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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산업 수도의 심장이다. 조선소의 불꽃, 정유공장의 야경,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굉음은 모두 울산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산업화 시대 울산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거대한 엔진이었다.
그러나 그 불빛 이면에는 오래된 동네와 낡은 골목이 존재한다. 40년, 50년이 된 저층 연립주택에서 여전히 시민들이 살아가고 있다. 갈라진 벽과 뒤틀린 창틀 속에서 어르신들은 여름에는 부채와 땀으로, 겨울에는 전기장판에 의지해 하루를 버틴다. 누군가에게는 낡고 불편한 주거지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억이며 소중한 보금자리다.
최신식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 속에서 이러한 주거지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민간 정비사업은 멈춰 섰고, 주민들은 영세하여 자력으로 집을 고칠 형편조차 없다. 이 문제를 더 이상 그들 개인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다.
타 시·도는 어떨까. 서울시는 2022년부터 소규모 노후 주거지를 모아 개발하는 ‘모아타운’ 제도를 마련하여, 주민 동의율을 낮추고 행정 지원을 강화하는 등 공공성이 높은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도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소규모 주거지 정비 컨설팅, 비용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전시도 2021년부터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공공지원단’을 두고 상담·절차 지원과 이주대책 마련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타 시·도는 공공이 먼저 나서 노후 주거지를 개선하고 있다. 울산도 더 이상 민간 자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공공이 선도지구를 지정하고, 울산도시공사나 LH와 협력하여 기반 시설을 정비하며, 기존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 주거복지형 정비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고령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많은 지역은 ‘공공매입+임대전환형 모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천의 경우 75세 이상 소유 주택을 우선 매입하여 리모델링 후 공공임대로 전환하고 있는 선례를 적극 참고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공이 앞장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노후주택 정비와 재개발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울산시가 관련 조례를 보안하고 정비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행력을 가질 수 없다.
시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시, 다시 살고 싶은 울산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행정의 적극적인 의지와 함께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울산은 이제 산업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도시이다. 미래산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노후주거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히 낡은 집을 헐자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심는 것이다.
만약 공공이 이 역할을 회피한다면 울산은 산업의 불빛만 남은 공허한 도시가 될 것이다. 울산이 다시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민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제 울산시가 움직여야 한다. 노후한 주거지에 공공의 손길을 더해 ‘다시 살고 싶은 울산’을 만드는 것이 진정 시민이 바라는 진짜 변화다. 이것이 울산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