에 합치시키고, 이후 사도(斯道)를 연구실행하는 석학자를 배출하고,
121) 선왕의 법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말고, 선왕의 법언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말라는 뜻.
122) 이명세(李明世)의 창씨명.
123) 일본군.
정치풍교를 적극적으로 지도했기 때문에 충을 다 하고 나라에 보답하는 것을 신민의 상도(常道)로 삼는 정신은 더욱 더 공고하게 되어, 메이지유신의 대업은 이루어지고, 일본제국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 아름다운 황도정신을 일본국민의 독점적인 것으로 하지 않고, 이것을 전 세계에 널리선전하여, 세계인류로 하여금 빠짐없이 황화(皇化)를 입힘으로써 공존공영의 황국 본래의 대 이상완수를 향하여 일로매진하는 것이 이것 또한 도의국인 일본 전래의 사명이며 그 내용은 유교의 수기(修己),치인(治人), 대동태평의 대 이상과 스스로 합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그들 미영 민족의 소위 문명의 기조를 만든 사상은 개인주의, 유물주의, 공리주의로서 민중의 모든 생활, 활동은 모두 개인의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상이 극도로 발달한 결과, 소위 국가정치라는 것도 약육강식을 정당시하고, 따라서 세계 도처의 저급문화의 약소민족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노예로 간주하여, 착취무역의 경쟁을 더욱 더 격렬화시켜서 최근 백년 이래는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나에 그 마수를 뻗쳐서 아편전쟁에 의하여, 지나의 약체가 폭로된 것을 기화로, 더욱 더 지나의 배후에 서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음모획책을 농간해 온 것이 그들이 지금까지의 죄악의 대략으로서 만주사변·지나사변 이번 대동아전쟁도 그들의 죄악을 성토하고 응징하기 위한 전쟁인 것이다.
그들의 개인주의·유물주의·공리주의는 그 뿌리에서 우리의 황도정신과는 서로 맞지 않아서 빙탄상불용(氷炭不相容)의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포악무도한 행동을 그대로 좌시할 때에는 동아인들의 동아는 그들의 식민지화가 될 우려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으로써 우리나라는 동아의 맹주인 입장에서 또한 도의국인 정신으로 동아인을 대신하여 대동아전쟁의 정의로운 깃발을 올려 동아신질서의건설을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고대의 군사가가 “그 나쁘게 함을 밝혀야 적이 곧 항복할 수 있다(明其爲賊賊乃可服)”고 한대로, 우리나라는 그들의 비정의적이고 비인도적인 침략주의를 성명(聲名) 토벌해서, 동아의 여러 약소민족을 도탄에서 구해내는 것이 전쟁목적인 것이다.
이것은 즉 세계 공론이 시인하는 바로서 동아의 여러 약소민족이 대한(大旱)에 구름떼를 바라듯이 우리 황군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음으로, 우리나라의 대의(大義)를 명백하게 하는 일장기 아래에, 무어라고 해도 끈질긴 적도 자신의 죄악에 자신들의 심신(心神)을 잃고, 무릎을 굽히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적 황군을 구가(謳歌)하고 있으나, 우리 황군은 인의(仁義)를 위하여 싸우기 때문에 무적인것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말한 선현의 격언이 현재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원리로 미루어 본다면, 장차 어떠한 장기전을 만날지라도 반듯이 그들을 정복하는 것은 결단코 의심치 않으나, 우리 국민은 한 때 전승기분에 도취해서는 실패를 초래하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뽐내지 않고, 게을리 하지 않고, 더 한층 진충보국의 결의를 굳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이 대동아전쟁의 목적은 그들 적을 동아로부터 구축함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동아의 구미세력의 화근을 뿌리 뽑고, 대동아공영권을 일환(一環)으로 하는 새로운 건설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즉 정치적으로는 영미의 식민지화가 된 대동아공영권의 여러 지방을 돕고 경제적으로는 영미의 착취를 근절해서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확립하고, 문화적으로는 영미 문화의 추종을 버리고, 동양고유의 문화를 진흥하며, 자연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해야 할것이다.
이것이 즉 오늘날 다가오고 있는 큰 문제인 것이다.
되돌아보건대 지금까지 역경의 운명에 시달림을 받았던 병약자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약품이나 식량도 모두 필요하겠지만 먼저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위안인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 문화의건설을 이상으로 하고, 또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빛나는 역사를 가지는 도의국인 일본의 사명으로서, 동아공영권 내의 여러 민족을 이끄는 데는 이 아름다운 일본정신으로써 해 나가야 할 것은 기정방침으로, 일본정신을 그들에게 주입하는 데는 먼저 그들의 역사가 있으며 연고가 있는 유교를 선용하는 것이 득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 유도는 동양윤리도덕의 연원으로서, 이것을 작게는 일신(一身)일가(一家)를 수제(修齊)하고, 이것을 크게는 국가천하를 치평(治平)하는 인류생활상 잠시도 떠날 수 없는 상도(常道)인 것이다.
