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4일(금)
에스더 9:29-10:3
구원 은혜를 기억하고 대대로 지킬 부림절
오늘 본문은 에스더서의 결말 부분입니다. 그동안의 극한 갈등은 해소되고, 이제 부림절을 통해서 유다 인들이 역사적인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는 전권으로 글을 써서 부림에 대한 둘째 편지를 유다 백성들에게 보냈습니다.
부림절에 관한 첫 번째 편지는 모르드개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두 번째 편지는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다(9:32).”는 표현을 보면, 아마도 두 번째 편지의 공식적인 권한은 왕후 에스더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의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사실 모르드개가 유다 인들에게 부림절을 지키라는 첫 번째 편지를 보내기 전에 이미 유다 인들에게는 부림절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모르드개가 편지로 그 날을 공식화해 주었을 뿐입니다.
첫 번째 부림절은 유다 인들이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으며, 서로 예물을 나눈 것에서 유래합니다(9:17-19). 여기에는 “연합”, “쉼”, “즐거움”, “나눔”이라는 소중한 가치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첫 번째 편지로 여기에 “가난한 자의 구제(9:22).”라는 가치를 더해 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쓴 두 번째 편지에는 첫 번째 편지에는 없던 “금식”과 “부르짖음”이라는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유다인의 구원 사건의 출발에는 유다 인들의 “금식”과 “부르짖음”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 인들의 금식과 부르짖음의 자세가 약해지고, 부림절의 쉼과 즐거움과 나눔의 정신만 남게 될 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는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이 편지를 썼는데, 여기서 “화평(샬롬)”과 “진실(에메트)”는 하나님만이 선사하실 수 있는 요소들이었습니다(9:30).
즉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안에서 이 편지를 유다 인들에게 써 보냈던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흩어져 있던 신약 시대 교회들에게 자신의 서신들을 보낸 것과도 흡사합니다.
과연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편지를 받았던 유다 인들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살고 있지 못하고, “아하수에로의 나라(30절)” 12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입니다.
10장 1-2절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본토와 바다 섬들로부터 조공을 받은 이야기와 “왕의 능력 있는 행적”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약간 낯 뜨겁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에스더서를 묵상하면서 발견한 아하수에로 왕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그러한 이 세상의 나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비록 타락한 왕권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타락한 왕의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타락한 세상의 왕권은 점점 더 그 기세를 뻗쳐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에까지 미쳤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약간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부조리하고 타락한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대신 그의 권세가 확대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의 저자는 세상 나라의 권세가 흥왕할 수 있었던 비결을 하나님의 백성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일과 연결시켜 놓고 있습니다. 즉, 타락한 아하수에로 왕이 세력을 넓히고, 능력 있는 행적을 펼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정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유다 인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서 크게 존경을 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모르드개가 유다 인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일했고, 모든 유다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힘썼기 때문이었습니다(10:3).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타락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묵상합니다. 우리가 타락한 이 세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현실 도피적인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오히려 우리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절기와 주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타락한 권력자가 바르게 자신의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치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처럼 말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청년부 BK3 셀 모임이 있고, 저녁부터는 1박 2일로 ‘대전지역 예수만남 수양회’가 있습니다. 저는 모임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 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오늘과 내일, 저는 하나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들의 안녕을 위해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