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우울하고 지친나그네의 고단한 인생
여정을 달래어 주듯 한여름 장맛비 처럼
비내리는 정취에 흠뻑젖어 지나간 인생
을 조용히 뒤돌아보는 호사를 누려 봤지요.
근데 어제 주말 부터 칼바람 오랜만에
겨울다운 매서운 추위에 바람쐬는것도
간단히 산책하는것도 주저하게 하네요.
그래도 또 한방요양 병원에가서 폐렴
독감 주사도 예약 또 면역주사 도 맞구 보건소 코로나 검사도 마치구요.
재래시장 가서 밑반찬도 사고 월요일
또 입원 준비도 하고요. 시내 나온김에
영정 사진도 맞추고 이번에 석장사
새집 큰집 으로 옮겨간 마누라 그리고
저의 인생 마지막 안식처 이기도 한
납골당 꽃단장 하려고 사진액자도
준비를 해 봤네요~~
원래는 3번 정도 머리도 빠지고 거기
에다 백발이라 보기 흉해서 몇년전
면허증 사진으로 복원하려 했었는데요.
얼마전 가발 나눔 받은것도 있구 해서
직접 촬영해보기로 용기를 냈는데요. 참말로 가발의 효과가 엄청나네요~~
또 촬영을 해보니 핼쓱하고 눈도 퀭하니 움푹 들어갔지만 여위어도 젊어보이구
그나마 마지막 가는길 영 다른사람들
시선 크게 불편하지 않겠다 싶네요~~~
오후에 사진 찿아오구 또 납골당에 이사
썰렁해져서 가져가 새로 집단장 할 사진 6장 골라낸다고 한참동안 중노동 했네요~~
근데 사진을 찿다보니 둘째랑 같이 한
사진은 가뭄에 콩나듯 실종이고 대부분
애물단지 였던 큰애랑 같이 했던 사진이
대부분 이더군요~~
이사할때 제가슴에 대못을 꽂아놓고 패륜을 저지르고 간 애 홧김에 이사할때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많이 버려버렷는데요.
그래도 새로 정리 버리고 하려니 남은
것도 엄청 나게 많네요~~
세상에 공들여서 키운자식은 맨날 부모
원망 세상원망 폐인같이 살다 애비 몸져
누우니 훌쩍 부자인연 끊구 가버렸구,
태무심 하게 해준것도 없는 둘째아들은
저리도 지극정성 효자 노릇을 하니 참말
로 아이러니 한 일 입니다~~
오늘 날이 밝아오며는 납골당에 어쩜
제인생 마지막으로 꽃단장?? 하는날
이기도 할거 같구요. 거기 한적한 사찰
경치도 제맘에 쏙드는 곳이라 둘째랑
드라이브겸 길 나서려 합니다~~
영정사진이라 벽에 직접 걸고 나니 참말로
기분이 묘해 지더군요. 아프고 나서 얼굴 인상도 많이 달라 진것 같구요.
처음부터 삶과 죽음 의 경계를 크게 의식하지도 않고 초연하게 받아
들이고 살았지만 이렇게 걸어놓구
보니 꺼져가듯한 삶의 욕구가 이상하게
더 새록 새록 살아나는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먼저 석장사 주지 스님 말씀
이 떠오릅니다. 납골당도 그렇구 마지막
으로 정리 갈 준비해놓구 나면 좋은일이 많이 생긴다 하시더니 그 이유가 저절로
설명이 되는거 같습니다~~
그 이후로 제 의식 마음가짐의 변화가
더 굳세어진것 같구요.거기다 어제
영정사진 까지 테레비 위에 걸어놓고
보니 볼때마다 더 살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마 나머지 인생 삶의 방식도 더욱더
진지하게 살게 되겠지요~~
홧김에 사진 그냥 막 버렸는데 그래도
둘째랑 찍은 사진들 제법 있어서 다행
입니다. 어제 6장 건져냈네요~~
오늘은 또 많이 썰렁한 내용 삶의
얘기 였습니다~~
첫댓글 잠이 어디로 가출를 했는지 눈만감고 핸드폰에 새글이 올라왔다는 신호에 글를 열어 봅니다
지금 금박산님 마음속엔. 많은 일들이 떠오르겠지요 두고 가야만 하는 자식과 님의 글에 폐륜을. 남기고 간 자식 먼저. 간 부인 등등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을것 갖습니다. ㅡ
남아있는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려고 힘든 몸으로 준비 하시는 모습에서 가슴이 아픔니다 ㅡ
뭐라 위로의 말를 전할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누구나 가는길 님이시요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용소하는 마음. 불쌍 하다라고 마음을 내려놓으시면 안될까요 그래야 펀안한 마음으로 남은 날들 지내실것 같은데 물론 힘드시겠지만요. ㅡ
옛날 어른들 죽은후에 입고갈 옷을 미리 준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봤거든요
미리 준비한 옷 때문인지 오래 오래 장수하시는걸 봤거든요 세상 살다보면 말도 안되는. 일도 많잔아요. 그런 행운이 금박산님 에게도
있으시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남편을 떠나보내도 봤고 자식을 떠나봤습니다
죽음의 세계는 모르지만 편안 하지 않을 까요 ㅡ?
