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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남소성 위치에 대한 고찰
카론 추천 0 조회 1,506 13.05.17 22:45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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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5.18 14:06

    첫댓글 지금 학계에서 비정하는 신성-남소성 거리도 280km가 됩니다. 위와 같은 지도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린 것인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남소성이 구다국의 수도였다구요?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네요.

  • 작성자 13.05.18 14:37

    학계에서 비정하는 280km 거리의 신성-남소성의 위치가 도대체 어디죠?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도는 사람이 많이 살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블록을 만든 후에 당시의 국경, 산과 강, 그리고 현재의 행정구역을 참조하여 역사 기록을 따라 정리하면서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 많이 사는 곳에 역사와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 인문만 입히면 추론은 충분히 가능한 것 아닌가요? 구다국에 대한 내용은 여러 문서에 나오는 내용이라 아직 출처는 따져보질 못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남소와 구다국의 상관 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용한 것입니다.

  • 13.05.18 15:36

    멀리 찾을 필요 없이 역사부도를 한 번 펴보십시오. 제가 가진 역사부도와 거기에 있는 축척을 가지고 거리를 따지니 답은 쉽게 나오더군요. 구다국은 일반적으로 함경도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남소성과는 거리가 영 멀지요. 그러나 역사부도의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아울러 700리를 정확히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에 지금처럼 거리를 정밀히 측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 견해에 따르면 후연의 수도 용성은 어디로 날라갔으며, 북위, 거란 등의 위치는 어디로 잡아야 하는 걸까요? 지명 고증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 작성자 13.05.19 13:06

    역사부도가 없어서... 위치를 말씀해 주시면 쉽게 확인이 가능합니다. 구다국을 조양시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주변 지역의 경제를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지역은 경제적 부가 밀집된 곳이었습니다. 소금(적봉), 사치품(낙랑), 약재(대방), 차(구다국) 식량(옥저), 광산(제련), 말등. 이런 품목들이 가리키는 키워드는 모두 '부유하다' 입니다. 이런 개념으로 각 지역을 설정하면서 가설을 만들었고 이후에 가설과 역사 기록에 비교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설과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위치를 그림으로 보여드렸으니 한번 역사 기록 대로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 작성자 13.05.20 16:19

    선비가 남하하여 북경지역은 물론 전국시대의 연나라 영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비의 발원지는 점점 다른 세력에 의해 잠식되어 갑니다. 이유는 지배세력들이 살기 좋은 땅으로 이주를 하면서 공동화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옛 선비의 땅을 차지한 새로운 세력 거란이 AD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역사에 등장합니다. 당연히 국경도 변하게 됩니다. 후연의 수도들은 모두 좋은 땅에 있었습니다. 한참 확장하던 시기는 석가장시가 중심이었고, 힘을 잃고 물러났을 때는 북경 유역의 계성에 있다가 이후 북위에 밀려 동쪽 당산시 영역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곳에서 용성을 찾아야 하겠지요.

  • 작성자 13.05.19 14:11

    추가 정리해서 말씀 드리면 연나라 영역은 강에 의해 크게 셋으로 살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북경 영역을 중심으로 남쪽은 석가장시 유역, 동쪽은 당산시 유역으로 보는 것입니다.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 같습니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진나라에 밀려 계성(북경)에 있다가 요동(당산)에서 멸망당합니다. 후연 역시 계성(북경)에서 용성(당산)으로 갔다가 사라집니다. 위의 첫번째 그림이 후연, 거란 고구려의 국경관계를 나타난 것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3.05.19 13:57

    신성은 무순의 고이산성을, 남소성은 통화의 남산성자 지역으로 비정됩니다.

    특정 지역의 경제 상황과 지명을 연관시키는 것이 참 특이하군요. 그러나 구다국의 '다'가 차 다 자라고 해서 그곳을 차 생산지로 본 것이나, 그곳이 오늘날 조양 지역이라고 한 것이 납득될 만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선비족이 건국하기 이전과 이후는 당연히 구분합니다. 후연의 수도는 중산이었다가 용성으로 옮겨진 것, 당연히 압니다. 그런데 용성이 당산쪽? 당산이 용성이란 근거는 또 어디서 찾으셨는지요. 조양 지역이 용성, 화룡성으로 불리다가 훗날 영주가 되었다가 조양이 된 것인데, 참신한 이야기를 자꾸 하시니 어안이 벙벙하군요.

