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영양제
권영순
신록이 꽃보다 눈부신 계절이다. 생명의 기운이 퐁퐁 솟아나는 숲속 진초록 품에 안기면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진다. 조급한 마음이 풀어지고 느긋한 평화가 세포세포에 스며든다. 분주한 일상에 쉼표를 찍는 시간으로 숲 산책을 좋아한다. 새벽마다 남편과 숲길을 걸으며 밤새 숲이 뿜어낸 산소를 깊이 들이마신다. 한 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과 함께 산책한다. 장학사업에 자원봉사를 하는 동료들이다. 같이 걷다 보면 사업의 아이디어도 톡톡 튀어나오고 결속도 더 단단해진다. 오늘도 그날이다.
초록 오솔길로 들어서니 밤새 별빛과 달빛 받아 더욱 신선해진 풀잎이 손 흔들어 환영한다. 어릴 적 어머니 베틀에 걸려 있던 삼베처럼 나뭇잎 사이로 금빛 햇살이 비쳐든다. 뻐꾸기 울음 한가롭고 호수에 노니는 청둥오리들 위에 숲속 평화가 머물러 있다. 산골에서 자란 터라 숲으로 들어가면 어려서 소 풀 뜯기던 고향 동산이 떠올라서 그저 기분이 좋다. 길섶의 풀과 나무들에 유년의 추억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리목 나무를 만나면 그 이파리로 모자를 만들며 놀던 날들이 떠오르고 댕댕이 덩굴이 뻗어 나가는 모습에서 그 넝쿨로 바구니를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누리장나무에서는 이른 봄날 연한 잎을 따와서 나물 해 먹던 기억이 물씬 풍긴다. 밥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한 그릇 나물 밥에 된장국만으로도 푸근했던 시절이다.
싸리나무 분홍웃음 짓고 인동초 꽃 향기로운 비탈길을 지나면 불암산 중턱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을 만난다. 오늘의 목표지점인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펑퍼짐한 바위에서 숨을 고르며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데 한 친구가 제안했다. “국민체조 할까요?” “좋아요!” 음악을 틀어놓고 초등학교 때 배운 체조를 한다. 넓은 하늘을 이고 상쾌한 숲 향기 마시며 바위에서 하는 체조에 딱새들이 포르르 날아와 신기한 듯 구경한다.
하산길에는 한 일행의 건강강의가 펼쳐졌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오랫동안 해온 경륜으로 쉽고도 재미나게 설명한다. 우리 몸에는 세포에 꼬리처럼 붙은 텔로미어가 있단다. 텔로미어 길이가 다 닳으면 수명이 다한다고. 텔로미어를 빨리 소진 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과도한 운동, 과식, 그리고 스트레스란다. 텔로미어를 늘이며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감사하기’ ‘절대자에게 의지하기’가 중요하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하루 100번 말한다는 친구 어머니가 건강하게 사시는 이유를 알겠다. 두어 시간의 숲길을 걷는 동안 몸도 마음도 푸르러졌다. 가장 유쾌한 유년의 추억을 거니는 보너스도 얻었다. 숲은 사람을 낙관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괴테, 디킨즈, 헤밍웨이 같은 문호들도 거처 바로 옆에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있었다고 한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라는데 숲을 걷는 것은 생태도서관을 누비는 여행이요 식물도감을 펼치는 즐거움이다. 동행이 있을 때 체험학습의 기쁨은 배가 된다.
불암산 허리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시어머니가 호숫가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계신다. 건강 법칙을 철저히 지키는 어머님이 최근 시작한 루틴이다. 시어머니의 생애를 한 줄로 압축하면 봉사의 삶이다. 새벽에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인 에너지를 얻고 온종일 남을 위해 사신다. 젊어서는 가족과 자녀를 위해 헌신하셨고 최근에는 이웃을 위한 봉사로 요리 강습을 하신다. 토요일 오후마다 몸에 좋은 채식을 만드셔서 요리법을 설명하고 맛도 보인다. 평생 실천하며 여든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 건강을 누리는 비법이니 강의는 인기 만점이다. 보람된 일을 하시니 신록 우거진 푸른 동산처럼 삶에 윤기가 난다. 우울과 고독이 머물 여지가 없다.
매일 호수 둘레를 걸으며 건강을 다지시는 시어머니께도, 한 주일에 한 번 숲을 오르는 우리 자원봉사팀에게도 숲은 최고의 보약이다. 숲이 주는 천연영양제가 있어 감사하다.
첫댓글
숲이주는영양제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동행이 있을 때 체험학습의 기쁨이 배가 된다'
는 것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필을 통해서 많은것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가 촉촉이 내려 숲이 더욱 신선하답니다
숲 영양제 많이 드시고 향기님도 건강행복 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