요행을 세상에 이런 일이 꼭 있습니다
힘내시고 마음이 편하면 아픔도 덜 하지 않을까 해서
중얼 거려봤습니다 힘내세요 ㅡㅡ
인제 용서고 뭐고 거론할 단계는 넘어 섰습니다.
속이 문드러지게 고생도
많이 해봤구요. 자살하다 타인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
나기도 했던적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라는건 자식의
허물도 안고 수용하게 살아
오게 되더군요~~
전 용서도 수용도 인제 거론할
여유도 없구 인제 저랑은 별게의 다른 인생이라 생각
하구요. 용서를 못해서가 아닌
제 사후 둘째랑 더이상 엮이게
하지않게 정리하려는 마음
이지요~~
지금도 연락조차 되지않고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제가 용서라면 용어?? 하고파도
할수없는 현실이기도 하구요.
독한마음 먹고 제그늘에서 벗어
났어니 새로 태어나 굳세게 굳굳하게 자기인생 살아준다면
바램도 원망 미움도 없습니다.
단지 제가 가고나서 통제가 언돼 둘째하고 엮여 또 한사람의 희생자가 나올까
그 걱정 때문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주검의 그림자가 비쳐지기 시작했기에
벌써부터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한테도 남기고 가면 안될 것 같아 하고픈 이야기
다 해 놓았구요.
내가 아끼며 평생 모은 도자기와 내 글이 실린 책들(문예지와 오산에서 발행된 향토지, 일간 신문과 주간 신문),
도자기는 내 주위분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드리고 있는데
저 많은 책들은 주검이 임박하면
오산시의 공공도서관에 마지막으로 기증하고 떠날 생각입니다.
아내나 아들이 달갑지 않게 여기는 내 소장품들이기에.....
평생을 짓누르던 내 어깨의 짐들,
먹고 살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온 살들,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냈던 욕심들, 탐욕들,
다 내려놓으니 새털보다 가벼운 마음입니다.
삶과 주검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깨달으니 홀가분하게
아무 미련 없이 떠날 것 같습니다.
신은 나에게 내가 감당할 만큼의 작은 그릇을 주었기에 그 그릇에 맞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주사기 한 대 꽂지 않고 편하게 눈 감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 인지요. 삶을 다 내려놓어신
듯한 말씀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저도 사실 의료인
들의 통상적인 기준으로는 두어달 전부터 시한부 인생
당장 몇달을 기약할수도 없는
상황에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촛불처럼 꺼져가는
가녀린 생명줄이지만 단지
지금은 완치 수술 가능성은 없구요.그저 연명기간을 늘려나가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아직 포기란 제겐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생명 인생을 쉽게 생각하게 되면 제 스스로 제
인생 값어치 없게 만드는 직무유기라 생각 했습니다.
통상적 시한부 인생이지마는
저는 최대한 연명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된 의술 신약
우수한 표적항암제가 개발될때
까지 버텨볼 작정입니다.
저도 민순님 처럼 초연하게
그리 생각하고 첨부터 심각
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즈음
그 생각들이 많이 부적절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같이 노력해서 오래오래 뵐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떽! 자꾸 이럴껴? 말이 씨가 되고 마음이 슬프면 슬픈 일만 생긴다고 안 하더냐 다 겪어 본 사람이여 사는 날까지 암말 말고 살자 지발 누군 기운 뻗치고 장수할라꼬 산데 하루하루 사는 거지 내일은 모른다 알수도 없고
마음을 긍정적으로다 바꿔봐 가족 모두 좋은 기가 흐르게 슬픈 마음 먹지 마러
사진이 좋다 누가 아픈 사람이라고 할까 난 아프고 나서 귀신같이 변해버린 외모로 도저히 영정 사진 못하겠어서 5십대 말쯤 찍은 증명사진 복원해서 찍어 놨다 사진관에 가니 요즘 오래 사는 시대라 너무 늙은 모습 안남기려고 그리 한다더라 울 아부지 식도암으로 투병 하실때 영정 사진은 너무 마르셔서 보기 힘들어 제사 지낼 때마다 그래서 난 그런 방법했네 잘하시고 있네 성한 사람도 늘 준비하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뒤돌아 봐서 큰 실수 덜할거야 오늘 많이 춥네 밖에 나서지 마시고,
저도 사실상 너무 보기가 흉해서 밖으로 가발 없이
모자없이 나가기가 부담스러
웠습니다. 근데 이번에 나눔으로 받은 가발이 너무
제게 딱 맞아서 용기를 내어
봤습니다. 사진관 스튜디오
부부 사장님 얼마나 친절하시던지 그냥 찍어라
하시더군요. 야윈 모습은 사실
뽀샆 많이 했습니다.
