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7월 14일 화요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오늘 복음의 주제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엄중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사는 게 죄다.’라고 말씀하셨나 봅니다. 살아가는 데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며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공동체에는 반드시 문화(文化)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섞여서 사는 것입니다.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문화를 따르기도 합니다. 그 문화 속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그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란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모든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학습하면서 생성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에게 짓게 되는 죄도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거나 악습으로 체득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악마는 간교한 술수를 활용해서 인간을 죄로 이끌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 자체가 죄이면서 다른 죄와 악습을 일으키는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칠죄종(七罪宗)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죄의 근원 때문에 인간은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악마는 인간을 죄악의 사슬로 묶어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곱 가지 죄의 근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교만: superbia(라틴어), pride(영어) 옛 교리서에는 교오(驕傲)
② 인색: avaritia(라틴어), greed(영어) 옛 교리서에는 간린(慳吝)
③ 시기(질투): invidia(라틴어), envy(영어) 시기(猜忌)
④ 분노: ira(라틴어), anger(영어), wrath(영어) 분노(忿怒)
⑤ 음욕: luxuria(라틴어), lust(영어) 옛 교리서에는 미색(美色)
⑥ 탐욕(탐식): gula(라틴어), gluttony(영어) 옛 교리서에는 탐도(貪賭)
⑦ 나태: acedia(라틴어), pigritia(라틴어), sloth(영어) 옛 교리서에는 해태(懈怠)
사람에게는 모든 일과 매 순간 결단이 필요합니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에서 겸손하고, 공손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고 봉사하면서 산다면 인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시기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절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너그럽게 산다면 화를 내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결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물에 욕심을 버리고, 음식을 과도하게 탐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게으른 것도 죄의 원인이 됩니다. 언제나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합니다. 언제나 7죄종과 그 결과인 죄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곧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논어의 위령공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 과이불개 시위과의
子曰 ; 過而不改 是謂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바로 잘못이라 한다.”
죄를 짓고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9
1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 시대에,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2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3 그러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 4 그에게 말하여라.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5 아람이 에프라임과 르말야의 아들과 함께 너를 해칠 계획을 꾸미고 말하였다.
6 ′우리가 유다로 쳐 올라가 유다를 질겁하게 하고 우리 것으로 빼앗아 그곳에다 타브알의 아들을 임금으로 세우자.′
7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8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9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축일 7월 14일 성 가밀로 데 렐리스 (Camillus de Lellis)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550-1614년
같은 이름 : 가밀루스, 까밀로, 까밀루스, 카밀, 카밀로, 카밀루스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또는 가밀로 데 렐리스)는 1550년 5월 25일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하던 나폴리 왕국의 부키아니코(Bucchianico, 오늘날 아브루초[Abruzzo]에 속한 곳)에서 태어났다. 거의 50세에 그를 낳은 어머니 카밀라 콤펠리 데 라우레토(Camilla Compelli de Laureto)는 156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나폴리와 프랑스 왕실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며 거의 집에 있을 때가 없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노름을 좋아하고 군대를 동경하던 그는 입대하고자 했으나 오른쪽 발에 궤양이 생겨 연기하였다. 1571년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San Giacomo Hospital)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던 중 노름을 하다 쫓겨났다. 다시 군에 입대해 베네치아(Venezia) 군대에 소속되어 이탈리아를 침략한 터키군과 여러 전투에서 맞서 싸웠다. 1574년경에는 청소년 때부터 습관이 된 도박에 빠져 빈털터리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군대에서도 나와 이곳저곳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아풀리아(Apulia)의 만프레도니아(Manfredonia)에 있는 카푸친 수도원의 공사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수사의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그는 수도자가 되고자 수도회에 지원하였다. 하지만 거친 수도복에 발이 쓸려 예전의 상처가 도져 수련소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치료를 위해 다시 로마의 산 지아코모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병을 치료하며 조수 일을 맡았다. 1579년 다시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상처가 덧나면서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병으로 일생 고생해야만 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는 자신을 성화하는 방법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투신하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그는 병원의 회계를 담당하는 최고 관리자까지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병원의 놀라운 상황과 여러 부정적인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칠 결심을 하고 뜻있는 간호사들과 함께 테베레(Tevere) 강변의 한 빈민촌에 공동체를 이룬 후 가난한 병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정성껏 돌보았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제가 되기 위해 로마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1584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이미 함께 봉사하던 이들과 협조자를 모아 ‘병자 간호 성직 수도회’(Clerici regulares infirmis ministrantes)를 창설했다. 초대 총장이 된 그는 병든 이들의 상처뿐만 아니라 영적인 돌봄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수도회 회칙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성 카밀루스와 동료 사제와 수사들은 우선 로마의 주요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의 영육의 건강을 돌보는 데 집중했고, 이어서 1588년 나폴리, 1594년에는 밀라노(Milano)의 병원에도 진출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그러면서 보통 카밀로회(Ordo Sancti Camilli, O.S.C.)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수도회는 청빈 · 정결 · 순명의 서원 외에 제4의 서원으로 ‘환자에 대한 정성 어린 간호’를 추가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페스트가 유행했었다.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와 동료들은 로마 항구의 배들을 통해 전염된 페스트 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고 치료하는 데 열중했다. 무엇보다 병원의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항상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환자들이 적당한 음식을 먹도록 하고, 전염병일 경우는 적절히 격리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병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그와 동료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을 끝까지 지켰고,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높은 칭송을 받았다. 그들의 헌신적인 간호와 환자들과의 인격적 만남에 감동한 사람들이 ‘성 카밀루스의 품에서 죽으면 지옥은 안 간다’라고 그에게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고, 그를 ‘로마의 성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는 건강이 점차 나빠지면서 더는 총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067년에 사임하였다. 그 무렵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헝가리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사임 후에도 수도회와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던 그는 신임 총장을 동반해서 이탈리아 여러 곳의 병원에서 활동하는 수도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병에 걸려 건강이 나빠진 그는 마지막을 로마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대로 로마로 돌아와서 1614년 7월 14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 제대에 안치되었다. 그는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746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천주의 성 요한(Joannes, 3월 8일)과 함께 모든 병자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모든 간호사와 간호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확대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가밀로 데 렐리스 (Camillus de Lelli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