그 내용에서 이미 우리 일본정신과 합치할 뿐만 아니라, 만주, 지나를 비롯하여 동아 여러 민족의 대부분은 그들의 풍속습성에서, 이것에 푹 담겨온 긴 역사가 있으며, 근래에 구미사상에 유린을 당한 나머지 오늘날에도 또한 공맹의 가르침을 추모하고, 윤리도덕을 구가하는 여유가 있는 것을 보아도, 그들의 본심에서 얼마만큼 구미사상의 수입을 후회하고, 동양고유의 정신문화에 되돌아 올 희망이 있는가를 추측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 지나 같은 나라는 유교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민국 수립 이래 30년 간, 오로지 구미물질문화에 현혹되어, 유도사상이 극도로 퇴폐하고 있는 곳에, 근래의 장개석 정권이라는 것은 유도 때문에 지나 민족이 열등하게 된 것처럼 오해를 시켜서 이것을 장려하는 것을 버리고 오히려 이것을 배척하여 일반민중의 원성을 받은 점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영미세력이 거의 구축되어 영미사상 수입 때문에 자신들이 그 만큼 해독을 받은 것을 깨닫고,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융성을 선모(羨慕)하는 차제에 동양고유의 문화인 유교를 회복하고, 예의염치로써 그들 생활을 정비한
다면, 인심의 귀추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귀일하는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점차로 우리 국체에 존경의 인식을 거듭하여, 도의정신의 진수를 이해할 때에는, 동아신천지는 황화(皇化)에 충만되어, 여기에서 비로소 대동아전쟁의 대 목적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국내에서도 근대 구미물질문화의 유입에 따라서 구미사상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국풍이 일그러져, 조상 전래의 미덕을 경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만주사변 이래, 동아신질서 건설에는 동양고유의 정신문화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구동성으로 주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도덕의 연원인 유교에 관해서는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을 뿐만아니라, 일부 과학자들은, 유교라는 것은 구도덕의 잔해(殘骸)라거나, 19세기의 유물이라거나, 무조건 비웃으며 심하게는, 유학자는 도의(徒衣)도식(徒食)하며 나태하고 무능을 배우고 있는 자처럼 악평을 할 때도 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인류생활상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의 길위에서 생활하면서, 사람의 길이 고마운 것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닌가.
유학은 인생 생활상 필요불가결한 사람의 길을 연구하며 역행(力行)하는 학문이다.
유도는 우리 인류가 누구나 알며,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평범한 진리를 가지며, 따라서 그 길은 공명정대하고 천지와 함께 영원불변한 원칙이 있는 것이다.
한(漢)나라 문공(文公)의 이야기에 “심하구나, 사람들이 괴이함을 좋아하는 것은 그 실마리를 구하지 않고 그 결말을 묻지도 않고 오직 괴이한 것만을 듣고자 하는구나.(甚矣 人之好怪也 不求其端 不訊其末 唯怪之欲聞)”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유교는 진리가 평범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밖에 무슨 다른 도가 있는가를 찾아서, 결국은 이단에 뛰어 들어가서 본 길과 반대로 나아가는 자도 있는 것이다.
요는 구미물질문명에 현혹되어서, 우리 고유의 정신문명마저 무조건 배척하는 자도 있는 것이다.
과연 세상에는 소위 유학자라고 자칭하면서, 고루(固陋)하고 완미(頑迷)한 사상을 가지며, 퇴영(退嬰) 침쇠(沈衰)한 행동을 하고, 현대 국민생활에 맞지 않은 자들이 없지 않으나, 이들은 유학자 그 자신들의 품격문제로서, 유학 그 자체의 본질을 악평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유학의 본령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은 박시(博施)제중(濟衆)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고, 한 평생 지성(至誠)으로써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인으로써 자기의 짐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仁以爲己任不亦重乎 死而候己不亦遠乎)”라는 한 구절로써 유학자의 임무를 다하는 대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의 진흥은 대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정교(政敎)상 필요불가결한 중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동아공영권 확립을 하는데 여러 약소민족을 지도하며 보호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 교육계에서 사도(斯道)에 대한 관념이 지극히 희박하여 학창을 갓 나온 청년은 아직도 구미사상에 감염된 자가 있음으로 장차 동아공영권의 확립을 이루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아공영권의 대 사업은 일조일석에 완성되는 것이 아님으로, 7년 병치레에 3년짜리 쑥을 구하는 것처럼, 지금부터라도 유교를 진흥하여, 사도(斯道)의 전문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대 사명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지도자를 많이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반도는 조선유도연합회 결성 이래, 관민이 일치하여 황도유학의 진흥에 착실히 힘을 기울여 온 것은 흔쾌(欣快)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나, 유림이라는 사람은 먼저 우리 국체의 존경과 현대의 중대 시국을 인식하고, 종래부터 습득해 온 유교정신을 황도정신에 합치시켜서 황국신민으로서의 길을 실천궁행함으로써, 국가적인 대 사업에 공헌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출전 : 春山明世, 「東亞共榮圈ご儒敎の役割」, '儒道' 창간호(연합), 朝鮮儒道聯合會,1942년 3월, 37~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