  • 13.05.19 14:13

    그리고 님의 댓글과 본문 사이에 모순이 있습니다. 지금 신성, 남소성, 목저성을 공격할 때의 선비족은 국가를 건국한 후의 선비족입니다. 345년 남소성을 칠 때 전연의 수도는 용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심지를 적봉으로 보는 것은 모순이 아닌지요.

  • 작성자 13.05.19 15:22

    선비족 모용외는 AD319년 서진의 최비를 물리치고 요동을 차지하였습니다(2번째 그림 참조). 모용황이 337년에 전연을 건국하였고 확장을 지속하면서 341년 용성으로 도읍을 정합니다. 이때부터 전연의 본거지가 요동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339년에 고구려의 신성 공략이 있었고, 345년에 동쪽으로 남소성 공격을 합니다. 모용준이 350년에 유주를 점령하였고, 기주로 나아갔고, 화북지역을 차지한 후 353년 업으로 도읍을 이동합니다. 전연은 370년에 전진에 의해 업을 잃고 멸망합니다.

  • 작성자 13.05.20 15:46

    384년 모용수가 연왕에 즉위하였고 업을 점령합니다. 후연의 시작이지요, 이때 고구려의 고국양왕이 385년에 요동과 현도를 습격해 점령하였지만 후연이 반격하여 요동과 현도를 다시 회복합니다. 이후 잘나가던 후연은 394년 북위를 공격했다가 대패를 당하면서 세력이 크게 약화됩니다. 이시기에 고구려가 신성과 남소성을 점령한 것으로 보이며, 후연은 400년에 광개토태왕이 남정을 간 사이에 신성과 남소성을 다시 차지하지만 402년부터 404년까지 고구려에 공격에 의해 신성, 남소성은 물론 요동까지 잃게 됩니다.

  • 13.05.20 02:32

    네 압니다. 뻔히 아는 얘기 반복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 질문을 제대로 읽고 답해 주실 것도 부탁드립니다. 내 질문은 345년 전연의 중심지가 용성인데 왜 적봉 운운하냐는 것입니다. 이미 님은 선비가 더 좋은 곳을 찾아 갔기에 본래 근거지인 적봉은 거란의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적봉으로부터 신성과 남소성의 위치를 찾는 님의 시도는 이미 모순에 빠진 겁니다.

  • 작성자 13.05.20 15:47

    연도별로 반복 설명 드린 것은 이동 경로를 생각을 해 보라는 의미로 적은 거구요. 선비의 이동로를 보면 적봉지역에서 흉노와 결합하여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이후 남하하여 요동지역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341년에 그림1의 요동성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용성으로 중심지를 옮겼고, 그리고 350년에 유주를 점령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동 경로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 작성자 13.05.20 16:05

    거란(=비려)을 논한것은 선비 이후 시대적 상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거란이 (비려) 남하하면서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고구려가 이에 대응한 기록이 있으니까요. 이를 통해 당연히 국경 관계도 변화되었다고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란과 관련하여 신성과 남소성의 위치를 찾은 적이 없습니다. 후연이 목저성을 공격했다고 해서 거리를 살펴본 것이지요. 도대체 님께서 말씀하시는 모순이 도대체 뭔질 모르겠네요.

  • 13.05.20 11:45

    그리고 385년에 요동과 현도를 친 왕은 고국양왕입니다. 영양양(?)이 아니라. 오타는 아닌 거 같군요.

  • 작성자 13.05.20 16:03

    오타 맞네요. 요즘 영양왕 쪽을 보고 있어서 자꾸 깜빡깜빡 합니다.

  • 13.05.20 18:27

    정말 모순이 뭔지 모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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