비용도 저렴하구요. 부부 사장님 너무나 감사하더군요.
옛날 마누라 사진 복원하려다
귀신처럼 만들어놓아서 20만원
날려버린 황당하거 웃픈 일도
있었는데요.장례식장가니 욕을
엄청 퍼부어 되더군요.
새로 제대로 복원하는데 한시간
도 채 안걸렸던것 같습니다.
테레비위 거실벽에 걸어놓어니
눈만 떠면 보게되구요.삶의자세
각오가 새로워 지는것 같습니다.
컨디션이 좀 회복 됐지마는
밖으로 돌아다닐 정도는 아닙니다. 경산 아파트에 배달
온것도 또 아직 싱크대에 가져올것이 있지요. 아마
대부분 차안에서 지낼겁니다.
나선김에 납골당에도 새단장
도하고요.너무 무성의하게
내팽개친것 같아서 입니다.
우리 엄마, 70대셨을 때 제가 좋은 베로 수의 장만해드렸는데
93세까지 장수하셨습니다.
영정 사진 찍어놓으신 금박사님도 그 준비성이 힘이 되어 더욱 투병을 잘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도 힘써 싸워 이기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훌쩍 떠나고 나면 진실로
힘이 되어줄 사람없이 혼자서
고생하게 되는게 눈에 밟혀서
제가 최대한 수월하게 일처리
하라고 하는것이기도 하지요.
어제 장례식장에도 무빈소
장례에 문의 하기도 했구 회사
상조회 와 협의 관계도 의논하고 인제 그림이 제대로
고 준비가 다 된거 같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어쩔수 없는 무엇이 있지요
내맘 편하게 그렇게요 ᆢ
치료도 중요하지만 하나하나
이렇게 정리 할수 있는것도
감사할일 같습니다.
오늘은 또 먼저 옮긴 마누라
부부단 납골당 넘 부실한거
같아 제가 사진챙겨 들고
단장 해주고 왔네요.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라고 담담히 마음 가지며
영정사진 앞에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님이야말로
성한 우리들이 본받아야할 희망의 아이콘입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마누라 와 저의 마지막 둥지
납골당 꽃단장 하구 왔습니다.
제가 할일이 있구 둘째가 할
일이 역활이 다른것 같습니다.
오늘 해놓고 오니 몸은 고단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차분한인상에 인물이 참좋으시네요 온에서나마 오래오래뵙길바래요
지금 제가 할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같이할수 있기를
바랍니다.감사합니다.
영정사진 참 잘생겼네요
골골 10년이란 말도 있는데 그럭저럭 버티며 이렇게 살아내보자구요
형편없이 말랐는데 뽀샆
덕분이지요. 정말 골골골
하면서 오래 사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저도 최소한
그리 되었음 좋겟어요.
선한 인상이
참 좋습니다
금박사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산을 좋아라 해서 닉넴을
저희 고장에 유명한 등산로
금박산이 였는데 쓰기도
부르기도 불편해서 금박산
에서 금박사로 바뀌었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박사님 글을 읽으면 어쩌면 초연 하실까 하는 마음 입니다 삶을 살면서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지요. 둘째랑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오늘 둘째랑 하루종일 같이
붙어 다녔지요.먼저 새로
입주한 마누라 납골당 물론
인제 제자리가 되겠지마는
마지막으로 제 손으로 직접
꾸며 보구 싶어서 갔다
왔습니다~~
제자리 6층 로얄층 부처님
바로 앞이어서 그래서 기분
이 좋더군요 그 기운 받구
좋은 결과 내려주시길 소원
빌구 왔습니다.
누가 먼저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차근차근 준비 정리하시는거
귀감이되어 본받고 싶습니다
인물 좋으시네요
부디 기적이 일어나 예전인물
되찾고 살아야지요
정신력 참 대단하십니다
기필코 이겨내셔요~
얼마전 혼자서 서울까지
다니면서 힘들게 치료 했는데
결과도 미흡 무리한것
같더군요. 전이되었다 하는
이후로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
운신자체도 힘들어 모든치료를
포기하려고 까지 했습니다.
또 옮겨간 대구 주치의 마저도
치료에 의미없다는 맥빠지는
소리 계속듣고 더 나락으로
빠졋고 그 덕분에 힘들어도
이사부터 마지막 주변정리
까지 거의 대부분 정리 한것
같습니다.
제가 운신이 힘들다 보니 요새는 병원입원 생활이 더
좋아져 갑니다.
조금씩 좋아져서 자유로이
움직였음 좋겟습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